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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제 2의 전성기

열정의 로커 유현상 인생역정 풀어놓다

글 문다영 사진 홍중식 기자 사진 제공 도프뮤직

입력 2010.06.16 15:26:00

그룹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이 자서전을 펴냈다. 책에는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꿈꾸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청순한 외모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이지연을 발굴해 키우고 떠나보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당대 최고 이슈이던 수영선수 최윤희와의 러브스토리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열정의 로커 유현상 인생역정 풀어놓다


“1년여 전부터 ‘내가 어릴 때 어땠지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더라?’ 생각하며 저 자신과 대화하면서 책을 썼어요. 써야겠다 다짐한 건 아니었고, 미국생활을 하던 때부터 한줄 두줄 써내려가다 보니 책 한 권이 됐네요. 원래 곡을 쓸 때나 힘겨운 일이 있을 때도 늘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왔거든요.”
미국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느끼던 외로움, 2008년 그룹 ‘백두산’을 재결성하며 자신을 다잡기 위해 펜을 들었던 것이 유현상(56) 자신에게 자서전을 선물했다.

한동네 살던 인순이와 남매처럼 자라
유현상은 서울악극단 단장 아버지와 연극배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개구쟁이이던 그는 골목대장이었다. “너는 무사, 너는 바이킹”이라 정해놓고 놀면서도 누군가 “너는 뭔데?”라고 할 때면 “나는 나야”라고 답하던 주체성 강한 꼬마였다. 그의 유년기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가수 인순이다. 인순이 가족이 당시 유현상 부모가 운영하던 숙박업소에 세 들어 살았던 인연으로 친남매처럼 자랐다고.
그는 책에서 ‘심하게 장난을 건 나를 쫓아오다 다시 도망가는 인순이를 밀쳤는데 뾰족한 돌에 턱이 찢겨 흉터가 생겼다. 내가 인순이의 매력 포인트를 만들어준 것이다. 턱의 보조개가 예쁘게 잘 만들어져 가끔 만나면 성형수술 비용을 내라며 농담을 하기도 한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인순이 어머님과 우리 어머니가 친자매처럼 지내서 우리 형제들과 인순이는 서로의 어머니를 ‘이모’라고 불렀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동두천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때 인순이네도 함께 이사를 해서 같은 동네에 살았죠. 특히 아버지가 인순이를 아꼈어요. 재능을 알아보시곤 악극단 무대나 노래자랑에 빠짐없이 내보냈죠. 전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에만 관심이 있어서 인순이와 음악적 공감대가 깊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열정만큼은 닮은 것 같아요. 지금도 인순이는 가슴속에 마그마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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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개구쟁이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그는 작곡과에 다니던 큰형을 보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가출까지 감행한 끝에 어머니에게서 기타를 선물받았다.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란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매일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하던 그는 어느 날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기타를 자르면 더 잘 칠 수 있다”고 말하자 그길로 목공소에 달려가 기타 윗부분을 자르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절박했어요. 해외 뮤지션들의 대화, 생각, 의지, 습관마저도 저에겐 연습이라 느껴졌죠. 오죽하면 로큰롤 기타의 달인이라 불리는 자니 윈터의 앨범을 구해 듣다가 귀를 뚫은 재킷 사진을 보고 제 손으로 귀를 뚫었겠어요. 대바늘로 귀를 뚫고 실을 묶고서는 ‘이제 너랑 나랑 같아’라고 생각했다니까요.”
김치 대신 우유와 치즈를 먹고, 이태원에선 유현상 대신 Rui라는 이름을 썼던 그는 클럽활동 당시 매일 새벽 남산에 기타 연습을 하러 다니다 둘도 없는 친구 윤수일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거듭된 노력 끝에 그는 86년 록그룹 ‘백두산’을 결성해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이지연을 가수로 키워내고, 생애 가장 뜨거운 사랑, 최윤희를 만나며 인생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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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팬이던 이지연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매니저로 나서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이지연이 활동을 하며 만난 음악인과 사랑에 빠져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의 인생 또한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그때 유현상은 생애 단 하나의 사랑을 만난다. 방송국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영선수 최윤희(43)였다. 13세 차이인 최윤희와의 러브스토리는 전 국민이 아는 대대적 사건이었다. 그는 91년 6월 장모의 반대에 친한 기자의 손에 이끌려간 절에서 도둑 결혼식을 올렸고, ‘유현상이 최윤희를 강제로 납치해 결혼식을 올렸다’는 루머까지 떠돌았다.
유현상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이의 축복 속에 결혼했어야 할 소중한 이 여자를 이리 해도 되나 싶었다. 대신 시작은 이래도 남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리라 생각했고,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이 사람만 사랑하겠다 다짐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후회 없는 결혼식이었지만 제대로 된 결혼식이 아닌 것은 지금도 아쉽다고. 더욱이 당시 그들의 결혼식을 도왔던 기자에게 결혼식 사진을 몇 장 받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신문사에서 사야 할 정도였다.
“부부 동반으로 다른 이의 결혼식에 가서 화려한 드레스를 보면 미안해서 자리를 피하곤 했어요. 그래서 ‘하객 5백 명도 모자라다, 공연장에서 5만, 10만 명을 모아놓고 결혼식을 하자’고 했는데 아내는 ‘무슨 결혼식을 두 번 하냐’며 싫다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신에 은혼식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수영선수라 뒤태가 아주 아름다운데 등 파인 드레스 한 벌 마련해주고 싶어서요. 그 옷을 입고 해외여행 가서 함께 블루스도 추고 하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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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결혼 20주년을 맞은 유현상 최윤희 부부.



