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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웃겨야 사는 남자

‘왕비호’윤형빈 생존법

안티를 사랑하라?!

글 임윤정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09.11.24 10:44:00

윤형빈에겐 또 다른 자아가 있다. 하트 무늬 티셔츠에 사각 핫팬티 차림, 그리고 진한 마스카라를 바르면 슈퍼맨처럼 짜잔~ ‘왕비호’로 변신한다. 무대 위에선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는 왕비호가 되고, 무대 밖에선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는 윤형빈으로 돌아온다. 웃음을 위해 기꺼이‘비호감’을 자처하는 윤형빈. 그래서 더 ‘호감’이 간다.
‘왕비호’윤형빈 생존법


‘인기’와 ‘호감’은 비례한다. 하지만 왕비호 윤형빈(29)의 경우는 다르다. 비호감으로 비칠수록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그렇다면 ‘인간 윤형빈’은 어떤 사람일까. 그 궁금증은 그를 만나자마자 해갈됐다. 라디오 스케줄이 늦어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나타난 그는 넙죽 고개부터 숙이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치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할 것처럼 온몸으로 미안함을 표했다. 그러한 진심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연예계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독설을 퍼붓던 왕비호는 온데간데없고 예의를 깍듯이 차리는 ‘인간 윤형빈’만이 존재했다.
‘개그 콘서트’에서 처음 왕비호 캐릭터를 선보였을 당시, 게시판에는 ‘뜨려고 별짓 다 한다’는 악플로 도배됐다. 이처럼 결과가 불 보듯 뻔한데 왜 작정하고 욕을 먹기로 결심한 걸까. 그는 상대 연기자를 받쳐주는 개그맨으로서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개그맨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은 없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안 웃기는 개그맨’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도 웃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는 오기가 생겼다.
“당시 ‘재용이의 순결한 19’나 김구라씨처럼 연예인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것이 오락 프로그램의 대세였어요. 그런 흐름을 ‘개그콘서트’에 적용해본 거죠. 감독님의 첫 반응도 ‘재미있는데, 위험하다’였어요. 하지만 전 자신이 있었어요.”
주위의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그의 차별화 전략은 적중했다. 안티 세력까지도 자신의 팬으로 흡수한 것이다. 이제는 연예인들이 ‘개그콘서트’에 직접 나와 왕비호의 독설을 즐긴다. 그는 스타들의 팬 카페나 자신의 안티 카페에서 소재를 찾곤 한다. 무조건 센 독설을 날리면 될 것 같지만 사실 매회 새로운 소재를 찾아 구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시청자가 공감하고, 당사자가 씁쓸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수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자신도 웃길 수 있다는 오기에서 시작한 독설개그
‘남자의 자격’에서는 ‘개그콘서트’에서와는 사뭇 다른 윤형빈을 만날 수 있다.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그리고 윤형빈까지 평균연령 39.4세의 일곱 남자가 매주 새로운 미션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리얼 버라이어티기 때문에 그의 평소 성격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왕비호에게 익숙해 있던 시청자는 분장을 지운 그의 멀쩡한(?) 외모에 한 번 놀라고, 보기보다 반듯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본래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선 나쁘지 않지만, 방송에선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시청자들이 저한테 바라는 게 그런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김)성민이 형이 부럽기도 해요. 저는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성격인데, 형님은 그런 게 없어요. 어떻게 저렇게 여과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얘기할까 싶어요.”
함께 방송한 지 1년여. 친형제 같은 가족애가 생겼다. 특히 이경규는 일곱 형제 중 아버지 같은 큰 형님이다. 처음에는 혼도 많이 났다. 한번은 회식자리에서 이경규가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그를 지적하자, 주위에서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며 감쌌다. ‘너희들 그런 얘기 하지 마. 정확하게 얘기해주고, 그걸 깰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잠깐 흘린 그 한마디에서 큰형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어려워서 전화번호도 못 여쭤봤어요. 근데 경규 형님이 ‘형빈아 정말 열심히, 그리고 편안하게 해라.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는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지금도 못할 땐 많이 혼나지만 이젠 선배 마음을 알 것 같아요.”
그는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이성친구 만들기편’을 통해 박사임 KBS 아나운서와 친구가 됐다. 촬영 날 문자를 주고받은 이후 아직까지 연락은 없지만 방송국에서 만나면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만으로도 족하다. 동료 개그우먼 정경미와 7년째 열애 중인 그는 ‘개그콘서트’에서 ‘국민 요정 정경미 포에버!’를 부르짖으며 애정을 과시해왔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 사이의 작은 일도 금방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몇 주 전 방송된 ‘개그콘서트’에서 정경미와의 결별설을 일축했다. “정경미를 홍보에 이용한다고 해서 자제했더니 결별설이 났다. 해도 뭐라고 하고, 안 하면 결별설이 나니 어쩌란 말이냐”며 독설을 퍼부었다. 공인된 커플이어선지 다른 여자 연예인과의 관계에서도 왠지 모를 서먹함이 존재한다.
“이윤지씨와 ‘연예가 중계’를 함께하잖아요. 회식자리에서 둘이 서로 얘기를 나누면 주위에서 ‘형빈아 너 왜 윤지하고 얘기해?’라고 물어요. 제가 ‘왜요?’ 하면 ‘너 여자친구 있잖아’ 그래요. 아니, 여자친구 있으면 얘기도 못하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으니까 더 살갑게 못 다가가겠더라고요.”
남자로서 윤형빈은 어떤지 궁금해 물었다. “피곤한 남자”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먼저 술을 즐겨 하지 않아서 여자친구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가끔 여자친구가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 술친구가 돼주지 못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깍듯하기 때문에 만약 그가 여자친구에게 잘못을 했어도 ‘형빈이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네가 뭔가 잘못하니까 그럴 것이다’며 그를 두둔한다. 그래서 피곤한 남자라는 것.
어린 시절부터 오락부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일찌감치 개그맨으로서 끼를 보였던 윤형빈. 하지만 그의 전공은 개그맨과 거리가 먼 ‘세라믹화학’이다. 여기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지원 당시엔 ‘무기재료공학과’였는데, 유기물 무기물 할 때의 무기(無機)를 무기(武器)인 줄 알고 지원했다. 면접 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저희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왜 그렇게 살벌한 곳에 지원하느냐’였어요. 저 역시 속으로 ‘졸업하면 군수품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는 건가?’ 생각했죠(웃음). 근데 더 웃긴 건 같은 과 1년 후배가 개그맨 오지헌이에요. 학교 다닐 때 얼굴은 알았지만 사실 제가 더 유명했어요(웃음).”

