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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부부가 사는 법

이승한 엄정희 홈플러스 회장 부부 ‘세 가지 보물’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10.05.18 14:01:00

왜 우리 부부만, 우리 가족만 불행할까.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봄직한 질문이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과 엄정희 교수 부부도 소중한 아들을 잃고, 암과 싸우며 수없이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깨달았다. 마른 날만 계속되면 그곳은 사막이 되리라는 것을, 행복은 누군가가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이승한 엄정희 홈플러스 회장 부부 ‘세 가지 보물’


“당신, 오드리 헵번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클레오파트라를 닮았구려.”
이날따라 앞머리를 가지런하게 손질한 아내에게 남편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자 아내의 뺨이 소녀처럼 붉어진다. 세기의 미녀와 함께 사는 운 좋은 남자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64), 남편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은 행복한 여자는 엄정희 교수(60·서울사이버대 가족상담학 )다. 올해로 결혼 35주년을 맞는 이 회장 부부는 재계 소문난 닭살 커플. 엄정희씨는 “남편이 아내 잘해주기 경연대회 나온 사람처럼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초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이 부부를 만났다.

차돌같이 단단한 믿음으로 시작한 사랑

엄씨는 인터뷰에 앞서 먼저 집안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인상적인 건 가족에 관한 자료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엄씨는 남편과 관련된 신문 기사·사진·그 외 자료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스크랩해두었다. 스크랩북 분량만 14권. 첫 번째 스크랩북을 펼치자 사보에 실린 ‘병아리 사원이 말하는 입사 6개월’이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 회장이 삼성 신입사원 시절 쓴 것이다. 표지에 ‘Friendship’이라고 적은 노트에는 남편과 함께 만난 사람들의 인적사항·취미·자녀관계 등에 관한 정보가 빼곡하게 기록돼 있었다. 부부 침실에는 시어머니로부터 선물받은 자수 액자가, 거실에는 이 회장 부부가 사돈·딸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식탁에는 특이하게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블루마운틴 커피·녹차·신선한 토마토주스가 준비돼 있어 원하는 대로 골라 마실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회장의 집은 작은 가족 갤러리이자 카페 같았다.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 75년 웨딩마치를 울렸다. 넉넉한 집안에서 화초처럼 자란 아내는 남편이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남편도 그녀를 보고 한눈에 ‘이 사람이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을 갓 시작할 무렵,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다가 이 회장은 그녀에게 별다른 말 없이 차돌 두 개를 건넸다. 엄씨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는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인 양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때 친구들한테 너무 값싸게 넘어간 게 아니냐고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웃음).”
“차돌이 단단하잖아요. 집을 지으려면 좋은 주춧돌을 써야 하는 것처럼 단단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을 키우자, 그런 의미였죠.”
차돌은 프러포즈 선물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됐고 행복할 때는 차돌을 바라보며 ‘참 고맙다’ 만져주기도 하고, 서운한 일이 있을 때는 차돌을 보며 ‘그래,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야’라며 위로받으며 서운함을 잊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차돌은 부부의 보물 1호가 됐다.

봄꽃보다 환한 사랑 알게 하고 떠난 아들



보물 1호에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설렘이 담겨 있다면 보물 2호인, 이 회장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결혼생활 중 겪은 아픔과 이를 치유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신과 함께 맞는 27번째 5월. 가슴 저리게 떠오르는 일이 많아요.
오래전 우리의 사랑이자 생명이었던 아들 성주가 하늘나라로 간 것도 봄꽃이 세상을 환하게 밝힌 5월이었지요.
귀여운 딸 현주가 의젓한 편지로 슬픔에 잠긴 우리에게 한 줄기 삶의 밝은 빛을 주던 것도, 그리고 2년 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로서 영국과의 합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때도 5월이었지요.
(중략) 세월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소중한 아들 성주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당신마저 충격으로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채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하는 크나큰 시련이 닥쳐왔지만, 하나님의은총과 우리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굳건히 다시 일어날 수 있었지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사랑도 슬픔과 고통의 긴 터널을 함께 지나왔기에 더욱영글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중략)
2001년 5월 당신의 승한으로부터’

이승한 엄정희 홈플러스 회장 부부 ‘세 가지 보물’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누구보다 큰 시련을 겪었다. 87년 여덟 살 난 큰아들 성주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것이다. 결혼 후 5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부부는 아이를 보내주십사 간절한 서원기도를 올렸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성주를 얻었다. 아들은 또래보다 똑똑하고 밝아서 부모로 하여금 ‘미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까’라는 꿈을 갖게 하는 특별한 아이였다. “성주는 정이 많고 표현력이 풍부해 다른 사람들에게 동생을 소개할 때도 ‘내 동생 이현주는 손이 부드럽습니다’라고 했던 아이”라고 말하는 엄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아프다며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뇌염 예방접종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빠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부부는 아이를 억지로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체육시간에 운동을 하다가 성주가 쓰러졌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뛰어갔을 때 성주는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후 1년, 성주는 한번도 깨어나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났다. 봄꽃이 화사하게 피던 5월 어느 날이었다.
“죽기보다 살기가 더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절대 그것만은 안 된다고 했는데, 제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죠.”
성주를 보내고 난 후 엄씨의 건강은 급속하게 쇠약해져갔다. 이듬해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위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기절해서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이대로 아들 곁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고 한다.
“나중에 딸 현주가 앰뷸런스 안에서 두손을 모아 ‘하나님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하고 빌었다는 얘길 들으니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 말을 듣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이 회장이라고 슬픔이 덜할 리 없었다. 하지만 집안의 기둥인 그마저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긍정적인 마음 자세가 시련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승한 엄정희 홈플러스 회장 부부 ‘세 가지 보물’


