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올여름을 지배할 감다살 리넨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6. 06. 26

런웨이와 리얼웨이를 넘나들며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리넨. 여름을 가볍고 근사하게 나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다.

Why Linen Now

여름이 오면 가장 먼저 호명되는 소재가 있다. 바로 리넨이다. 아마 식물의 줄기에서 얻는 천연 섬유인 리넨은 표면이 매끄럽고 통기성이 좋아 몸에 쉽게 달라붙지 않는다. 덕분에 무더운 계절에도 비교적 쾌적하게 입을 수 있는 소재로 꼽힌다. 여기에 보디라인을 타고 흐르는 유연한 실루엣과 자연스럽게 잡히는 주름은 리넨 특유의 멋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리넨의 매력은 단지 가볍고 시원하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리넨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온 섬유 중 하나로, 선사시대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긴 역사를 지녔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코카서스 지역 조지아 주주아나 동굴에서 발견된 아마 섬유는 무려 3만40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전통적인 리넨 생산 방식에는 상당한 수작업이 필요했다. 아마를 수확하고 섬유를 분리한 뒤 실을 잣고 직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에 가까웠고, 이런 고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리넨은 아주 귀한 직물로 여겨졌다. 일례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속이 비칠 정도로 얇고 섬세하게 짠 아마포로 몸을 치장하며 부와 권위를 드러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리넨은 주요 교역품이자 화폐 대용품으로 쓰이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 이르러선 순백의 리넨 셔츠와 러프 칼라가 왕실과 귀족 사회에 유행하면서 그 위상을 굳혔다. 시간이 흘러 산업혁명과 함께 직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리넨은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친숙하고도 우아한 소재로 자리 잡았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리넨 슈트 차림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메릴 스트립.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리넨 슈트 차림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메릴 스트립.

여성복에서도 리넨은 격식 있는 옷차림을 연출하는 소재로 각광받아왔다. 1985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카렌 블릭센의 리넨 슈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단정한 셔츠와 타이에 리넨 재킷과 팬츠를 더한 그의 슈트 룩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일궈가는 현대적인 여성상과 맞닿아 있다. 여성의 우아함과 활동성을 동시에 드러낸 이 룩은 당시 패션계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남겼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할리우드 배우와 당대 스타일 아이콘들이 리넨 슈트를 즐겨 입으면서, 리넨은 여성 테일러링을 대표하는 소재로 떠올랐다.

Linen Dressed Up



그렇다면 이번 시즌 리넨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패션 하우스들은 저마다 리넨 특유의 질감에 집중하며 이를 한층 정제된 방식으로 풀어냈다. 특히 리넨 슈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스텔라맥카트니는 차분한 뉴트럴 톤의 리넨 슈트로 하우스를 대표하는 미니멀리즘을 구현했다. 남성복에서 착안한 반듯한 실루엣에 리넨의 자연스러운 질감이 더해지며 힘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더가먼트는 리넨 슈트를 보다 중성적인 분위기로 해석했다. 정교하게 맞춘 스리피스 슈트에 같은 리넨 소재의 스카프를 목에 둘러 격식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런가 하면 모스키노는 어깨 라인에 플리츠 장식을 얹은 볼륨감 있는 실루엣으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슈트 룩에 위트 넘치는 변주를 시도했다. 

리넨 슈트의 장점은 활용도가 높다는 데 있다. 재킷과 팬츠를 따로 떼어 각기 다른 무드의 아이템과 섞으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엔드와 스트리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GCDS가 좋은 예다. 흘러내릴 듯한 실키한 튜브톱 블라우스에 리넨 슈트 팬츠를 매치하고, 네온 컬러 백과 슈즈로 포인트를 더해 경쾌한 서머 룩을 선보였다. 크리스찬디올 역시 리넨의 정석인 테일러드 재킷을 활용했다. 빈티지한 색감의 러플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에 차분한 리넨 테일러드 재킷을 걸쳐 캐주얼한 옷차림을 단숨에 드레스업했다.

