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타세쿼이아가 빼곡하게 들어선 창평으로 가는 길이 장관을 연출한다.
담양군 창평면은 다양한 슬로푸드가 있는 곳이다. 발효와 숙성을 거쳐야 먹을 수 있는 우리의 장류를 비롯해 한과와 쌀엿 등이 있기 때문. 장류가 발효와 숙성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한과와 쌀엿이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두 음식 모두 오랜 시간을 두고 먹어도 상하지 않도록 미리 쌀을 삭혀두었다 만드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창평 면소재지가 있는 삼천리마을은 한옥과 돌담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황토와 작은 돌들이 층층이 쌓여 키 높이를 넘기는 담장 안에 잘 지어진 한옥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창평 고씨 집성촌이던 덕에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고택들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 사이사이 낡은 한옥을 헐고 새로 지은 집들도 있지만 담장만은 그대로 남겨두어 창평파출소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돌담길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쌀엿으로도 이름나 있는데 돌담길 중간 중간 쓰여 있는 ‘창평전통쌀엿’이라는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나 엿 만드는 광경을 볼 수 있고 직접 엿을 살 수도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엿의 특징은 생강을 넣는다는 것. 겨울철 감기 예방에도 좋을 듯싶다.
마지막으로 창평에서 맛볼 수 있는 전통 손맛은 한과다. 겨울철 간식거리를 위해 만들었던 한과는 과일이나 채소를 조린 정과를 비롯해 유과와 강정 등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발효식품은 쌀을 물에 담가 일주일 정도 삭힌 후 씻어 건져 말려 만드는 유과다. 잘 삭은 쌀이어야만 익혀 꽈리가 부풀도록 치고 밀대로 밀어 말려 기름에 넣었을 때 고르게 부풀어 오르는 것. 창평에는 한과를 만들어내는 곳이 많다. 그중 정직하고 투박한 손맛으로 한과를 만드는 안복자한과(061-382-8891 www.anbokja.co.kr)와 복잡한 과정을 손맛 그대로 기계화하는데 성공한 담양한과(061-383-8283~4 www.damyang.co.kr)가 대표적이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창평IC로 나오면 바로 안복자한과가 자리하고 있다. 창평 면소재지로 진입하면 삼천리마을 입구인 창평파출소가 오른쪽으로 있다. 파출소를 끼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면사무소다. 그 앞에 주차한 후 마을을 돌아보면 된다.
2 겨울철 대표 간식거리였던 한과에 대추와 잣으로 모양을 내는 과정. 3 작은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담장이 길게 이어져 운치를 더하는 삼천리마을.
소설 ‘토지’ 무대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경남 하동군 악양면
경상남도 하동군은 기름진 너른 들을 품고 섬진강과 지리산에 둘러싸인 도시다. 과거에는 큰 강 덕분에 뱃길이 발달해 이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번영을 이뤘다. 물길을 따라 남해 생선들이 올라오고 지리산의 넉넉한 나물과 약초, 악양들판의 곡물들이 남쪽으로 내려가곤 했던 것. 일찍부터 차나무를 심어 얻은 차와 함께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지리적인 조건 등이 하동을 번성케 하는 데 한몫을 했지만 지금 하동에서는 왁자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하동을 대표하는 산물은 옛날과 다르지 않다. 섬진강에서 잡아올리는 재첩과 지리산자락에서 재배하는 야생 차와 ‘대봉시’는 여전히 이 지역을 대표한다.
하동을 새로이 조명하게 한 것도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다. 소설의 배경이 된 평사리에 최참판댁이 고스란히 재현돼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후기 양반댁의 가옥구조를 그대로 본떠 지은 최참판댁은 별당과 안채·사랑채·초당·문간채·중문채·행랑채·사당 등이 일자형으로 이루어졌다. 서희가 머무르던 공간인 별당채 앞에는 연못도 있다. 이곳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채 누마루에 올라 바라보는 악양들판 풍경이다. 악양 ‘무딤이들’이라 부르는 이곳은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의 넓은 들판으로 봄이면 파릇한 모종이 심겨 초록 융단을 깐 듯한 들녘을,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이삭이 빚어내는 황금 들녘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드라마 ‘토지’의 촬영 세트와 평사리문학관(055-882-6669 http://noveltoji.com)에도 들러보자. 소설 또는 드라마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 느낌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공간이다.
