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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3일간 치열한 공방 끝 결론 “이런 사랑은 없다”

악마에게 4년 8개월간 성폭행 당한 20대 여성의 악몽

글·신광영 사진·문형일 기자 사진제공·REX

입력 2011.10.05 17:42:00

“신고하면 너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죽인다”는 성폭행범의
협박에 굴복한 뒤 스물두 살 박은경씨(가명)의 삶은 지옥이었다.
‘친절한 아저씨’에서 악마로 바뀐 이경수씨(가명)는 회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박씨를 협박해 5년 가까이 주말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룻밤에 4, 5차례씩 1년에 2백19차례나 성관계를 맺었다.
마침내 박씨의 신고로 세상에 드러난 이 사건은 8월 말
국민참여재판에 회부됐고, 강간이냐
화간이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국민참여재판 3일간 치열한 공방 끝 결론 “이런 사랑은 없다”


2011년 2월27일 밤, 파출소로 뛰어들어온 한 여성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산발에 눈물범벅인 그 여성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언가를 속삭였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형사들의 거듭된 질문에 30분 가까이 입을 떼지 못하던 박은경씨(27)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저를… 저를… 죽이려 해요.”
그때 박씨 손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벌벌 떨며 “살려달라”는 말을 다시 반복했다. 신호음이 10분 넘게 울리도록 그는 휴대전화 폴더를 열지 못했다. “통화가 돼야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형사들의 설득에 그는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좋은 말로 할 때 돌아와.” 스피커폰으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4년 8개월 동안 성폭행을 당했지만 도저히 신고할 엄두를 못 내게 했던 그놈, 이경수씨(55)였다.
신고 1주일 뒤, 경찰서에서 만난 박씨는 멀리서 봐도 단연 눈에 띄었다. 우윳빛 피부에 크고 쌍꺼풀 진 눈, 갸름한 턱선. 그는 “대학 시절 스튜어디스 취업을 준비한 적이 있다”고 했다. 5년 전 항공사 면접을 앞두고 찍은 이력서 사진은 이제 경찰서 조서에 붙어 있다. 담당 형사는 “지금도 예쁘지만 그땐 참 티 없이 맑은 아가씨였네”라며 혀를 찼다. 지난 5년간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양딸 하자던 ‘친절한 아저씨’와의 만남
박씨가 자신보다 스물여덟 살이나 많은 이씨와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여름 어느 바닷가에서였다. 박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한 지역 축제에서 영어 통역 봉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해변을 오가던 이씨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이 일하는 게 참 성실하네. 수양딸 삼고 싶어.”
박씨는 “머리가 벗어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딱 봐도 할아버지였다”고 이씨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래도 시골 동네 주민의 호의려니 생각한 그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열었다. 이씨는 축제 기간 동안 매일같이 그의 주변을 맴돌며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박씨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취업 준비를 위해 통역 봉사를 하게 됐다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됐다.
한 달간 축제 봉사가 끝나기 며칠 전 이씨는 “대기업 임원 친구들이 휴가차 근처에 내려와 있으니 소개해주겠다”며 박씨를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취업 면접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경험 삼아 따라갔는데 자기 직장 얘기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군요.”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이씨는 갑자기 모텔 앞에 차를 세우더니 문을 잠갔다. 그러곤 품에서 길이 30cm의 회칼을 꺼내 목에 칼끝을 갖다댔다. 평소 신문기사에서만 보던 성폭행의 상황이 코앞에 닥친 순간이었다.
이씨는 박씨를 성폭행한 뒤 휴대전화로 박씨의 나체를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신고하면 네 엄마 아빠한테 사진 보내고 그래도 성가시게 하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단 하루의 악몽이길 바랐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인근 대도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 뒤 박씨는 주말마다 이씨의 연락을 받았다. 모텔로 나오지 않으면 집으로 나체 사진을 보내고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했다. 몇 년 전 아버지와 이혼한 뒤 다른 도시에서 식당일을 하며 어렵게 사는 엄마가 떠올라 박씨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며 집을 떠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연락을 피하자 이씨는 고시원 앞까지 찾아왔다. 성폭행은 인근 모텔에서 계속됐다. 박씨는 그 와중에도 토익 점수를 만점 가까이로 올리고 회계관리사 등 7개 자격증을 땄다. 지방의 한 국립대를 수석 졸업한 뒤 연봉 3천5백만원의 유명 공기업에 취직했다. 빨리 돈을 벌어 형편이 어려운 엄마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게 그의 오랜 꿈이었다.
박씨가 잦은 야근으로 뜸하게 연락하자 이씨는 “회사 홈페이지에 나체 사진을 올리겠다”고 협박해 휴일마다 인근 모텔이나 자기 집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그가 “제발 놔라”고 몸부림치며 저항하면 이씨는 모텔 방에 있는 비상 탈출용 완강기 줄로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조르며 “목숨으로 사랑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이씨는 성관계 요구에 응하지 않는 박씨의 손과 자기 손을 손수건으로 묶은 뒤 “이럴 바엔 같이 죽자”며 저수지로 끌고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익사 직전까지 갔다가 낚시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처음엔 사력을 다해 성관계를 거부하다가도 결국엔 “살려만 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애원했다.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가 매번 신고할 용기를 꺾었다.
그렇게 주말은 늘 지옥이었다. 직장 동료들은 금요일이 되면 화색이 돌았지만 박씨는 목요일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회사에 안 가는 공휴일,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달력을 펼쳤는데 그달에 빨간 날이 많으면 정말 죽고 싶었다”고 박씨는 고백했다.
평일에도 자유는 없었다. 오전 8시와 점심식사 후 낮 12시 반, 퇴근 무렵인 오후 5시 반, 자기 전인 오후 9시 반, 그의 휴대전화에선 알람이 울렸다. 하루 4차례 중 한 번이라도 전화를 빼먹으면 이씨가 그의 집까지 달려와 밤새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하면서 왜 신고를 못 했냐고요?

