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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의 무한도전

권율 [명사] :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의 이름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권율 페이스북 제공

입력 2011.12.15 15:04:00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예일대 로스쿨 졸업, 로펌 변호사, 상원의원 입법보좌관, 매킨지 경영컨설턴트, 구글 비즈니스 운영전략 담당,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입이 떡 벌어지는 이력의 주인공은 미국 CBS 인기 프로그램 ‘서바이버’의 우승자 권율.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며 달려 나가는 투사가 떠올랐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소박한 들꽃 같았다. 은근한 향을 지닌 남자와의 담대한 토크.
미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의 무한도전


“남태평양을 가르는 이 배가 향하는 곳은 뉴질랜드의 쿡 아일랜드. 이들이 앞으로 39일간 지낼 곳입니다. 아시아계, 백인, 라틴계, 흑인 20명이 4개 부족으로 나뉘어 다른 섬에 살면서 자력으로 생존해야 합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탈락, 결국 한 명만 남아 1백만 달러를 받게 됩니다.”
2006년 미국 C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에서 5만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한 권율(36). 뉴욕 퀸즈 출신인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우승해 상금 1백만 달러를 받았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대선 캠페인에 참여했고,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소비자보호담당 부국장을 지냈다. 현재 미국 LinkTV 주간 뉴스 프로그램 ‘LinkAsia’의 앵커이자 PBS 신규 프로그램 ‘미국, 모습을 드러내다(America Revealed)’의 진행자다.
그가 아산정책연구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대학생들을 만나 ‘공감’의 리더십을 설파하며 직접 겪은 미국 사회와 정치, 그리고 꿈에 대해 말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기 직전, 그를 만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명사] : 1. 남성(男性)으로 태어난 사람
남자는 ‘서바이버’에서 우승하고 전 세계인으로부터 팬레터를 받았다. 한국인 외에 흑인과 백인도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어린 친구들의 멘토로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한국을 찾았다. 미래에 대해 고민 많은 한국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이 힘들어도 남에게 마음을 열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를 어려워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20여 편이 넘는 ‘서바이버’ 시리즈가 방영되는 동안 그는 유일한 아시아계 우승자였다. 남자는 그곳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시험하고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어릴 적 TV 속 황인종은 늘 웃음거리로 그려졌어요. 우승하면 아시아인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우승하고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시아를 떠나 많은 사람이 저를 좋은 롤 모델로 봐주고 어린 친구들이 영감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남자는 성공 모델에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한 분야에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 다른 하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리더로 성장한 ‘르네상스 모델’. 그의 족적을 살펴보면, 확실히 후자다. ‘서바이버’ 우승 요인으로도 살면서 여러 커리어를 쌓은 점을 꼽았다.
“변호사 일을 해봤기에 남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컨설턴트 경험을 했기에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데 익숙했어요. 또한 주류에 속하지 않은 아시아계였기에 소외된 사람의 심리를 알고 연합할 수 있었죠.”
남자는 우승 상금 1백만 달러 중 50%를 세금으로 내고 30% 는 자선단체에 기증했다. 후속 시리즈에 출연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CF 제안도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서바이버’ 출연 당시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2년 동안 비영리단체에서 봉사하며 미국 내 소수 인종을 위한 골수 이식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50여 회가 넘는 골수 기증을 해왔다.
연방수사국(FBI)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조 리버먼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한 남자는 2009년 10월 연방통신위원회 부국장에 임명됐다. 그곳에서 소비자 권리 보호와 정부 정책 홍보에 힘쓰던 그는 안주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의 대형 특집 프로그램 ‘미국, 모습을 드러내다’의 사회자가 된 것. PBS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진행을 맡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의 무한도전


“프로그램은 미국 사회가 작동하는 여러 시스템을 현장을 통해 보여줘요. 식품과 교통 통신망, 에너지와 제조업 생산 시스템 등이 주요 소재고 교육적인 성격을 띠고 있죠. 미국인의 숨겨진 생활양식을 현장 위주로 흥미롭게 조명한 프로그램에 아시아계 미국인이 사회자로 기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미국에서 한인 사회를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굳게 세워져 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것. 특히 아시아계 사람을 돕는 것이 그의 꿈이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이 리더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나무 천장’을 깨려고 노력해온 남자는 목표에 맞는 역할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생각이다.
“저는 인생을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싶어요. 죽기 전에 인생을 돌아봤을 때 제 인생에 단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가 쓰여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했죠. 많은 사람들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무언가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도 변화도 할 수 없어요. 실패를 두려워 말고, 자신에게 ‘괜찮아, 실패할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세요.”



