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어릴 적엔 놀이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네·미끄럼틀·시소 같은 고급 놀이기구는 더더욱 찾기 힘들었고요. 대신 공터·마당·동네 골목… 자투리땅은 어디든 놀이공간이 됐죠. 앞집, 옆집, 열린 대문 어디로든 들어가 숨바꼭질을 할 수 있었고 감나무 아래에서 해가 지도록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그 시절 고민은 ‘오늘은 뭘 하고 놀까’였던 것 같습니다. 놀이는 곧 ‘상상 발전소’였던 셈입니다.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골목은 사라지고 아이들의 상상력도 놀이터라는 사각틀 안에 갇히는 꼴이 됐습니다. 숨바꼭질·공기놀이는 컴퓨터 게임으로 대체됐고요. 그래서일까요, 사고가 유연해야 할 젊은 세대일수록 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듯한 인상도 받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정형화된 곳이 아닌, 감성을 키울 수 있는 놀이터를 찾던 차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과 만났습니다. 여름내 분수가 좋아 그곳을 자주 찾았는데 좀 더 안쪽에 ‘상상, 거인의 나라’라는 놀이터가 있더군요.
이야기의 여백 채우며 생각하는 힘 키우기
가장 시선을 끄는 곳은 3층 건물 높이에, 한쪽 손으로 땅을 짚고 이제 막 일어서려는 듯한 자세를 한 철골로 된 거인상입니다. 정글짐 구조여서 아이들이 지상에서 몸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타고 거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가 허벅지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도록 돼 있습니다. 처음엔 높이에 압도 돼 무섭다며 도망가던 큰아이(7)는 딱 한 번 울고불면서 이곳을 오르더니, 이젠 자신감이 붙어 서울숲에 가면 이곳을 가장 먼저 찾습니다.
거인상 옆에는 꿈틀꿈틀 땅 위를 기는 뱀과 납작 엎드린 두꺼비 모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이 공간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뱀이 두꺼비를 노려보고 있고, 거인이 그 사이에서 뭔가를 하는 듯한 자세입니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먹이사슬 같아. 뱀은 두꺼비의 천적이고 거인은 뱀의 천적 아닐까.”
“오빠, 천적이 뭐야?”
“잡아먹는 거.”
“아이, 난 사이 나쁜 거 싫은데….”
아이들의 대화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그 이야기의 빈 공간을 채워가며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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