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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오랜만입니다

원조 한류스타 김연자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글 오진영 사진 현일수 기자

입력 2010.04.16 10:15:00

80년대 인기 스타이던 가수 김연자가 20여 년 만에 고국 팬을 찾아왔다. 일본에서 활동하면서도 한국을 잊은 적 없다는 그가 정상의 자리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떠난 사연, 다시 돌아와 팬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원조 한류스타 김연자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오랜만에 한국 팬들 앞에 설 생각을 하니 걱정 반, 설렘 반입니다. 20년 넘게 떨어져 있다 이제야 온 게 죄송하기도 하고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 지난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의 여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한류 원조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연자(51)가 3월 말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한다.
15세이던 74년 데뷔해 올해로 가수 생활 36년째를 맞는 김연자. “매일 매일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는 그의 한국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가 한국에서 활동하던 당시에는 콘서트가 별로 없었어요. 콘서트를 통해 관객을 만나는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이라 어떤 반응일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돼요.”
20여 년의 일본 생활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하면서 미루다 마침내 첫 전국 투어를 갖게 된 데는 지난해 8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임종도 지키지 못했어요. 그게 무척 마음에 걸려 어머니께는 못다 한 효도를 하고 싶었어요. 한국행도 국내 콘서트도 모두 어머니 때문인데,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도 행복하네요.”

18세 연상 남편과 몰래 올린 결혼식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가 가수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밀어주고 지원해주셨다고 한다.
“고향이 광주인데 열네 살밖에 안 된 어린 저를 서울 작은아버지 댁으로 보내셨어요. 서울 가서 가수 되라고요. 그 덕분에 열다섯에 TBC 방송 주최 ‘가요 신인스타’라는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데뷔했지요.”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열여덟 살 무렵, 김씨는 일본의 한 레코드 회사로부터 일본 진출을 제안 받았다. 당시 가수 이성애가 일본에 건너가 큰 인기를 끌자 일본의 레코드 회사들 사이에 한국에서 실력 있는 가수를 뽑아가려는 붐이 일었던 것이다.
“이왕 트로트 가수로 시작했으니 일본에 가서 엔카를 제대로 불러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너무 준비 없이 간 게 탈이었어요.”
일본어 공부나 일본 가요시장에 대한 사전 조사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던 일본 진출을 3년 만에 접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가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80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민심을 사기 위해 통행금지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하고 경기부양 정책을 폈다. 밤업소들이 성황을 이루는 시절이어서 가수로 활동하며 부모에게 집도 사드리고 효도할 수 있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빛을 못 보고 돌아온 일본 진출에 대한 미련이 항상 남아 있었다. 더구나 일본에 있는 동안 만난 재일교포 2세 연인 때문에라도 언젠가는 다시 갈 계획이었다. 색소폰 연주가이자 밴드 지휘자인 남편 김호식씨와는 일본에 간 첫해, 방송무대에 출연하러 갔다가 처음 만났다.
“나이도 어린데다 낯선 외국 땅이라 모든 게 쑥스러워 기를 못 펴고 있었는데 하루는 누군가 다가와 한국말로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네줘서 깜짝 놀라 돌아봤더니 밴드 지휘자였어요. 누군가와 한국말로 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반가웠지요.”
통성명하는 자리에서 같은 김씨 성이지만 본관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을 정도로 첫눈에 서로 호감을 갖게 된 두 사람은 18세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교제를 시작했다. 김연자가 한국에 돌아와 활동을 재개하자 김호식씨는 한 달에 한 번씩 부지런히 현해탄을 건너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김연자가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릴 무렵인 82년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한 스포츠 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렸어요. ‘김연자, 비밀 결혼’이라고요(웃음).”

