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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배병우 ‘소나무’로 세계와 통하다

글 이설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09.11.24 14:51:00

예부터 사람처럼 대했다는 소나무. 그 영성에 반해 열길 제쳐두고 태백산맥을 넘나들었다. 30년간 소나무를 찍어온 사진작가 배병우. 유명 인사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지금도 그 마음 여전하다.
사진작가 배병우 ‘소나무’로 세계와 통하다


‘미스터 소나무’. 한국 밖에서 그는 이렇게 불린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먼저 그를 알아봤다. 그가 찍은 소나무에 감탄과 존경을 담아 일본 큐레이터들이 부르기 시작한 말이다. ‘미스터 소나무’의 명성은 조용하고 빠르게 대륙을 건너 퍼져나갔다. 팝스타 엘튼 존은 2천7백만원에 작품을 샀고, 벨기에 필립 왕세자는 궁으로 초대했다. 소나무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사진작가 배병우 서울예대 교수(59). 그의 이름은 돌고 돌아 우리의 자랑이 됐다.
늘 지나치면서도 무심했던 덕수궁에서 그를 만났다. 이곳 덕수궁미술관에서 12월6일까지 그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명은 ‘영혼의 정원(The Soul Garden)-알람브라와 창덕궁’.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과 창덕궁을 비롯해 그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97점을 두루 선보이는 자리다.

알람브라에 나타난 1백년 만의 진객
오는 길 내내 그의 별명을 되뇐 탓일까. 그의 첫인상은 연륜과 패기를 동시에 품은 청송(靑松)을 닮았다. 환갑이 머지않은 나이지만 골격은 당당하고 언행은 분방하다. 말투와 표정과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걸음새 어디에도 ‘어르신’의 그림자는 없다.
길섶 중간 중간 걸린 소나무 사진의 안내를 받아 미술관으로 향했다. 함께 걷는 동안 그를 알아본 관람객 여럿이 사인을 청해왔다. 그때마다 그는 이름을 묻고 인사를 건네고 조심스레 펜을 들었다. 종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귀퉁이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역시나 소나무다. 앙증맞은 소나무를 받아든 얼굴마다 해사한 웃음이 번진다.
“30년 전 처음 알람브라 궁전에 갔어요. 당시 ‘언젠가 이곳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3년 전에 인연이 닿았죠. 제 사진을 본 그곳 문화재관리국 관계자가 ‘동양인의 시각으로 본 알람브라 궁전이 궁금하다’고 연락을 해온 거예요. 운명이다 싶어 조건 없이 수락했습니다.”
지난 2년간 그의 여권에는 스페인 입국 도장이 수십 차례 찍혔다. 계절이 바뀌거나 마음에 바람이 불 때면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그곳을 찾았다. 갈피없이 궁전 안을 빙빙 돌기도 하고 멀찍이 떨어져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2년간 연애하듯 공들여 길어올린 사진 수천 컷. 그중 고르고 고른 44컷만이 전시장에 걸렸다.
“보통 알람브라 궁전에 가면 화려한 건물과 내부 장식을 보기 바쁘잖아요. 저도 예전에 그랬어요. 한데 이번에 시간을 두고 찬찬히 둘러보니 다른 알람브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궁 뒤쪽에 자연스럽고 환상적인 숲이 있는데, 궁과 이룬 조화가 환상적이었어요.”
‘영혼의 정원’전은 지난 7월 스페인에서 먼저 열렸다. 이방인의 눈으로 해석한 새로운 알람브라와 동양적 정취가 가득한 창덕궁에 현지 사람들은 일제히 ‘브라보’를 보냈다. 그를 초청한 관계자는 “1백년 만의 진객”이라며 손을 붙들었다. 알람브라와 창덕궁의 만남은 배 교수의 의견으로 이뤄졌다.
“알람브라와 창덕궁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에요. 동양의 한국과 아랍의 정신이 깃든 두 곳을 비교하면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거라 생각했죠.”

사람·책·맛있는 음식으로 굴러가는 멋진 인생!
그는 정 많고 흥 넘치는 사람이다. 목적 없이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밥해 먹이길 즐긴다. 며칠 전에는 독일에서 날아온 친구 일행과 여수 고향집에 다녀왔고, 어제는 전시소식을 듣고 온 일본 친구와 늦게까지 와인잔을 기울였다. 스페인에서 열린 ‘영혼의 정원’ 전시도 70명이 넘는 부대를 꾸려 잔치처럼 즐기다 왔다.
“저는 ‘작가’가 아닌 ‘잡놈’이에요. 예전에 잡지사진을 두루 찍으며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 스페인 전시 때 숙박과 조식을 제공할 테니 갈 사람은 붙으라고 했죠. 작은 호텔과 아파트를 통째로 잡고 각자 스케줄에 맞춰 1주일 내외로 머물다 갔어요. 손범수 진양혜 부부, 아나운서 윤영미, 노영심, 사진하는 후배들 모두 어울려 전시 기념 디너파티를 했는데,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다’며 즐거워들 합디다.”
문지방 닳도록 스페인을 드나들며 정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스페인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스페인이 강하게 그의 마음을 당기는 것도 간단히 말하면 ‘정’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끈끈한 고향 전라남도의 정서와 갈색눈의 스페인 사람들의 그것은 놀랍게 닮아 있었다 한다.
“음식문화를 보면 지역풍토가 보이는데, 스페인은 한국과 굉장히 가깝더군요. 허브도 넉넉히 넣고 고춧가루도 팍팍 뿌리고. 그래서 그런지 제 작품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람이 특히 좋아해요.”
세계 각지 그의 소나무 팬은 차고 넘친다.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와 시슬리 재단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세계적 의류기업 망고의 회장은 그의 소나무라면 모조리 사들인다. 올해 6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로 건넸다. 그의 소나무에는 어떤 신묘함이 있는 걸까.
“엘튼 존이 2005년 제 사진을 구입하면서 갑자기 이름이 알려진 건 아니에요. 해외에서 꾸준히 전시를 하고 포토 시장에 출품하면서 차츰 인지도가 쌓인 거죠. 어쩌면 시대적 운일지도 몰라요. 동양과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환경문제로 자연을 존중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소나무 작품이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어요.”

