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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천의 얼굴 지닌 배우 박준규

“2세 배우 후광 없이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사연, 연기 가업 대물림 계획까지…”

글 임윤정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9. 23

박준규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는 조직의 보스가 되기도 하고, 허허실실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가 되기도 한다. 최근 연극 ‘여보 고마워’에선 아내에게 경제권을 빼앗긴 힘없는 가장으로 변신했다. 지금껏 배역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혼신의 연기를 펼쳐왔다는 박준규. 작은 역할은 있어도 작은 배우란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천의 얼굴 지닌 배우 박준규

고향 하천의 물 냄새를 기억하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연기인생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연극무대로 돌아온 박준규(45). 무명 설움을 꾹 삼키며 배우로서 꿈을 키워나갔던 그 시절의 향수가 바쁜 일정 가운데 그를 무대로 끌어들였다. 그러한 굴곡진 인생이 없었다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지금의 박준규도 없었을 터. 그래서 연극 ‘여보 고마워’는 자신을 키워준 ‘고향 무대’에 대한 보답의 자리이기도 하다.
첫 막이 오르기 일주일 전 공연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야기 사이사이 ‘~합니다’ 같은 경어체가 섞여든다. 오랜 무명 시절을 겪으며 습관처럼 몸에 밴 겸손이 말투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었다.
10월11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공연되는 ‘여보 고마워’는 부부 사이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는 여기서 몇 년째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는 백수 남편을 연기한다. 아내 역은 배우 오정해가 맡았다. 두 사람은 15년 전 악극 ‘나그네 설움’을 통해 처음 만났다. 가족 동반으로 종종 만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맺어온 만큼 실제 부부 못잖은 차진 호흡을 자랑한다.
천의 얼굴 지닌 배우 박준규

“진짜 오랜만에 하는 연극이에요. 그동안 대극장에서 하는 연극이나 뮤지컬 섭외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나 그런 무대는 배우와 관객과의 거리가 굉장히 멀어요. 배우가 연기하면서 짓는 표정 주름, 땀방울 하나하나까지 훤히 다 보이는 그런 무대에서 관객과 가까이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연극에서 맡은 역할이 자신과 많이 달라 연기하는 데 쉽지 않았다. 결혼 20년째인 지금도 아내와 뽀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이 일상인 그에게 대한민국 표준 남편 역할은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배우란 그 인물 속으로 들어가 바닥까지 살다 나와야 한다. 자신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관객의 감동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사는 남편으로 완벽 변신해 관객들을 울고 웃길 채비를 마쳤다.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던 와중이라 이번 연극은 고심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연극을 위해 출연 약속한 드라마까지 포기했다. 리딩연습까지 마쳤지만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어 펑크 아닌 펑크를 냈다. 자신을 믿고 섭외한 방송국에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출연료를 어떻게 사용할지 미리 계획까지 짜두었던 아내로선 그가 생전 처음으로 작품을 안 하겠다고 했을 때 아쉬운 마음이 컸다.
“아내가 (이)덕화 형을 만나자마자 그 소리부터 딱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무도 고맙게 형이 내 편을 들어주는 거에요. (이덕화 말투를 흉내 내며) ‘제수씨 그건 준규가 잘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한번 해 줘야 하는 거예요~.’ 내심 ‘너 이 자식 왜 그랬어!’란 말을 기대하며 하소연하던 아내도 ‘하여간 둘이 똑같아’라는 말로 웃어넘겨줬어요.”
물론 드라마를 하는 쪽이 더 영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전한 길 대신 도전을 선택한 만큼 절대 후회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말에 믿음이 실린다.

