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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에서 인생 골든벨 울린 커리어우먼 김수영 감동 인생

글 오진영 사진제공 김수영 || ■ 자료제공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웅진지식하우스)

입력 2010.07.16 17:02:00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김수영씨. 실업계 고교생으로는 처음 KBS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려 화제를 모았던 그는 현재 영국의 다국적 기업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5년 전 암 진단을 받은 후 받아 살아 있는 동안 이루고 싶은 꿈 73개의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중 절반 가까운 32개를 이루었다는 그의 희망 메시지.
문제아에서 인생 골든벨 울린 커리어우먼 김수영 감동 인생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에서 명상 중.



올해 스물아홉 살,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로열더치셸 영국 본사에서 근무하는 김수영씨는 2주일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막 런던에 돌아온 참이라고 했다. 휴가를 내 서울에 머무는 동안 강연과 방송 출연, 신문·잡지 인터뷰와 얼마 전 출간한 책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의 독자와의 만남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다고 한다. 그가 범상치 않은 면모를 세상에 처음 드러낸 건 11년 전 KBS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렸을 때다. 당시 전남 여수정보과학고 3학년이었던 그는 실업고 학생으로는 처음 골든벨을 울려 화제가 됐다.
‘골든벨을 울린 실업고 여학생’은 그 후 연세대 영문과에 진학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다국적 에너지 기업에 취업해 ‘인생의 두 번째 3분의 1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다’는 꿈을 실현 중이다. 이미 다녀온 나라가 50개국이 넘는다.
“한국에서 제 지구별 인생의 3분의 1을 살았으니 두 번째 3분의 1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리고 마지막 3분의 1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이 지구별을 무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방랑하면서 살아가자는 뜻에서 제 블로그 이름도 ‘쾌락주의자 유목민의 지구 이야기’라고 붙였습니다.”
그의 블로그는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해서 하루 8백여 명이 방문해 해외 취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한다. ‘쾌락주의자’라고 했지만 무작정 놀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유목민’이라고 하지만 방향 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꿈을 향해 앞뒤를 점검하며 달려가는 중이다.

가출 소녀로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 기자의 꿈 안고 버텨
억대 연봉을 받는 글로벌 커리어우먼이 된 그가 한때는 학교 선생들이 담임을 맡기 꺼리는 문제아였고 중학교 졸업장도 못 받고 자퇴한 ‘불량 청소년’이었다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광주에서 살았는데 제가 열 살 때 아버지가 건설회사를 차렸다가 부도를 내셨어요. 아버지 고향인 여수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집 구할 돈이 없어서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시골 마을 회관 한구석에서 살게 됐죠.”
하루 2시간씩 버스를 타고 여수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가난 때문에 주눅이 들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 신세였다. 차마 수업 준비물을 살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때, 건설현장의 고된 노동을 견디느라 밤마다 술을 마시는 아버지가 큰소리를 지를 때,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유서를 쓴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다시 왕따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까진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 하는 문제아가 돼 있었다. 가출도 세 번이나 했다.
“그 시절 제 마음은 무능한 부모님, 불공평한 세상, 초라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열등감’뿐이었겠지요. 중학교 시절 거칠게 반항을 했던 것은 그 내면의 불안감과 열등감을 가리기 위한 반발이었고요.”
결국 그는 졸업을 3개월 앞두고 중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1년 늦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담임선생님이 ‘상고에서도 노력하면 대학에도 갈 수 있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 너희의 20대는 지금부터 3년에 달렸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정말 대학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지요.”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평생 처음으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더니 결과는 전교 1등이었다. 고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전교 1등이라고는 해도 대학 진학 공부는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남이 쓰던 문제집을 얻어다 팔이 아프게 지우개로 지우고 문제를 풀며 공부했다. 다른 과목 시간에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빼앗기고 교무실에 쫓아가 울다시피 사정했다가 “네가 전교 1등이라도 우리 학교에선 전문대 간 게 다야. 현실을 알아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문제아에서 인생 골든벨 울린 커리어우먼 김수영 감동 인생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려고 근사하게 차려 입었다.



때는 마침 IMF. 아버지는 일거리가 없어 노는 날이 많았고 어머니가 공공근로, 시장 청소, 파출부 일로 푼돈을 벌어오는 형편이었다. 부모님은 딸이 하루빨리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해서 가정에 도움을 주기 바랐지만 그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도와줄 곳 하나 없는 환경이었지만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기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 과정에서 고통받는 민간인들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이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양한 모습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고, 기자가 돼 세상의 변화를 알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독서실 아저씨는 그에게 기자가 되려면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문제집을 풀고 지우고 또 풀고를 반복하며 공부에 매달린 끝에 연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등록금은 수능 직후 녹화한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출신 최초로 골든벨을 울린 덕분에 해결됐다.
“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대학의 관문을 넘어서야 했어요. 당시 환경이 정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하면 평생 이 지긋지긋한 현실의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정말 더 이상 붙잡을 곳도 없이 바다 한복판에서 표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꿈이 있었기에 그 꿈을 붙잡고 겨우 수면으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동아일보’ 인터넷 기자단에 선발돼 활동하던 2000년, 서태지의 컴백에 맞춰 그의 노래를 듣던 가출 소녀 시절을 떠올리며 쓴 기사 ‘스무살 서태지 키드의 눈물’은 그해 최고 인터넷 기사상을 수상했다.



