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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최불암과의 결혼생활&봉사로 얻는 기쁨”

‘소리 찾아주는 할머니’ 김민자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9.06.17 16:35:00

마음의 빚…. 20년 넘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남편 최불암과 더불어 복지·후원사업을 해온 탤런트 김민자는 봉사활동의 이유를 묻자 그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에게 빚은 결코 괴롭거나 무겁지 않다. 한없이 따뜻하고 소중하다.
“최불암과의 결혼생활&봉사로 얻는 기쁨”


지난 5월 중순,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낙숫물 소리가 반갑다. 목말라하던 대지는 물을 들이켰고 사람들의 근심도 잦아들었다. 비가 그치고 하늘에 무지개가 뜰 무렵, 서울 여의도에서 김민자를 만났다.
2001년 드라마 ‘순자’를 끝으로 연기활동을 쉬는 동안 그는 배우보다는 엄마, 할머니 역할에 충실했다. 아울러 청각장애인을 돕는 단체인 ‘사랑의 달팽이’ 회장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화려한 외출보다 누군가를 붙들고 보살피는 일이 많았다.
그는 닷새 후 자선골프대회를 열어 인공와우수술 후원금을 모금할 계획이라고 했다. 올해로 5회째.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쩌면 그도 척박하고 고달픈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에게 소리 찾아주고 싶어요”
“난청인과 청각장애인들은 신체적으로 결함이 없어 보여 주위의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요. 눈이 나빠 안경이나 렌즈를 끼는 경우는 사람들이 어색하게 보지 않지만 난청이 있어 보청기나 인공와우관 수술 후 CI라는 기구를 장착하고 있으면 낯설어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지고 고립되고 단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죠.”
“최불암과의 결혼생활&봉사로 얻는 기쁨”


근황을 물었을 때만 해도 “그냥 그렇지 뭐…” 하면서 쑥스러워하던 그에게 청각장애인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소리 소문 없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공연, 미술전시회, 문화강연, 문화답사 등 다양한 일을 벌여왔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뭘까.
“둘째 아이를 낳고 몸이 쇠약해졌어요. 외출했다가 어지러워서 집에 돌아온 적이 많았죠. 최 선생님(그는 남편 최불암을 그렇게 불렀다) 목소리가 어찌나 굵은지 어떤 날은 귀가 아파 견딜 수 없더라고요(웃음). 그때 ‘일시적으로 아픈 것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아예 듣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명현상을 치료받기 위해 이비인후과에 갔을 때 의사는 그에게 “눈이 중요한가 귀가 중요한가”라고 물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불편했던 그는 눈이라고 대답했다. 며칠 후 의사는 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고, 그는 똑같이 대답했다.
“의사가 고개를 젓더라고요. 소리라는 건 뇌 발달에 필요한 자극이기 때문에 청각을 잃으면 두뇌까지 발달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유전적인 요인으로 장애가 되물림되는 건 물론 치료비와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해 가난까지 되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어요. 그 무렵 우연히 사랑의 달팽이를 알게 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죠.”

“최불암과의 결혼생활&봉사로 얻는 기쁨”

올해로 결혼 39주년을 맞이한 최불암·김민자 부부. 이들은 오래 전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활동에 앞장서왔다.



