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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목숨 거는 남자, 김명민에게 궁금한 몇가지

“어리석을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그 속에서 희열 느낀다”

글 전형화(스타뉴스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9.10.26 09:59:00

배우가 배역에 맞춰 살을 빼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김명민은 좀 다르다.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20kg 넘게 감량한 그를 보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장준혁, 강마에, 모두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임을 되짚어보면 그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열정으로 가득찬 그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연기에 목숨 거는 남자, 김명민에게 궁금한 몇가지

‘불멸의 이순신’의 인간적인 영웅, ‘하얀거탑’의 욕망 가득한 천재의사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까지 김명민(37)은 드라마를 통해 연기력을 검증받은 흔치 않은 배우다. 안방극장의 답답함을 스크린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여느 배우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김명민은 스크린 안에서는 작고 갑갑하고 우울해 보였다.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 영화 속에서 김명민은 그랬다.

Q1 드라마 성공 뒤로하고 ‘권상우 땜빵’소리 들으며 영화에 도전한 이유?
그랬기에 그가 박진표 감독의 새 영화 ‘내사랑 내곁에’를 한다고 했을 때 “역시”라는 찬사와 “아니 왜?”라는 의구심이 동시에 쏟아졌다. 지인들은 고생문이 불 보듯 훤하다며 만류했다. 몸무게를 지독할 정도로 감량해야 했고, 무엇보다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 역이라 늘 앉아 있고 또 누워 있어야 했다. 김명민이 ‘내사랑 내곁에’를 택한 것은 배우로서의 승부수였을까, 아니면 충무로에 연착륙하기 위한 포석일까. 김명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도전하기엔 시나리오가 너무 셌어요. 사실 처음에는 거절했죠. 이 영화를 하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운명이라고 할까요. 도저히 쫓아버려도 쫓아버릴 수 없었어요.”
루게릭병에 걸린 종우를 연기하기 위해 20kg을 감량했다. 촬영이 끝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10kg밖에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종우에게서 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힘든 모습이 역력했다. 입꼬리를 올리며 매몰차게 말하던 강마에는 간데없고, 아픈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맡은 역은 원래 권상우가 하기로 돼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명민 손에 시나리오가 들어갔지만 다른 배우라면 그 이유만으로도 꺼릴 법했다. 하지만 김명민은 달랐다.
그는 양손을 무릎 안쪽으로 늘어뜨린 채 “대타, 땜방 같은 것에 원래 크게 신경 안 써요”라고 말했다. 손을 들 힘도 없어 보였지만 눈빛만은 강렬했다.
“원래, 그랬는데요. 뭘. 아시잖아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이다. ‘불멸의 이순신’에 캐스팅되기 전 김명민은 이민을 결심했었다. 96년 SBS 공채 탤런트에 선발돼 연기와 인연을 맺었지만 10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했다. 캐스팅되면 촬영이 중단되고, 촬영을 마친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다. ‘불멸의 이순신’도 그의 몫이 아니었고, ‘하얀거탑’도 마지막에 가서야 그에게 돌아갔다. 이번 작품 역시 운명처럼 다가왔다.
“영화를 하기로 결정한 뒤 내내 악몽을 꿨어요. 하루는 병원에 환자를 만나러 갔는데 몸에 이상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의사가 검사 좀 하자더니 루게릭병에 걸렸다고 하는 꿈을 꿨어요. 병원에서 못 나오는 거예요. 또 하루는 뉴스에서 루게릭병 환자를 연기하던 배우 김명민이 실제로 그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는 꿈을 꿨어요. 아,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이렇게 생각했죠. 정말 의지와 상관없이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줄곧 180cm에 73kg을 유지하던 김명민은 몸무게를 줄이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시작하기 전에 의사가 말리더라고요. 죽을 일이 있냐고요. 하하하.”
웃을 일은 아니었다. 의사는 김명민에게 저혈당, 탈수증세, 위장병, 우울증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수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줬으며, 갑자기 일어서거나 고개를 확 들어도 의식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의사가 경고한 일이 일어나니깐 신기하더라고요. 샤워를 오전 8시에 하러 들어갔는데 10시30분이 돼서야 나온 적도 있어요. 현장에서 늘 감독님이 사탕을 준비하고 있었죠. 제가 눈이 돌아가면 저혈당이 찾아온 것이니 그때마다 사탕을 줬죠.”
그러면서도 김명민은 지독했다. 박진표 감독이 “O.K”를 외쳐도 “내가 아프다고 그냥 한 것이면 다시 하자”고 했다. 김명민은 “그 지독한 감독님에게서 더 하면 죽겠다고 제지를 당했을 때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연기에 목숨 거는 남자, 김명민에게 궁금한 몇가지