국민참여재판 3일간 치열한 공방 끝 결론 “이런 사랑은 없다”




지옥이 시작된 지 1년쯤 되던 날, 박씨는 단짝 친구에게서 자신처럼 성폭행을 당한 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라면 신고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친구가 먼저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범인을 체포해 피해 여성 8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중형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피해 여성들은 경찰의 조사 요청에 하나같이 “그때 일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결국 범인은 징역 2년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이씨는 “감방 들어가도 1~2년이면 나오니까 신고하면 출소한 뒤 너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게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또 신고할 용기를 접었다.
이씨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박씨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러곤 “내 마누라야. 영계랑 사는 게 부럽지”라고 자랑했다. 그때마다 그는 죽고 싶을 만큼 치욕을 느꼈다. 하루는 이씨의 ‘50년 지기’라는 사람이 그를 밖으로 불렀다. “앞길이 창창한 처녀가 왜 이러고 사니. 내가 네 아버지라면 지금 당장 저놈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하자 박씨는 “가족들 다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신고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은 “그럼 이렇게 계속 살래? 죽을 때 죽더라도 신고해서 잠시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잖아”라고 했다.
그 사람 말처럼 그도 수없이 신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끝내 단념하게 만드는 건 엄마였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이혼한 엄마는 편치 않은 몸으로 식당일을 했다. 박씨는 매달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한약을 지어 보냈다.
“엄마는 요즘 같은 때 좋은 데 취직한 효녀라고 주변 분들에게 그렇게 자랑을 하셨어요. 그런데 제 상황을 아시면…. 가슴이 찢어지실 텐데 어떻게 얘기를 해요.”
그는 끔찍했던 과거를 침착하게 얘기했지만 엄마 얘기가 나올 때면 목이 메었다. 그 효심이 그에겐 아킬레스건이었다. 이씨는 그가 연락을 피할 때마다 그의 엄마가 사는 도시로 내려가 해당 지역번호인 0××가 찍히도록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지금 네 엄마 집 앞인데 쇠망치로 ‘대갈빡’을 부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씨는 평소에도 회칼과 손잡이 부분에 붕대가 감긴 30cm 길이 쇠망치를 가지고 다녔다. 협박이 먹히지 않을 땐 침대 머리맡에 있던 공기총을 그에게 겨누곤 했다. 그 공기총은 언제든 엄마에게도 향할 수 있었다. 신고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가도 그는 “제발 엄마는 건드리지 마라”며 사정해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만난 날 밤이면 그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이씨의 얼굴 앞에서 손잡이 붕대가 누렇게 된 쇠망치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

