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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Green Life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삼척 산골 아낙네가 보내온 편지

기획·한여진 기자 글&요리&제작·김희진 사진·박정용

2011. 09. 28

집 밖을 나섰습니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노랗게 펴 말린
볍씨들이 가지런합니다.
햇살에선 오래된 볏짚 냄새가 풍기고
마을은 이제 편하게 쉬고 있습니다.
참 오랜만의 휴식입니다.
이런 날은 길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발소리를 죽이며 걷는 이 길.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선
볍씨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런 볍씨 속에 들어 있는 흰 쌀, 영혼들.
나는 문득 저 길의 끝,
일 년 내 내 못물에 발목을 적시며 준비한
정갈한 저녁밥상을 떠올립니다.
-고영민의 볍씨 말리는 길 中

시골의 가을은 말림의 계절입니다. 집집마다 마당에 가득 빨간 고추를 널고 깨·수수·조·콩 등 잡곡은 담장에 가지런히 세워 햇빛에 말리죠. 추수한 노란 볍씨는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서그럭~ 서그럭~ 장단을 맞출 테고요. 도시에 살 때는 무심결에 봤던 벼 말리는 광경인데 시골에 와서 직접 볍씨를 말려보니 남다른 감정이 생깁니다. 생명을 키우는 일을 제 손으로 해보고 나서야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쉬워 보이는 볍씨 말리는 일조차도 말입니다. 불혹의 나이인 저도 벼 말리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벅찬데,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달 농업진흥청에서 2박3일간 ‘농촌교육농장 교사 양성 심화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그 생각이 더 절실해졌습니다. 농촌이 단순히 농작물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문화, 체험 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 교육의 내용이었죠. 교육을 가기 전에는 사실 좀 귀찮았는데, 교육을 받는 내내 귀가 쫑긋할 정도로 유익한 정보가 많더라고요. 오전 9시에 시작해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매일 있는 모둠별 토의를 밤 11시가 넘도록 하는 농부들의 열정에도 놀랐고요. 농촌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어요. 농촌에는 이미 가족 중심의 생태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과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과정과 연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어요. 요즘은 추수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매일 세 끼 먹는 쌀은 어떻게 자라는지, 벼의 구조는 어떠하며, 추수는 어떻게 하는지, 볏짚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배울 수 있답니다. 이런 내용은 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하네요.
가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농촌에서 자연을 느끼며 농촌 생활도 체험해보면 어떨까요?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답니다.
며칠 후면 저희 동네에서도 추수가 시작됩니다. 이른 아침부터 윙윙~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잘 익은 볍씨가 동네를 온통 노랗게 물들일 테지요. 농촌에 살면서 가장 마음 든든해지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향긋한 송이버섯 향 송이버섯된장라면

추수가 시작되기 전인 요즘 동네 어르신들은 새벽마다 송이버섯을 따러 가십니다. 송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개인 소유의 산은 물론 국유림도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입찰을 해야 하는데 저희 부부는 입찰을 하지 못해 송이버섯을 딸 수 없답니다. 그런 저희에게 동네 어르신이 송이버섯을 채취하셨다며 맛이나 보라고 나눠주고 가시네요. 송이버섯을 한참 바라보며 뭘 해먹을까 고민했습니다. 도톰하게 썰어 구워 먹을까? 밥 지을 때 넣어 송이버섯밥을 할까? 하다 갑자기 남편이 라면에 송이버섯을 넣어 먹고 싶다고 하네요. 이 비싼 송이버섯을 라면에 넣어 먹는다니,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죠? 라면에 된장을 풀어 끓인 뒤 버섯을 넣어 송이버섯라면 완성! 향긋한 송이버섯 향이 된장과 어우러져 색다른 맛이 나네요. 송이버섯라면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툇마루에 앉아 가을 하늘 구경하다 남편과 눈이 마주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하고 웃음이 절로 납니다. 이런 게 바로 시골 사는 즐거움인가 봅니다.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준비재료
송이버섯, 된장, 라면
1 면은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헹군다.
2 물에 된장을 조금 푼다. 송이버섯 향을 살리기 위해 멸치나 다시마, 파, 마늘을 넣지 않는 것이 비법.
3 ②를 끓이다 송이버섯을 손으로 찢어 넣는다.
4 그릇에 ①의 면을 담고 국물을 붓는다.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햅쌀 신선하게 보관 쌀독

모내기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추수의 계절입니다. 추수하기 전에 햅쌀을 신선하게 보관할 쌀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최근 다양한 기능의 쌀통이 많이 나왔지만 항아리만큼 좋은 쌀독은 없는 것 같아요. 흙으로 만든 항아리는 미세한 공기구멍이 있어 쌀을 보관하면 제격이죠. 장독 뚜껑 대신 무명천으로 덮개를 만들어 밥공기 모양으로 스티치를 놓았어요.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준비재료 무명천, 바이어스테이프 150cm, 고무줄 70cm, 실, 바늘

만들기
1 무명천은 항아리 뚜껑보다 지름 14cm 정도 큰 원형으로 2장 자른다.
2 ①의 한 장에 원하는 모양의 스티치를 놓는다.
3 두 장의 무명천을 겹쳐 뚜껑의 지름보다 3cm, 4cm 크게 원형으로 박음질한다.
4 덮개 끝에 바이어스테이프를 박는다.
5 덮개 안쪽에서 ③의 박음질 사이에 가위로 작은 구멍을 내고 고무줄을 넣어 묶고 버튼홀스티치로 마무리한다.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시골 생활의 백미, 가을 추수


김희진씨(40)는…
강원도 삼척 산골로 귀농해 남편은 천연염색을 하고, 그는 규방공예를 하며 살고 있다. 초보 시골 생활의 즐거움과 규방공예의 아름다움을 블로그(http://blog.naver.com/meokmul)를 통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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