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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신부

고 장진영 김영균 ‘608일 사랑의 기록’

‘울보 부인’이 ‘달링’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

글 이설 기자 사진제공 김영사

입력 2010.01.18 16:41:00

고 장진영과 김영균씨의 사랑에 울컥하는 이유.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지며,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지 1백일을 맞아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다. 짧은 사랑에 못다 한 그의 고백을 들었다.
고 장진영 김영균 ‘608일 사랑의 기록’


‘오늘 소파 틈새에서 진영이의 머리핀을 발견했습니다. 옷장 서랍엔 아직 그녀의 옷가지가 들어 있고, 욕실 선반 플라스틱 통엔 그녀의 칫솔과 빗이 꽂혀 있습니다. 욕실에 들어서면 그녀가 제 칫솔에 치약을 짜놓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버릇처럼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 서문에서)
사랑을 믿지 않던 40대 남자와 30대 여자가 뒤늦게 운명의 사랑을 만났다. 첫눈에 이끌려 잴 것 없이 사랑에 빠졌다. 기적 같은 러브스토리는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암으로 새드엔딩을 맞았다. 영화배우 고 장진영이 세상을 등진 지 석 달. 사망 나흘 전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 김영균씨(44)는 아직 이별을 치르는 중이다.
연인이 떠난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함께 듣던 음악이 나오거나 늘 통화하던 밤 11시만 되면 견디기 힘든 그리움이 엄습했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감당해야 했고, 그 방법으로 글을 택했다. 차분히 지난 시간을 정리하다 보면 슬픔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거라 생각했다. 짧은 사랑을 얼마간이나마 붙들고픈 마음도 있었다.
지난 12월 중순 출간된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김영사)은 그 결과물이다. 첫 만남, 첫 키스, 첫 여행, 투병생활,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머릿속 기억을 모조리 끄집어내려는 기세로 촘촘히 적어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내보이려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기에, 사소한 과장이나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았다. 김씨와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책에 실린 이야기 중 일부를 소개한다.

#만남…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녀
“진영이와 소개팅을 하던 날 무려 45분이나 지각했어요. 누구를 20분 이상 기다려본 적이 없다는데, 친구가 붙들어줘 겨우 만날 수 있었죠. ‘죽을죄를 졌다’고 사죄하니 다행히 기분을 풀더라고요.”
2008년 1월23일, 새해가 되면 의식처럼 치르는 첫 소개팅이 잡혔다. 상대는 영화배우 장진영. 어렵게 만난 그는 말투, 악센트, 활짝 웃는 표정까지 영화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웬만큼 연륜이 쌓여 여자 앞에서 떠는 일이 드문데, 그날은 심장박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떨렸다. 와인을 마시며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저는 일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대충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상대가 오길 기다렸죠. 진영씨도 저와 이유가 비슷했어요. ‘일에 전념하느라 결혼을 생각할 이유도, 마땅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감정이 통한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잘 들어갔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기다려도 답이 없었다. 한 시간 뒤 ‘네’라는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불안했지만 그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밀고 당기기를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나갔다. 몇 차례 술잔을 나누며 호감지수를 높여갔다. 하지만 마음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진영이는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편이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겼어요. 그래서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열 번째 만남이 있던 날 용기를 냈어요. ‘신중하게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고 싶다’고 하자 진영이도 ‘의미 있는 만남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진지한 만남이 시작됐다. 머릿속에서 장진영이 떠나지 않았고, 소중한 만큼 행복을 주고 싶었다. 날마다 말없이 현관문에 샐러드, 죽, 케이크, 피자를 놓고 가는 감동 이벤트를 벌였다. 어색함보다 편안함이 커질 무렵 “사랑해”라는 고백과 함께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사랑이란 말을 쉽게 해요?” “결혼을 하려면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죠.” 마음이 조급한 동시에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진영이는 예민하고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 성격이었죠. 만나는 동안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했지만 저는 무조건 진영이를 배려했어요. 제가 더 강했고 제 사랑이 더 컸으니까요.”
늘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여배우가 세상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랜 기간 스토커에게 시달려 마음의 빗장이 단단했다. 하지만 정성으로 진심을 보여주자 장진영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 마구마구 여자이고 싶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 문자를 보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이제 마음껏 사랑해도 된다는 생각에 좋아서 얼이 빠진 것 같았죠.”