악양면을 찾아가면 들러볼 곳이 있다. 평사리에 자리한 신라시대 석성인 고소성(사적 제151호)과 정서리에 자리한 매암차박물관(055-883-3500 www.tea-maeam.com)이다. 6천3백여 평의 차밭에 자리한 매암차박물관은 2000년 문을 열었다. 차밭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1963년경. 벌써 48년째 차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차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전통 차 제조법을 찾아 보존하고 보급하는 노력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매암다방에 들러 은은한 연둣빛이 감도는 녹차 한잔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아도 좋겠다.
찾아가는 길 통영대전고속도로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하동 방향으로 진입. 하동IC로 내려와 우회전해 하동 방향 19번 국도 진입. 악양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길을 따라 최참판댁과 매암차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 매암차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난 녹차 잎으로 우려낸 연초록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녹차를 맛볼 수 있다. 2 소설 ‘토지’를 토대로 지은 최참판댁 전경. 새끼줄에 널어놓은 옥수수가 인상적이다.
다산의 삶과 여유 느낄 수 있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1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종사. 작고 소박한 사찰이라 정겨움이 느껴진다.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며 이룬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생태, 우리나라 실학사상의 기반을 마련한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박물관 등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있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다산유적지는 다산 정약용의 체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조선 후기 대학자인 그는 1762년(영조 38년) 이곳에서 태어났고,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말년을 보내고 이곳에 묻혔다. 학문적 체계를 완성한 곳은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인생의 후반을 보냈기에 의의가 크다.
유적지 안에는 선생이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 ‘여유당’이 있다. 이 집의 당호에는 선생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는 뜻이 담겼다 한다. ‘여유당기’에서 “노자의 말에 ‘여(與)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들어와 뼈를 깎는 듯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집은 1925년 일어난 대홍수 때 훼손됐던 것을 1986년 복원했다고 한다. 2009년 10월 이곳에 실학박물관(031-579-6000 www.silhakmuseum.or.kr)이 문을 열었다. 전시실은 실학의 형성, 실학의 전개, 천문과 지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2월28일까지 ‘연행(燕行), 세계로 향하는 길’전이 열린다. 3천 리가 넘는 길을 가야만 중국 연경에 다다랐던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학문적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다산유적지에서 양수대교를 건너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인 두물머리에 닿는다. 한양으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나루터가 이곳에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꽤나 빈번했던 곳이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CF의 촬영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두 강이 만나 하나의 강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수종사로 가보자. 수종사는 작고 소박한 사찰이지만 절집 이름과 대웅전 옆 수령 5백년의 은행나무에는 사연이 깃들어 있다. 조선 세조 임금이 애정을 담아 직접 사찰 이름을 짓고 나무를 심었다 전해지기 때문. 이 나무 아래서 바라보는 한강의 노을이 아름답다.
찾아가는 길 강변도로 또는 간선도로를 따라 6번 국도로 진입. 팔당역을 지나 팔당댐 옛길로 가다 철길 아래 굴다리를 지나 우회전하면 작은 언덕인 마재가 나온다. 마재 넘어가면 다산유적지다.
2 조안면에는 거중기가 있는 다산유적지와 같이 다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3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빼어난 정경을 연출하는 곳, 두물머리.
자연휴양림 속 산책길 걸으며 명상에 잠기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
1 과거 예산과 당진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당저수지. 지금은 군민들의 쉼터가 됐다.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었던 동화 ‘의 좋은 형제 이야기’가 실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 살았던 이성만 형제다.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된 것은 1978년 물이 빠진 예당저수지 안에서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가 발견되면서부터. 예산군은 2009년 9월 이 이야기를 테마로 ‘예산 옛이야기축제’를 열기도 했다. 효제비는 봉수산 아래 대흥동헌 앞으로 옮겨졌고, 비각 앞에 의 좋은 형제 이야기를 담은 의 좋은 형제 상도 세워졌다. 대흥동헌 건물 옆으로 난 작은 문 안으로 들어가면 KBS 농촌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촬영 세트도 만날 수 있다. 대흥향교는 6백 년 역사를 가진 곳인데 지금도 공자를 기리는 제례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흥동헌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봉수산 자연휴양림에 다다른다. 휴양림이 자리한 봉수산(해발 483.9m)은 예산군과 홍성군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에는 백제의 뒷이야기가 담겼다. 의자왕 사촌동생인 복신과 도침대사, 흑치상지 등이 마지막까지 백제부흥운동을 했던 임존성(사적 제90호)이 그곳이다. 휴양림에서 임존성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망루(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남문지, 정상, 약수터를 돌아 다시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의 길이는 약 8km. 한 바퀴를 걷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 겨울철엔 좁고 미끄러운 성곽길을 모두 걷는 것보다 휴양림에서 망루를 지나 남문지까지만 가는 것이 좋다. 남문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면 백제 의자왕 16년(656년)에 의각과 도침대사가 창건한 대련사가 있다.