그는 “젊어서는 나 살기 바빠서…” 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사랑의 달팽이 외에도 지난 83년부터 최불암과 함께 한국사회복지재단 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사회복지사업을 해왔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것을 빚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개인적인 의지와 충족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혜택받은 게 많다”며 “더 많은 이웃에게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제가 기뻐서 합니다. 돈이든 뭐든 나눠서 억울하고 분하면 못 하죠(웃음). 기부활동으로 유명한 한 젓갈장수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남을 돕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날 정도라고…. 그 말이 맞아요.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인 최 선생님과 마침 뜻이 같아 마음 편히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어요.”
그는 “청각장애는 수술만 해서 고쳐지는 게 아니라 수술 후 3~4년간 장기적인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제도의 사각지대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소리를 못 듣던 아이들이 수술 후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때면 대견하다며 곧 감동에 젖어들었다. 수술 후 재활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사랑의 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 연주회를 열고 있다. 클라리넷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말을 듣는 관악기. 그는 어느새 그 아이들의 이름을 꼽고 있었다.
“청각장애 1급인 다섯 살짜리 꼬마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 아이 엄마도 청각장애 3급이었죠. 수술하고 언어치료 5개월째에 아이를 다시 만났는데 숫자를 세보라고 했더니 ‘하나, 두울, 세엣, 네엣!’ 하면서 완벽하게 발음을 하더라고요. 얼마나 기특하고 예쁘던지…. 과학의 힘이 아니라 신이 선물한 소리 같았어요. 그 아이들이 자라 정상인처럼 일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마음속에 잠시 묻어둔 연기열정
김민자는 “요즘 많은 연예인이 여러 봉사활동에 동참해 기쁘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사랑의 달팽이가 봉사단체로 자리 잡게 되면 자신은 물러나고 젊은 사람이 나서서 맡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드러내거나 나서기 싫어하는 성품이 엿보인다.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는 동안 배우 김민자로서의 모습은 점차 잊혀갔다. 지난 63년 KBS 3기 탤런트로 연기활동을 시작했으니 벌써 46년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는 인자하고 현명한 어머니부터 고집스럽고 냉랭한 주부까지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꽤 오래됐어요.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못된 시어머니 역을 맡았을 때 특히 힘들었죠. 극중 며느리로 나왔던 김지수씨가 고생했던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대문을 안 열어주는 장면이었거든요. 연기지만 제 모습이 정말 싫고 속상하더라고요. 촬영장 분위기와 시스템이 바뀌면서 낯설게 느껴진 것도 브라운관을 떠난 이유고요.”
그는 “비중을 떠나 메시지를 주는 캐릭터를 맡고 싶은데 그게 드물다”며 씁쓸해했다.
“80년대 초에 일일드라마 ‘보통사람들’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3대가 함께 사는 집의 맏며느리 역할이었는데, 가족간 훈훈한 사랑을 그리는 게 좋았어요. 요샌 그런 게 드물어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 얘기가 대부분이야. 물론 배우에게 은퇴란 없습니다. 지금도 섭외는 꾸준히 들어와요. 수락하지 않는 건, 당장이라도 출연하면 용돈을 벌 순 있겠지만, 재미나 보람이 아닌 일로만 여겨질 것 같아서예요.”
지난해 최불암은 드라마 ‘식객’을 통해 젊은 연기자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민자는 “‘내가 해서 저러면 좋겠는데’ 싶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연기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며 “하지만 막상 나보고 하라고 하면 이것저것 따지느라 아마도…” 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요즘 ‘내조의 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엊그제 영화 ‘박쥐’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담아둔 연기열정을 꺼내보는 시간이다.

“10여 년 전 최 선생님과 함께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지금도 둘이 그때 얘기를 많이 해요. 나이 더 먹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볼까 싶은 거지. 그런데 작품 고르고 날짜, 장소 따지기가 참 어려워요. 열망은 있는데 언제 결실을 맺을지 장담하지 못하겠어요.”

훗날 손녀에게 들려주기 위해 세계동화집 사기도
“최불암과의 결혼생활&봉사로 얻는 기쁨”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백수”라고 표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요즘 그래요. 4월에 딸을 시집보내느라 정신없었거든요. 7년 전 아들 결혼시킬 때와 또 다르더라고요. 처음엔 서운했는데 지금은 홀가분합니다.”
두 돌 지난 손녀는 재롱덩어리라고. “아이가 말을 잘한다. 단어와 단어를 이어 문장을 만드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는 김민자는 며느리에게 “저렇게 말을 잘 하는데 영어로도 잘하면(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벌써부터 많은 걸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의 사돈은 탤런트 서승현이다.
“며느리에게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안 했어요. 1주일에 몇 번 아이와 뭘 배우러 다니는데 만만치 않구나 싶더라고. 엄마들끼리 만나면 교육 얘기만 한대요. 그런 현실이 안타깝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 아이만 전인교육을 시킬 수도 없잖아요. 청각장애 아동을 보면 손녀 생각이 많이 납니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죠. 손녀가 크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는 일에 대해 조금씩 들려주고 싶어요.”
그는 “손녀가 태어나기 전 두툼한 세계동화집을 샀다. 손녀가 훗날 ‘할머니 재미있는 얘기 좀 들려주세요’라고 말하면 한 가지씩 들려줄 생각”이라며 웃었다.
“저는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침묵은 싫어요. 하염없이 잦아들고 맥 빠지는 것 같아서. 최 선생님이나 아들 내외와 대화할 때도 주로 제가 분위기를 이끌어요. 주로 사람에 대한 얘기인데, 최 선생님과는 후원아동, 후원자 얘기를 많이 하죠. 다툼이요? (웃음) 그럴 일이 없지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아마 제 쪽에서 먼저 화해를 할 겁니다. 예민할 것 같지만 의외로 털털하고 뒤끝이 없어요. 물고 늘어지는 거 못 참아요.”
시간이 날 때면 골프를 치거나 한강 둔치를 걷는다는 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건강 비결”이라고 말한다. 아들 내외에게 배운 컴퓨터 실력으로 최신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일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어떤 일을 정해놓거나 계획대로 살지는 않아요.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살죠. 그런 저에 비해 최 선생님은 계획적이고 꼼꼼해요.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 즐거워도 지나치게 즐거워하지 말고 슬퍼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죠. 그게 우리집 가훈이기도 한데,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게 바르게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평온하게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인터뷰하는 게 꼭 자랑하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마음이 개운치 않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의 얼굴에는 분명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있었지만 아름답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여성동아 2009년 6월 5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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