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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디바, 패티 김

당당하고 아름답게 역사 속으로 걸어가다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박한별 기자, 피케이프로덕션 제공

입력 2012.03.23 09:55:00

언제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가수 패티 김. 올해 데뷔 54주년을 맞은 그가 오는 6월부터 내년까지 이어지는 은퇴 공연을 끝으로 화려했던 가수 인생을 마감한다. 언제나 당당한 백발의 디바, 패티 김은 마지막을 고하는 순간까지 온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의 노을처럼 빛났다.
영원한 디바, 패티 김


갑작스런 은퇴 소식에 대중은 가장 먼저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일흔넷, 결코 건강을 자신할 수 없는 나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2월15일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패티 김은 스키니 청바지에 발랄한 느낌의 벨벳 재킷, 자주색 페도라를 차려입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단상에 올랐다. 언제나 그랬듯,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도 그는 열정적이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올해로 데뷔 54주년을 맞은 패티 김은 6월부터 시작하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10년 전부터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 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외국 유명 가수들을 보면 마지막에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초라하게 잊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데뷔 40주년 됐을 때 팬들에게 약속을 했어요. 앞으로 10년 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노래를 더 부르겠다고요. 사실 50주년이 됐을 때 그만두려고 했는데 성량이 예전과 다르지 않고 노래가 너무 잘 나와서 욕심이 더 생기더라고요. 대신 그때부터는 멀리 계획을 잡지 않고 1년씩, 1년씩 연장해보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그러다 지난해 9월 드디어 결심을 했어요. 팬들에게 멋진 무대를 선사할 수 있을 때 무대에서 내려오기로요. 영원히 팬들의 기억 속에는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남길 바랍니다.”

영원한 디바, 패티 김

올해로 데뷔 54주년을 맞은 패티 김은 우리나라 음악의 한 장르를 꽃피운,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진정한 국민가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 가수
1958년 패티 김은 만 스무 살에 린다 김이라는 예명으로 미8군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당시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잘 알려진 이해연과의 듀엣 무대에서 첫 곡으로 패티 페이지의 곡 ‘테네시 왈츠’를 불렀다. 이듬해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패티 페이지의 이름을 따 패티 김으로 다시 한 번 예명을 바꾸고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168cm의 키에 날씬하고 볼륨감 있는 몸매까지 갖춘, 성량은 물론이고 외모 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신인이었다.
패티 김은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첫 무대의 떨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수십 번 연습 끝에 오른 무대에서 오른팔을 하늘 높이 번쩍 올려 멋진 포즈로 노래하려 했으나 너무 긴장한 탓에 한번 올라간 팔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공연을 본 군인들은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에 환호하며 연신 “패티 김!”을 외쳐댔다.
패티 김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우리나라에서 ‘리사이틀’이란 표현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도 그고(1962년 ‘패티 김 리사이틀’, 서울 피카디리 극장),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뉴욕 카네기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세종문화회관 개관 후 대중가수로서 가장 먼저 공연을 펼친 이도 패티 김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 가수라는 것이다.
1962년 첫 음반 ‘초우’를 취입한 그는 바로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로 진출해 뉴욕 등 여러 도시를 오가며 한국 가수로서 명성을 떨쳤다. 뮤지컬 ‘플라워 드림송’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고, NBC ‘쟈니 카슨 투나잇쇼’ ‘마이크 더글라스 토크쇼’ ‘할리우드 팔레스 버라이어티쇼’ 등에도 출연한 바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라디오를 통해서만 ‘초우’를 들을 수 있었고, 결국 얼굴 없는 가수로 노래만 대히트를 기록했다. 1966년, 그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귀국했다.
패티 김의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귀국 후 발표한 ‘4월이 가면’ ‘내 사랑아’를 시작으로 ‘별들에게 물어봐’ ‘그대 없이는 못살아’ ‘사랑이란 두 글자’ ‘9월의 노래’ ‘서울의 찬가’ ‘이별’ ‘사랑은 영원히’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가시나무 새’ 등 1991년까지 해마다 숱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은퇴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패티 김을 “한국 스탠더드 음악의 대가”라고 표현했다. 트로트의 여왕이 이미자라면, 스탠더드 팝의 여왕은 패티 김이라는 것. 우리나라 가요에 고급스런 터치를 가한 것이 스탠더드 팝인데, 패티 김의 등장으로 새로운 음악 역사가 꽃폈다는 평이다. 패티 김의 가장 큰 장점은 놀라운 가창력. 임진모씨는 “2옥타브에서 하이톤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절대로 음을 꺾거나 휘어 부르지 않는 ‘무기교의 가창력’이 가수로서 그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원한 디바, 패티 김

1958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패티 페이지의 이름을 따 패티 김이라는 예명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그는 성량은 물론이고 늘씬한 외모까지, 단연 돋보이는 신인이었다.





