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안동 이상화 선수(21)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올림픽 금메달 이상화 축하’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대문 앞에는 ‘외삼촌 일동’이 보낸 화환이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결승 장면을 수차례 돌려보면서도 어머니 김인순씨(50)와 아버지 이우근씨(53)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오늘만 수십 번을 돌려보는데도 볼 때마다 좋아요.”
이상화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텔레비전 화면에 ‘금메달’이라는 자막이 큼지막하게 뜨자 수십 번 봤다면서도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이상화 선수가 감격에 겨워 울먹이는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어머니 김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 와 있던 친지들이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아이고, 딸 우는 장면 나올 때마다 엄마가 우네. 볼 때마다 우네.”
이상화 선수는 은석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은석초등학교는 리라초등학교와 더불어 빙상 명문으로 손꼽히는 사립학교로 1963년에 처음 빙상부를 만들었다. 이 선수보다 세 살 많은 오빠 상준씨가 먼저 은석초등학교에 들어가 스케이트를 시작했고, 이 선수가 그 뒤를 이었다. 중학교 교직원인 아버지와 의류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고 싶은 마음에 남매를 집에서 가까운 사립학교에 보냈다.
“스케이트 그만 타고 피아노 배우면 안 될까?”
이상화 선수는 스케이트화를 신은 지 한 달 만에 교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후에 은석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당시 체육부장 선생님이 어머니 김씨에게 “쟤(이상화)는 악바리라서 잘할 것”이라며 개인교습을 시켜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개인교습을 시작하고부터 이 선수는 겨울마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전국대회에서도 2등은 거의 한 적 없다. 그런데도 부모는 이 선수가 3학년 때 스케이트를 그만두라고 했다. 아이 둘을 가까스로 사립학교에 보내는 형편에 개인교습까지 계속하는 건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드니까 스케이트 그만 타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 안 되겠냐고 아이를 설득했어요. 상화 방에 있는 저 초록색 피아노가 그때 산 거예요. 그렇게 겨우 스케이트를 그만두고 피아노를 한 달쯤 쳤나? 스케이트가 정말 타고 싶다면서 상화가 매일 졸라댔어요. 아이들 아버지가 속상해서 밤마다 술을 마셨어요. 할 수 없이 다시 시켰죠. 어느 부모가 안 들어주겠어요.”
학교에서도 그런 사정을 알고 4학년 때부터 이상화 선수의 학비를 면제해줬다. 동생 못지않게 스케이트를 잘 타 은석초등학교 빙상부의 유망주였던 오빠 상준씨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스케이트를 그만뒀다.
“우리 형편에 두 아이 다 스케이트를 시킬 수가 없어서 오빠가 양보를 한 거죠. 그래서 큰아이한테 늘 미안해요. 상화도 오빠한테 항상 미안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선수는 승부욕과 투지가 남달랐다. 남학생들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여학생이었다. 대회에 나갔다 하면 1등을 놓치지 않는 딸을 위해 어머니 김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 2개를 싸고, 딸을 태릉 스케이트장에 데려갔다가 학교에 등교시켰다. 딸이 학교에 있는 동안엔 집에서 재봉틀로 옷 만드는 일을 하고,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다시 스케이트장에 데려다줬다. 집에 데려오는 건 퇴근길의 아버지 몫이었다.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부모로서도 뿌듯했다.
(오른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 독일의 예니 볼프, 중국의 왕베이싱 선수와 함께한 이상화 선수.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스케이트를 타면서도 한 번도 스케이트장에 가기 싫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어요. 상화가 워낙 좋아하는 일이어서 우리도 뒷바라지가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네요.”
이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1년에 한 번씩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이를 위해 아버지는 은행 대출을 받았다. 한 번 전지훈련을 갔다오는 데 7백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발목을 크게 다쳐 돌아온 적이 있다. 휘경여중 2학년 때다.
“훈련을 다 마치고 돌아오기 하루 전날 넘어져서 복숭아뼈 있는 데가 푹 패도록 다쳤어요. 우리가 걱정할까봐 전화로는 얘기를 안 해서 몰랐는데, 공항에 마중 나가보니 발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나와서 깜짝 놀랐지요. 한 달 동안 운동을 못 했는데 다른 아이들 연습하는 거라도 보겠다고 스케이트장에 데려다달라고 해서 데려다주곤 했어요.”
이 선수는 그해 12월 한·일 교환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하다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 시합 사흘 전 스케이트 날에 종아리를 심하게 찍혔다.
“경기에 나가면 꿰맨 자리의 실밥이 터져서 안 된다고 말리는데도 기어코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1등을 하고 왔어요. 상처는 꿰맨 자리가 다 터져서 다시 꿰맸고요.”