미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의 무한도전

권율은 2006년 미국 C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에 출연해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남자[명사] : 2. 사내다운 사내
‘서바이버’ 출연진의 입을 빌리자면 남자는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가이’인 데다 ‘스트롱’하기까지 하다. 그는 스탠퍼드대 이론전산학과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2006년 ‘피플’ 잡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 중 한 명이고, 2010년 아시안 퍼시픽 남성 캘린더 모델로도 활동했다. 한마디로 지성과 육체를 다 갖춘 이기적 유전자. ‘강한 남자’의 전형 같은 그에게 대인공포증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꽤 커서도 낯을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대인공포증이 있었어요. 정상적 사회생활이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죠. 유명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제 삶은 노력과 극복의 연속이었어요.”
남자가 태어난 1975년 미국 인구 중 아시아계는 1.5%, 이 중 한국계는 10%로 극소수였다. 인종적으로 소수인 데다 외모도 미국의 주류 백인과 다르다 보니 어린 시절 늘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학교생활도 쉽지 않았다.
“인종차별적인 백인 이웃이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몰래 우리 집 크리스마스 장식을 부수곤 했어요. 집 주변에 화장지를 잔뜩 버리고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죠. 학교에 가면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고, 선생님이 뭔가를 말해보라고 시키거나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온몸에 흥건할 정도로 땀이 흘렀어요. 강박증 때문에 하루에 손을 20번씩 씻기도 했어요. 백인 아이들이 소수 인종 아이의 몸에 소변 보는 것을 목격한 뒤로는 학교 화장실이나 야구장, 쇼핑몰 같은 공공장소에도 잘 못 나가고 집 안에만 갇혀 지냈어요. 제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자신을 더욱 고립시켰던 것 같아요.”
그러던 남자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는 이가 따돌림을 당하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삶의 태도를 바꾸게 됐다.
“처음에는 ‘어떻게 어린 아이가 자살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답을 알고 있었어요. 희망이 없고 고립돼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저도 같은 길을 가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도 삶의 어두웠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힘들 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어두운 터널을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절망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하는지 잘 알거든요.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자신도 인생도 절대 변할 수 없겠더라고요.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차근차근 변화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삶을 의미 없이 끝낼 것인가, 인생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인가. 선택은 쉬웠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려고 뭔가 시도한다고 해서 잃을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달성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만들고 두려워서 회피하던 문제와 직면했다. 목표를 이뤄갈 때마다 자신감이 붙었고, 어느 순간부터 남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렇게 소년은 남자가 됐다.

남자[명사] : 3. 한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을 이르는 말

미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의 무한도전


‘서바이버’는 남자에게 유명세뿐 아니라 평생의 반려자도 선사했다. 남자의 아내는 중국계 미국인 소피 권(33). 소피는 파리에서 태어나 UC 버클리대를 나온 후 미 연방 보건복지부에서 소수 인종의 건강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소피는 남자와 ‘서바이버’에 함께 출연한 브래드의 친구였다. 브래드의 주선으로 만난 둘은 2009년 결혼, 지난해 9월 딸 ‘제네비’를 얻었다.
“아시아계 친구 브래드가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서바이버’를 보고 있었어요. 당시에 제가 가장 멋지게 나올 때였죠. TV를 보던 소피가 ‘저 사람도 동성연애자냐’라고 물었대요. 브래드가 동성연애자였거든요. 아니라고 하니까 그녀가 농담 삼아 저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만남을 가졌고, 사랑에 빠졌어요. 외모만큼이나 마음도 아름다운 여자였죠. 아내는 명성이나 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거든요.”
남자는 딸에 대해서도 무한한 애정을 표시했다. 인생 목표 중 하나도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집에 가서 딸의 얼굴 보기’를 꼽는다. 딸이 원하는 길이 있다면 아빠로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만 나이 많은 남자와 데이트하거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하면 결사반대할 거라고.
“아이가 부모에게 이야기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문화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부모님께 털어놓기 어려워하죠. 저만 해도 부모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혹시나 제게 실망하거나 저를 부끄러워할까 봐 제가 가진 문제를 이야기하기 어려웠어요. 한국은 자살률도 높잖아요. 아이에게 소리 지르거나 꾸짖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부모가 돼야 해요. 부모님에게도 고민을 이야기 못한다면 누구에게 얘기하겠어요. 엄마, 아빠가 많이 도와줘야죠.”

장소협찬 | 아산정책연구원(02-730-5842)

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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