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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영부인 김윤옥여사 청와대 생활 1년 첫 공개

대담 손범수·진양혜 아나운서 부부 || ■ 글 & 사진 위클리공감 제공

2009. 04. 22

지난 1년 동안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이명박 대통령을 내조해온 김윤옥 여사. 그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퍼스트레이디 생활부터 평범한 아내, 할머니로서의 삶까지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영부인 김윤옥여사 청와대  생활 1년 첫 공개

“대통령 맘에 안 들 땐 수돗물 틀어놓고 혼자 바가지 긁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째를 맞은 2월25일 아침, 서울 북악산 기슭의 청와대를 찾았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62)와의 ‘특별한 만남’을 위해서였다. 예전에 KBS ‘아침마당’에서 인터뷰하기도 했고 봉사활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청와대 ‘안방마님’이 된 후 첫 만남이라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김 여사는 연한 살구색 블라우스와 검은 니트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겼다.

청와대 생활 생각만큼 쓸쓸하지 않아
첫 궁금증은 ‘김윤옥 여사의 하루 일과’였다. 대통령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회의하랴, 민생 챙기랴, 밖에서 동분서주하는데 영부인은 ‘구중궁궐’ 속에서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대통령께서는 워낙 잠이 없으십니다. 기업에 계실 때부터 38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라 새벽 5시면 저도 절로 눈이 떠져요. 인터넷을 통해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신문기사 등을 읽으며 대통령께 필요한 기사는 오려서 나중에 전달하기도 합니다. 출근 준비 도와드리고 나서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저녁에 일찍 오시는 게 8시40분이에요. 그래도 밖에 있을 때를 생각해보면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긴 거죠. 점심 들러 가끔 오시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청와대 생활이 외롭고 적막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미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와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만큼 쓸쓸하고 외롭지 않습니다. 네 자녀와 여섯 명의 손자 손녀들도 한번씩 들러요. 그동안 자전거 타는 것도 배웠어요. 대통령께서 차 없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시기에 손녀들과 같이 자전거를 배웠는데 아직 잘 못 타서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제가 손녀들보다 서툴다고 놀려요.”
김 여사는 자칫 경직되기 쉬운 분위기를 의식한 듯 좌중의 폭소를 먼저 유도하며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다.
영부인 김윤옥여사 청와대  생활 1년 첫 공개

청와대 상춘재 접견실에서 손범수·진양혜씨가 김윤옥 여사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여사는 영부인이 된 후 이런 일상의 재미 외에도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대통령께서 어릴 때 어렵게 생활한 건 다 아시잖아요. 시어머님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게 봉사다’고 늘 말씀하셨답니다. 그 영향으로 대통령께서 서울시장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월급을 구경도 못했어요. 대학시절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경험이 마음에 깊이 남았는지 환경미화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다 내놓으셨지요. 그때는 저도 기꺼이 따랐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월급을 다 내놓겠다고 하셔서 처음엔 반대했습니다.
‘대통령이라도 돈이 있어야 손자 손녀들이 오면 용돈이라도 주지 않겠느냐, 재산도 내놓고 월급도 내놓으면 무슨 수로 사느냐고요. 저한테 묻지도 않고 결정하셨으니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농담 섞어 투정했더니, 월급을 전부 제 통장으로 옮겨 ‘마음대로 쓰라’고 하시더군요. 어리둥절했는데 그날 저녁 하시는 말씀이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 찾아다니는 일을 많이 할 테니, 그때 적절히 쓰면 좋긴 하지’ 하시는 겁니다. 덕분에 지금은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대통령께서 일일이 다 못 챙기는 서민들을 살피고 보듬는 것이 부족하지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김 여사가 자원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는 것은 소문으로도 익히 알고 있었고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러나 영부인이 된 후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
“특히 복지의 사각지대를 찾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후원이 부족한 결식 어린이를 돕는 단체에 쌀을 보내고, 청각장애 어린이에게는 보청기를 매달 기부합니다. 새터민도 돕고 대학병원의 소아암, 근육병 등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들도 지원하고요. 전에는 이곳저곳 산발적으로 후원했는데, 이제는 대통령께서 임기를 마칠 때까지 꾸준히 도우려고 합니다. 찾아보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했지만 더 어려운 사람이 많아요. 월세 25만원을 못 내 힘겨워하는 할아버지께는 방세를 도와드립니다.”