신양면·응봉면·대흥면·광시면 등 4개 면에 걸쳐 있는 예당저수지(www.yedangji.com)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조선농지개발사업의 하나로 만들기 시작했다. 완공은 1964년 예당수리조합이 해방과 함께 멈추었던 공사를 다시 시작해 마무리지었다. 저수지를 만든 목적은 저수지 이름 ‘예당’에서 알 수 있듯 예산과 당진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생활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 군민들의 쉼터 역할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예당저수지는 민물고기가 많기로 소문난 곳. 그래서인지 저수지 가장자리 어디서나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을 만날 수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 도로는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이다.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제1·제2 산책길을 따라 조성돼 있는 조각공원도 있다. 한겨울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방한복이 준비됐다면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산책하며 작품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찾아가는 길 당진대전고속도로 예산IC로 나와 홍성 방향 21번 국도로 진입. 응봉사거리에서 예당국민관광지, 청양·광시 방향으로 좌회전해 619번 지방도 따라 청양 방향으로 계속 가면 대흥면과 광시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2 옹기종기 붙어 자리한 장독대와 어우러져 정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흥동헌. 3 대흥동헌 앞에는 전래동화 ‘의 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예산 이성만 형제를 기리기 위한 ‘의 좋은 형제’ 상이 있다.
한옥마을의 지붕 선이 절경 이루는~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대표적인 한옥으로 꼽히는 근대 상류 가옥인 학인당.
전주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 중 유일하게 인구 50만 이상 도시다. ‘인구 5만 이하 소도시’라는 선정 조건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 하지만 도시 중심에 한옥마을이 있다는 점과 그 안에 우리 문화가 담겨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한옥마을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왜 이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됐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첫 번째 길은 고려 말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친 이성계가 개성으로 돌아가던 중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를 열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꿈을 꾸었다는 오목대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의 아름다운 지붕 선 뒤로 마치 사라진 옛 성곽을 대신하기라도 하는 듯 삐죽이 올라온 현대 빌딩들이 내려다보인다.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다는 이목대, 조선 개국 후 태조 이성계부터 모든 임금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사적 제339호), 왕조의 시작과 그 뿌리를 알 수 있고 조선시대 중요 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위풍당당한 풍남문도 빼놓을 수 없는 전주의 문화유산이다.
한옥마을이 이처럼 우리 문화유산이 가득한 공간에 자리하게 된 것엔 까닭이 있다. 1930년 전주성곽이 일본인들에 의해 해체된 후 서문 밖에 살던 일본인들이 전주객사(보물 제583호)가 있는 중앙동까지 들어와 상권을 장악했다.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전주 사람들이 그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경기전과 향교가 있는 교동과 풍남동에 한옥을 짓고 모여 산 것. 아직도 7백여 채나 남아있는 한옥 대부분이 근대 한옥의 형태를 띠는 까닭이기도 하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대표적인 한옥으로 꼽히는 곳은 근대 상류 가옥인 학인당(063-284-9929 http://cafe.naver.com/hakindang). 전북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학인당은 인제 백낙중이 지은 근대 한옥으로 1908년에 완공됐다. 2년6개월이 걸려 지은 이 집에 사용된 나무들은 모두 압록강, 오대산 등지에서 가져왔다. 지금은 대지 5백20평에 건평 69평 규모만 남아 있다.