Q2 김명민은 ‘연기’라는 틀에 갇힌 배우다?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살을 뺀 데는 이유가 있다.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하기에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몸밖에 없었기 때문. 그는 자신의 말라가는 몸을 무기라 했다.
“ 루게릭병은 몸은 못 움직이지만 의식은 뚜렷해요. 하지만 저는 실제 환자가 아니니까 살을 덜어내면서 같이 의식을 잃곤 했죠.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데 자꾸 왔다 갔다 해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어요.”
곁에서 식음을 전폐한 채 연기하는 배우를 보는 감독과 동료 배우, 그리고 스태프의 심정은 어땠을까. 처음에 식사를 되도록 김명민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하던 그들도 나중에는 일상이 되니 마음껏 냄새를 피우고 밥을 먹었다. 세상에서 남 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을텐데, 김명민은 어땠을까.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별 의욕이 없었어요.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왔으니까. 욕구가 사라지니까 오늘 반찬은 이거구나 하고 보고 지나가곤 했죠. 누워만 있으면 안 되니까 슬슬 움직이는데 그러면 밥 먹는 모습을 보곤 했죠.”
‘내사랑 내곁에’는 눈물을 왈칵 쏟게 하는 전형적인 가을 멜로영화다. 애정 신도 제법 농도 있게 담겨 있다. 아픈 남자와의 사랑이었기에 베드신은 필연적이기도 하다. 두 남녀가 진짜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김명민은 상대역인 하지원과 친분을 쌓으려 했다. 사랑하는 사이로 나오는데 거짓으로 감정을 표현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진표 감독, 하지원과 영화도 보고 밥도 먹으며 감정을 쌓았다. 말이 많은 동네라서 그럴까, 그렇게 하다보니 어처구니없게 유부남 김명민과 하지원의 핑크빛 루머도 돌았다.
“박진표 감독님이 그런 루머를 전해주더라요. 상당히 좋은 일이라며. 왜요, 라고 했더니 멜로 주인공인데 당연하지 않냐며. 멜로영화 주인공들은 그런 소문이 많이 도는 법이에요. 영광이죠, 뭐. 유부남한테도 그런 소문이 생기니.”
사실 김명민이 상대 여배우를 살뜰하게 챙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 장진영과의 인연 때문이다. 데뷔 초 김명민은 장진영과 ‘소름’을 찍었다. 여기서 장진영은 아름다운 스타를 포기하고 배우가 되겠다고 선전포고하듯이 연기했다고 한다. 김명민은 “그런데 나는 알량한 자존심에 경쟁심리도 있어서 장진영을 제대로 챙기지도 친해지지도 못했다”고 힘겹게 설명했다.
“제 그릇이 작아서 장진영씨를 편하게 해주지 못한 게 후회돼요. 그 때문에 다른 작품들에서 여배우들을 좀 더 배려하려고 노력해요.”
드라마를 찍을 때 그는 오해를 많이 사곤 했다. 주위와 벽을 만들고 스스로의 틀에 갇혀 산다고. 사람이 와도 모른 척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말 많은 동네에서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역량의 문제예요. 감정 신을 찍기 위해선 2~3일 전부터 그 감정을 유지해야 해요. ‘베토벤 바이러스’에 출연할 때는 아버지 칠순잔치도 안 갔어요. 그러면 내 몸에서 강마에가 새어나가니까. 전화만 받아도 그렇게 돼요. 잠시 통화를 했는데 그 감정을 놓쳐버리니까요.”
김명민은 일상생활과 연기를 철저히 분리하는 배우들이 진심으로 부럽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를 점점 더 몰아붙이고 괴롭힌다. 그는 점점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할수록 어려워지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수록 더 위가 보인다.

Q3 여느 배우와 달리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이유?
그렇기에 김명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매번 진심을 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민은 매 촬영을 할 때 주위에서 풀샷과 니샷, 바스트샷, 클로즈업 할 때 다 연기가 달라야 한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방식일지 몰라도 그래서 매번 같은 연기를 하려 노력한다. 뒷모습만 나와도 앞에 카메라와 상대가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그냥 언제나 진심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진심을 시청자는 알아준다는 믿음이 있죠. 제 눈이 좋다고 하시는데 글쎄, 눈은 마음의 창이니 그래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욕심을 버리니까 이런 게 보이더라고요.”
그렇다. 김명민은 욕심을 버렸다. 작은 물욕을 버리고 더 큰 것을 얻으려 한다. 사생활 노출을 꺼리지만 사실 그는 남몰래 가족과 선행도 베풀고 있다. 다만 알리지 않을 뿐.
김명민은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데 대해 “나보단 가족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마트에 가도 ‘누구 부인 아니세요’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힘든 삶이겠나”라고 말했다.
그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욕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성공의 연속이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법도 한데 그는 “실패해야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목표가 있다면 다음 작품에서 나를 시험하고 또 성공하고 싶어요. 마치 게임처럼 이 스테이지를 통과해야 다음 스테이지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죠. 대마왕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것처럼요.”

여성동아 2009년 10월 5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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