고 장진영 김영균 ‘608일 사랑의 기록’

1 강원도 정동진으로 떠난 100일 기념 여행. 둘은 손발이 척척 맞는 여행 파트너였다. 2 장진영의 생일을 맞아 떠난 마카오의 성 바울 성당 앞에서. 3 결혼식 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물을 보였다. 체중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신부 장진영.



#사랑… 낯가림이 심한 그녀 마음의 문을 열다



“저와 진영이는 성향이 반대였어요. 저는 경제서적을 좋아하는 건조한 사람인 반면 진영이는 예술가적 기질이 강해 시를 즐겨 읽었죠. 진영이를 만나면서 20대로 돌아간 듯 감정이 충만해졌어요.”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받는 행복을 누렸다. 평일 등산을 하거나 전시회와 음악회를 찾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1백일 기념으로는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데이트 횟수가 늘어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하지만 스킨십 진도는 더뎠다. 손을 잡고 키스하는 것 이상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만큼 스킨십에서도 거리를 뒀다. 기회는 한국을 떠나 함께 일본에 머무는 동안 찾아왔다. 봄 즈음의 일이었다.
“첫날 밤 이야기까지 적은 것은 그 순간 역시 소중하기 때문이에요. 장인장모님께 내용을 상세히 알리지 않았지만, 제 마음을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하지만 그들도 연인인지라 오해도 생겼다. 발단은 김씨의 사소한 거짓말이었다. 진영이 CF를 찍으러 해외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목포 출장을 갔었다. 연인이 해외에 있을 때 출장을 갔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집이라고 했다. 그때 ‘휴대전화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문자가 왔고, 와이셔츠 차림이던 그는 사진을 보내지 않았다. 다음날 연인은 ‘당분간 보지 말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초반에 친구들과 여행 가는 것을 출장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미리 잡힌 여행이라 취소할 수도 없었고, 진영이도 실망할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둘러댔죠. 진영이는 연인 사이란 작은 일에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배려한다고 한 행동이 마음을 아프게 한 거죠.”
힘들게 만난 사랑을 순간의 오해로 놓칠 수 없었다. 글자마다 꾹꾹 진심을 눌러 담아 사죄의 편지를 썼다. 나는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고, 한 곳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중이라고, 그러니 힘든 과정이 있더라도 이해하며 헤쳐 나가자고. 실망이 컸지만 진영은 사과를 받아들였다.

#희망… 위암 4기 진단, 치유를 위한 여행


모든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쯤 그림자가 드리웠다. 속이 쓰리다는 연인에게 술을 자제하고 위장약 복용을 권했다. 2,3일 지나도 차도가 없자 병원을 찾았다. 내시경 검사와 CT검사 결과 위암 4기.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돌아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울음이 터졌다. 9월 말 즈음이었다.
“진영이는 강한 여자였어요. 오히려 저를 걱정하며 암을 이기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죠. 비밀리에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곧 언론에 사실이 알려졌어요. 항암치료가 시작되자 힘든 시간이 시작됐죠.”
돈도 명예도 좋은 직업도 사랑하는 이의 병 앞에서는 모두 무의미했다. 항암주사를 네 시간 넘게 맞고 나면 사나흘 동안 일어나지도 못했다. 체중도 빠지고 체력도 떨어졌다. 그는 동업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진영을 보살폈다. 아픈 중에도 데이트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 실의에 빠질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진영이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침·뜸과 풍욕을 병행했어요. 한번 하면 똑 소리 나게 하는 성격이라, 나중에는 직접 뜸을 뜰 정도가 됐죠. 항암치료를 하면서는 미리 아팠다면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작별… “다시 만나 오래오래 사랑하자”

고 장진영 김영균 ‘608일 사랑의 기록’


