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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더반의 감동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드라마 주인공 김진선 특임대사

“마음속에 응어리진 두 가지 한(恨) 모두 풀려 이제 비로소 홀가분합니다”

글·김명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1.08.17 11:16:00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는 그의 꿈에서 시작됐고 끝맺음도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12년 동안 지구 40바퀴를 돌고 그보다 더 긴 기다림과 마음고생을 했던 김진선 특임대사를 만났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드라마 주인공 김진선 특임대사


어릴 적 그의 별명은 ‘백결 선생’이었다. 단벌 교복이 해지면 군데군데 기워 입는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소작농인 아버지는 카바이드 공장에서 막노동도 했지만 공장은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았고 소년은 가난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일찍 철이 들었다.
강원도 동해의 작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학교 대표로 뽑혀 춘천으로 서울로 경시·경연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새벽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도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간신히 목적지에 닿으면 시험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교복을 기워 입으면서도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여겼지만 기회를 놓치는 건 서러웠다. 소년은 눈물을 훔치고 돌아서며 ‘어른이 되면 못사는 강원도를 바꿔보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의 1등 공신 김진선 유치 특임대사(65)의 이야기다. 그는 이때부터 5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그 꿈을 향해 달려왔다. 강원도를 발전시키려면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시에 합격해 관료가 된 뒤에도 내무부와 강원도 외에 다른 부서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최초의 3선 광역 자치단체장’이라는 타이틀도 이런 열정과 헌신의 결과물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아이디어도 강원도지사 시절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개인의 꿈이 국민의 열망, 국가적인 의제가 되고 끝내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세 번 도전도 나의 운명”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돌아와서는 좀 한가할 줄 알았는데 각종 인터뷰, TV 출연으로 정신없이 바쁘다는 그는 인터뷰 당일 약속 시간보다 먼저 자리에 나와 있었다.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투는 담백했지만 올림픽 성공에 대한 의지는 험준한 강원도의 산처럼 굳건해 보였다.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도 올림픽 유치에 앞서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이 자리에 세 번 서게 된 것은 나의 운명인 것 같다”며 울먹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치 않으면서도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궁금해했다.
“IOC 위원들은 제가 도지사가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올림픽 거버너(Olympic Governor)’라고 부릅니다. 그분들도 마음속으로는 평창이 앞서 두 번이나 아깝게 떨어진 것에 대한 부담감이랄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자칫 세 번 도전이 식상하게 여겨질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는 최소화하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넣었는데 연습 때는 빈 의자를 앞에 놓고 해서 진지하긴 해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연단에 서니까 열심히 응원해준 도민들 얼굴도 떠오르고, 그동안 고생한 기억도 지나가고… 울컥 목이 메더라고요.”
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인다. IOC 위원들은 개인의 이해관계, 국가의 이익, 올림픽 대의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투표를 한다. 평창은 두 차례 실패를 경험 삼아 알펜시아 경기장 건설·유치조건을 만족시키고 드림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여러 객관적인 지표로도 우리가 앞섰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1차에서 투표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됐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다른 IOC 위원들이 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기도 하고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크 로게 위원장이 개최지가 적힌 봉투를 여는 순간, 2010·2014년 개최지 선정 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평창이 아닌 엉뚱한 이름이 나오면 어떡하나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드라마 주인공 김진선 특임대사

더반에서 열린 2018 동계 올림픽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대사, 토비 도슨·김연아 선수, 이건희 IOC 위원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팀은 환상적 팀워크로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로게 위원장의 입에서는 ‘평창’이 호명됐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어올랐고 그다음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을 흘린 것 같다고. 그는 “‘고생 끝의 낙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실감했다”면서도 유치위원회 다른 멤버들에게 공을 돌렸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는 보통 대중적인 선거와는 달라요. 가장 중요한 건 IOC 위원들과의 평소 관계 형성이죠.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정말 공을 많이 들이셨습니다. 2년 전부터 국가 위상, 경제적인 이익 등의 면에서 동계 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정상회담을 할 때나 IOC 위원들이 방문할 때마다 따로 시간을 내 면담하고 편지도 쓰셨습니다. 더반에서도 5박6일 동안 식사까지 걸러가며 30명이 넘는 위원들을 개별 면담하고 따로 만나서 설득하셨죠. 이건희 회장도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 많은 분들을 만났고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조양호 위원장을 비롯한 유치위 식구들, 또 체육계 많은 인사들이 자신과 인연이 닿는 IOC 위원들을 만나 표심을 잡는 등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었습니다. 저는 유치 활동을 하면서 피부색이나 인종은 달라도 사람은 다 똑같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해주면 고마워하고, 못난 짓을 하면 불쾌해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상대도 그 진정성을 알아준다는 걸 말입니다.”



