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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안재환과 사별 1년 반, 정선희 직격 인터뷰

글 박종권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매일경제 제공

입력 2010.03.15 17:12:00

남편과 친구 최진실을 차례로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침묵했던 정선희가 최근 케이블 TV 토크쇼를 통해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비로소 웃는 모습으로 돌아온 정선희와 마주 앉았다.
안재환과 사별 1년 반, 정선희 직격 인터뷰


남편 안재환이 결혼 1년 만에 세상을 등졌고, 곧바로 절친한 사이인 최진실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온갖 소문이 정선희(38)를 휘감았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은 정선희의 안부를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얼마 전까지 그런 정선희의 복귀 성공을 점친 사람은 없었다. 웃고 웃겨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개그우먼에게 남편과 친구의 죽음은 결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 정선희가 최근 소속사 랄랄라온에 새롭게 둥지를 틀면서 본격적인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이경실과 함께 SBS E!TV ‘철퍼덕하우스’ 진행자로 나선 것.
“처음엔 절망이 압도적이었어요. 일어날 힘은커녕 견뎌야 한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복귀는 아예 상상도 못했죠. ‘살려달라’고 기도만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 번도 ‘어떡하니?’라고 안 하시고 항상 ‘답이 있을 거다. 이유가 있을 거다’라고만 말씀하셨어요. 제게 신앙과 함께 가장 큰 힘이 됐어요.”

“남편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하고 애잔해요”
어머니는 그렇게 딸이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도록 기다려주었다. 조금씩 안정을 찾은 정선희는 자신을 걱정하는 동료들과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복귀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축 처져 지내는 게 어리광 부리는 거 같아서 창피했어요. 주위에 자꾸 걱정을 끼치게 되니까요. 원래 화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화장 안 하면 사람들이 “괜찮냐?”고 묻고 걱정해서 요즘은 일부러 화장을 해요. 화장으로 ‘저 괜찮아요’란 사인을 보내는 거죠.”
물론 그도 자신의 복귀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알고 있다. 지난 2008년 안재환이 갑자기 떠난 후 여러 가지 의혹이 남았다.
“사람들이 ‘왜 아무런 대응을 안 하냐’고도 물어요.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냥 제가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그 사람에게 가졌던 감정만큼은 보호하고 싶어요. 해명하는 과정에서 제 추억이 갈기갈기 찢길 거 같아요. 한때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함께 분노·집착·미련 등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두 사랑이었던 거 같아요.”
정선희는 이제 어두운 그림자만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태양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뭉클하고 애잔해요. 지금은 좋았던 느낌만 기억하려고 해요. 자꾸 생각하면 감상적으로 변해서 허무함이 다가와요. 가장 두려운 게 허무·무의미 같은 진공상태거든요. 이젠 앞만 보고 가려고 해요. 큰 욕심보다는 지금 즐겁게 웃으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내 빚은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말하는 고마운 동료들

그는 지난 1월 말 이경실과 ‘철퍼덕하우스’ 첫 회를 녹화했다. 19년 차 베테랑 방송인이지만 일련의 사건 이후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라 결코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동안 카메라와 대중 앞에 서는 게 두려웠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울렁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경실 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죠. 부담을 정말 많이 덜 수 있었어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겐 도움이 되니까요. 제가 경실 언니 등에 업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는 힘든 시기를 곁에서 지켜준 이경실에 대한 고마움을 오랜 시간 털어놓았다. 이경실은 ‘철퍼덕하우스’ 첫 녹화에서 “정선희가 50년 상환으로 빚을 갚는다. 내 돈은 가장 나중에 갚을 것 같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50년 상환은 좀 과장이고, 친한 동료들(홍진경 이영자 엄정화 박미선 이경실)과 국가에 채무가 꽤 있고 조금씩 갚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잘하면 3년 안에 다 갚을 수 있을 거예요. 다만 한 번도 ‘언제 갚을 거냐?’고 묻지 않는 친구들에게 마음의 빚이 더 클 뿐이죠. 저를 믿고 돈을 빌려준 분들, 마음의 빚을 내준 분들께 꼭 보답 할 생각이에요. 어찌 보면 빚이 지금 제 삶의 원동력일 수도 있어요.”