공대생 윤형빈의 캠퍼스 생활은 예술대생이나 진배없었다. 학교 응원단장과 행사 MC를 도맡아 했던 그는 전국 대학생 레크리에이션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이벤트 MC와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개그맨 박휘순 변기수와 팀을 이뤄 대학로 공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개그맨의 꿈을 키웠다.

그가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면은 개그맨으로서 장점이자 단점이다. 논리적이기 때문에 매끄러운 진행이 가능한 반면, 돌발적인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이끌어내는 웃음에는 약하다. 평범한 외모는 주위 사람을 돋보이게 하지만 스스로 빛나는데는 걸림돌이 된다.



“(박)휘순 형이랑 가장 친한데, 같이 붙어다니면 상대적으로 제가 돋보여요. 사람들이 ‘어 왜 이렇게 잘생겼느냐’고 하면서 난리가 나죠(웃음). 제가 잘 키우고(?) 있는 형이에요. 앞으로 유재석 박명수 콤비처럼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휘순이 유재석과 친분이 있어 보인다고 말하자, 질투 어린 표정으로 농담 반, 진담 반 말을 받는다. “유재석 선배와 전화통화도 하고 그러나 보더라고요. 부럽게시리. 하지만 저에겐 경규 형님이 있으니까.” 큰형님이 있어 든든한 막냇동생처럼 그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번진다.

‘왕비호’윤형빈 생존법


편안하고 인간적인 진행자가 되고 싶은 꿈

안티 생성엔 자신 있는 그조차 결코 안티로 만들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어릴 적 가수를 꿈꾸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오디션을 알아봐줄 정도로 그를 전적으로 믿고, 지원해줬다. 지금껏 아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빠짐없이 녹화해두는데, 그 테이프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어머니가 앞에 나서서 적극적인 지원을 한다면, 아버지는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준다. 항상 아들에게 더 많은 힘이 못 돼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한다. 자식을 위해 자신이 가진 걸 죄다 내어주고 싶은 게 보통 아버지들의 마음이다. 세 살 터울 여동생 역시 개그맨 오빠를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윤형빈은 그 어렵다는 은행에 취직한 동생이 더 자랑스럽다. 얼마 전에는 동생이 근무하는 은행에 찾아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바쁜 스케줄로 쉬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틈틈이 음악 작업을 한다. 윤형빈은 2집 앨범을 낸 어엿한 가수다. 1집 앨범은 직접 작사작곡과 프러듀싱까지 했다. 최근에는 ‘오버 액션’이라는 록밴드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비록 웃기는 개그맨이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진지하다.

“앨범도 준비하고 있어요. 자금이 허락하는 한 음악활동을 계속하면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본업이 개그맨이니까 다른 가수보다 훨씬 자유롭잖아요. 그래서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재다능하지만 뭐 하나 또렷하게 잘하는 것이 없다”고 겸손을 부리는 윤형빈. 하지만 그에겐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개그가 있지 않은가. 개그맨으로서 다다라야 할 최종 목적지는 예능 MC다. 최근 그는 케이블TV QTV ‘윤형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단독 MC에 도전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시사적 내용을 부담 없이 소화하는 진행 능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얻고 있다. 10회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최근 24회로 연장되는 등 좋은 성적을 냈다.

“예능 MC가 되기 위한 예비 무대이기도 하고, 제 이름을 건 첫 프로그램이기도 하니까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어요. 그래도 시청률이 좋은 편이라 다행이에요.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님처럼 편안하고 인간적인 진행자가 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전국노래자랑을 봤는데, 한 꼬마가 ‘송해 할아버지~’ 하니까 송해 선생님이 ‘에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오빠라 불러!’ 그러시는 거예요. 마치 동네 꼬마와 할아버지 사이의 대화 같잖아요. 나이 드신 어르신이 나오면 또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시고요. 그런 게 모든 진행의 기본이자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사람에게도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MC를 꿈꾸는 윤형빈. 온 국민이 사랑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스스로만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개그맨이 되고 싶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람 좋은’ 개그맨으로 불리고 싶다. 무대 위에서 ‘왕비호’가 되어 독설을 퍼붓는 것 역시 결국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더불어 웃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윤형빈, 그의 이름 앞에 ‘비호감’ 대신 ‘호감’이 수식할 날이 머지않았다.

여성동아 2009년 11월 5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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