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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즐거운 만남

작가 신현림 사랑의 마술을 걸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는 것, 사랑하면 삶이 아름다워져요”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조세일 || ■ 장소협찬 도도앤(02-737-7236)

입력 2010.10.19 10:23:00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신현림 작가의 어머니가 2년 전 돌아가시면서 그에게 남긴 유언은 “사랑을 누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의 크기를 재서 내 것이 타인의 것보다 크면 큰 손해라도 나는 양, 줬던 사랑도 다시 거둬들이는 세상.
어머니의 유언을 화두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작가의 사랑 반성문.
신현림 작가(49)에게 인터뷰하자는 전화를 걸었다. 신 작가는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등의 시집을 내고 사진작가로도 활동하며 사진 에세이와 번역집 등을 펴낸 종합 예술인. 최근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예담)는 에세이를 펴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시원시원했다.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인터뷰할 거냐고 묻거나, 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대번에 ‘하자’고 했다.
‘기꺼이 하는 일엔 행운이 따르죠./ 잘될 거야, 잘될 거야! 외쳐 보고 / 기꺼이 하는 일엔 온 하늘이 열리고 / 온 바다가 출렁이고 오렌지 태양이 떠올라요!’(‘기꺼이 하는 일엔 행운이 따르죠’ 중에서)
인터뷰는 작가의 아지트인 서울 소격동 카페에서 진행됐다. 테라스에 앉아 있자니 연한 파란색 원피스에 같은 색 우산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옷 색깔도 걸음걸이도 시원시원.
사실 작가를 만나던 날 나이 지긋한 탤런트가 아침방송에 나와 “요즘 사람들은 헤어지는 걸 미리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 예전처럼 진득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던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랑을 저울로 달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손해 본다 생각하고, 지난 사랑에 집착하면 ‘쿨하지 못해 미안’한 세상.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그럼에도 거침없이 “사랑하라”고 말하는 작가는 그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의 사랑도 스마트폰처럼 가볍지 않은가요
신현림의 시와 산문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읽으면 마음이 짠해지고, 응어리진 게 풀리곤 한다. 치유의 글은 상처와 슬픔의 산물이다. 오십 줄을 바라보는 작가는 무엇 하나 쉽게 이룬 것이 없다고 고백한다. 사수 끝에 대학에 진학했고,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아 유급을 당할 뻔한 적도 있다. 학벌과 인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맘고생을 한 적도 있고, 이혼을 했고 사랑에도 상처를 받았다. 고통과 불면의 날들을 보내며 작가는 깨달았다고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인생이란 나무는 상처와 상실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그 상처, 슬픔을 통해야만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영혼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 예전의 시집 제목은 ‘침대를 타고 달렸어’ ‘불타는 세상에 지루한 구두를 던져라’ 등 다소 강했는데, 이번 에세이집 제목은 아주 순합니다. 세상 보는 눈이 순해진 건가요.
“젊은 날에는 성공하려는 열망이 강했고, 세상에 이름을 알린 후에는 그걸 유지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고비가 지나고 나니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건이든 사랑이든 나누고 베푸는 대인배 같은 삶. 목표를 성공이 아닌 성장에 두었더니 일상의 소중한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더군요. 길에서 만나는 작은 꽃 한 송이 바람 한 점도 얼마나 감동적인지.”
▼ 대인배 같은 삶, 참 반가운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너무 소심한 것 같아요. 특히 사랑에 관해서는.
“요즘 사람들의 사랑은 약고 가벼운 것이 마치 이 스마트폰 같아요. 재미는 있지만 깊이는 없죠. 주변을 보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조차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못하고 우물쭈물 시간만 보내기엔 짧은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저는 다시 사랑하면 기쁨도 슬픔도 감정도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순수하고 투명하게 다 공유할 거예요.”