안정된 직장 포기하고 시작한 연기생활, 10년간 호된 무명 설움 겪어
‘배우 박노식의 아들’이 아닌 ‘배우 박준규’로 불리기 위해 지금껏 부단히 노력해왔다. 배우 아버지 덕에 연기를 일상처럼 접하며 자랄 수 있었던 건, 물론 행운이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끼가 많았던 그는 일찌감치 배우로서 싹수를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CF를 찍었고, 아버지가 제작한 영화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배우로서의 꿈을 접게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도 연기가 아닌 경영학이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했다. 미국에서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나는 나가서 연기해야 돼. 이건 나에게 맞는 직업이 아니야. 이 일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어’라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외인구단’의 최재성이나 ‘신의 아들’에 나온 최민수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결국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연기자란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88년 영화 ‘카멜레온의 시’로 데뷔했다. 그러나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쫄딱 망했다’. 영화에 한번 출연하면 스타가 되는 줄 알았던 그는 그 바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천의 얼굴 지닌 배우 박준규

“기대만큼 좌절도 컸죠. 처음엔 어쭙잖은 역할이 들어오면 안 한다고 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야 배우고, 얼굴에 분칠해야 배운데, 집구석에만 있으면 그게 배우냐.’ 그때부터 배역을 가리지 않고 참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연극은 꾸준히 했고, 영화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화만 80여 편이 넘어요. 개봉해서 3일 만에 내린 작품도 있고, 개봉도 못한 작품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10년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러다 2002년 그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돼준 작품 ‘야인시대’를 만나게 된다. 종로2가 야시장을 주름잡던 왕초 쌍칼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의 뇌리에 박준규란 이름을 각인시켰다. 1백 회가 넘는 대작인 ‘야인시대’에서 그가 나온 분량은 14회가 전부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전회 출연한 것처럼 기억된다는 건 그만큼 그가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는 방증일 것이다.
“주변에서 쌍칼 이미지를 벗어야 된다고 그러는데, 사실 벗어난 지는 오래됐어요. 부담스럽지 않느냐고도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어릴 적엔 박노식 아들이란 말을 엄청 싫어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좋아요. 박준규 하면 쌍칼, 쌍칼 하면 박준규. 그런 닉네임을 갖고 있는 배우들이 솔직히 몇 안 돼요. ‘쌍칼 박준규’란 닉네임이 자랑스럽고, 그건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거예요.”
천의 얼굴 지닌 배우 박준규

배우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되,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멋있어야 한다는 소신
배우는 대통령을 했다가 거지를 할 수도 있고, 살인자가 됐다가 경찰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 버라이어티에서 자신을 불러준다면 가서 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버지 고향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나와서 노래를 한번 불러달라고 하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소신이 그를 코믹한 역할부터 진지한 역할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배우로 만들었다.
단 배우는 평상시에도 배우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얼마 전 종영한 ‘내 사랑 금지옥엽’ 제작발표회에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잔칫집에 오면서 야구모자 푹 눌러쓴 채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신고 오는 배우들이 더러 있다. 좋게 표현해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는 그런 모습이 신경에 거슬린다고 한다. 비싼 옷으로 멋을 내라는 말이 아니다.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멋있다. 배우답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아버지한테 배운 거예요. 미국 유학시절 제가 한국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곤 하셨어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에 머플러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딱 끼고 한쪽에 서 계시다가 제가 나타나면 ‘준~’ 하고 불러요. 그러면 사람들이 ‘박노식이다! 박노식이다!’ 그러면서 쳐다볼 거 아냐. 남들의 시선을 맞으며 ‘아, 자식 왔냐? 가자!’ 하면서 나를 삭 데리고 가는 아버지가 멋있는 거야. 거기서 아버지가 고개 숙이고 ‘가자! 가자!’고 속삭이며 서둘렀다면 초라해 보였을 거야. 나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던 거예요.”
‘야인시대’를 통해 배우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다. 절대 다시는 내려가지 않으리라는 다짐.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63빌딩을 오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계단이고, 두 번째는 에스컬레이터고 나머지 하나는 엘리베이터다. 자신은 계단을 밟고 40~50층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계단을 이용한 사람은 층마다 무엇이 있는지 다 보고 올라온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은 잠깐잠깐 볼 뿐이고, 엘리베이터로 단박에 올라온 사람은 20, 30층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그 층 사이사이 뭐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내려가면 다시 50층까지 올라올 수 없다. 인생은 밑바닥부터 훑어야 용기 있게 살 수 있다. 낮은 곳에서 차근히 올라온 사람은 높은 자리에서 떨어질까 조바심치지 않는다.

