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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로 불편한 진실 정면 응시 작가 공지영의 소설 & 영화 이야기

“따뜻한 세상 꿈꾸지만 문제없는 세상은 없다. 문제 해결하려는 사람을 응원하겠다”

글 | 안소희 자유기고가 사진 | 조영철 기자, 딜라이트 제공

입력 2011.11.16 09:59:00

대한민국은 지금 영화 ‘도가니’로 인해 도가니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뒤에는 한 장애학교에서 일어난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소설에 담아낸 원작자 공지영씨가 있다.
그의 작품이 영화화 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우리가 사는 시대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세상과 유연하게 소통하는 공 작가가 자신의 소설과 영화 이야기를 들려줬다.
‘도가니’로 불편한 진실 정면 응시 작가 공지영의 소설 & 영화 이야기

영화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이라 더욱 파장이 컸다. 원작 소설과 영화 덕분에 자칫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화 ‘도가니’의 힘은 셌다. 교사와 교직원들이 약자인 장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년간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전관예우, 증인 매수 등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실제 배경인 광주 인화학교는 폐교 조치됐다. 또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률적인 검토도 시작됐다.
‘도가니’ 이전에도 공지영 작가(48)의 작품은 여러 번 영화화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냈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 제도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렇듯 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공 작가가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영상정책 포럼 오픈 세션에서 자신의 소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2백 석 넘는 좌석을 가득 메운 청중과 취재진의 취재 열기까지 ‘도가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공 작가는 40대 후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발랄한 모습으로, 당당하지만 연륜이 만들어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등장했다.

너무나도 다른 소설과 영화, 그 속에서 느낀 괴리감

‘도가니’로 불편한 진실 정면 응시 작가 공지영의 소설 & 영화 이야기


그는 의외로 자신은 ‘영화를 싫어하는 별종’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 그의 삶에 영화가 들어온 사건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1989년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자는 제안을 하려나 하는 마음으로 냉큼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제작사의 제안은 뜻밖이었다. 강석경 작가의 ‘숲속의 방’이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즉석에서 1백만원을 계약금으로 내미는데, 1백만원짜리 수표를 그때 처음 봤어요(웃음). 당시 대졸 초봉이 30만원 정도였으니까 엄청나게 큰돈이었죠. 마침 제가 큰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어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더라고요.”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그의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정에 수정, 끝없는 작업이 이어졌다. 하지만 수정 사항은 그가 생각했던 작품성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광장엔 수많은 인파가 웅성거리고 있다’는 지문은 ‘골목을 몇 명의 사람들이 오갔다’라고 고쳐야 했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공 작가, 그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려면 인건비가 얼만지 알아?”라거나 “공 작가! 비 오는 장면 하나를 위해 강우기 빌리면 그 돈은 다 어떻게?”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주연 배우가 발음이 어려워서 대사를 고쳐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 알았죠. 영화는 참 힘든 거구나. 나 혼자의 작업이 아니구나.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네. 그래서 다짐한 것이, 다시는 시나리오를 쓰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몇 년 후 그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영화화하는 과정에 다시 참여했다. 머릿속 영상이 어떻게 스크린 위에 펼쳐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엄청난 괴리감이었다. 그가 그렸던 주인공 경혜와 혜완의 모습은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영화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
두 번째로 영화화 제안을 받아들인 작품은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송 감독은 조감독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사흘이 멀다 하고 들락거리던 포장마차에서 항상 끝까지 남아 있던 3인방 중 한 명이었다. 1차 기준(주량)은 가볍게 합격점이었다. 그 후 송 감독의 전작 ‘파이란’을 보고 단박에 수락했다.



“강동원이 누구야”라고 물었다가 딸에게 핀잔 들어
“단, 조건을 달았죠. 시나리오 작업이든 뭐든 저는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고. 정말 영화 촬영장에 얼씬도 안 하고 지냈는데, 그러다 우연히 강동원씨를 만났어요. 주연 배우라고 하는데, 처음엔 실망했죠. ‘아무 조건도 안 달았더니 어디서 신인 배우를 데려왔네’ 하고요(웃음). 제가 강동원씨를 몰랐던 거죠. 나중에 딸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가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요.”
그는 영화 촬영 마지막 날, 처음으로 양수리 촬영장을 찾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송해성 감독이 그를 보자마자 욕을 섞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소설을 어떻게 이렇게 썼느냐’며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의 소설이 도저히 그림이 나오지 않는 글이라는 항의였다. ‘유정과 윤수는 마치 낭떠러지를 사이에 두고 밧줄을 마주 잡고 있는 두 사람처럼 서로의 느낌을 고스란히 주고받았다’ 같은 묘사들을 어떻게 영화 속 이미지로 표현하겠느냐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는 작가로서 왠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앞으론 영화가 넘볼 수 없는 소설을 써서 감독들을 골탕 먹이리라 마음을 먹었다.

