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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취업사관학교’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 제공

입력 2012.01.17 17:19:00

취업난 속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의 기록적인 취업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한 청년부터 고등학교 중퇴자, 명예퇴직을 앞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만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은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인력개발원을 통해 인생의 제2라운드를 맞이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인력개발원은 내 인생의 디딤돌”
광주인력개발원 출신 (주)세오전자 엄동석 과장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엄동석씨(37)는 2006년부터 매주 광주인력개발원에서 후배들에게 실무 강의를 하고 있다. 그가 가르치는 과목은 시스템제어, 제어공학, 컴퓨터. (주)세오전자에서 12년간 일하며 얻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주는 그 역시도 광주인력개발원 출신. 엄씨는 1998년 광주인력개발원 자동화설비과(현 자동화시스템제어과)에 입학해 2년간 공부하고 취업에 성공했다.
“군 제대 후 가세가 기울어 대학 복학은 꿈도 못 꾸고 고민하던 중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인력개발원을 알게 됐어요. 무료로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식사와 기숙사까지 제공된다는 이야기에 솔깃했지만, 처음엔 대학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재학 당시 실무진에게 배운 노하우 이제는 후배에게 전하는 입장으로
갑작스레 생긴 여유 시간을 놀며 보내기보다 기술이라도 배우려는 마음이 컸다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기계설계과를 지원하려던 그는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동화설비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인력개발원 재학 당시에도 실무진이 해주는 강의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교재나 인터넷에 있는 실습 과제와는 다른 새로운 걸 가르쳐주려고 노력해요. 인력개발원에 다닐 당시에도 공유압에 대해 배우면서 현장 실무자가 가르쳐준 밴딩이 기억에 남아요. 공구를 주고 한번 파이프를 밴딩해보라고 하셨는데, 책에서 본 대로 하려니 파이프가 자꾸 끊어지고 어렵더라고요. 그때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현장에서 얻은 노하우를 간단하게 알려주셔서 정말 유익했죠.”
인력개발원에서 만난 교수님과 동료는 인생의 큰 자산. 재학 당시 삼총사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각자 전공을 살려 취직에 성공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부를 주고받는 살가운 사이. 인생의 멘토 같은 교수님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교수님이라기보다 인생의 스승을 만난 셈이죠. 힘든 상황에서 저를 감싸주셨거든요. 학생들에게 언제나 베푸는 선생님이었어요. 자격증 준비를 할 때도 ‘밖에 나가면 공부 안 하니까 주말에 나와라’하며 열의를 보이셨죠. 저희가 ‘주말에도 나와야 합니까’라며 투정을 부리면 ‘다 나오면 짜장면 산다!’며 공부도 시키고 다독거려주셨어요. 교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분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졸업생인 그가 보는 인력개발원의 장점은 높은 취업률. 졸업생 수보다 구인 인력이 많은 점은 인력개발원의 특징이라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현장에서 쓰는 최신 장비를 써볼 수 있는 공부 환경도 좋았다고 했다. 그 역시도 인력개발원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다. 졸업을 앞둔 2학년 말 교수님과 진로에 대해 상담하다 작은 신생 벤처기업의 연구 관련 업체를 추천받았다. 그게 지금의 (주)세오전자. 당시에는 사장을 포함해 엄씨까지 전 직원 2명인 작은 업체였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사장님을 만나고 ‘회사를 하나 만들 건데 도움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일을 시작했어요. 용 꼬리가 되기보다 뱀 머리가 되고픈 생각도 있었고, 추천해주신 교수님을 믿고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로 시작했죠.”

직원 2명뿐이던 작은 회사, 10여 년만에 코스닥 상장 앞둬

그렇게 만들어진 (주)세오전자는 이제 코스닥 상장을 바라보는 내실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곳에서 그는 전공을 살려 자동화분야 관련 기계를 만든다. LED를 활용한 경관 조명과 회로설계, 펌웨어 프로그래밍 작업이 그의 주 업무. 2001년 결혼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3학년 두 아들을 뒀다.
“인력개발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수기 공모에서 장려상을 받았는데 집사람이 ‘내 이야기 빼먹으니까 장려상밖에 못 받지 않았느냐’며 웃더라고요. 이곳을 통해 성공하고 예쁜 아내까지 얻었으니 인력개발원은 제 인생의 중요한 디딤돌이 돼준 셈이죠. 어떤 자리든 남들이 낮게 본다고 낮은 건 아니에요. 열심히 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성공할 수 있다고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광주인력개발원 전경(왼쪽)과 개발원 내 도서관.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다
김동건(29) | 2006년 인천인력개발원 금형설계과 입학 후 정규양성 2년 과정 수료, 현 한미반도체 자동화연구부 취업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CNC공작기계실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