천의 얼굴 지닌 배우 박준규

멜로 어울리는 첫째, 액션 맞을 듯한 둘째… 3대째 연기 가업 이을 생각
아내와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오디션장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금실 좋은 부부로 살고 있다.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들 키우고 시어머니 모시면서 알뜰살뜰 살아준 아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여보 고마워. 진짜 고마워!’ 연극 홍보가 아니라 20년 동안 함께 살면서 나를 사람 만들어주고, 옆에서 힘이 돼준 사람이 아내인데,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돈 벌어오라고 닦달 한 번 안 했어요. 같이 연기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잘나갈 때마다 속상해하는 제게 ‘오빠는 저들보다 백배 천배 나은 사람이다. 좀 늦게 되는 것뿐인데, 뭘 그걸 가지고 속상해하느냐’고 미래를 보는 것처럼 힘을 줬기 때문에 저도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최근 그는 5천만원 상금을 타면 아내에게 핸드백을 선물하겠다며 KBS 퀴즈 프로그램 ‘1대 100’에 출연했다. “나는 준규, 준규를 사랑하면 땡큐. 나는 1등하규 와이프에게 백사주규”라는 재치 넘치는 랩과 함께 등장해 마지막 단계인 1대 1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제가 눈치와 잔머리가 좋습니다. 방송 보신 분들이 아마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제작진도 2단계, 3단계에서 떨어져서 웃긴 모습 연출하라고 섭외한 건데, 저러다 5천만원 타는 거 아닌가 해서 긴장하고 난리 났었대요. 흥미진진했는데, 둘 다 못 맞혀서 돈도 굳었으니 너무 좋아들 했죠. 국장님도 저한테 수고했다고 전화를 주시더군요. 하하하~ 핸드백은 다른 방법으로 사줘야죠.”
두 아들 종찬군(18)과 종혁군(12)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물림해 3세 연기자로 데뷔할 준비를 차근히 하고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너무 힘들어 더러 같은 직업을 갖는 걸 반대하기도 하지만 그는 2세 연기자로 살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아이들도 연기자 쪽으로 나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특별히 공부에 소질을 보인다면 그쪽으로 기대를 해보겠는데 전혀 아니에요. 잘하는 걸 시켜야죠. 인생은 공부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연기자의 경우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해요. 얼굴은 웃기게 생겼는데 멜로만 고집하면 그 친군 빨리 안 돼요. 일단 자기 생긴 대로 역할을 맡고, 거기서 인정받은 다음 뭘 바꿔볼 생각을 해야죠. 첫째는 멜로를 할 수 있는 얼굴을 가져서 그쪽으로 풀리면 좋겠고, 둘째는 저와 비슷한데 액션을 하든 코미디를 하든 지가 알아서 하겠죠.”
흔히 연예인 2세라고 하면 아버지의 후광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준규는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 감독이나 PD한테 자신의 아들 좀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아버지와 함께 대본을 읽어본 적도 없다. 물론 신인들 사이에서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면 한 번 더 봐주는 정도는 있다.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자식들에게 똑같이 할 생각이다. 캐스팅 청탁은 하지도 않을 거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도 자신과 똑같이 10년이면 10년 고생하면서 자리 잡길 바란다. 너무 어렸을 때 잘 풀려도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연기하고 싶어요. 여태껏 작품 하면서 아들이 있는 역할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전부 딸이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저는 아들만 있어서 여자아이들을 다를 줄 몰라요. 아까도 같이 연극 연습하던 후배한테 내 딴에는 농담을 던졌는데 울더라고. 스킨십도 좋아하는데, 여자들이라 조심스러워요. 아들과 아버지에 관한 작품을 몇 편 봤는데, 대부분 결혼 안 하거나 아이가 없는 배우들이 연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자식이 있으면 저 장면에서는 저렇게 안 할 텐데…. ‘자기 새끼니까 저런 마음을 갖지’라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처음 만났을 땐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긴장하게 했고, 헤어질 땐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분위기를 풀어줬던 박준규. 드라마를 함께한 후배 연기자 역시 처음에는 그를 살살 피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슬슬 다가온다고 했다. 볼수록 매력 있고 함께할수록 정이 가는 배우다. 아무도 알아보지 않던 무명시절을 끝내 떨쳐내고 누구든 알아보는 배우가 된 것도 그런 매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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