“아이도 떠나고, 이 사람도 아프고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연약해 보여도 강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꼭 일어서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딸과 남편 덕분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 엄씨는 병원에서 위의 3분의 2를 자르는 수술을 받았다.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이 회장은 아내를 데리고 주일마다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이 부부가 다니던 임마누엘 교회에는 높은 계단이 있어 운동하기 좋았다. 남편은 서너 계단만 올라도 숨차하던 아내를 부축해 천천히 끝까지 오르길 몇 년간 반복했고, 이후 아내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현주 아빠가 죽은 가지에 새순을 돋게 해준 거죠. 건강도 좋아졌고, 다시 믿음도 갖게 됐습니다. 왜 우리 부부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했고, 은혜는 겨울철에 자란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습니다.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그곳은 사막이 되겠죠. 저희는 그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돌아보게 됐습니다.”

끊임없는 애정 표현, 이벤트 속에 나날이 깊어지는 부부의 정
이쯤에서 엄씨는 세 번째 보물을 꺼내들었다. 지난 2000년 그간의 일기를 모아 엮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늘을’이 그것이다. 남편과 딸에 대한 사랑을 오롯이 담은 것이다. 이 책과 순위를 다툴 수 없이 똑같이 아끼는 또 하나의 보물은 생일카드다. 펼쳐 보니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오리,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오리, 이 세상에서 항상 함께 있고 싶은 오리, 화내지 않게 할게요’란 글이 영문과 함께 적혀 있다. 그간 이 회장이 보낸 수많은 카드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라고 한다. 심사는 엄씨가 했다.
“결혼해서 한 번도 기념일 때 카드 주는 걸 빠뜨린 적이 없는데 그해는 하도 바빠서 생일카드를 준비하지 못했어요. 집 근처에서 사려고 했지만 모두 문을 닫았더라고요. ‘이거 혼나겠다’ 싶어 집에 들어와 부랴부랴 그림을 오려 붙이여서 만들어 준 건데, 그걸 그리 좋아하더라고요.”
오리는 엄씨의 애칭으로 신혼 때 삐칠 때면 언제나 입을 쑥 내밀었는데, 얼굴 생김새나 모습이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오리와 비슷해서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엄씨는 평소에는 남편을 도기씨(이 회장이 개띠라는 점에 착안한 것), 뭔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집안의 대장이라는 의미에서 보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리와 도기의 가정에는 날마다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기본. 아내는 녹색경영의 비전을 품고 있는 남편에게 녹색 넥타이를 선물하기도 하고, 남편은 몸이 약한 아내를 위해 맞춤형 스트레칭을 개발했다.
“남편 구호에 따라 시뮬레이션 동작으로 역기도 들고, 자전거도 타고 가구를 헬스 기구 삼아 기대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하는 건데요, 아침에 그걸 하고 나면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개운해져요. 또 남편과 정서적인 친밀감도 느낄 수 있고요.”

이승한 엄정희 홈플러스 회장 부부 ‘세 가지 보물’

1 이승한 회장이 엄씨에게 프러포즈를 겸해 선물한 차돌. 2 이 회장이 한국능률협회 녹색경영대상 최고 경영자상을 수상한 날 엄정희씨는 남편을 위해 ‘녹색이벤트’를 마련했다. 3 이 회장이 아내에게 보낸 생일카드.



어떻게 보면 마냥 장난스럽지만 이 부부의 가정은 정확한 목표를 향해 항해를 해나가고 있다. 부부가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는 행복.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이 회장 부부는 병아리(신혼처럼)·동아리(공동의 취미생활)·도우미(섬기기) 등의 큰 틀을 세운 뒤 결혼기념일과 생일 챙기기·딸과의 전화통화·가족모임·독서·불우이웃 돕기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해 놓았다.
정신없이 바쁜 이 회장이 어느 틈에 아내에게 일일이 편지 쓰고 이벤트를 마련할까 싶은데 이 회장은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그에게 사회적 성공과 가정의 행복,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가정의 행복”이라고 답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사회적 성공도 아무런 의미가 없더군요. 또 큰 틀로 봐도 가장 작은 구성단위인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는 거고요.”
엄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10여 년 전 뒤늦게 학업을 시작,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교육학 석사, 백석대학에서 상담학 박사(가족치료/부부치료 전공) 학위를 받고 현재 가족상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처음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건강 때문에 안 된다는 남편에게 ‘절대 A학점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간신히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남편이 팔걷어 붙이고 학업을 도와줬다고 한다. 엄씨는 최근에는 자신의 결혼생활과 임상 실험을 바탕으로 한 ‘행복섬으로 가는 17일 간의 부부항해 네비게이터’(대성닷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 전액은 홈플러스와 제휴관계인 장애우 빵공장 뜨랑슈아에 기부하기로 했다.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사공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는 어디서 짜잔 하고 나타난 이상형과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수많은 역경을 이겨나가며 노력으로 완성돼가는 것입니다.”
이승한 회장이 내린 부부의 정의다.

여성동아 2010년 5월 5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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