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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최한용 삼성서울병원장 부인 김수미

요가로 암 환자 치유 나선 사연

글 김명희 기자 | 사진 박해윤 기자

입력 2009.08.22 12:36:00

극심한 고통을 겪어 본 이는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법을 안다.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친 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요가로 재활치료에 성공한 김수미씨. 지난해부터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 요가 자원봉사를 하며 환자들과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고 있는 그는 말한다. 우리는 애써 고통을 외면하려 하지만 인생의 해답은 어쩌면 피하고 싶어 하는 고통 속에 잠재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최한용 삼성서울병원장 부인 김수미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체력단련실. 머리카락이 빠져 모자를 쓴 이,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환자복을 입고 있는 이 등 20여 명이 요가강사의 구령에 맞춰 차분하고 리드미컬하게 요가 동작을 이어갔다. 이들은 모두 암과 맞서 싸우고 있는 중이다. 동작 하나 하나에는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랑과 살고자 하는 의지가 넘쳤다. 한 시간 반 남짓 요가 동작을 하고 나서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그동안 있었던 일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교환했다.
“지난주에 항암치료를 받고 무리해서 아들과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 가서는 잘 놀고 좋았는데 그만 감기에 걸렸지 뭐예요. 저 하나 때문에 식구들이 난리가 났어요. 지금은 괜찮아져서 여기 올 수 있어 감사해요.”(항암치료 중인 주부)
“한 달 전만 해도 걷는 게 힘들어 넘어지고 그릇도 자주 깨고 했는데 이젠 조금씩 뛸 수도 있어요. 이게 다 요가 덕분인 것 같아요.”(항암치료 중인 여성)
“돈 떨어지면 먹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처럼 건강도 잃고 나니 더 아쉽더라고요.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그게 우리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는 잘 가려봐야 해요. 과유불급이라고, 넘치는 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니까요.”(항암치료 중인 남성)
이들은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크게 감사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말이 끝날 때마다 박수로 격려해준다. 어떤 이는 암을 극복한 뒤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한 사람의 기사를 스크랩해와 읽어주고, 어떤 이는 예쁜 시를 적어와 낭독한다. 헤어질 때는 못내 아쉬워 따뜻하게 안아주며 체온을 나눈다. 처음 요가수업에 참여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창피하다’며 절대 모자를 벗지 않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자 점차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냈다. 교감이 됐다는 방증이다.
최한용 삼성서울병원장 부인 김수미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 후 달라진 삶
“요즘처럼 비가 올 때 몸이 더 안 좋죠? 그래도 게을리 하면 안 돼요. 몸은 움직이는 만큼 달라집니다.”
“호흡은 모든 것의 근원이에요. 등이 잘 안 펴지면 조금 굽혀도 되지만 제가 호흡만은 절대 양보 못 하는 거 아시죠? 호흡을 제대로 해야 건강해집니다.”
환자와 대화하듯 편안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강의를 이끌어가는 이는 김수미씨(53). 작은 체구와 차분한 인상… 어디서 저렇게 강인한 목소리가 뿜어져나올까 싶다. 그는 최한용 삼성서울병원장(57)의 아내지만 그런 타이틀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환자들에게 그는 커다란 고통을 먼저 이겨낸 선배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92년 뜻밖의 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남편이 연수 중이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
“그날 마침 큰 허리케인이 온다고 해서 둘째를 태우고 큰아이 학교로 마중을 갔어요. 남편이 운전을 하고 저는 조수석에 앉았는데 맞은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차를 향해 돌진해왔어요. 그걸 피해 남편이 반대쪽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공교롭게도 급경사 지역으로 추락했죠.”
기대 없이 시작한 재활훈련, 고통과 절망 반복하면서 조금씩 회복돼
뒷좌석에 탄 아이가 걱정돼 몸을 돌리려 했던 것을 끝으로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척추를 크게 다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중에 얘기를 듣기로는 차가 대파됐고, 뒤따라오던 승용차의 운전자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고 한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목부터 발끝까지 깁스를 하고 있는데 평생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미국에 가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도 있었고, 계획도 많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아이들이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올 때였어요.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아이 몸이 침대에 닿는 순간 매트의 파동이 몸으로 전해지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어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껏 울 수도 없었다. 이러다간 가족에게 짐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엄습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꼬박 누워 있다가 의사의 권유로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라기보다 숨쉬기를 통한 명상이 그 시작이었다.

