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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8년 만에‘백두산’재결성,로커로 돌아온 유현상 최윤희 부부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9.05.22 17:05:00

유현상이 성인 가요를 뒤로하고 로커로 되돌아왔다. 그룹 ‘백두산’을 재결성, 50대 중반에 머리띠를 다시 두른 열혈남 유현상과 이제는 고교생의 엄마로 미국에서 조용히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부부를 인터뷰했다.
18년 만에‘백두산’재결성,로커로 돌아온 유현상 최윤희 부부


“둘째가 올해 열여섯인데 갑자기 이 녀석이 수영을 한다고 그래요. 왜 저러나 했더니 박태환이 김연아하고 만나는 걸 TV에서 본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김연아를 무척 좋아하는데 자기가 박태환처럼 유명한 수영선수가 되면 직접 만나볼 수 있을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 핏줄이란 게 있는지 경기도 고양시에서 주최한 수영대회에 나가더니 메달을 싹쓸이했어요.”
4월의 중턱, 서울 마포 한 상가건물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 입구에서 유현상(55)과 마주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다른 밴드가 연습하는 시간이고, 4시부터 백두산의 연습이 시작된다고 했다. 얼핏, 창문 안쪽으로 다른 밴드가 연습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대략 가늠해봐도 유현상과의 나이 차이가 반세기 이상 난다. 유현상이 검은 가죽 재킷에 치렁치렁 늘어뜨린 체인만 벗는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고 해도 이상치 않을 듯싶다. 때문에 연습실에서 만난 로커와의 인터뷰치고는 조금은 괴상한 이야기가 한참 오간다. 공부 잘해 의사가 될 거라는 장남 동균(18), 장난기가 심해 팔만 두 번이나 부러졌다는 둘째 호균(16) 이야기까지.

둘째는 김연아 만나고 싶다며 갑자기 수영 도전해
마침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끝이어서 그랬는지, 이야기는 자연스레 둘째 호균군의 ‘제2의 박태환 되기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42)의 아들이 엄마의 뒤를 잇겠다는 게 아니라 오로지 김연아를 직접 볼 수 있을 것 같아 수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에 절로 폭소가 터졌다.
수영계의 슈퍼 스타 계보로 따지자면 조오련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86년 아시안게임 2관왕 최윤희, 그리고 마지막에 박태환이 온다. 게다가 미녀 스포츠 스타로 따지자면 전성기의 최윤희야말로 아이돌의 원조 아니던가? 시대상의 차이야 있지만 김연아보다 못할 게 전혀 없던 최윤희였다. 무려 13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91년 최윤희와 결혼에 골인, 뭇 남성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으며 ‘도둑’ 소리를 적잖이 들었던 유현상의 후예가 그런 ‘발칙한’ 동기로 수영을 시작했다니 부전자전일지, 모전자전일지는 훗날 다시 따져봐야 될 일이 아닌가 싶다.
18년 만에‘백두산’재결성,로커로 돌아온 유현상 최윤희 부부

