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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Cooking Sense

한국 밥상의 중심 밥 제대로 알고 먹기

글·황교익(악식가의 미식일기 http://blog.naver.com/foodi2) 진행·조윤희 사진·문형일 기자

입력 2011.09.28 16:21:00

한국 밥상의 중심 밥 제대로 알고 먹기


한국 밥상의 중심은 밥이다. 밥 이외에 밥상에 내놓는 음식, 즉 대부분의 반찬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밥을 위해 존재한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기 위해 반찬이 있는 것이다. 반찬은 밥과 어울려 맛을 내는 것을 목표로 조리되기 때문에 밥이 맛있어야 반찬도 맛있어진다. 그러므로 밥이 맛없으면 한국의 밥상은 무너진다.
맛있는 밥이란 무엇인가. “눈으로 보았을 때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어야 한다. 냄새를 맡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나야 한다. 입안에 넣었을 때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고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켜야 한다.” 누구나 이런 밥을 원한다.

맛있는 쌀 고르기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선 좋은 쌀을 골라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마트에 가면 수백 종의 쌀 브랜드가 ‘내가 최고’ 하며 얼굴을 디밀고 있다. 쉬운 선택은 쌀의 유명 산지 이름이 붙은 포대를 집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
유명 산지 이름이 붙은 포대의 앞뒷면에 그 쌀의 품종을 적는 난이 있다. 이걸 확인해보면 거의 ‘일반계’라 쓰여 있다. 일반계? 이런 쌀 품종은 없다. 여러 품종의 계통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일반계라는 이름은 일반계가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혹시 고급계가 있나? 아니다. 일반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다수계다. 다수계는 수확량이 많은 쌀 품종의 계통을 말한다. 하지만 마트의 쌀 포대를 아무리 뒤져도 다수계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수계는 흔히 통일벼로 불리는 계통의 쌀이다. 벼는 크게 자포니카계와 인디카계로 나뉘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것은 자포니카계다. 이 쌀이 찰기가 있다. 인디카계는 안남미라고도 하며 찰기가 거의 없다. 1970년대 쌀 자급을 위해 자포니카계와 인디카계의 유전형질을 섞어 개발한 것이 통일벼, 즉 다수계 쌀이다. 다수계 쌀은 밥을 하면 찰기가 없다. 그러니 쌀밥용으로는 거의 팔리지 않고 일부 가공용으로만 재배된다. 그러니까 쌀 포대에 일반계라 적혀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일반계라고 적는 것일까. 그냥 일품이나 오대, 추청 등의 품종을 적으면 될 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미곡처리장에서 이를 분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곡처리장에서는 가을에 농민의 벼를 받아 보관하면서 1년 내내 도정해 판매한다. 그런데 농민들이 내는 쌀 품종이 제각각이다. 미곡처리장에서는 이를 분류해 보관해야 하는데 그럴 공간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한꺼번에 창고에 넣어두고 그때그때 도정을 한다. 품종별로 분류하지 않은 채 도정하니 포대에 품종을 표시할 수 없고 그냥 일반계로 찍어내는 것이다. 이런 일을 농업 분야의 용어로 ‘품종 혼입’이라 한다.
품종 혼입이라 해도 일반계이니 그 맛은 다 비슷하지 않겠느냐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벼에서 쌀을 만드는 과정을 도정이라 한다. 겉겨를 벗기고 속겨를 깎아내는 작업이다. 벼를 깎아내는 정도를 도정도라 하는데 도정도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몇 분도 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일반계도 벼의 품종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도정기에서 벼를 깎을 때 품종에 따라 도정 정도를 달리해야 하는데 품종이 뒤섞이면 기준점에 혼란이 생긴다. 어떤 쌀은 덜 깎이고 어떤 쌀은 더 깎인다. 도정도가 제각각인 쌀로 한꺼번에 밥을 하면 어떤 쌀알은 퍼지고 어떤 쌀알을 단단해서 맛있는 밥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쌀을 고를 때 품종별 구별이 분명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이게 산지의 유명성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대충 알고 있는 유명 품종이 있으니 이것만 고르면 될까? 가령 고시히카리, 추청, 일품, 오대 등. 농산물은 품종별로 재배 적지라는 것이 있다.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지에 따라 맛에 차이가 있다. 가령 오대쌀이 맛있다 해도 산지가 어디냐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다. 품종을 보고 재배 적지에서 생산된 쌀인지 확인하는 것이 진짜 맛있는 쌀을 고르는 요령이다.