한옥마을에는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지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볼 수 있는 한지공예체험장, 한지를 떠볼 수 있는 한지원, 체질을 알아보고 다양한 한방의학을 체험할 수 있는 한방체험관(www.hanbangcenter.com), 한옥에서 직접 생활해볼 수 있는 한옥체험관(www.jjhanok.com) 등이 그것이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IC로 나와 전주 시내 방향으로 진입. 한옥마을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풍남문→전동성당→경기전→한옥마을 순으로 돌아볼 것. 자동차는 경기전 앞 주차장에 세우면 된다. 오목대로 오르는 길은 한옥 마을관광안내소 앞 전통공예관 옆에서 시작된다.
1 오목대에 오르면 전주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2 한옥마을 골목길에 들어서면 코너마다 이정표가 목적지에 쉽게 당도할 수 있도록 돕는다. 3 지금도 재래식으로 한지를 생산해내고 있는 한지원에 가면 직접 한지를 떠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지렁이농법으로 키운 먹을거리 가득~ 전남 장흥군 유치면
서울의 정남쪽에 자리해 정남진이라 불리기도 하는 장흥군 유치면과 장평면은 순환농법과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다. 이들의 농사에는 특별한 조력자가 있다. 바로 지렁이다. 흙 속에 구멍을 내고 다니며 산소를 공급해 흙을 부드럽게 하고, 흙 속 세균이나 미생물·썩은 낙엽·동물의 배설물 등 쉽게 분해되지 않는 유기물을 흙과 함께 먹은 후 배설물로 내놓는다. 언제부터인가 농토에서 지렁이를 만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게 됐지만 건강한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유치면의 농부들은 농사 조력자로 지렁이를 선택했다. 이들의 지렁이농법을 배우고 관찰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우산지렁이마을 지렁이생태학교(070-4126-7074 http:// slowly.invil.org)에서 흙 속에 사는 지렁이를 손으로 만져보며 지렁이가 먹이를 섭취한 뒤 어떻게 분변토가 만들어지는지 관찰할 수 있다. 우산지렁이마을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신라시대부터 자리해온 보림사(061-864-2055)가 있다. 이곳은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인도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 보림사와 더불어 3보림이라 불렸을 정도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고. 보림사에는 국보 2점, 보물 8점, 전남도 문화재 15점이 있다. 사찰로 들어서며 처음 만나는 문화재는 입구를 지키고 선 사천왕상이다. 보림사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은 임진왜란 이전인 중종 1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여러 번 보수를 거쳤지만 현재 남아 있는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보수 당시 사천왕상 내부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고서 수백 권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그다음 만나는 문화재는 보림사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제44호)이다. 대적광전 안의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도 살펴볼 것. 대적광전 앞 너른 마당에는 동백나무 아래 보림약수가 흐른다. 한국의 10대 명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약수이니 한잔 마시며 천천히 쉬어가자. 약수터를 지나 명부전으로 가면 건물 뒤편 완만한 언덕이 눈에 띈다. 그 언덕은 보림사를 창건하고, 신라 헌강왕으로부터 ‘보림사’라는 사찰 이름을 내리게 한 보조선사 체징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그곳에 헌강왕 때 만들어진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보물 제158호)와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보물 제157호)이 있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제2순환도로 송암TG로 나와 화순·장흥 방면 22번 국도로 진입. 화순 시내에서 장흥 방향 29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이양면 신리삼거리에서 장흥 방면으로 우회전, 839번 지방도를 따라갈 것. 약 11km 앞 노루목길에서 우회전하면 우산지렁이마을이다.
1 우리나라에서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종이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곳, 보림사. 2 우산지렁이마을 지렁이생태학교에 가면 어떻게 분변토가 만들어지는지 관찰할 수 있다.
드넓은 염전이 탄성 자아내게 하는~ 전남 신안군 증도
1 증도 염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금박물관.
바다 위에 흩뿌려진 듯한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신안군은 이름난 관광지가 많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홍도와 새로운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가거도,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나면서 새롭게 섬의 아름다움으로 주목받고 있는 증도, 모래 서 말을 먹어야만 시집을 갈 수 있다는 임자도, 27개 섬들로 이뤄진 우이군도와 높이 80m 모래산으로 유명한 우이도, 홍도·다물도·대둔도·영산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루는 흑산도 등은 한 번쯤 가봐야 할 신안의 섬들이다. 그중 슬로시티로 선정된 곳은 증도(www.jeung-do.com)다.
