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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소통 막는 한국식 대화 예의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 | 유디트

입력 2012.04.05 09:38:00

세대 간 소통 막는 한국식 대화 예의


강원도로 이사 온 첫해의 봄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집 근처에 사는 부부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부부는 50대 후반으로 나보다는 거의 스무살 위였다. 우리는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해마다 변하는 날씨에 대해 얘기했고, 봄에 심을 농작물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아저씨는 우리 집 온돌이 겨울 동안 잘 작동했는지, 겨울 추위에 물은 얼지 않았는지 물으셨다. 대화를 이끌던 아저씨는 오래전 여행 갔던 유럽 이야기를 꺼내면서 독일에도 갔었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일 맥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아저씨는 독일 수돗물에는 석회가 섞여 있어 마시면 건강에 안 좋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많이 마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독일 맥주에 대한 정보’에 확신에 차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나는 ‘이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이 이상한 이야기가 어떻게 한국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해, 독일 사람들이 왜 맥주를 많이 마시는지 독일 사람인 나도 전혀 아는 바 없다. 나는 독일 사람이지만, 맥주를 전혀 마시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맥주를 아주 싫어한다. 독일 사람들이 맥주를 좋아하는 것과 석회가 많은 수돗물은 아무관계가 없다는 것은 맥주를 마시지 않는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만약 어느 독일 사람이 한국을 잠깐 여행하고 독일로 돌아가서 ‘한국 사람들이 수돗물을 먹기 싫어서 소주를 많이 마신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뿐만 아니라 석회가 섞인 물은 건강하지 않은 물이라는 말도 맞지 않다. 석회가 섞인 물은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풍부해 오히려 몸에 좋다! (이에 대해서는 이번에 다시 확인해보았다.) 독일 사람들이 가끔 석회가 많은 물이 문제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 이유는 석회가 많으면 세탁기 같은 기계들이 쉽게 고장 나기 때문이다.

그날 아저씨는 내 반응을 잠시 살핀 뒤 독일 맥주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셨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한국의 기본 예의에 대해 잘 몰랐다. 나는 아저씨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를 전해 듣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밝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네, 많은 사람들이 석회가 많은 물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고 있죠.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그런 물이 몸에 좋아요.” 나의 반박이 끝났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아저씨 얼굴에 ‘기분 나쁨’이라고 씌어 있었다. 아저씨는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계속 술만 마셨다.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기분이 나빠졌다. 의견을 말하면서 아저씨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는 것이 왜 기분이 나쁜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저씨의 반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반대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교수 앞에서 교수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내 경험에 따르면,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거의 자동으로 “예, 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의견과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세대 간 소통 막는 한국식 대화 예의




그날 내가 아저씨의 말에 두 눈 똑바로 쳐다보며 반대 의견을 말한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란 것을 지금은 잘 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국식 예의 있는 행동’을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언제나 상대방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고, 나의 솔직한 의견도 전하고 싶다. 학생들과 토론할 때와 옆집 할아버지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 ‘대화의 목적’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나이 든 분에게 예의 없는 행동이 된다면, 같이 이야기 나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저씨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기분 나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비난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아저씨가 예의 없는 사람이었다. 나이 많은 아저씨는, 잘못된 정보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만으로 내 생각이나 의견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듣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 나이 이제 마흔하나이니까, 나도 학교에서 ‘윗사람’이다. 학생들과는 거의 스무 살 차이가 난다. 스무 살 차이는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나는 한국에서 똑똑히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학생들이 내 앞에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을 걸면, 학생들이 자동으로 “예, 예”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 주지 않는 ‘예의 바른’ 학생들이 점점 많아진다. 학생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안다고 해도 난 항상 답답함을 느낀다. “예, 예”밖에 반응하지 않으면 벽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한 가지 덧붙여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영어로 ‘It‘s not what you say but how you say it.’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때, 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말의 내용(what)이 문제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말하는 방식(how)이다.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비판이나 반대를 상처 주지 않으며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아저씨에게 내 의견을 또렷하게 밝힌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눈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한 행동’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동이 연장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연장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나의 방식’을 수정함으로써 나이 많은 분들과도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몇 년 전에 있었던 독일 맥주에 관한 대화’는 나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세대 간 소통 막는 한국식 대화 예의


유디트씨(41)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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