12년 동안 지구 40바퀴 돌며 유치 활동
이런 물밑 작업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더반에서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우리나라 유치 팀은 논리적이고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마지막까지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가운데 김연아 선수와 나승연 대변인의 프레젠테이션은 특히 화제가 됐다. 김 대사는 “더반에서 김연아 선수와 나승연 대변인은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았다”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지난 2010년 밴쿠버올림픽 이후 유치위에 합류했는데 항상 밝고 부드러우면서도 말수가 적고 침착해요. 젊지만 대단한 역량을 지닌 분이고 이번에도 잘 해내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내심 걱정을 좀 했어요. 한국이 동계 올림픽 강국이 됐다는 상징이기도 하고 IOC 위원들의 관심이 대단했기 때문에 유치위에 합류시키기는 했지만 나이가 어려서 어른들도 긴장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죠.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아주 담대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담대함 덕분에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감기 몸살에 걸려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그걸 보면서 “어린 친구가 얼마나 긴장했으면 저렇게 됐을까” 하고 안쓰러우면서도 고맙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일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DNA 속엔 끈기, 현명함, 집요함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웃음).”
평창의 올림픽 도전은 사실상 199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강원도지사였던 김 대사는 강원도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세계화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 일환으로 동계 올림픽 개최를 구상했다. 1999년 동계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평창의 올림픽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로부터 12년, 최연소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이었던 그는 6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두 번의 뼈아픈 실패를 맛봤으며 그만큼 고통도 컸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또다시 올림픽에 도전할까.
“두 번 실패 후 세 번째 도전에 나설 때가 가장 고비였어요. 국민들의 실망감이 컸고, ‘이거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패배감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과 강원도는 꼭 한 번 동계올림픽을 개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가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 부양과 상품 수출에 이르기까지 투자 대비 효과가 굉장히 크기 때문이죠. 이렇게 명분과 당위성이 분명하면 고생스러워도 다시 한 번 도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단, 당시에는 ‘세 번 떨어지면 네 번 다섯 번도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제 마음속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어떻게 국민들께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배수의 진을 치고 죽을 각오로 했죠. 저희 참모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스케줄을 짜와서는 ‘힘들더라도 꼭 하셔야 합니다’라고 저를 채찍질 했습니다(웃음). 지금 돌아보면 그 과정이 너무 끔찍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또 도전을 할 겁니다(웃음).”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드라마 주인공 김진선 특임대사


김진선 대사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면 안 간 데가 없다. 지난 12년간 다닌 거리를 모두 합하면 지구 40바퀴. 특이할 만 한 점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그 지역의 종교 성지를 들른다는 점이다. 동남아의 불교 사원, 포르투갈 파티마, 프랑스 루르드, 멕시코 과달루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올림픽 유치 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한편 마음을 다해 기원하면 하늘도 그 뜻을 알아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인 그의 아내 역시 거의 매일 절을 찾아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다운증후군 아들과 올림픽 모두 하늘의 뜻
원래 기독교 신자였던 이들 부부가 불교 신자가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김 대사는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는데 1980년 첫아들을 낳고 얼마 안 돼 아이에게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때가 되면 어느 순간 일어서리라’는 생각에 아들에게 ‘만기(滿起)’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은 아들의 건강은 끝내 호전되지 않았다.
“그땐 너무 충격이 커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죠. 저보다 아내가 더 힘들어 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함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가 조그만 절 법당에서 명상을 하게 됐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그 후부터 자연스럽게 절에 나가게 됐죠.”
김 대사는 어릴 적 학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게 내가 할 탓이라 여기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했던 그는 처음 20년 동안은 아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장애 가족의 마음을 알기 힘들죠. 저는 오랫동안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초월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좌절할 일도 아니고 아들은 그 자체로 우리 부부에게 감사한 존재입니다. 저희는 아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그걸 극복하며 감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평생 마음속에 아들 일과 올림픽 유치 두 가지를 업으로 묻고 살았습니다만, 이제 아들 일은 우리 부부 모두 평상심으로 극복했고, 동계 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으니 이제 두 가지 응어리가 모두 풀린 셈입니다. 홀가분합니다.”
아들이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 두 딸에게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키우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딸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행복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 후론 아이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줬고, 아내와 두 딸은 이제 그의 가장 열렬한 응원군이 됐다.
“한동안은 아내와 아이들이 ‘내무부 일은 당신이 다 하느냐’ ‘아빠가 없으면 강원도가 안 돌아가느냐’고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웃음). 어쩌다 한번 외식이나 콘서트에 함께 가게 되면 그날은 잔칫날이었죠. 그래도 올림픽 유치 활동 같은 큰일을 앞두고는 다 함께 응원해 줍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좋겠다’며 코치도 해주고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그는 올림픽유치위가 조직위로 전환하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조력할 예정이다. 또한 동국대 겸임 교수, 한림대 객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힘을 쏟을 생각이다. 앞으로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해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한다. 김진선 대사의 호는 ‘빈돌’이라는 뜻의 석허(石虛)다. 꽉 차고 남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마음은 늘 겸손한,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동아 2011년 8월 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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