‘도가니’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어 그의 작품 중 세 번째로 영화화된 작품으로, 제작 단계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공유를 제외하고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도, 감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팀의 명성에는 별 관심이 없는 그의 무심함이 없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인연일 것이다.
20곳 가까운 제작사에서 ‘도가니’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두세 장짜리 기획안들 속에서 열다섯 쪽이 넘는 장문의 기획안이 눈에 띄었다. ‘도가니’를 제작한 삼거리픽쳐스가 제출한 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공지영 작가는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무명의 제작사인 데다 이름도 어쩐지 삼류 느낌이어서 살짝 걱정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예산에 쫓겨 광장 장면을 골목 장면으로 바꿔야 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염려됐던 것이다. 하지만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를 만나 주거니 받거니 술이 진해져서 ‘에라 모르겠다, 그럽시다!’ 또 그렇게 계약을 하고 말았다.


‘도가니’로 불편한 진실 정면 응시 작가 공지영의 소설 & 영화 이야기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영상정책 포럼 오픈 세션의 모습과 작가 공지영.



잔인한 현실 정면 응시한 영화 보고 숨이 턱 막혀
계약한 후에도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어 슬그머니 불안해질 무렵, 드디어 제작에 들어간다는 연락이 왔다. 8개월 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영화 제작 고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처음에 가졌던 염려는 조금씩 사라졌다. 스태프와 배우 중 낯익은 얼굴은 한 명도 없었지만 모두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그 자리에서 영화에 출연할 아역 배우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그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제가 도가니를 쓴 것도 이미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3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어요. 그때 제가 만난 아이들은 사건 당시보다 세 살 더 먹은 거죠. 제가 직접 만나고 취재했던 아이들은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야기 속 어린 나이를 연기할 배우들을 직접 보니 가슴이 턱 막혔어요. 어떻게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이 아이들을 어떻게….”
공 작가는 이 부분에서 잠시 숨을 멈췄다. 그의 재미난 입담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짧은 정적에 이어 작은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그때 영화의 힘을 실감했어요. 소설을 쓴 저조차도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잖아요. 영화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사변적 통찰을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모든 것을 ‘보여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잠을 잘 때 꼭 하나 쉬는 것이 있는데 혹시, 그게 뭔지 아세요? 바로 눈이래요. 눈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적 정보가 너무나 강렬해서 쉬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시각적 요소는 강력해요. 영화는 그런 이미지의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제 책이 1백만 부가 팔렸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을 영화가 해냈어요.”
그는 ‘도가니’ 시사회에 참석해서 자기가 쓴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와 가깝게 만들어진 영화였다.
“처음에 공유씨가 주연을 맡는다고 했을 때 강동원씨처럼 누군지 몰랐거든요. 그래도 그때 배운 게 있어서, 공유씨 만났을 땐 잘 아는 척했죠(웃음). 인사를 나누고 곁에 서서 사진 촬영을 했는데, 우와! 코트 너머로 느껴지는 근육이, 와! 좋은 배우구나!(웃음)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공유씨의 연기가 무척 놀라웠어요. 무력한 지식인의 연기를 ‘오발탄’의 김진규씨 이래 가장 빼어나게 한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그는 작가의 역할은 작은 것이며 함께한 제작진 모두가 지금의 ‘도가니’를 만든 것임을 강조했다. 자신 역시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말 못하고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서, 그것도 조직적으로 학대하고 폭행하지만 사회는 힘 있는 자들 편을 들어준다는 슬프지만 뻔한 사실이 이처럼 커다란 울림을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첫째는 지금도 그런 현실이 계속된다는 것일 것이고, 그 다음은 공지영 작가의 힘일 것이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지만 아무 문제도 없는 세상은 없잖아요. 다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회, 그런 사회가 따뜻한 세상이지요.”
그는 오늘도 따뜻한 세상을 위해 그 힘을 보태고 북돋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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