증도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은 드넓은 갯벌 위로 펼쳐진 소금밭, 염전이다. 슬로시티 선정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선정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도 염전. 세계적으로 갯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갯벌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갯벌염전이 지켜야 할 가치를 가진 문화로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증도 염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금박물관도 있다. 소금박물관(061-275-0829)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평염전(www.sumdleche.com)의 옛 소금창고에 만들어졌다. 박물관 입구에는 커다란 맘모스 조형물이 있다. 이는 맘모스가 생존의 조건인 먹이와 소금을 찾아 이동했던 것을 상징한다고. 박물관 내부에서 ‘맘모스 스텝’이라 불리는 대륙의 이동 경로도 볼 수 있다.
증도 갯벌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은 ‘짱뚱어다리’다. 나무와 철근을 이용, 갯벌 위에 길게 놓은 이 다리에 서서 갯벌을 바라보면 짱뚱어의 모습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고. 겨울철엔 물 빠진 갯벌 위에 고개를 내민 작은 게들을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갯벌공부를 하려면 증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 명소인 우전해수욕장으로 가야 한다. 갯벌휴양타운으로 조성되고 있는 우전리 해변 남쪽에 신안갯벌센터(061-275-8400)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갯벌, 갯벌 세계로의 여행, 아름답고 풍요로운 신안갯벌, 소중한 갯벌 등을 주제로 전시된 1층 전시장을 돌아보다 보면 증도의 갯벌에 대해 저절로 공부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IC로 나와 무안·현경 방향으로 우회전 진입. 현경교차로에서 내려와 지도·해제 방면 24번 국도로 좌회전. 수암교차로에서 증도·임자도 방향으로 좌회전, 지도대교 건너 사옥도로 진입. 사옥도 지신개선착장 입구에서 증도대교로 진입해 다리를 건너면 증도다. 태평염전 이정표를 따라가면 소금박물관에 닿는다.
2 슬로시티 선정단을 한번에 매료시킨 증도의 그림 같은 풍경. 3 갯벌 위에 길게 놓은 짱뚱어다리에 올라 갯벌을 바라보면 짱뚱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길게 이어진 야트막한 돌담이 운치 더하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청산도는 일찍부터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섬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 가족이 길을 걸어가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당리 황톳길과 돌담을 배경으로 멋지게 표현됐기 때문. 그 후 같은 곳에서 드라마 ‘봄의 왈츠’가 촬영되면서 영화와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청산도를 찾아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도 촬영지인 당리 언덕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청산도 바다 풍경도 꽤나 아름답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서면 당리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붉고 푸른 지붕 사이에 자리한 초가지붕 집은 서편제기념관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리해온 초가집에는 송화와 동호가 유봉에게 소리를 배우는 장면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당리마을은 산자락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 잠시 숨을 고른 분지에 자리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 마을은 돌로 쌓아올린 담장이 아름다운 곳. 청산도에는 돌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밭의 경계도, 집의 담장도 모두 돌로 쌓았다. 땅을 고르고 밭을 일구며 나온 돌들을 활용해 만들었겠으나 지금은 그것이 청산도 마을을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됐다. 본격적인 돌담을 만나려면 상서마을로 가야 한다. 마을회관 뒤로 이어지는 사람 키 높이 돌담이 매우 인상적이다.
당리마을에서 신흥마을 쪽으로 약 1km 정도 더 가면 전남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읍리하마비(문화재자료 제108호)와 읍리지석묘(문화재자료 제116호)가 있는 읍리가 나온다. 하마비는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탈것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라는 표지석으로 궁궐이나 향교, 사당 앞에 세워지는 것이다.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196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높이 1m, 폭 70cm, 두께 15cm의 하마비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들었고 아랫부분에 불상이 조각돼 있다.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하마비보다 크기가 크다. 고인돌은 현재 3개가 남아 있다. 20여 년 전 도로 공사로 훼손돼 몇 개나 있었는지,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청산도는 섬 순환해안도로의 길이만 16km가 넘는다. 걸어서 섬을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해안 도로도 잘 닦여 있으니 겨울철 찬 바람을 피해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찾아가는 길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청산도로 가는 카페리가 출발한다. 완도 본섬에서 약 19km 떨어져 있으며 45분이 소요된다. 도선 운항 시간 및 차량 도선 문의는 청산농협(061-552-9388-9)으로 하면 된다.
1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했던 청산도 보리밭길. 2 상서마을에 가면 사람 키 높이의 돌담이 길게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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