안재환과 사별 1년 반, 정선희 직격 인터뷰


정선희는 소위 ‘최진실 사단’이라 불린 이영자 이소라 홍진경 엄정화 등과 절친한 사이다. 구심 역할을 했던 최진실의 죽음은 그에게 청천벽력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정선희에게 최진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이자 가장 큰 슬픔을 안긴 이다.
“제가 진실 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어렵고 힘들어요. 한 마디, 글 한 줄로 정리한다는 건…. 한 가지 분명한 건 제게 진실 언니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거예요.”
정선희는 최진실과 관련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최진실 이야기가 나오자 무언가를 삼킨 듯 호흡이 길어졌고 목소리는 조금씩 말라갔다.
“처음엔 제가 살아 있다는 게 너무 죄스러워서 (최진실)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어요. 그런데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던 상념의 시기가 지나간 후에 ‘아이가 있는 언니 대신 내가 갚아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용기를 내서 최진실의 집을 찾았고, 최진실의 어머니는 딸 같은 정선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또 (최진실의) 아이들 역시 이모를 살갑게 따랐다.
“지금은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있어요. 아이들이 언니를 닮아서 밝고 강해요. 같이 놀 때는 재미있고 즐겁게 지내는데 돌아올 때는 정말 많이 울어요. 아이들 옆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빈자리와 아픔이 있어요.”
최진실 사단의 다른 멤버들이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다. 당시 서로의 안부가 가장 간절했던 그들은 마치 시스템처럼 의무적으로 매일 아침마다 전화를 돌려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다음엔 멤버들이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서로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꾸 슬픈 기억이 나니까요.”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정선희는 “지금은 눈물을 흘릴 단계는 지났다. 어른처럼 소리 없이 챙겨주고 일어서서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게 서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슬픔을 공유했던 친구들과 가끔 만나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건 확실해 보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남겨진 자신의 인생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일에 의미 부여하며 사는 이유 만들어가요”
사람들은 큰일을 겪고 나면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한다. 정선희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 속 작은 일 하나가 그에겐 모두 사는 이유였다.
“한때는 밥 먹는 내가 너무 싫었어요. ‘밥 먹을 자격이 되는가?’란 생각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옆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요. 그래서 부모님께 보여주려고 조금씩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먹는 것 자체가 고통이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언제 어디서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억은 그를 주저앉힐 만큼 무거웠다.
“갑자기 다가오는 허무함을 이기려고 일부러 운동도 많이 하고 빨래·청소 같은 집안일로 몸을 많이 움직였어요. 바빠야 아무런 생각이 안 드니까요. 강아지 7마리를 키우는데 한 번은 사료를 꺼내다가 ‘내가 포기하면 얘네들 다 유기견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살아야 한다’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었죠(웃음).”
지금도 그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계속 만들고 있다. 라디오 ‘정선희의 러브FM’을 통해 청취자와 만나고, ‘철퍼덕하우스’로 시청자를 만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철퍼덕하우스’는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쇼’를 표방한다.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고 토크쇼를 지향하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을 표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여성으로서 겪은 힘든 인생이 저와 비슷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시는 거 같아요. 실력은, 경실 언니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비교할 대상이 아니에요. 그분과 비교해서 얘기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그렇다고 그가 모든 부담을 털어낸 것은 아니다. 방송 출연은 아직 큰 산처럼 느껴진다.
“1년 반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아직 스스로 정리가 안 됐어요. 새롭게 출발하는 입장이니 당연히 열심히 하겠지만 제가 겪은 일들을 떠올리지 마시고 편하게 보시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10년 3월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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