자살해버리겠다는 말에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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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를 만나기 전 이씨에겐 강간치사 등 6번의 전과가 있었다. 이씨는 이혼한 전처와 그 이혼을 도와준 처남을 죽이겠다며 칼로 협박하다 2008년 7월 수감됐다. 이씨는 교도소에 가면서 박씨에게 “미행 붙여놨으니 다른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말고, 면회와 편지를 꼬박꼬박 하지 않으면 몇 달 뒤 나와서 죽이겠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이씨는 전처와 처남을 죽이겠다며 공기총과 청산가리를 구하러 갈 때마다 박씨를 데리고 다녔다. 물건을 구한 뒤엔 하루 종일 공기총 사격 연습을 해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과 캡슐에 담은 청산가리를 보여줬다. 이씨는 그때마다 “너도 반항하면 이걸로 죽인다”고 속삭였다. 박씨에게 공포는 그렇게 체화됐다. 이씨가 수감된 열 달 동안 그는 매달 2, 3차례 면회를 가고 매주 2통씩 편지를 써야 했다.
이씨는 교묘하고 집요했다. 감옥 면회장에선 교도관을 의식해 그에게 “어머니는 건강하시냐”며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이씨는 출소하던 날 “저번에 보니까 가방도 없이 왔던데 어디서 어떤 놈 만나고 있다가 슬쩍 와가지고 가식을 떠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고막이 터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2009년 5월 출소한 이씨는 “나를 감옥에 보낸 전처와 처남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당뇨로 체중이 20kg 이상 줄고 이도 대부분 빠졌지만 살인 계획에만 몰두했다. 주말에 그의 집에 불려가면 1주일 동안 혼자 끼적인 메모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최대한 악랄하고 결단력 있게 계획을 끝내야 한다”며 살인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무 희망도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 언제든 말을 실행으로 옮길 것 같아 신고할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이씨가 자살하겠다고 한 ‘그날’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여름까지’라던 ‘그날’은 그해 말, 이듬해 여름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 무렵 이씨는 화투에 몰두했고 박씨에게서 도박 자금으로 수천만원을 뜯어갔다. 힘들게 일해 번 돈이었지만 이씨가 화투를 치러 가 있을 땐 잠깐이나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 차라리 나았다.
이씨가 “이번 계획은 진짜”라고 약속한 날을 하루 앞둔 2011년 2월27일. 이씨의 집에 불려간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2월이 끝나가는데 언제 정리가 되는 거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앞니가 으스러지는 통증을 느꼈다. 이씨는 “넌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박씨가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서질 못하자 이씨는 회칼과 쇠망치를 꺼내왔다. 떨리는 손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눌러 공기총도 꺼냈다. 이씨는 쓰러진 그의 옆에서 숫돌에 칼을 갈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동안 아주 가식을 떨었구나. 오늘 너부터 죽인다.”

박씨가 몸을 일으켜세워 도망치려 하자 이씨는 그의 머리채를 잡고 쇠망치로 내려쳤다. 망치가 머리에 닿기 직전 그가 가까스로 망치를 든 이씨의 손목을 잡았다. 혹시나 칼로 바꿔 잡을까봐 그는 이씨의 두 손을 잡고 20분 넘게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흉기를 내려놓은 이씨는 “저수지로 죽으러 가자”며 나갈 채비를 했다. 이씨는 집을 나서며 대문 앞에 묶여 있던 강아지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리쳤다. 목이 돌아간 강아지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났다. 박씨는 오늘은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그날도 평소처럼 박씨가 자신의 차를 몰고 이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목적지인 저수지를 약 100m 앞두고 이씨가 담배를 사겠다며 내렸다. 이씨가 앉았던 자리에는 쇠망치와 회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씨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본 박씨는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쫓아올까 봐 신호도 무시하고 10여 분을 무작정 달렸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박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경찰이 이씨의 위치를 파악해 도착한 곳은 평소 그가 고스톱을 치던 민박집이었다. 담배를 물고 패를 살펴보던 이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조금 전 전화통화에서 “살려줄 테니 돌아오라”고 했는데 박씨가 경찰과 함께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씨의 신청으로 국민참여재판 열려

국민참여재판 3일간 치열한 공방 끝 결론 “이런 사랑은 없다”