“다시 기러기 아빠 생활 중이죠. 지난 2001년 가족이 모두 미국 시애틀로 떠났어요. 한 2년 같이 지냈는데, 저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돌아와서 저 혼자 여기서 일하면서 아이들 학비 보내고, 집사람은 서울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인데 지금 잠시 미국에 들어가 있어요. 세 명 학비 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에요. 행사니 공연이니 해서 뛰면 어떤 날은 하루에 저 혼자 2000km를 달려야 할 때도 있어요. 매니저를 하나 둘까 싶다가도….”
16세 때 기타를 사주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대들고 가출하면서 시작한 음악인생이었다. “광화문 안쪽에 극장 있었잖아요. 그 뒤편에 여신다방이라고…” 설명을 늘어놓지만 연배차가 나는지라 거기가 어디께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백두산 시절까지 겪었던 우여곡절 인생 사연이 이어지는 동안 ‘아무튼’ 이란 말이 대여섯 번은 나와야 했지만, 그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무대에 올랐던, 또 동경했던 클럽이나 카페 이름을 하나하나 되새겨냈다. 세븐 클럽, 럭키 클럽, 킹 클럽 등 당대의 클럽 등이 모여 있던 이태원의 풍경부터 동두천, 선우리, 파주, 문산의 자그마한 술집 이름까지. 선망에 그리던 명동 ‘OB’s Cabin’에 처음 섰을 때를 회상할 때는 절로 신명에 차 얼굴이 환해진다.
“그땐 생기는 게 없었어요. 돈 좀 벌면 악기 하나라도 좀 더 좋은 거 사려고 하고, 조명 하나라도 더 하려고 했으니까요. 게다가 어디 공연 갔다가 공연 기획자가 돈 들고 도망가버리는 일도 많았어요. 배 쫄쫄 굶고 기차나 버스에 쪼그리고 앉아 서울로 돌아온 일도 많았죠. 또 어떤 때는 깡패들이 두들겨 패고 돈 뺏어가는 일도 제법 있었어요.”
꽤나 진저리날 만한 추억들이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이미 과거를 회상하는 게 더 즐거운 나이인 탓이다.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등의 음악을 피크 소리 하나까지 똑같이 따라하며 ‘카피 음악’을 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원음과 똑같은 소리를 내느냐로 실력을 겨루던 시절인지라, 남산에서 새벽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84년, 긴 수련 끝에 이제 우리 음악을 한번 해보자며 기타리스트 김도균 등과 함께 백두산을 결성, 한국 헤비메틀의 장을 열었다. ‘우리에겐 라이벌이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당대 백두산이 뿜어내던 사운드는 이미 한국을 넘어선 것이었다는 게 음악평론가들의 중평. 일본의 ‘Burn’이라는 헤비메틀 전문지는 백두산 2집을 두고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최고점을 주기도 했다.