최한용 삼성서울병원장 부인 김수미

요가수업이 끝난 후에는 환자들과 둘러 앉아 지난 한 주 동안 있었던 일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준다.


“처음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힘만 들고 희망은 보이지 않고. 울고 또 울고, 고통과 포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몸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숨만 쉬다가 휠체어를 타고, 그 다음엔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됐어요.”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고통도 점차 잦아들어 1년이 지나자 진통제를 먹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그가 병마를 이기는 데는 주변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고 서정주 시인의 큰 자부가 병상을 지키는 등 많은 도움을 줬던 것. 미국의 이웃들도 따뜻하게 배려하고 용기를 줬다.
“아이들이 상을 받거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 가면 항상 선생님이 ‘누구 어머니인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다’고 소개하고, 다들 안아주며 ‘대견하다’고 한마디씩 해줬어요.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은 요가와 마음을 주시하는 명상이지만 고마운 분들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병마를 털고 일어난 그는 앞으로 주어지는 모든 일은 의미 있는 덤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뛰어넘어 타인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모든 것이 운명처럼 다가온 듯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문과생이던 그가 갑자기 집안 형편이 기울어 이과인 서울대 간호학과에 진학한 것이나, 서울대 의대 캠퍼스에서 남편을 처음 만난 일, 임상실험은 죽어도 못하겠다며 대학을 중도 포기하고 스튜어디스가 된 후에도 남편과의 인연이 끊이지 않은 일이 모두 예사롭지 않다.
해외여행이 드물던 그 시절, 비행기는 연착도 잦았다. 남편은 바쁜 의대 생활 중에도 매번 공항에 나와 그를 기다려줬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언제 결혼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결국 포기하고 신통치 못한 기억력을 탓했다. 며칠 후 그는 메일을 통해 ‘눈치 보며 남편에게 물어봤다가 꿀밤을 맞았다’며, 79년 결혼했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했는데도 신혼 초에는 환자와 병원밖에 모르는 남편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바뀌었어요. 생명을 다루는 일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엄마의 고통스러운 투병과정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 엄마가 신경 쓸 일은 하지 않고 제 일은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큰아들은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둘째는 군복무 중이다. 두 아들 모두 요가를 배웠는데 특히 살가운 면이 있는 둘째는 휴가 중 요가수업에 참여해 모니터링을 해주고 ‘엄마가 자랑스럽다. 열심히 하시라’며 편지도 자주 쓴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로 일어선 것처럼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존재 되고 싶어
그가 암환자를 대상으로 요가수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주사 바늘을 꽂고도 수업에 참여하는 이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후에도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지방에서 오는 이들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환자들을 만나면 오래전 제 모습을 떠올리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꼈던 절망과 두려움을 어느새 잊고 스스로 교만해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게 됩니다.”
어떤 환자는 치료가 끝나 곧 직장에 복귀한다면서 최근 요가교실 환자들에게 음료수를 돌렸다. 김씨는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요가의 장점은 몸을 이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아 치료효과를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암환자들을 만나보니 소외감을 많이 느끼고 있고 치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요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몸으로 들어가 마음을 치유하고, 그 마음이 다시 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을 이끌어내죠.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어트 요가, 페이스 요가 등 미용 목적으로 요가를 하는 분들이 많지만 요가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환자들입니다. 이분들을 위한 요가가 더 많이 보급되면 좋겠어요.”
그는 인터뷰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 듯했다. 요가수업을 하는 것이 자신만의 공으로 돌려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선 남들의 시선 같은 건 사치스러운 고민에 불과하다.
김수미씨는 “주변을 둘러보면 숨어서 선행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요가수업 역시 많은 자원봉사자의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며 “내가 소생할 수 있었던 방법과 그 힘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어디에선가 희망과 격려가 필요한 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최선을 다해 함께 나누고 과감히 나아가며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여성동아 2009년 8월 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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