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아빠들이 정시에 퇴근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가능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비해 많다. 아침이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아빠들, 아내보다 일찍 퇴근하면 아이 돌봐주는 집에 가서 아이를 데려오고 저녁 준비까지 하는 아빠들도 흔하다.
엄마보다 요리를 더 잘해서 식사 담당을 하고 저녁이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재우는 아빠도 많다. 굳이 엄마 일, 아빠 일이 따로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부모 노릇’을 공유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공개적으로 치르는 학부모 미팅에도 대부분 부모가 함께 참석한다. 상담을 해보면 “아빠라서 엄마보다 아이의 학업에 소극적이네”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다.
아이가 아파 학교에 못 가면 아빠가 회사를 가지 않고 아이를 돌보는 일도 흔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때 업무나 회의 중에 나가도 상사나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날 처리해야 할 업무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이 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 잡혀 있다.
정시 퇴근, 융통성 있는 회사 분위기 덕분
영국에는 이혼가정이 많다. 한국은 대체로 숨기는 분위기고 영국은 그렇지 않다 보니 더 많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는 부부가 키우는 것보다 더 힘이 들기 때문에 배려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학교의 한 남자 교사는 혼자서 딸 셋을 키우는데 아이가 아파서 결근하거나 칼같이 퇴근할 때, 한국처럼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세상에 아빠 노릇이라는 게 있을까. 굳이 아빠 노릇이 무엇이냐고 영국 아빠들에게 묻는다면 첫째는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호숫가에 나와 오리에게 빵을 던져주는 아빠와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숲 속 산책로를 달리는 아빠와 아이들, 정원에서 축구를 하고 수영장에서 같이 물장구를 치는 아빠들. 생긴 모습과 환경이 다를 뿐 이런 모습은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상 모든 아빠들의 바람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한국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제안한다면 그건 정시 퇴근이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자면 영국처럼 오후 5시 정시 퇴근. 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면 나도 따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제 한국도 밥 굶을 걱정을 하며 사는 나라는 아니니 사람들이 개인과 가정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두고 살면 좋겠다.
영국 학교의 학부모 상담 풍경. 부모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
김은영씨는…
한국에서 수학과를 졸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역일을 했다. 영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나 영국으로 이주, 중·고등학교에서 7학년부터 13학년까지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생 아들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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