골드만삭스 취업 직후 받은 암 진단… 살아 있는 동안 꼭 이룰 꿈 리스트 만들어
대학에 다니는 동안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방학 때 그 돈을 탈탈 털어 여행을 다니면서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 ‘변화를 알리는 사람’인 기자가 되기보다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도 굳혔다.
‘세계로 나가고’ ‘변화를 만들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방황하면서 50여 곳의 회사에 지원하고 불합격 통지를 받기를 계속하던 중 뜻밖에도 골드만 삭스에 입사하게 됐다. 그런데 정작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골드만삭스 입사가 아니라 입사를 앞두고 받은 건강 검진 결과였다.
“암 세포가 발견돼 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황당하고 억울했죠.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고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한 반년을 멍한 상태로 지내며 방황했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지만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 미래의 성공을 추구하면서 정작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어떻게 해야 매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해외유학파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회사에 들어갔건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복잡하던 어느 날,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적어보니 73개였어요. 그 73가지 목표에 중요도와 긴급한 정도를 점수로 매겨 정렬을 해보니 목록의 첫 번째는 ‘한국을 떠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었죠.”
한곳에만 머물기엔 지구별이 너무 아깝고, 한국 땅에서는 이미 인생의 3분의 1을 보냈으니 떠나야겠다고 결정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런던대 석사과정에 지원해 2005년 10월 영국으로 출발했다. 런던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서서히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다.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즐기는 열정적인 삶’을 살기로. 취업 박람회와 설명회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1백여 곳의 회사에 지원해 인터뷰를 하고 또 하는 사이 어느덧 ‘면접의 달인’이 된 그에게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로열더치셸이 손을 내밀었다.

문제아에서 인생 골든벨 울린 커리어우먼 김수영 감동 인생

1 이집트 홍해에서 스킨 스쿠버 다이빙 중이다. 2 아르헨티나. 그는 2015년까지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모두 여행할 예정이다. 3 모로코 전통의상. 4 꿈 하나 ‘요가 강사 자격증’따기. 5 회사 동료들과.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김수영씨의 73개 꿈 리스트 중에 성공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것이 32개나 된다. 그의 ‘마이 드림 리스트’에는 타이 마사지 배우기, 지중해 요리 배우기, 스노보드 배우기처럼 비교적 수월한 것부터 장학재단 만들기, 요트로 세계 곳곳을 항해하기, 아이를 입양해 새 가족 구성하기 등 장기적인 프로젝트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 영감이 되기, 사람들과 교류하며 열정을 나누기 등 삶의 자세에 대한 지침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이룬 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부모님 집을 마련해드린 것이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꿈과 영감 주는 ‘꿈의 전도사’ 되고파
“저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평생 꿈이었어요. 2년 넘게 힘겹게 이뤘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아요. 지금 부지를 마련해 아버지께서 직접 집을 짓고 계세요. 평생 남의 집만 지어온 아버지는 당신 집을 짓는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 매일 새벽마다 집터에 가보시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우신대요.”
내년에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꿈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10년 후 그들이 꿈을 이뤘는지 찾아간다는 장기 프로젝트다. 또 여행 중 그의 꿈 리스트에 있는 ‘실크로드 여행하기’와 ‘발리우드 영화(뭄바이에서 만드는 인도 영화)에 출연하기’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다.
“특히 발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춤도 배우고, 다이어트도 하고, 치아교정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가장 역점을 두고 추구하는 꿈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라고 한다.
“책을 펴낸 후 많은 분들께 이메일을 받았어요.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이 거의 자서전에 가까운 편지를 보내주세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답장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단 한명이라도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요.”
김수영씨는 꿈 없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 꿈이 있지만 두려워 망설이는 이들에게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진정 원하는 꿈을 계획하며 실천으로 옮기는 행복”에 대해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머릿속에 담아둔 생각을 글로 써두면 자신과의 약속이 되고, 의식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자신의 꿈을 상상하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글로 써보면 어떨까요.”
김씨는 부모님 집이 완성되면 집들이도 해야 하고 이번에 다 못 만난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 빠른 시일 안에 다시 한국을 찾을 것 같다고 한다.
“다음 방문 때는 제 책을 읽고 좋아해주시는 독자분들과 특히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방황하고 좌절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꿈을 꿀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여성동아 2010년 7월 5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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