‘사랑하는 진영, 하느님은 당신을 내게 보내주시면서 너에게 몹쓸 병을 주신 이유는 무얼까. 너를 끝까지 돌봐주고 평생 행복하게 해주라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걸 다해 사랑하고 아껴주고 힘이 되어줄게.…’
2009년 6월14일, 진영의 생일에 프러포즈를 했다.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초대해 깜짝 파티를 열었다. 그의 편지 낭독에 연인을 비롯한 모두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진영의 상태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었다. 머리숱이 많은 편인데도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자고 일어나면 우수수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머리가 더 빠지면 골룸으로 분장하고 웃겨주겠다”며 밝은 모습이었다.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진영을 닮은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없는 삶을 생각하니 나와 진영을 반씩 닮은 아이 욕심이 생겼다. “너를 닮은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고 웃으면 혼자 남은 내가 덜 외롭고 쓸쓸할 것 같다”는 말을 혼자 되뇌었다.
시간이 지나며 암에 관한 무분별한 정보들이 들어왔다. 한 지인이 진영에게 미국의 병원을 추천했다. 완치된다는 말에 진영은 곧장 결정을 내렸다.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연인은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6월26일 멕시코의 병원으로 갔고, 그도 뒤 따라갔다.
“미국인 줄 알았는데 멕시코 병원이었어요. 방사능 치료를 한다는데, 살이 10kg 가까이 빠져 체력이 최악이었어요. 말려도 고집을 부려 치료를 강행했죠. 샌프란시스코에 계시는 누님의 간호로 겨우 5kg을 회복했어요.”
치료 후 그는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제안했다. 그때가 결혼 기회임을 직감했다. 망설이는 연인을 “다 나은 뒤 한국에서 다시 해도 된다”며 설득했다. 그들은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고 예복을 준비했다. 진영은 한국에서 가져온 흰색 원피스와 구두에 현지에서 산 재킷을 입었다.
“진영이가 부케를 들고 걸어오는데 심장이 뛰면서 눈물이 났죠. 간호하면서 제가 자주 울어 ‘울보 부인’이라 불렸는데, 아름다운 신부를 보니 또 눈물이 나왔어요. 진영이 뺨에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7월31일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악몽이었다. 암이 뼈까지 전이돼 뼈가 녹아내린 물이 혈액에 들어차 장기들에 악영향을 미쳤다. 체력이 떨어져 항암제도 쓸 수 없었다.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나날이 이어졌다. 의사는 “안타깝지만 두 달”이라고 말했다. 연인은 뼈가 녹는 고통에 눕지도 못하고 진통제 없이는 잠도 못 잤다. 그런 와중에도 장진영은 그에게 “영균씨, 당신한테 너무 고마워요. 당신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공포를 견딜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가. 내 마음 알죠?”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그를 또 울게 만들었다.
“귀국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혼수상태까지 갔어요. 모르핀에 취해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고, 맑은 정신이 돌아오면 고통스러워해 지켜보기가 힘들었죠. 정신이 돌아왔을 때 혼인신고 이야기를 꺼냈어요. 소원이라고 했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서둘러 혼인신고를 했다. 사실을 알리자 놀란 진영은 “해줄 게 없는데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부터 깊은 잠에 빠진 진영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귀에 대고 말을 하니 잠시 숨을 몰아쉬었어요. 그러곤 호흡이 멈췄죠. 야윈 볼과 눈, 코, 입,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으며 작별인사를 했어요. 사망 전후 과정을 글로 다시 쓰는 동안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남겨진 이의 이야기
책을 낸 뒤에도 복잡한 마음은 여전하다. 진영의 목소리, 나눴던 대화가 생생히 떠오른다. 아직 혼자 먹는 저녁이 낯설고 외롭게 보는 영화가 재미없다. 진영은 요리를 잘했다. 버섯 샤브샤브, 매운탕, 카레, 잡채, 떡볶이는 일품이었다. 그 향, 그 맛, 그때의 느낌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을 더듬으며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 원고를 읽고 보내온 노희경 작가의 바람처럼, 지난 2년간의 행복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많이 사랑하고 난 자에게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참 소중했던 순간들을, 애타는 그리움을 백지 위에 적어내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난 후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만만하고 멋지게 세상을 살아낼 것이다.’

여성동아 2010년 1월 5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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