열여섯에 가출, 무대에서 배운 음악생활 40년
그러나 록, 정통 헤비메틀은 아직 우리의 정서와 너무 멀리 있었다. 게다가 당시 백두산은 해외진출을 꿈꾸며 전곡을 영어로 녹음했고, 그 탓에 전곡 방송금지 판정을 받았다. 해외진출은커녕 국내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그룹 백두산은 해체되고 만다. 그와 함께 유현상도 뮤지션이 아니라 매니지먼트 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옮긴다. 당시 매니저로서 그가 키워낸 스타는 여고생 가수 이지연을 비롯해 김종서, 조항조 등. 그리고 그때 부인 최윤희를 만났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나오는 길에 방송국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한다.
“결혼하면서 성인 가요를 시작했었죠. ‘여자야’ ‘갈 테면 가라지’ 등이 인기를 모아서 생활이 괜찮았어요. 생활 때문에 성인 가요를 한 건 아닙니다. 성인 가요는 오히려 다른 음악 장르보다 천재성이 더 필요한 장르예요. 정말 노래 잘하는 사람만 하니까.”
갑작스레 성인 가요를 불러 화제를 모았을 때,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남진, 나훈아 선배의 무대를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혼하면서 생활문제 때문에 장르를 바꿔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한다. “나이가 들면서 성인 가요가 몸에 익기 시작했던 것”이라기에 그렇다면 더 나이를 먹은 지금 로커로 돌아온 이유가 뭐냐고 재차 묻자 그는 머뭇거린다. 다시 질문을 바꿔 ‘당신은 로커냐, 성인 가수냐’라고 묻자 그는 “나는 로커다”라고 대답한다.
“록을 해도 예전과는 달라요. 예전처럼 배곯으면서 버스 구석에 쭈그려 다니지 않아도 되고 열심히 한 것만큼 가져올 수 있는 시대죠. 성인 가요는 점잖게 서서 부르지만 록은 무대를 뛰어놀아야 하는 게 부담인데, 체력적으로 아직 자신 있어요. 그동안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 무대에서 뛰는 거리가 보통 30km라고 하는데 아직 거뜬해요. 롤링스톤즈는 일흔이 다된 나이에도 록을 하는데요. 멋있는 거죠!”
두 자녀도 아버지의 로커 변신에 대찬성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아버지의 앨범을 들려주면 모두들 박력 있는 사운드에 찬사를 토한다고.
그렇다면 부인 최윤희의 반응은 어떨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귀국, 방송 해설자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지난 2001년 시집이 있는 시애틀로 이주한 후 계속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해왔다. 지난 2005년 대한체육회 스포츠 외교 전문인력에 선발돼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연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 겨울방학 후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다시 시애틀로 갔다는 그녀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같이 차 타고 가다가 자기 노래라고 시끄러운 음악 크게 틀면 제가 꺼버려요. 저는 결혼하기 전까지 남편이 그런 음악 한지도 몰랐어요. 저는 운동하느라고 음악은커녕 TV도 못 보고 살았거든요. 나중에 결혼하고 나니까 머리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체인 감고 노래하던 시절 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결혼하기 전에 봤다면 결혼도 안 했을 거예요.”
그녀의 평가는 잔혹했다. 그녀는 유현상의 아내이지만 결코 백두산의 팬은 아니었다. 한국 정통 헤비메틀의 문을 열었다는 전설의 밴드 ‘백두산’의 음악을 그녀는 ‘시끄러운 음악’이라는 단 한마디로 정의해버렸다. 18년 만에 재결성, 다시 한 번 열정을 태우려고 하는 백두산 멤버들이 직접 들었다면 눈물 꽤나 흘릴 말이다.
13세의 나이 차이, 미녀 스포츠 스타로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그렇다면 도대체 그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신랑감으로 유현상을 선택한 것인가? 혹 결혼을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해서 산다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두 사람만이 아는 거죠. 저 사람들은 참 잘 사는 것 같아, 하고 보면 어느새 헤어졌고, 또 어떤 부부는 정말 어떻게 저러고 살까 싶은 데 또 오래가요. 같이 사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또 어려울 때도 있고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때도 있잖아요. 어느 한 면만 보고 살면 안 될 것 같아요. 자기 혼자 있으면 자신을 돌아볼 수 없다잖아요. 자식이나 남편이 바로 내 스승이라고, 가족이 있기에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운동만 하고 항상 누군가 옆에서 챙겨주니까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어요. 근데 결혼해서 이렇게 남편 있고 아이들 있으니까 같이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걸 느껴요.”
결혼 당시 반대를 했든, 안 했든 그런 건 살다 보면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더 잘 살아야지 하는 오기 같은 것이 고비고비를 넘기는 힘이 됐다고 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문제는 언제나 똑같은 것. 내 마음 몰라주면 밉고, 살뜰히 잘 챙겨주면 고맙고, 정겨운 것이라고. 삶에 대한, 또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렇듯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정의가 있을까? 그런데 어떤 때 제일 야속하고 섭섭하냐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이 앞의 철학적인 뉘앙스에서 과히 심하게 벗어난다.
“TV 잘 보고 있는 데 리모컨 뺏어가서 자기 보고 싶은 거 볼 때가 있어요. 남 잘 보고 있는데 자기 보고 싶은 거 보겠다고 그러면 화나죠. 다시 태어나도 나하고 결혼할 거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때 혼자 속으로 그래요. 어림도 없다고.”
반대로 좋을 때는 또 어떨까?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나니까 말 한마디를 해도 따뜻하고 여러모로 배려를 잘해줘요.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저 공부하는 거 항상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거 보면 결혼 잘했구나 싶죠.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아이들 아빠 권유 덕분이었어요.”
첫째를 낳고 얼마 안 돼서였다고 한다. 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기에 전화를 했더니 유현상이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고마워. 차 몰고 집에 가다가 너무 피곤해서 잠시 갓길에 차 세워두고 잤어. 하마터면 여기서 밤 새울 뻔했네. 고마워, 금방 갈게” 하고.
나이 많은 신랑 눈에는 모든 것이 고맙고 미안하기만 했던 듯싶다. 부부싸움 뒤에도 그냥 일하러 나가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못내 미안했는지, 또는 마음이 무거웠는지 일하러 가는 길에 꼭 남편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고 한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으니 달래달라”고.