인력개발원 입학과 졸업은 큰 행운이자 소중한 경험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전문학교 컴퓨터응용제어과에 진학했다. 1년간 로봇을 설계하고 제작했지만 좀 더 기술다운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영장이 나와 입대 후 포병대대에 배치됐는데, 포를 관리하면서 매일같이 손에 기름을 묻히며 한 군 생활이 기름쟁이의 첫걸음이었다. 제대 후 전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고 인력개발원 금형설계과에 들어갔다.
1학년 때는 금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고 전산응용기계제도기능사, 수치제어밀링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공부의 결과물로 자격증을 얻자 자신감이 붙었다.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업기사를 공부했다. 방과 후에도 남아서 공부하는 우리를 교수님은 성심성의껏 지도해주셨다. 그 덕에 사출금형산업기사, 프레스금형산업기사, 컴퓨터응용가공산업기사, 기계조립산업기사, 사출금형제작사까지 총 7개 자격증을 갖게 됐다.
‘대학생 금형 3차원 CAD 경진대회’ 출전도 인력개발원 재학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다. 아마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인생에서 최고로 많이 공부했던 것 같다. 프레스금형 분야로 도전하며 외부에서 교수님을 초빙해 교육받을 정도로 대회 준비에 열심이었다. 한 벌의 금형을 완성하며 느껴지는 성취감은 정말 짜릿했다. 기숙사와 교실을 오가며 여름을 보내는 우리가 기특해 보이셨는지 교수님이 방학인데도 매일 나오셔서 공부도 봐주시고 반찬도 챙겨다 주셨는데 그 고마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대회 당일,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큰 실수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주제는 컬링이었고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차분하게 설계를 해나갔다. 식사도 미뤄두고 정신없이 금형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몇 달 뒤 교수님이 싱글벙글 웃으며 교실에 들어오셨다. 대회에서 금상을 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산업부장관상이라니…. 부상으로 현금 80만원과 일본 여행 및 업체 견학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 최고의 날을 꼽으라면 그날을 꼽고 싶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우리 과 모든 사람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상을 받은 계기로 사원 5백여 명의 중기업인 한미반도체에서 면접을 보라고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보고 자동화연구부에 입사했다. 반도체 금형은 새로운 분야라서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금형 지식이 탄탄했기에 별 무리 없이 직장 생활을 했다.
그 무렵 인력개발원의 같은 과 동생인 아내와도 결혼했다. 스무 살에 집을 떠나 타지 생활하는 그녀가 안쓰러웠고, 여자이면서도 금형을 배우겠다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 보여서 저절로 관심이 갔다. 우리는 인천인력개발원 금형과 1기 부부다. 금형과 개설 이래 첫 부부 타이틀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딸과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인력개발원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소중한 것이 내겐 너무 많다. 누군가 지원을 망설인다면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이곳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 도전하라고 말이다.

#인생에 찾아온 변화, 시작이 반이다
윤제관(36) | 2011년 강원인력개발원 전기시스템제어과 입학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인력개발원의 공작기계실습 시간.