본디 그는 미술학도였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는 그림 그리는 아이였다. 집안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유도를 했다. 178cm의 키와 단단한 체격은 집안 내력이다. 그도 한때는 유도선수로 활동했다.
“지금은 중키지만 먹을 것 없던 당시만 해도 장골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유도를 시작해 1년 만에 호남에서 유도 1등을 먹었어요. 체육학과를 갈까 하다가 미술대학을 갔어요. 그림도 그만큼 좋아했거든요. 어릴 적 친구가 ‘네가 그려준 어린이회장 포스터 때문에 회장 됐다’고 할 정도로요.”
하지만 미술대학에 가서는 엉뚱하게 사진에 관심을 쏟았다. 친하게 지내던 형이 빌려준 니콘F에 매료돼 온통 사진생각뿐이었다. 붓 대신 카메라와 40년을 함께했지만 미술학도였던 20대 초반이 영 쓸모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림 하는 친구가 많고 그의 작품에는 회화적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졸업한 뒤에는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잡지와 화보 등 남의 일을 하는 틈틈이 작품사진을 찍었다. 7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면서 그는 일관되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외국의 사조를 따라가기 급급하던 당시, 그도 미국 사진작가들의 영향을 받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전통회화로 눈을 돌렸고, 자연히 한국적 화두를 가슴에 새겼다.
처음에는 바다 사진으로 시작했다. 유년시절 집 앞 바다와 뒷산 소나무를 보고 자랐는데, 아마도 그 풍경이 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바다로는 부족했다. 한국의 정신, 한국적 풍경이란 무엇일까? 갈증이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소나무와 맞닥뜨렸다. 84년의 일이다.
“한 단체에서 백과사전을 발행하는데 소나무 사진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어요. 전국의 진귀한 소나무를 찍는 작업이었죠. 태백산맥을 따라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다 보니 소나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신을 대변하는 주제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1년 반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경주 남산에 정착했죠. 천년 신라 왕릉을 지킨다는 소나무 숲에서 어떤 영성을 느꼈거든요.”



그의 작품은 94년 일본 그룹전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해뜨기 전 일을 나가 빛과 안개와 씨름하는 고된 작업. 지인과 동행하는 일 없이 신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소나무에 몰입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30년을 소나무만 찍느냐”라고 하지만 그 시간, 그에겐 그리 길지 않았다.

사진작가 배병우 ‘소나무’로 세계와 통하다

“사진 대중화 1세대의 책임감으로 후배들 이끌고 싶어”
오로지 사진으로 먹고사는 작가는 많지 않다. 배 작가는 경제적 고민 없이 작품활동을 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름을 알리겠다 작정하고 걸어온 길은 아니다. 힘든 고비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걷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것은 최근이에요. 재료비가 비싸 30,40대 내내 빚이있었지만 사람들이 사진을 찾으면서 괜찮아졌죠. 사람들이 저더러 참 행운이라고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려졌으니 무리가 없었으니까요. 예술계나 연예계나 젊은 시절 반짝하다가 나이가 들어 인기가 사그라지면 힘들거든요. 운이 좋았던 만큼 후배 작가들의 작품도 종종 구입하려고 해요. 저를 비롯한 몇몇이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니 후배들이 나를 딛고 넘어서면 좋은 작가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는 20대와 50대를 홀로 보냈다. 대학시절 10년은 자취를 했고 지난 10년은 아내와 사별 후 혼자 지냈다. 사별 당시 사춘기를 지나던 아이들은 훌쩍 자라 스물일곱의 숙녀와 스물둘의 청년이 됐다. 늘 엄마가 있는 것처럼 굴던 아들 녀석은 이제 술 한잔 하고 “엄마가 그때는…”이라며 속이야기도 더러 한다.
“아이들도 크니까 엄마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듣고만 있어요. 삶과 죽음이 다 그런 것인데요. 여자친구요? 5년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매일 아침 성향이 다른 신문 2개를 읽고, 작업하고, 요리하고, 낮잠 자고, 사람만나고….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습니다.”
막 전시가 시작돼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는 벌써 다음 계획에 들떠 있다. 중국 친구들이 그룹전에 초청해 10월 말쯤 베이징에 가기로 했다. 중국을 잃어버린 중국의 미술계가 안타까워 “너네 지금 뭐하고 있니?”라고 넌지시 찔러보았더니 대뜸 미술전에 초청했다 한다. 그에겐 한·중·일 불문하고 극동의 전통을 지켜내고픈 욕심이 있다.
“눈 설(雪)? 이름 참 좋네. 올해는 첫눈이 언제 올 것 같아요?”
헤어지는 길, 배 교수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다.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샀다는 기념품과 함께. 이름에서 눈을 유추하는 이는 많지만 그것에서 첫눈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다. 평생 외길을 걷는 이들 특유의 천진함 때문일까. 저편으로 점벙점벙 걸어가는 노작가의 뒷모습에서 20대 청년의 기운이 전해온다.

여성동아 2009년 11월 5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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