“김연아에게 묻혀 서러웠다”
이 선수는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기록으로는 그보다 훨씬 일찍부터 국가대표급이었지만 만 15세가 넘어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수영의 박태환이 그렇듯 이 선수도 2인자와 실력 차가 크게 벌어지는, 독주하는 국내 1인자였다. 휘경여고 재학 중이던 2005년에 세계주니어선수권 500m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해 세계종목별빙상선수권대회 500m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4년 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이 선수는 주종목인 500m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하고 5위에 그쳤다. 당시 마지막 한 조의 경기만 남은 가운데 합계 77초04의 기록으로 3위였던 이 선수는 사상 처음 메달을 따낼 수도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마지막 조 선수들이 더 빨리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부푼 기대가 날아가버렸다. 부모의 아쉬움도 컸다.
“상화가 결승선에 들어온 순간 전광판에 3위라고 떠서 ‘아, 동메달이구나’ 했는데 남은 선수들이 더 좋은 기록을 내면서 5등으로 밀렸어요. 전화를 했는데, 상화가 너무 속상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더라고요.”
열일곱 어린 나이에 출전한 올림픽 데뷔전 성적으로는 훌륭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워낙 승부욕이 강해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것. 이 선수는 그해 다섯 차례의 월드컵시리즈 500m에서 1,2위만 4번 기록하며 국제무대의 강자임을 확인시켰다. 이듬해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체육대학에 진학한 2007년 잠시 슬럼프를 겪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싶었던 이 선수는 대표팀 합숙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체중이 5kg이나 불었다. 그해 국가대표 선발전 1000m에서 6위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 손을 붙잡고 종일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겨냥해 스케이트화 끈을 조인 이 선수는 지난해 2월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진 월드컵시리즈에서도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선수촌 훈련에서는 모태범·이규혁·이강석 등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체력을 길렀다. 얼음 위에서 남자 선수들의 속도를 추월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서도 남자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두툼한 허벅지와 단단한 다리 근육을 키워냈다. 단점으로 지적되던 스타트도 집중적으로 보완해 경기력을 향상시켰다.
이 선수의 기량은 상승세를 타 지난 1월 일본에서 열린 ISU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여자부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역사 60여 년 만의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에 주목한 매체는 별로 없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톡톡히 맛봤다. 이 선수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종합 1위를 했는데 김연아 선수 기사에 묻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서러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달력에 ‘2월16일 인생역전!’
지난 2월 캐나다로 떠나기 전, 이 선수는 집 거실에 있는 달력의 16일에 검은색 매직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인생역전!’이라고 적었다. 그때 어머니 김씨는 딸에게 “상화야, 4년 전에는 네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에는 꼭 기쁨의 눈물을 흘리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기 하루 전날, 초등학교 동창이자 13년 ‘절친’인 모태범 선수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앞서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도 이상화 선수와 한국체대 동기다. 연이은 낭보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향한 국민의 관심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이상화 선수의 경기가 열렸다. 당시 이 선수와 같은 조였던 독일의 예니 볼프 선수는 세계 기록 보유자로 여자 500m 세계 최강이었다. 볼프 선수는 첫 100m 구간이 굉장히 빠르다는 강점이 있었고, 이상화 선수는 경쟁자를 추격하며 스피드를 끌어올려 마지막 스퍼트에 특히 강했다. 결국 악착같은 투지로 볼프 선수를 따라잡은 이상화 선수는 38초24의 기록으로 1차 레이스에서 1위에 올랐다.
“전광판으로 1위에 오른 것을 확인하고 정말 내가 해낸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다”는 이상화 선수는 2차 시기까지 끝내고 금메달이 확정되자 엄마와 약속했던 대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트랙을 돌았다.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스피드스케이팅. 동갑내기 이상화·모태범 선수가 나란히 남녀 500m를 석권한 덕분에 지금은 전 국민의 열렬한 관심 대상이 됐다. 이 선수의 미니홈피에는 네티즌의 격려 글이 쇄도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상화 선수의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기량이 국민 모두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줬다”며 축전을 보냈다.
“밴쿠버로 떠나기 전에 상화에게 신발과 트레이닝복을 사줬어요. 운동선수들은 원래 운동화 욕심이 많은데 맘껏 사주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걸렸어요. 저와 백화점에 가면서 상화가 ‘엄마가 함께 가서 운동화를 사줘야 경기가 잘 풀릴 것 같다’고 했는데….”
어머니 김씨는 이상화 선수가 캐나다에서 돌아오면 가장 좋아하는 꽃게탕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전부터 약속한 대로 제주도 여행도 오붓하게 다녀오고 싶어 했다. 국민의 보배로 떠올라 어깨가 한층 무거워진 딸을 편하게 쉬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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