▼ 그렇다고 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사랑도 재미가 없잖아요.
“물론 사랑을 할 때도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죠. 요즘 사람들은 그걸 ‘밀당’(밀고 당기기)이라고 하더군요(웃음). 오르한 파묵의 글 중 ‘바보들은 언제나 자신의 사랑이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성급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바람에 상대의 손에 칼자루를 쥐어준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영리한 사람은 서둘러 반응을 보이지 않는 법이죠. 돈이나 사랑 이런 것들은 너무 절실하게 좇으면 어디선가 엉키게 되더라고요.”
▼ 사랑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유언으로 “일만 하지 말고 사랑을 이루라”고 말씀하셨다고요.
“결혼해서 이혼할 때까지 미친 듯이 일만 하고 살았어요. 그 후에도 혼자 살며 아이를 키우느라 일중독자로 살 수밖에 없었고요. 당뇨와 고혈압을 앓던 어머니가 의식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그거였는데, ‘인생은 빼빼로 과자처럼 금세 녹고 쉽게 부러지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았나’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사랑다운 사랑을 해 본 적도 없고, 인생이 얼마나 쓸쓸하게 여겨지던지. 이번에 낸 책은 어머니의 유언에 대한 제 반성문입니다.”
▼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우리 집의 모든 짐덩이를 지고 사셨던 분이죠. 시집을 와 보니 아버지는 지독한 폐병을 앓고 있던 데다가 대학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대요. 어머니가 약사였는데 그런 아버지 병도 고치고 대학도 졸업시키셨어요.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전집을 들이면 군소리 한마디 없이 그 할부금도 다 갚으셨어요. 그 덕분에 어릴 때 책은 맘껏 읽을 수 있었죠. 저희 4남매 공부도 어머니가 다 시키셨고, 학교 다닐 때 제가 재수도 여러 번 하고 유급도 당할 뻔하고 말썽 많이 부렸는데 그때마다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격려해 주셨어요. 그 시대 어머니들이 그렇듯 스케일이 큰, 그야말로 대인배였는데 누린 것 없이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어요.”

딸은 나의 소울 메이트

신현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네다섯 살 무렵의 서윤이를 업고 있던 모습. 그 사진 속 엄마와 딸은 하나의 영혼으로 묶인 것처럼 강한 끌림이 있었다. 어느 책 표지로 쓰인 그 사진 역시 파란 하늘이 배경이었다. 신 작가는 사실 서윤이를 갖기 전 아이를 유산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서윤이가 생겼다.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동생인 신윤주 목사가 “이건 하늘의 뜻이다. 언니가 그동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젠 이타적인 삶을 살 때”라며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서윤이를 낳아서 어느 덧 10년, 작가는 아이를 돌보는 고됨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지금 딸은 신 목사 부부가 있는 필리핀 국제학교에서 공부 중인데 이 때문에 작가는 아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또 보고 싶어서 한동안 몸살을 앓다가 급기야 필리핀행 비행기에 오르고야 말았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그곳에서 에너자이저처럼 씩씩하게 잘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니 일도 손에 더 잘 잡히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 서윤이는 필리핀에서 어떻게 지내던가요.
“잘 지낼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역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청소부 아줌마부터 모든 사람들이 활달하고 인사성 좋다며 우리 서윤이를 칭찬하더라고요. 힘들면 한국에 가자고 했더니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기본은 하고 가야지 못하면 창피하잖아’ 하면서 목표했던 건 다 하고 온다고 하더라고요.”

