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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작가 데뷔 차인표의 멈추지 않는 도전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2009. 05. 22

차인표는 ‘측은지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이가 약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애쓴다. 그가 소설을 펴낸 이유도 그 마음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에는 ‘차인표식’ 용서가 담겨 있다.

작가 데뷔 차인표의 멈추지 않는 도전


전 세계에 서른 명의 자녀를 둔 아빠, 공개 입양에 적극 동참한 남편, 봉사하는 연예인…. ‘착한 남자’ 차인표(42)의 모습이다. 반듯하고 선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가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그린 ‘잘가요, 언덕’(살림출판사)이 그것. 이로써 그는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를 더 얻었지만 처음부터 책을 내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아들 정민이(12)에게 아빠가 직접 쓴 동화를 선물해주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했다.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한결 자유로워 보였다.
“동화라 생각하고 썼는데, 출판하는 과정에서 소설로 바뀌었어요. 처음 책을 펴낸 거라 개인적으로는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작가 지망생들이 참 많은데, 저는 연예인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쉽게 책을 출판하게 됐으니까요. 작품 하나를 출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애쓰고 계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1년 전,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끌려간 ‘훈 할머니’의 사연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다. 훈 할머니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7세 나이로 일본 순사들 손에 끌려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 프놈펜 일본군 막사로 보내진 뒤 그곳에서 50년 넘게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걸어왔다. 광복 후에도 전기도 없는 캄보디아 외딴곳에서 살던 훈 할머니의 사연은 한 한국인에 의해 국내에 처음 알려졌고, 98년 50년 만에 대한민국 국적을 되찾았다. 하지만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캄보디아로 다시 돌아가 2001년 생을 마감했다.
“98년 훈 할머니 뉴스를 접하고 아내와 함께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당시 할머니의 자그마한 체구와 돋보기안경을 걸쳐 더욱 동그랗게 보이는 눈망울이 인상적이었죠. 할머니도 세상에 태어났을 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생명이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절대 무력에 납치돼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아프더라고요. 순간 머릿속에 연민과 분노, 안타까움이 교차했고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 데뷔 차인표의 멈추지 않는 도전


“10년 넘게 책을 쓰면서 처음 느꼈던 분노가 서서히 용서로 변했어요”
그해 여름, A4 스무 장 분량의 글을 완성한 차인표는 “내용이 좋으니 잘 써서 책으로 출간해보라”는 장모의 격려에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예활동 틈틈이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노트북이 고장나는 바람에 저장돼 있던 글이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적도 있었다. 원고는 오로지 그의 기억에만 남아 있었고 그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기억을 더듬어 새롭게 원고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집필작업을 시작한 건 2006년 3월. 그는 책의 배경이 된 백두산을 직접 방문해 그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와 글로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순사의 계급이나 신분도 역사적 사료를 찾아 되도록 정확하게 기입하려 애썼다. 그는 “책의 배경이 1930년대인데, 소설에 등장하는 백두산 호랑이는 1920년도 이후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소설의 허구로 봐주면 고맙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작가 데뷔 차인표의 멈추지 않는 도전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 차인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글로 묘사하기 위해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소설 서두에 나오는 붉은 소나무와 억새풀밭 등 잔잔한 시골 마을 풍경을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린 뒤 글로 옮긴 것.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늘 화면 위주의 상상을 하다 보니 글 역시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묘사하는 게 훨씬 편했다고 한다.
차인표는 2년 전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지내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도 다녀왔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봉사단체와 함께 방문한 거였는데, 마침 이날 사진작가 조선희가 할머니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와 있었다고 한다. 봄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참으로 평화로웠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몇 분이 살아계셔서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에 찾아가 시위도 하시지만,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누가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현재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사과받고 그들을 용서해주는 거예요. 저 역시 오랜 시간을 들여 글을 쓰면서 처음 마음에 품었던 원망과 분노가 서서히 용서로 변하더군요. 덕분에 할머니들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글쓰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해낼 수 있다”며 끝까지 용기 준 아내
차인표는 원고가 절반 정도 완성됐을 무렵 아들 정민이에게 매일같이 원고 독촉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어주거나 옛날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잘가요, 언덕’ 서두를 읽어주자 아이가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밤마다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던 것. 심지어 학교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몇 장 썼어요?” 하고 묻곤 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쓸 수밖에 없었어요. 정민이가 제일 무서운 편집자였죠(웃음). 아내도 옆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소설을 ‘엉덩이’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가 ‘잘 해낼 수 있으니 끝까지 해보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줬어요.”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간한 그는 문학평론가 이어령에게 “작가 차인표의 행보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역작!”이라는 서평을 받았다. 이어령은 책 속 ‘추천의 글’에 “처음 출판사에서 차인표씨의 작품에 대한 평을 요청해왔을 때, 나는 유명인이 유명세를 등에 업고 펴내려고 하는 그렇고 그런 책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 용이가 아버지 황 포수와 함께 호랑이 마을로 흘러드는 첫대목을 읽기 시작했을 때 … 나는 앞서의 이런저런 걱정들을 잊고 원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라고 적어놓았다.
“출판사에서 어느 분께 추천의 글을 맡기면 좋겠냐고 해서 이어령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친분은 전혀 없지만 이어령 선생님이 국어교과서나 사전 감수를 많이 하셨잖아요. 처음 이어령 선생님께 글을 부탁드릴 때 봉투에 원고와 함께 편지를 써서 넣었어요. ‘바쁘시겠지만 한번 읽어봐주시길 부탁드리고, 만약 추천의 글을 안 써주셔도 끝까지 봐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요. 그런데 좋은 말씀을 많이 써주셔서 사람들이 추천의 글만 보고 제 책을 샀다가 실망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잘가요, 언덕’은 책과 함께 O.S.T 앨범으로도 발매됐다. 차인표와 함께 국제 어린이 양육기관 컴패션 회원으로 활동 중인 작곡가 주영훈이 책을 읽고 느낀 감동을 노래로 만든 것. 노래는 주영훈의 아내 탤런트 이윤미가 불렀으며 신애라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어루만지려 한 차인표는 글을 쓰는 내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측은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 결과 누군가를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차인표는 “지금껏 박수 받을 일을 해온 건 아니지만, 앞으로 더욱 많이 배우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싶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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