그동안 누가 잘하는 걸 물어보면 자신 있게 ‘이거다’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도 없고, 나이를 먹으니 사회생활에서 한계가 느껴졌다. 2009년 결혼하고 가장이 되자 책임감이 더해지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미래의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무언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강원인력개발원에 입학했다. 입학하기 전 가족에게 “열심히, 즐겁게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개발원 원장님은 내게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맞는 말이었다. 가족들이 내게 허락해준 소중한 시간, 1분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잘 활용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인력개발원의 규칙적인 생활 사이클에 내 몸을 맡겨보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생활했던 터라 가족과 떨어져 있었지만 큰 의지가 됐다.
인력개발원에서의 첫 수업. 분명히 한국어로 강의하는데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교수님께서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시며 반복해서 강의하셨다. 처음으로 국가기술자격증 시험도 준비했다. 목표는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승강기가 뭔지도 몰랐던 나를 교수님은 끝까지 온정 어린 마음으로 가르쳐주셨다. 그 덕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다른 친구들이 2시간이면 끝낼 걸 4시간씩 걸려 손재주가 없다고 자책하던 내게 지도교수님은 “왕도는 없다. 반복해서 연습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교수님이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고도 늦게까지 남아서 지도해주신 덕에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태어나서 운전면허 이후 처음 받아보는 국가기술자격증이었다.
그 시기 몸에도 변화가 왔다. 인력개발원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위에서 처음 입학했을 때보다 날씬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원내 체력단련장과 운동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곳에서의 생활 방식은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2학기를 맞아 새로운 과목을 배우고 있지만, 처음 입학했을 때만큼 생소하지는 않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던 교수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겼다. 이곳에서 받는 PLC 실습, 회로 실습, 시퀀스 실습, 공유압 실습, 신재생에너지 교육 등은 앞으로 어디에 취업하든 기초가 되는 중요한 것들이다. 자격증은 책만 보고도 취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력개발원에서의 실습은 절대 혼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사회에 나가서도 위로가 될 동기와 인생의 스승을 만난 것도 큰 기쁨이다. 인생의 대선배인 교수님들이 살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주시고 마음가짐이나 처세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 단순한 지식보다도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았다.
아직 인력개발원에서의 생활이 많이 남았고 목표도 진행형이다. 요즘에는 소방설비전기기사 2차 실기시험과 전기공사기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 집에서 준비했다면 6개월 동안 이렇게 많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곳에서 많이 배우고 교수님들의 조언을 잘 귀담아듣는다면 취업과 더 나아가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될 것 같다.

▼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은 빠르게 변화하는 취업 환경에 대응해 현장감 있는 양질의 교육을 바탕으로 취업을 돕는 기관이다. 학생들은 탄탄한 교수진으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경쟁력을 갖춘 가능성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고, 중소기업에서는 준비된 인재를 채용해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인 셈.
기존의 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 훈련은 사회에 많은 노동력을 공급해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런 공급자 중심의 교육 훈련 시스템은 공급되는 인적 자원은 많을지 몰라도, 질적인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직업 교육 훈련 시장의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한다. 수요자 위주로 훈련 체계를 개편하기로 한 것. 정부는 1994년 4월 신경제 5개년 계획에 의해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건립해 운영하고 있던 부산, 인천, 광주, 경기 등 8개 인력개발원을 민간 경제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로 이관했다.
인력개발원은 다년간 축적된 교수진의 노하우와 최신 기자재를 바탕으로 실전과 유사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쾌적한 교육 환경에서 전문 교육 컨설턴트에게 1:1 맞춤형 교육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교과 편성 단계부터 현장 기술자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 실무 중심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졸업생의 취업률도 높은 편이다. 전국 8곳에 인력개발원이 있고 주요 도시 30여 군데에 훈련센터가 있어 접근성도 좋다.
몇 년 사이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기술을 배워 취업의 문을 뚫으려는 이들이 늘어나며 인력개발원이 주목받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취업에 실패한 대졸 청년부터 고등학교 중퇴자, 명예퇴직을 앞둔 사람 등 다양한 계층이 인력개발원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고 귀띔했다. 2011년 졸업한 인력개발원 수료자 1천8백61명의 취업률은 98.4%에 이른다. 이처럼 높은 취업률은 17년째 이어지는 대기록으로 인력개발원의 자랑이다. 2011년 졸업생의 1인당 평균 자격증 수는 2.4개, 국가기술자격증을 보유한 학생 비율은 90.1%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는 부산, 인천, 광주 등 8개 인력개발원에서 3천여 명의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특히, 기계·전기·통신·전자·산업응용 등 국가기간전략산업 직종을 6개월, 1년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나이나 학력 제한이 없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교육훈련비, 교재, 실습비, 기숙사비, 식비는 물론 교통비와 월 20만원의 훈련수당을 지급한다. 자세한 문의는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사업단(02-6050-3914 www.korchamhrd.net)으로 하면 된다.

여성동아 2012년 1월 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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