88서울올림픽 계기로 일본 진출, 남편 외조 덕에 성공
남편이 있는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다시 옮기기에는 한국에서 너무 잘나가고 있던 그는 88서울올림픽 직후 두 번째 일본행을 결심했다.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올림픽 공식 노래를 대대적으로 공개 모집했다. 박건호씨가 만든 같은 노랫말에 작곡가와 가수가 짝을 이룬 세 팀이 서로 다른 곡을 붙여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를 만들어 대중에게 알리고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한 곡을 최종적으로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김연자는 작곡가 길옥윤씨와 팀을 이뤄 노래를 불렀고 올림픽을 앞두고 한 달 내내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세 노래를 번갈아 들려준 결과 그가 부른 노래가 올림픽 공식 송으로 선정됐다.

원조 한류스타 김연자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저는 트로트 가수이기 때문에 핸디캡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뽑혔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TV로 중계된 최종 선발대회에서 펑펑 울었어요.”
그러니 올림픽 개막 직전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가 공식 주제가로 채택되었다는 결정이 나왔을 때 실망감과 서운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많이 섭섭했지만 어떡하겠어요.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이 기회에 ‘아침의 나라에서’를 들고 일본으로 다시 진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경쾌하고 밝은 느낌의 ‘아침의 나라에서’는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 레코드 회사에서는 그가 계속 ‘아침의 나라에서’풍의 가요를 불러주기 원했지만 김연자는 ‘엔카’를 부르고 싶었다. 일본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서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야코 하루미라는 유명한 가수 출신 프로듀서가 계세요. 그분 아버지가 한국 분이신데 그분을 찾아가 일본 엔카를 부르고 싶다고 사정을 말씀드리고 받은 곡이 ‘암야항로(어두운 밤뱃길)’라는 노래였어요.”
신곡이 나오고 처음엔 잠잠하기에 또 실패인가 싶어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6개월만에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김연자는 이 노래로 일본 가요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됐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일본 전역에서 수많은 콘서트를 통해 오리콘 엔카 가요차트 1위, 일본레코드 대상, 일본 유선방송 최다 리퀘스트 가수상을 받는 등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한 해 일본 가요를 총결산하는 연말 빅 이벤트인 NHK TV의 ‘가요홍백전’에도 3차례나 출연했고 2001년, 2002년에는 북한 초청으로 평양 공연을 열었다. 그는 성공적인 일본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역시 남편이었다고 말한다.

일에 빠져 사느라 아이 가질 시기 놓쳤지만 최선 다했기에 후회 없어

원조 한류스타 김연자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남편은 지금도 매니저 겸 프로듀서로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가 비밀 결혼식을 올린 이후로 한동안 ‘김연자 남편은 야쿠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김연자는 한 방송에 출연,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남편은 우리 어머니보다 겨우 두 살 아래지만 여리고 귀여운 사람이에요. 주먹을 쓰는 사람이란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 가요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남편이 있었기에 제가 바른 길을 밟아갈 수 있었어요. 남편의 외조가 없었어도 제가 이만큼의 성공을 누렸을까 질문해보면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살았기에 아버지의 정을 못 받았는데 아버지처럼 다정하고 인자하게 저를 이끌어줬던 남편에게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연자 부부는 일본에서 인기 가수와 프로듀서로 살아가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를 일본 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02년에 일본인을 위한 한국요리책 ‘김연자의 한국요리, 맛있는 식탁’을 발간하고 ‘김연자 김치’를 일본 시장에 출시해 김치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노래와 공연으로 빡빡한 활동 스케줄에 쫓겨 숨 가쁘게 살아오는 동안 아이를 가질 시기는 놓치고 말았지만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그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3년 전 가수로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1천4백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던 도중 갑자기 목이 잠겨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시간 공연 예정이었는데 한 시간 만에 막을 내리고 입장료를 전액 환불해드렸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팬들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 체력 단련에 힘을 쏟아 지금은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무대에서 새 출발을 선언한 김연자가 22년 만에 고국에서 내놓은 앨범 ‘늘 꽃처럼’에는 신곡 ‘10분 내로’와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익숙한 노래 ‘수은등’, ‘슬픈 얼굴 짓지 말아요’ 등이 담겨있다. 또 일본에서 히트한 노래들을 한국어로 번안해 소개했다. 김연자를 오래 기다린 한국 팬에게는 그의 30여 년 음악인생의 연륜과 향기로 가득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여성동아 2010년 4월 5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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