▼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는데 어떤 엄마인가요.
“책임감 강한 엄마? 아이와 항상 함께 있었어요. 아이를 다른 데 맡길 상황이 안 됐기 때문에 항상 데리고 다녔어요. 한 번은 서윤이를 이웃에 잠깐 맡긴 적이 있는데 자기를 딴 사람한테 맡겼다고 그렇게 서러워하더라고요. 또 둘이 살면 외로우니까 서점 도서관에도 자주 갔고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부터는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실크로드 일본 중국 앙코르와트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그 곳 말고도 더 있을 걸요. 그 덕분에 아이가 어디를 가든 잘 적응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 찾아서 하고 야무지고 활달하고, 여기서 서윤이를 알던 사람들은 언제 오느냐며 기다려요. 그만큼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학교 공부에 지장이 있을텐데.
“그런 면에선 불량 엄마죠. 하지만 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저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 6년 개근상 받았지만 남는 게 없어요. 반면 여행은 가장 생생한 자극을 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죠.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늘 알려고 드는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제 상상력도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 같아요.”
▼ 물론 이상적이긴 한데 요즘 엄마들이 아이 공부시키는 법과는 거리가 있어요. 세태를 너무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초연한 건가요.
“저도 물론 아이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책읽기, 일기쓰기 이런 건 아이가 싫어해도 억지로 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안 했지만 우리 딸이 공부를 못 할 것 같지는 않아요. 또 앞에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잡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는 건,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 인생이란 게 빵틀에서 찍어내는 빵처럼 정형화된 게 아니라서 우회전, 좌회전도 있고 유턴도 있고 넘어져 피도 흘리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독서와 체험에 바탕을 둔 자기 생각, 사교성 이런 것들이 인생을 헤쳐나가는 무기가 될 거고요.”
▼ 서윤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나요.
“언젠가는 ‘엄마, 나 의사가 될까’라고 묻기에 ‘그건 3D 업종이야, 몸도 마음도 다 고된데 뭐 그런 일을 하려고 하니?’라고 말린 적이 있어요. 저 참새(인터뷰 중 카페 안으로 참새 두 마리가 비를 피해 들어왔다. 도심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참새였다)를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사람, 일상의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늘 새롭고 신선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사랑 공부, 사랑테크
사랑, 누구는 갖고 있지 않기에 열망하고 누구는 있어도 그 소중함을 모른다. 그렇고 그런 결혼생활에 싫증난 친구는 더러 신 작가에게 ‘솔로라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신 작가의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얼마 전 누군가가 첫사랑과 결혼해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남편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고 하더라. 누군가는 ‘기형’이라고 했지만 나는 부러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맞아서 함께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라고 감탄했다. 그는 “치열한 선수 정신으로 작업하되 생활 속에선 조용히 예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예쁜 사람은 내면으로부터 강한 빛이 넘치는 바다 같은 이다. 언젠가 스텝 패밀리를 이루어 생활 속에선 예쁜 아내, 엄마, 며느리로 조용히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의 꿈”이라고 한다.

▼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동안 속 썩인 게 너무 후회되더라고요. 엄마가 야단칠 때 대들지 말고 ‘잘못했어’ 하고 물러설 걸, 더 잘해드릴 걸 이런 생각이 들어요. 또 엄마가 돈만 벌지 말고 취미생활도 하며 천천히 인생을 즐기면서 사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 글쓰기와 사진, 서윤이 외에 관심사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우리 딸을 좋아하고, 또 딸도 좋아할 수 있는 사람. 자상하고 따뜻하고 잘 생기고… 너무 잘 생겨서 내가 주눅 들 정도는 말고(웃음). 그런 사람을 만나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서로 지지하며 기둥이 돼 주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 어쩌면 아주 단순한 진리인데, 그걸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국영수만 가르치지 말고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사랑학을 가르쳐야 해요. 콘돔 사용법, 피임법 이런 것 말고 사랑의 역사와 기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 매너 이런 철학적인 것들을 가르치면 세상이 훨씬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 지금 만나는 분은 있나요.
“노코멘트(웃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저를 작가가 아닌 여자로 봐 주면 좋겠어요.”
▼ 글을 쓰면 나이 드는 게 덜 서글플 것 같습니다. 글이 깊이가 있어질 테니까요.
“나이 드는 건 누구에게나 다같이 서글픈 일인 것 같아요. 사람들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고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좌절감을 극복하는 시간도 예전보다 곱빼기로 들어요. 사람들이 노후 준비를 하는 이유도 나이 들어서의 외로움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몸은 아프고 주변에 사람은 없는데 경제적으로까지 쪼들리면 더 외로울 테니까. 그런 면에선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 것 또한 노후를 대비하는 거예요.”

신현림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하늘은 개였다가 비를 뿌리기를 반복했다. 비가 그치면 그친 대로 초가을의 청아함이 좋았고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운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자 작가는 기자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 소중한 것을 배운 만남이었다.

인생은 길지 않다. 다투거나 쉽게 헤어지기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인생은 복잡하나,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제일 먼저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가 힘들어하면 곁에 있어주고, 일부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은 인생을 바꿔주는 최고의 힘이다.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중에서

여성동아 2010년 10월 5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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