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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코트 정복기

런더너 정소나의 패션 에세이

기획 한여진 기자 글 정소나(프리랜서) 사진 이준호(프리랜서)

입력 2009.12.11 14:14:00

모피 코트 정복기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한낱 미풍에도 휘청휘청하는 길고 가냘픈 갈대임에 틀림없다. 평소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거들떠보지 않던 것도 ‘트렌드’라는 이름을 앞에 달고 나타나면 금세 좋아져버린다. 올 가을에도 어깨에 뽕이 두 개쯤은 들어간 듯한 파워 재킷이 어찌나 ‘에지 있어’ 보이던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넓고 우람한 어깨가 나의 숙명임을 알면서도 재빨리 하나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옷 좀 입는다 싶은 런더너들이 계절에 앞서 파워 재킷 대신 모피 코트를 걸치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길이가 껑충하거나 설령 베스트라 할지라도 모피 (모피인척 하는 게 아닌 진짜 모피)라면 수십 아니 수백만원은 훌쩍 넘는다. 그래도 자꾸 눈에 밟히니까 ‘그냥 눈 한 번 찔끔 감고 사버려?’ 하다가도,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그저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만 나온다. 마지막 보루로 집세가 싼 교외로 이사하고 그 돈으로 모피를 둘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큰돈 들여 산 모피를 도무지 한평생 마르고 닳도록 입을 자신이 없다. 그래, 나는 갈대니까.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기분전환 삼아 빈티지 숍이 가득한 런던 ‘브릭 레인(Brick Lane) 마켓’으로 향했다. 브릭 레인은 디자이너 브랜드, 빈티지 제품을 믹스매치해 개성 있게 옷 입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런더너들이 모이는 거리다. 가난한 유학 생활에 ‘신상’을 손에 넣을 재력이 없어 우울할 때마다 위안 삼아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이곳에 꿈에 그리던 모피가 숍마다 빼곡히 걸려 있는 걸 목격했다. 코트뿐 아니라 스톨, 머플러, 베스트 등 다양한 디자인과 밍크, 양털, 여우털, 토끼털 등의 다양한 소재까지 모피 패션쇼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반지르르 윤기 나는 마호가니 컬러 롱코트로 그레이스 켈리처럼 우아해질 것인가, 달콤한 크림 컬러 쇼트 코트로 시에나 밀러처럼 산뜻해질 것인가 하는 상상과 함께 장고를 거듭한 끝에 크림 컬러 밍크 코트를 입고 가게를 나섰다. 단돈 50파운드(약 10만원), 가격도 착한 이 코트는 보면 볼수록 신상 코트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고전 영화 속 여주인공이 곱게 입고 내게 물려준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하마터면 런더너의 삶과 바꿀 뻔했던 사연 있는 옷이기에 합리적 소비임을 강조할 때마다 흐뭇함이 느껴진다.
삼십 줄에 들어서야 모피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 여성들과 달리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십대 후반이면 자신의 첫 모피를 장만할 만큼 모피를 즐겨 입는다. 때로는 화려한 프린트 드레스나 슈트에 매치해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연출하기도 하고, 데님 팬츠와 티셔츠에 매치해 캐주얼하고 발랄하게 입을 줄도 안다. 최근 런던에는 두 사이즈 정도 큰 풍성한 실루엣의 모피에 스키니 팬츠나 레깅스를 매치해 볼륨감은 살리면서도 날씬한 다리를 강조하는 스타일링이 인기다.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의 모피와 심플한 미니 원피스에 컬러풀한 스타킹과 플랫슈즈를 매치해 걸리시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런던 거리를 장식하는 이러한 퍼 스타일링에 동참할 수 있어 다행이다. 계속 런던에 살 수 있게 된 것도….

여성동아 2009년 12월 5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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