무대 오르기 15분 전, 언제나 새 구두 신고 꼿꼿이 서 있어
패티 김은 은퇴 기자회견을 앞두고 전날 밤 잠을 설쳤다고 했다. 기자회견 당일 아침에도 설레고 흥분된 마음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고. 그는 “마치 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처럼 마음이 초조하고 긴장되더라”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제로 평생 그에게 무대는 언제나 숨 막히는 전쟁터와 같았다. 무대를 신성하게 여기는 패티 김은 무대에 오르기 15분 전 새 구두로 갈아 신고, 선 채로 무대의 막이 오르길 기다린다.
“20대 때는 고음도 잘 나오고,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자신만만하게 노래를 불렀어요. 하지만 30, 40대가 되니까 무대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알겠더라고요. 노래를 하면 할수록 관객 앞에 서는 게 긴장되고 때론 무섭기도 해요. 저는 노래하기 전 양치질을 하고 손을 닦은 뒤 의상을 갈아입고 그대로 서 있어요. 절대로 앉지 않아요. 그러다 공연 시작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극도의 긴장감이 몰려와요. ‘이러다 공연 중 죽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어떨 때는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공연이 취소되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들어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기분이죠.”
50년 넘게 노래한 베테랑 가수에게도 이 같은 무대 공포가 있다니 의아한 일이다. 이에 대해 패티 김은 “팬들은 언제나 최상의 가창력을 기대한다. 몸이 늙으면 성대도 같이 늙기 마련이지만 관객들은 그런 사정 봐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은퇴를 앞둔 지금 그의 목소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그는 30대에 발표한 곡 ‘사랑은 영원히’를 오리지널 키로 부를 정도로 풍부한 성량을 자랑한다. 그는 비록 은퇴를 결심했지만 노래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마음이야 영원히 노래 부르고 싶죠. 하지만 지금처럼 건강한 상태로 무대를 떠나는 것이 가장 저답다고 생각해요.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은 언제나 밝고 희망적이에요. 석양이 질 때는 동이 틀 때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온 세상이 붉게 물들죠. 저도 그런 석양의 모습으로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습니다.”

영원한 디바, 패티 김


그는 지난 50여 년의 세월을 돌이켜볼 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30대를 꼽았다. 음악적으로나 외모 면에서나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티 김은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또다시 가수 패티 김의 인생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여자 패티 김으로서는 당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1967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지금은 고인이 된 작곡가 길옥윤 선생과 결혼한 그는 큰딸 정아씨를 낳은 뒤 5년 만에 이혼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길옥윤을 꼽는다. 그가 부른 노래 대부분이 길 선생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혼 후 24년 만인 1996년에는 투병 중이던 길씨를 위로하기 위해 ‘길옥윤 이별 콘서트’를 열어 조영남 정훈희 남진 등과 함께 노래를 불렀고, 작고한 뒤에도 몇 차례 추모 행사를 벌였다. 당시 패티 김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길옥윤 선생의 추모식에 앞장서는 이유에 대해 “그 사람 노래를 불러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고, 아직도 부르고 있다. 정말 훌륭한 작곡가라 생각한다”며 말한 바 있다. 현재 그는 이탈리아 출신인 남편과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때는 큰딸 정아와 둘째 딸 카밀라를 낳았을 때예요. 카밀라는 한때 가수로 데뷔했지만 현재는 노래를 중단하고 결혼해서 임신 7개월째예요. 4월이면 제가 세 번째 손자를 본답니다(웃음).”

영원한 디바, 패티 김


그는 그동안 발표한 노래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길옥윤의 ‘9월의 노래’와 ‘빛과 그림자’를 꼽았다. 샹송풍 발라드 곡인 ‘9월의 노래’는 비록 크게 히트하진 못했지만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남다른 감정이 느껴진다고 한다. ‘빛과 그림자’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부인을 둔 한 남자가 평소 친분이 있는 길옥윤 선생에게 자신의 사연에 곡을 붙여달라고 해서 탄생한 노래. 패티 김은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가엾은 그 부부가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자기 관리 덕분이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고 건강해 보이는 그는 “나의 정신 연령과 육체 연령은 40대에 불과하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평생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요즘에도 그는 하루에 4~5km를 거뜬히 걷고 수영도 1500m를 한 번에 완주할 수 있다. 얼마 전 사망한 휘트니 휴스턴의 광팬이기도 한 그는 2년 전 국내에서 열린 휘트니 휴스턴 콘서트 맨 앞줄에 앉아 백발의 모습으로 두 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그가 우리나라 유명 가수인 줄 몰랐던 휘트니 휴스턴은 공연 마지막에 결국 그를 무대 앞으로 불러세워 관객들에게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고. 패티 김은 “지금껏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비록 가수 생활은 그만두지만 나의 인생 모토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생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낼 터
6월2일부터 서울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시작하는 은퇴 기념 투어 콘서트의 제목은 ‘이별’이다. 1972년 대히트를 기록한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데 콘서트 타이틀을 두고 고심하던 중 후배 가수 조용필의 추천으로 ‘이별’로 정했다.
“기획사 식구들과 의논할 때도 거론된 제목인데 처음에는 공연이 너무 처량 맞아 보일 것 같아서 제가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조용필씨를 만났더니 ‘당연히 누님은 이별로 하셔야죠’ 하는 거예요. 저의 가장 큰 히트송이기도 하고, 팬들의 가슴이 뭉클해질 만한 제목이라는 거죠.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팬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것 말고 더 바랄 게 없거든요.”
이번 공연은 그의 가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만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장에다 천장까지 높아 화려한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공연을 위해 오케스트라, 밴드, 무용단, 안무팀, 합창단 등 2백여 명의 스태프가 동원될 예정이고, 기성 가수부터 아이돌 후배 가수까지 릴레이로 투어에 함께한다.
“마지막 무대에 섰을 때 어떤 감정이 들지 아직은 가늠이 안 가지만, 분명한 건 무척 감동적이겠죠.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것이고, 고마웠던 분들의 얼굴도 한 분 한 분 떠오를 것 같아요. 그동안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많은 사랑을 받아 더 행복했습니다. 무대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은퇴 후 그는 평범한 할머니 김혜자(패티 김의 본명)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내주지 못했던 가족들과 여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남편과 두 딸, 그리고 손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또 기회가 된다면 녹색환경운동에 참여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무대에 너무 오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겠냐”는 짓궂은 기자의 질문에 “집에서 거울을 보며 마음껏 노래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당당하고 생기 넘쳤다.

여성동아 2012년 3월 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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