결혼 당시 “상대가 돼야지”라며 반대하던 장모도 이제는 딸 최윤희보다 홀로 지내고 있는 그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로 관계가 호전됐다고 한다. 유현상은 “장모님께서 아들이 없어서인지 첫아이 동균이(19)를 안겨드렸을 땐 손을 벌벌 떨며 안아들고 ‘이게 윤희 아들인가’라고 물었다”며 “손자들을 너무 좋아해서 요즘도 6개월에 한번씩은 미국에 가신다”고 전했다.
어릴 때 TV를 보다 “하버드대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큰아들 동균이 유현상의 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 시애틀로 유학을 떠난 뒤 아내 최윤희마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2001년 가족 모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했다는 유현상. 하지만 곧 “어릴 때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가출까지 했던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나는 누군가”라는 좌절에 빠지게 됐고, 유현상은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진행형인 꿈을 좇고 싶어 2003년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련의 연속이었다. 가족을 부양해야겠다는 책임감에 스탠드바 공연을 돌 때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그중 자신의 머리에 술을 부은 팬을 잊을 수가 없다.
“광주에 있는 스탠드바에 갔는데 백두산을 좋아하던 한 팬이 찾아왔더라고요. 저에게 다가와 백두산 노래를 들려줄 수 없겠냐 묻더군요. 아마 조그만 술집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제가 못마땅했나봐요. 그런데 스탠드바와 헤비메탈은 어울리지 않아서 정중히 거절했더니 잠시 후 술병을 들고 와 ‘네가 정말 유현상이야? 넌 가짜야’라며 제 머리 위에 부었어요. 활동시기가 짧았음에도 절 기억해주는, 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아준 고마운 팬이죠. 그래서 속으로 그랬어요. ‘있잖아, 나 죽지 않아. 다시 시작해서 언젠가는 당신이 더 큰 박수를 보내게 할 거야’라고. 그날 도망치듯 바를 뛰쳐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했죠. 걱정하는 아내에게 아이들을 바꿔달랬는데 아이들이 ‘건강은 어떠세요’ 하고 묻기에 ‘지금 맛있는 거 먹고 있다’고 했어요. 아이들과 얘기할 때 힘들었던 일을 잊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죠.”

“내 꿈을 이뤄야 떳떳한 가장이 되고 가족의 꿈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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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선 트로트를 불렀지만, 공연장을 이동하는 차 속에선 헤비메탈을 놓지 않았다는 유현상은 결국 그룹을 재결성, 2008년 동두천록페스티벌 무대에서 꿈을 이뤘다. 그동안 음악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술·담배·도박을 멀리해 목소리를 22년 전 그대로 유지한 덕분이기도 했다. “마침 비가 와서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을 감출 수 있었다”고 멋쩍게 웃는 그는 오랜 지인인 김태원·김구라 덕에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예능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아내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제가 별말 하지 않아도 웃어주더군요. 무엇보다 음악 프로그램 10번 출연보다 예능 프로그램 1번 나가는 게 인지도 면에서 매우 효과적이에요. 네살배기 꼬마가 저희 공연에 온다니, 정말 기적이죠.”
백두산의 부활. 그로 인해 유현상은 “아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에 한발 다가섰다. 트로트를 할 때는 한 번도 음악을 들려준 적 없지만 백두산의 새 앨범은 바로 들려줬다고. “아빠의 노래를 너무 좋아하고, ‘친구들이 정말 한국 밴드냐고 묻는다’고 칭찬해준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유현상은 가족 덕분에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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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동균은 속이 깊어요. 얼마 전에는 운전면허를 따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자기가 장도 보고, 동생 호균이(17)도 태우고 다닌다고 해서 기특했어요. 학교만 해도 그래요. 여러 동부 명문대에서 입학 제의가 오는데도 안 가겠대요. ‘수영선수인 엄마가 시애틀에 있느라 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난 어디서든지 잘할 수 있으니 엄마를 위해 캘리포니아 소재 학교로 가고 싶다’고 해요. 이렇게 컸나 싶어 깜짝 놀랐죠. 하지만 의사가 돼서 아프리카 등 어려운 곳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해서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했죠. 김연아 선수를 본다고 수영을 하던 호균이는 이번에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하겠대요. 얼마 전에는 미식축구 MVP를 받기도 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예체능에 재주가 많은 것 같아요.”
사실 홀로 한국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내가 있어야 할 침대 옆자리엔 기타가 함께한다. 하지만 유현상은 “아내는 나보다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존재”라며 “아내가 옆에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아내가 아이들을 돌봐줘야 한다”고 웃는다. 더욱이 떨어져 있다 보니 대부분의 부부가 겪는 권태기 없이 늘 애틋해 좋은 점도 있다고.
두달 간 한국에 머물렀던 아내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유현상은 책을 발간했고, 6월에는 백두산의 5번째 앨범이 발매된다. “시애틀에서도 공연을 해달라”는 아이들의 말처럼 7~8월 중에는 미국 공연도 할 생각이다. 아직 꿈이 많은 유현상. “꿈은 열정을 키우고, 열정은 인생을 키운다”는 그의 말대로 그와 그의 음악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여성동아 2010년 6월 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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