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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련을 딛고

시각장애인 최초 명예 보건학 박사 정철우 원장 감동 인생

글 오진영 사진 박해윤 기자

2010. 04. 16

지난 2월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명예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된 정철우 원장. 그는 지독한 가난과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30여 년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

시각장애인 최초 명예 보건학 박사 정철우 원장 감동 인생


시각장애인 안마사인 정철우 원장(62)은 지난 2월 대전대학교 졸업식에서 명예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명예 보건학 박사를 받은 정 원장은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73년 처음 안마사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사람은 72만 여명. 정 원장은 “고단했지만 보람이 더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네 살 때 시력을 잃었다. 6.25 전쟁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고아가 된 그는 영양실조로 인한 야맹증이 생겼다고 한다. 간단히 비타민 A만 공급해주면 나을 수 있는 증상이었다. 그런데 한 무면허 침술사가 나쁜 피를 빼야 한다면서 어른들로 하여금 그가 몸을 못 움직이게 붙들게 하고 그의 눈을 굵은 침으로 찔러대 영영 빛을 못 보게 됐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맹인학교 다닐 때, 무료 시술 나왔던 안과 의사가 제 눈을 보고 “멀쩡한 눈을 버렸네” 라고 말씀하셔서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맹인학교에 진학한 후 기차에서 껌과 연필을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 그래도 돈이 모자랄 때는 피를 팔기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맹인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안마사 자격증을 받아 시술을 시작했다.

어렵게 공부한 만큼 사회 환원에도 열성
73년 경북 문경에서 처음 문을 연 안마원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그는 이후 3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점심시간도 없이 일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6년 전 대전역 앞에 지금의 안마원을 열었다.
“올해부터는 사정에 따라 쉬는 날을 갖기로 했습니다. 지난 2월 박사 학위 받으러 가던 날 쉬었고 3월 초 아들 결혼하는 날 쉬었어요. 그전에는 딸 결혼하던 날도, 어머니 장례식 날도 문을 열었습니다.”
의사인 아들은 약사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공기업 차장인 큰딸에게서 외손주 둘을 보았다. 정 원장은 28세 때 결혼한 아내와 둘이서 점심밥도 거르고 매일 일해서 번 돈을 부지런히 사회에 환원했다. 극빈장애인 8천여 명에게 무료시술을 해주고 저축통장을 나누어주고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해주는 등의 선행을 베풀어 국민훈장 2번, 국민포장 1번, 장관 표창 13번을 받았고 지난 2007년 사회복지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이봉주 선수를 비롯한 마라토너와 운동선수들이 많이 거쳐간 그의 시술실에는 한국실업육상경기연맹에서 받은 공로패가 걸려 있다. 공로패 같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녀간 유명 인사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고위 공직자, 정치인도 많지만 그는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들 딸 다 결혼시켰고 훈장도 받고 명예박사도 받아 저는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저를 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검정고시로 고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서 자연요법을 공부한 정 원장은 올해 대학에 편입해 경찰법학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안마시술을 둘러싸고 퇴폐영업을 한다는 오해 때문에 경찰 조사를 많이 받는 시각장애인들의 현실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한평생을 고단하게 산 장애인들이 늘그막에라도 설움당하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양로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쉬는 날 없이 일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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