우아한 리넨 드레스 행렬도 이어졌다. 아이아유는 장식을 과감히 덜어낸 맥시 드레스를 컬렉션 메인으로 내세우며 리넨의 미니멀하고 현대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스칼스튜디오는 최소한의 볼륨만 살린 리넨 드레스에 와이드 팬츠를 덧입어 한층 시크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New Linen Attitude

리넨이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표현의 폭에 있다. 몇몇 패션 하우스들은 이 익숙한 여름 소재를 다른 소재와 혼방하고, 자수를 입히고, 파격적인 실루엣을 더하는 방식으로 변주했다. 이 신선한 접근은 리넨을 단정하고 내추럴한 소재로만 보던 시선을 바꾸고, 그 가능성을 한층 넓혀놓았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더맥퀸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73년 작 포크 호러 영화 ‘위커 맨’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기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서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 중심에 선 코르셋 형태의 리넨 드레스는 은은한 광택의 실버 자수와 풍성한 셔링 장식, 컷아웃과 레이스업 디테일을 결합해 우아함과 관능미가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었다. 카로에디션 역시 베이식한 리넨 재킷에 커다란 일러스트를 수놓고 핑크색 빅 사이즈 버튼을 달아 컬트적인 분위기를 이어갔다. 가브리엘라허스트는 조금 더 캐주얼한 방식으로 나아갔다. 군더더기 없는 아이보리 리넨 드레스에 굵게 짠 스트라이프 니트 소매를 달아 간결한 실루엣에 경쾌한 리듬을 불어넣었다.

컬러 역시 이번 시즌 리넨의 인상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선명한 핑크빛 리넨 블라우스에 네이비 리넨 팬츠와 재킷을 매치해 색의 대비를 살린 레이첼코메이, 청량한 그린 톤 리넨 드레스에 재킷을 착용해 셋업처럼 구성한 알라이아 모두 리넨이 내추럴한 컬러 팔레트에만 머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실루엣으로 승부를 본 브랜드들도 있다. 레이브리뷰는 허리를 강하게 조인 셔츠에 구조적인 헴라인의 리넨 스커트를 매치하고, 구불구불한 플로럴 타이와 투박한 스니커즈를 더해 정중함과 엉뚱함 사이를 오가는 아이코닉한 룩을 연출했다. 미완성의 미학을 전개해온 사카이는 셔츠 소매를 떼어낸 듯한 베스트 형태의 리넨 재킷에 올이 풀린 듯한 스티치 장식으로 리넨의 반듯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비틀었다.

The Realway

런웨이에서 리넨의 변주가 과감히 펼쳐졌다면, 리얼웨이에서는 훨씬 가볍고 느슨하다. 셀럽들은 리넨을 일상적인 아이템과 섞어 힘을 빼는 방식으로 소화한다. 패션 인플루언서 이바나 코펠은 홀터넥 톱과 풍성하게 떨어지는 리넨 하렘팬츠를 올 화이트 룩으로 연출해 드레시한 무드를 자아냈다. 여기에 레드 플립플롭과 미니 사이즈 토트백을 더해 차려입은 느낌을 적당히 덜어냈다. 스타일리스트 겸 패션 크리에이터 캐서린 카르포바는 재킷 형태의 리넨 점프슈트에 헤드 스카프와 라탄 백, 발레 슈즈를 곁들여 출근길에도 따라 하고 싶은 시티 룩을 완성했다. 리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이지 컬러 아이템도 눈여겨볼 만하다. 블랙 슬리브리스 톱에 베이지 리넨 랩스커트를 무심하게 걸친 콘텐츠 크리에이터 마리아 보트네바, 베이지 톤의 리넨 재킷에 블랙 카프리 팬츠와 로퍼를 착용한 패션 크리에이터 마디나 아르차코바가 좋은 예다. 이들은 별다른 스타일링 기술 없이도 소재의 질감만으로 충분히 세련돼 보이는 리넨의 힘을 보여줬다. 좀 더 특별한 무드가 필요한 날은 패션 크리에이터 발레리아 소바의 룩이 힌트가 된다. 풍성한 셔링 장식의 크롭트 리넨 블라우스에 블랙 와이드 슬랙스와 시크한 슬릭 헤어로 특유의 절제된 아방가르드한 매력을 드러냈다.

이처럼 아마 밭에서 옷장에 이르기까지, 리넨이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한 멋과 계절에 맞는 실용성, 오늘날 더욱 중요해진 지속가능성을 두루 갖춘 천연 직물이기 때문이다. 포멀부터 캐주얼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다재다능함 역시 디자이너들이 매년 여름 리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드는 이유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도 런웨이 모델처럼 반듯한 리넨 슈트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상상을 해보라. 이 여름을 누리기에 이보다 더 가볍고 근사한 소재가 또 있을까.

#리넨스타일 #여름리넨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더가먼트 레이브리뷰 레이첼코메이 스칼스튜디오  아이아유 알라이아 알렉산더맥퀸 카로에디션 GCDS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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