한국 밥상의 중심 밥 제대로 알고 먹기


어려움은 또 있다. 산지-품종별 쌀 맛의 차이는 매우 미묘하다. 한반도는 산지가 많아 한 군 단위의 논도 기온, 흙, 물 등의 재배 환경에 차이가 크다. 가령 철원 오대쌀이라 해도 철원군 안의 자연조건에 따라 조금씩 미질이 다르다. 이 같은 미묘한 차이는 한 지역에서 나는 한 품종의 쌀을 여러 브랜드로 바꾸어 먹다 보면 구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원 오대쌀의 경우 철원읍내의 것, 갈말읍의 것, 동송면의 것 등으로 구별해 먹다 보면 구별점이 보인다. 이 같은 작업을 왜 하나 싶겠지만, 1년 정도의 노력으로 평생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농촌진흥청에서 내놓은 품종별 재배 적지 자료(www.nics.go.kr/CropWebzine/ main.asp?m=5·s1=21·s2=19)를 토대로 ‘쌀 맛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품종인 운광, 고품, 호품, 오대, 추청, 일품, 동진1호 등을 찾아 해당 품종명에 커서를 올려 누르면 재배 적지를 알려주는 지도가 나온다. 단, 오대는 지도가 없는데 대체로 운광 지역에서 강원도 동해안 지역까지가 재배 적지다. 일본 품종인 고시히카리는 경기 서북부 지역에서 생산하는 쌀이 맛있는 편이다.
쌀을 고를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도정 날짜다. 어떤 쌀이든 최근에 도정한 것일수록 맛있다. 도정한 지 열흘 정도 지난 것은 피해야 한다. 쌀은 도정 이후 보름 정도 지나면 여러 영양소들이 산패되기 시작한다. 벼나 겉겨만 벗긴 현미는 쌀이 아직 살아 있는 상태인데 백미로 깎으면 죽은 것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쌀은 맛이 달아난다. 경기도 이천에 유명한 밥집들이 많다. 이들 식당은 밥맛이 특히 좋다. 밥맛의 비결은 다름 아닌 즉석 도정기다. 식당 뒤뜰에 가면 반드시 도정기가 있어 그날그날 도정한 쌀로 밥을 짓는다. 일본의 웬만한 음식점들도 쌀을 현미로 보관했다가 즉석 간이 도정기로 백미를 만들어 쓴다. 일본에서는 가정용 즉석 도정기도 많이 쓴다. 집집마다 도정기를 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도정 날짜를 확인하고 쌀을 사서 습기 적고 온도 낮은 곳에 보관하는 성의는 필요하다.



맛있는 밥 짓기
장작불에 가마솥 올려 밥 짓는 것을 관찰하면, 밥은 까다로운 기술이 요구되는 음식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걱정을 안 한다. 전기밥솥이 있기 때문이다. 물 맞춰 버튼만 누르면 끝난다. 그러나 이 간편한 기계가 있는데도 밥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소한 것들을 놓쳐서 그렇다. 먼저 쌀에 붙은 겨와 때를 없애려면 쌀을 씻어야 한다. 이때 씻는 요령이 있다. 재빨리 헹궈야 한다. 시간을 끌면 물에 녹은 겨가 쌀에 스며들어 밥에서 겨 냄새가 난다. 깨끗한 물을 붓고 2~3회 빠르게 휘저어 10초 이내에 버리기를 반복하는데, 이를 물이 맑아질 때까지 한다. 씻기가 끝나면 쌀을 물에 담근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쌀의 속까지 물을 침투시킨 후 불에 올려야 한다. 예전에는 여름과 겨울 쌀 불리는 시간을 달리 했는데, 요즘 주방 환경에서는 맞지 않다. 요즘 쌀들은 대체로 수분이 잘 잡혀 있어 오래 불릴 필요도 없다. 30분 정도면 된다.
전기밥솥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내며 ‘취사’에서 ‘보온’으로 자리 이동을 하고 난 다음 10~15분 뜸을 들인다. 너무 오래 뜸을 들이면 끈적끈적한 진밥이 된다. 뜸들이기가 끝나면 솥 안의 가장자리를 따라 주걱으로 돌려가며 재빨리 섞는다. 이것은 여분의 수분을 증발시키고,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서게 하며, 솥 안의 밥맛을 균일화하기 위한 것이다. 너무 힘있게 저으면 밥이 떡이 된다.
전기밥솥은 밥을 하는 데는 편하지만 보온용으로는 좋지 않다. 밥이 일정한 온도로 보관되는 동안 밥맛은 극도로 나빠진다. 차라리 밥을 퍼서 식혀두는 게 낫다.
압력밥솥에 대한 오해가 많다. 압력밥솥으로 밥을 지으면 밥맛이 좋다고 생각한다. 압력밥솥이 밥에 찰기를 더하는 것은 맞다. 그 덕에 질이 떨어지는 쌀도 압력밥솥에서 밥을 지으면 웬만큼 밥맛이 좋아진다. 그러나 압력밥솥은 좋은 쌀일수록 밥을 떡지게 한다. 쌀알의 조직감을 죽이고 뭉개지게 한다. 좋은 쌀은 무쇠솥, 돌솥으로 지어야 쌀알이 하나하나 산다. 솥의 바닥에 약간의 누룽지를 만들어 그 누룽지 향이 밥알에 묻어나게 한다면 당신은 밥 짓기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스타일링·김수진(noda+ 02-3444-9634 www.noda.co.kr)

여성동아 2011년 10월 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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