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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판 ‘오체불만족’ 닉 부이치치 희망 메시지

글 백경선 사진 조영철 기자 || ■ 참고도서 살아 있음이 희망이다(황금물고기)

입력 2010.04.16 12:03:00

양 팔과 다리가 없어 ‘호주판 오체불만족’으로 불리는 닉 부이치치가 지난 2월 말 한국을 다녀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을 느낄 법도 하건만 닉 부이치치는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호주판 ‘오체불만족’ 닉 부이치치 희망 메시지


사람들은 습관처럼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를 보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그는 팔도 다리도 없다. 그런데도 항상 웃는다.‘호주판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으로 불리는 닉 부이치치(28)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8년 MBC ‘세계와 나 W’를 통해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닉 부이치치는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 행복해요. 제가 찾은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그가 지난 2월 말 한국을 찾았다. 사랑나눔재단의 생명존중 캠페인 ‘스페셜 미(Special Me)’의 첫 번째 프로젝트 ‘스페셜 미 위드 닉(Special Me With Nick)’의 일환으로 1주일 동안 강연 및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의 강연이 열린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은 ‘희망’을 직접 확인하러 온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은 그를 “꿈과 희망을 가까운 곳으로 가져오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조명이 꺼지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무대가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그곳에 밝게 웃고 있는 그가 있었다. 그의 미소를 실제로 보자, 조금 전 영상을 통해 축하 인사를 전해온 노홍철의 말이 생각났다. “저 친구가 저렇게 밝을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싶다.”
그는 두 개의 발가락이 달린 ‘작은 닭다리’와 같은 왼발(닉은 자신의 왼쪽 발을 ‘닭다리’라고 불렀다)과 바지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만큼 더 작은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 특히 왼쪽 발에 달린 두 개의 발가락은 그의 몸을 지탱해주는 지지대이자 손가락이다. 두 발가락으로 그는 컴퓨터 자판도 두드릴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고, 전화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쳐 3주 동안 발을 쓸 수 없었어요. 쓰던 것을 못 쓰니까 많이 불편했죠. 비록 두 개밖에 없는 볼품없는 발가락이지만,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제 발가락에 감사해요.”

호주판 ‘오체불만족’ 닉 부이치치 희망 메시지


다른 사람들은 팔과 다리가 있는데 왜 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닉은 82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세르비아 이민자 출신 목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충격과 슬픔에 잠긴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책망하느라 한동안 그를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의 부모는 병명이라도 알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아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한 의사로부터 불완전하나마 그 해답을 얻었다. 일종의 해표상지증(phocomelia·바다표범처럼 팔다리가 짧은 기형)이라는 희귀병이라는 것이다. 사실 61~62년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과 일본에서 이 병이 꽤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임신부들이 임신 초기 진정제와 최면제의 일종인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이 병에 걸린 신생아들을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라고 불렀는데, 그 수가 무려 8천 명이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 약을 복용한 적이 없다. 이후에도 몇 달 동안 헤매고 다녔지만, 아들이 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닉의 부모는 명확한 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불안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안과 용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과 다르다는 사실 알고 깊은 절망, 두 번 자살 시도

호주판 ‘오체불만족’ 닉 부이치치 희망 메시지


팔다리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는 아들을 몸이 온전한 여느 아이들처럼 키웠다. 자신들이 영원히 보호해줄 수 없다면,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스스로 앉는 법과 스스로 먹는 법을 가르쳤다. 수영과 컴퓨터를 가르치고 연필과 볼펜을 쥘 수 있는 특별한 플라스틱 틀을 고안해 그가 글씨를 쓸 수 있게 했다.
그래서일까. 어린 닉은 자신의 생김새가 남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유치원에 다녀온 첫날, 그는 “다시는 유치원에 안 간다”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그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놀렸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어렴풋이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반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는 그 사실을 더욱 처절하게 실감했다. 그가 특수시설에서 보호를 받으며 연약하게 성장하는 것보다 세상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우기를 바라던 그의 부모는 그를 일반학교에 보냈다. 이곳에서 또다시 외로운 싸움은 시작됐다. 사람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신기한 표정으로 왜 팔다리가 없느냐고 물었고, 그가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무섭다면서 피하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를 들어서 엉뚱한 곳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일반학교에 진학하면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으로 좌절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나 놀림을 당하는지 억울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문득 내가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열 살 무렵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했다. 한 번은 부엌 싱크대 위로 기어 올라가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뜨릴 양으로 몸을 날렸다. 아프긴 했지만 목은 부러지지 않았다. 소리에 놀라 달려온 부모에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바로 그의 어머니가 달려와 물에 가라앉은 그를 들어 올렸다. 그때도 역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 것은 신문에 난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가 열두 살이었을 때, 어느 날 어머니가 그에게 신문기사를 읽어주었다.
“저와 비슷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어떤 남자의 이야기였어요. 그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놀림을 당해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제 고통이 가장 크고 유일한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꿋꿋하게 장애와싸워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죠.”

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호주판 ‘오체불만족’ 닉 부이치치 희망 메시지


그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비록 겉모습은 다르지만, 네가 친구들과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용기 있게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부모의 충고대로 용기를 내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변하자 친구들도 하나둘 변하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그를 다정하게 대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그는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스스로를 여전히 어두운 골방에 가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님은 늘 저에게 시도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수영할 수 있을 거라고, 대학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몰랐죠. 제가 이 모든 것을 해낼 거라고는. 시도하지 않고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에요.”
그는 시도했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이루어냈다. 그는 대학에서 회계학과 재무학을 복수 전공했다. 골프와 수영을 하고, 축구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과 서핑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어릴 때 인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너는 혼자야. 너는 결혼도 못할 거야. 결혼을 한다 해도 아내의 손도 잡아주지 못할 거야. 아이는 낳을 수 있을까? 낳는다 해도 아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지도 못하고 품에 안고 달래주지도 못할 거야. 그러니까 포기해. 제 안의 어디선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하지만 이제 몸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요. 마음으로 아내의 손도 잡아줄 수 있고 마음으로 아이를 보듬어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는 “두려움 때문에 미리 포기하는 것은 팔과 다리가 없는 것보다도 더 큰 불구”라고 이야기한다. 그를 위해 마련된 좁은 연단을 기우뚱거리며 왔다 갔다 하던 그가 갑자기 엎어졌다. 엎어진 상태에서 그는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쓰러질 때도 있고, 어느 순간에는 일어날 힘이 전혀 없는 것도 같아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하죠. 어차피 힘든 삶이야, 이젠 포기할 수밖에 없어. 저 또한 그랬죠. 그런데 포기하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합니다. 그걸로 끝나고 말죠. 저는 이제 백 번 넘어져도 백 번 모두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할 거예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언제까지 계속해서 일어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절대 끝이 아니에요. 어떻게 이겨내는가가 중요한 거예요.”
말을 끝낸 그는 다시 힘겹게 일어섰다.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현재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스태프와 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을 하고, 강연으로 얻은 수익금을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구호활동 자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저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로 인해 절망 속에서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세계를 다니며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그가 무대를 떠난 뒤에도 기자는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동차 조수석에서 360도 빙글빙글 돌면서 옆 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여성을 놀라게 했던 이야기, 비행기 짐칸에 들어가 있다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들려주면서 웃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장난치고 웃을 수 있기까지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과연, 그가 말한 대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일 수는 있을까. 최근 그에 대한 이야기가 ‘살아 있음이 희망이다’(황금물고기)라는 책으로 나왔다. 살아가면서 힘이 들 때면, 그의 미소가 떠오를 것 같다.

여성동아 2010년 4월 5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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