이씨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 앞에서 “우린 사실상 주말 부부였고 합의 하에 가진 성관계였다”고 강변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경찰조사 땐 박씨와 통화를 하게 해달라며 진술을 거부해서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이씨는 통화에서 “자기야, 몸이 너무 아프다. 고소 취하해줄 거지?”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그러곤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징역) 살면 얼마나 살 것 같아. 나가기만 해봐”라며 안색을 바꿨다고 경찰은 전했다.
8월24일 이씨는 시민 배심원 9명과 3명의 판사 앞에 섰다. 이씨는 “선량한 시민들의 상식을 믿는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이씨는 폭행과 협박, 성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강간이 아닌 화간”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민참여재판은 통상 하루에 끝나는데 이 재판은 3일간 매일 오후 11시를 넘길 정도로 공방이 치열했다.
이씨 변호를 맡은 40대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쁘고 능력 있는 여대생이 당뇨에 무직인 50대 늙은이와 4년 8개월간 사랑을 나눴을 리 없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증거로만 판단해달라”고 당부하며 변론을 시작했다.
변호인 측은 △피해자가 수감 중인 피고에게 절절한 애정이 담긴 편지를 수십 통 보냈고 △아버지의 가정 폭력 문제로 지구대를 찾아 상의할 만큼 용의주도한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을 4년 넘게 신고하지 않은 점은 납득이 안 되며 △피고의 재산을 노리고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프로젝터 화면에 피해자 박씨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띄우고 ‘당신이 그리워요’ ‘마음을 다해 사랑해요’ 등 문구를 하나씩 낭독했다. “피해자의 순진무구해 보이는 외모에 속아선 안 된다”고 강조할 땐 몇몇 배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검찰 측이 변호인의 주장을 차례차례 반박했다. 이씨가 이혼한 전처와 처남을 흉기로 협박한 혐의로 10개월간 수감돼 있을 때 피해자가 서너 장의 편지를 매주 2통씩 보낸 것은 맞지만 강압에 의한 것이란 주장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가 “편지를 성의껏 보내지 않으면 출소 후 보복하겠다고 겁을 줘 할 수 없이 편지를 썼고, 그마저 너무 귀찮아 두 달 뒤부턴 컴퓨터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해자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한 후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용감했다는 피고 측 주장에 대해선 “피해자가 그 문제로 경찰서를 찾은 건 피고를 신고하고 나서 두 달 뒤 일로, 그 사건을 두고 피고가 대담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박씨가 피고의 돈을 보고 접근했다는 주장도 허위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씨는 지난 5년간 마땅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고, 전처 명의로 된 2천만원 상당의 집을 피해자에게 양도했지만 그보다 많은 돈을 박씨에게서 뜯어낸 것으로 계좌 이체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배심원들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준 건 검사가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였다. 이혼한 피고의 전 부인이 이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돼 결혼했다는 것. 검사는 “당시 자녀가 둘 있는 39세 홀아비였던 이씨는 초임 교사로 첫 출근을 하던 23세 이모씨를 성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씨 변호인이 “왜 사건과 무관한 얘기를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해 검사는 말을 멈췄지만 배심원단은 크게 술렁였다.
배심원들과 협의를 마친 재판장 문정일 부장판사(대전지법 형사12부)가 만장일치로 유죄를 결정한 선고 결과를 읽자 키 160cm가량에 삐쩍 마른 이씨의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랑은 없다”며 징역 15년에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선고했다. 검사가 당초 구형한 형량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다른 인간관계를 모두 포기한 채 주말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만나 하룻밤에 4, 5차례씩 1년에 2백19차례나 성관계를 맺는 건 어느 한쪽(피고)이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관계가 아니고선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선고문 낭독이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이씨는 교정 직원이 옷자락을 끌자 그때서야 몸을 움직였다. 마지막까지 “우린 부부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눴다”고 주장한 이씨는 재판 이틀 만인 8월 26일 항소했다.
1심 판결 뒤 일단 15년의 자유는 얻었지만 박씨의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4년째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잖아요.”
끝내 말할 수 없었던 악몽의 세월도 엄마에게 털어놨다. 결국엔 얘기하게 될 것을 그 끈질긴 공포 탓에 5년이 걸렸다. 딸의 염려와 달리 엄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 착한 것이 혼자 그 고통을 짊어지려 했던 마음을 떠올리면 숨을 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씨는 얼마 전 법원에 개명 신청을 했다. “새 삶을 살자”는 엄마의 권유에서다. 새 이름은 엄마가 박씨를 가졌을 때 지어주려다 남편의 반대로 부르지 못한 이름이었다. 새 주민등록증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엄마는 벌써부터 딸을 새 이름으로 부른다.

여성동아 2011년 10월 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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