18년 만에‘백두산’재결성,로커로 돌아온 유현상 최윤희 부부

로커로 돌아와 무대에 선 유현상. 젊은 시절의 카리스마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사진제공·도프뮤직


항상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라는 걸 아는 터라 미운 마음이 오래간 적은 없다고 했다. 라이브 카페를 연 뒤 자기가 없으면 온 손님이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매일 빠짐없이 출근하는 것을 볼 때나 하루 종일 이곳저곳 행사나 공연을 뛰느라 지쳤을 텐데도 항상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했다고.



“부부의 사랑이란 두 사람만 아는 것”
기러기 아빠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유현상은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노후엔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같이 다니고 싶다”고 대답했다.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외로움과 고통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그는 역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그의 말이 어떤 맥락인지 대략 짐작이 갔다. 아내는 애틋해하고, 남편은 또 미안해하고.
“둘째가 수영을 할지, 안 할지는 좀 더 봐야 알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우리 아이만큼은 수영 시키기 싫었거든요. 전 수영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다섯 살 때부터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찬물에 들어가고 쉴 틈도 없이 지상훈련 받아야 하고. 여느 운동과 달리 수영은 숨을 못 쉬니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저는 그래도 언니와 같이 해서 좀 나았는데…. 저희 언니가 수영을 참 잘했어요. 같이 수영을 배운 터라 했지, 안 그랬으면 못했을 거예요. 저는 아이들 수영 안 시킨다 하고, 남편은 아이들 노래 안 시킨다 하고, 둘 다 그래요(웃음).”
18년 만에‘백두산’재결성,로커로 돌아온 유현상 최윤희 부부

전성기 때 최윤희는 지금의 김연아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하며 미녀 스포츠 스타 시대를 열었다.


자녀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자 그녀의 이야기에도 신명이 실리기 시작했다. 학교 풋볼 선수로 맹활약을 펼치는데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 행사 사회를 보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펼치는 장남 이야기로 시작해, 둘째 이야기로 넘어갈 때까지 그녀는 숨가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녀의 언니이자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였던 최윤정 이야기로 넘어가는 순간, 그녀의 표현이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최윤희의 언니 최윤정은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돼 5학년 때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던 한국 여자 수영의 기대주였다.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최윤희가 금메달 3개, 언니 최윤정이 은메달 3개를 따며 이들 자매는 아시아의 인어 자매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는 어느덧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언니 최윤정의 이야기를 하면서 ‘당연히 잘 모르겠지’ 하고 하나하나 설명을 덧붙여나가고 있었다.
“우리 때는 운동선수가 메달을 따도 그렇게 대접받는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수영복도 없어서 외국 나갔다 온다는 사람 있으면 부탁해서 하나씩 장만하던 시절이니까요. 그래도 진짜 하고 싶다면 밀어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어요. 어차피 이제 저는 없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우선인 거지. 제가 수영을 가르치긴 해도 우리 아이는 못 가르치겠더라고요. 아이들 어릴 때 수영 좀 가르치려고 했더니 아이 아빠가 어떻게 어린아이한테 그렇게 가혹하게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전 다 한 건데. 게다가 김연아 보고 싶어서 수영을 한다고 하니…(웃음).”
김연아 선수 또한 한 인터뷰에서 훗날 자녀에게 피겨스케이팅은 시키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엄마가 자신에게 시킨 훈련이 너무 가혹해서 원망같은 것도 있었던 듯. 20년 후쯤 김연아도 혹 지금의 최윤희와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여성동아 2009년 5월 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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