영부인 김윤옥여사 청와대  생활 1년 첫 공개

지난해 4월 청와대 장애 어린이 초청 행사에서 한 시각장애 어린이가 김윤옥 여사의 얼굴을 손으로 그리듯 만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중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지난해 4월 청와대 장애 어린이 초청행사 때 한 시각장애 어린이가 김 여사의 얼굴을 손으로 그리듯 만지는 모습이었다.
“선혜라는 시각장애 어린이예요. 자신의 장애를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더욱이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저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 손님들까지 모두 눈물바다였죠. 그 아이가 대통령과 제 생김새를 궁금해해서 얼굴을 만지게 했는데 아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라고요. 선혜는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꿈을 꼭 이루라고 응원해줬습니다.”
김 여사는 그 눈물의 의미를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맞닥뜨려야 했던 칠흑 같은 ‘절망의 순간’을 그 시각장애 어린이의 손길을 통해 느꼈던 것은 아닐까. 남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기쁨은 한순간이었고 그 후 길게 이어진 ‘힘들었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낸 것일까.
“다 아시다시피 촛불시위 등으로 어려움도 많았지요. 하여튼 잘 극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고 해서 당장 좋아지고 모든 사람에게 호응을 받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우리란 건 이미 각오한 바이고, 지금은 미래를 위한 터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우리 임무이지, 대통령께서 임기 내에 모든 걸 다 이룰 순 없어요. 제가 늘 웃고 다니니까 경제도 어려운데 뭐가 저리 좋을까 하며 못마땅해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김 여사는 타고난 낙관주의자처럼 보였다. 그런 자신감이 대통령 내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평소에 두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물었다.
영부인 김윤옥여사 청와대  생활 1년 첫 공개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가 지원해 지은 페루 파차쿠텍 모자보건소를 방문한 김윤옥 여사. 이에 앞서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김 여사는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을 격려했다.


“모시는 사람들이 대통령께 잘한다, 못한다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쓴소리하는 역할을 하지요. 항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귀를 열어놓고 대통령이 미처 챙기지 못한 사안에 대해 조언을 드립니다. 그렇다고 잔소리만 하면 역효과가 나요. 저도 젊을 땐 잔소리를 곧잘 했는데 살다 보니 지혜가 생기더라고요. 사실 한 번만 얘기해도 알아듣거든요. 심한 말을 하면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좋은 말만 하면서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남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좋아요.”
김 여사는 그 지혜의 일단을 공개했다.
“편지를 자주 써요. 대통령선거 기간에도 그랬어요. 오가며 들리는 소리가 있는데 그중에는 새겨들어야 할 말들도 있거든요. 그럼 제가 편지에 써서 아침에 나갈 때 드리곤 했어요. 잔소리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일은 잘하셨다, 고맙다 하는 좋은 이야기를 3분의 2 정도 쓰고,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1번, 2번, 3번 적어서 드렸어요. 예를 들면 ‘사람들 앞에서 코 푸시지 마세요. 서양에서는 괜찮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결례예요’라는 식으로요. 요즘도 제가 가끔 편지를 써서 드리면 차 안에서 읽으시더라고요.”

남편에게 전하는 쓴소리는 편지에 담아
우리 부부는 동시에 귀가 번쩍 트였다. 휴대전화로 소통이 이뤄지는 시대에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써준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남자는 의기양양해야 해요. 힘을 실어주는 말이 더 효과적입니다. 남자가 기죽으면 안 돼요. 남자가 자신감을 가져야 가정도 편하고 나라도 편하거든요. 저는 청와대 수석 부인들께도 절대 바가지 긁지 말라고 해요. 물론 맘에 안 들 때도 있죠. 그럴 땐 수도꼭지 틀어놓고 욕하면 돼요. 왜냐면 속에 있는 걸 토해내야 부인도 마음의 병이 안 생기거든요. 남편 앞에서 직접 하면 남편이 해를 입으니까 안 되고요.”
김 여사는 해외순방 때면 재외동포 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곧잘 한단다. 그때마다 청중은 그의 ‘부부학 강의’에 깊은 공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이처럼 내공이 깊은 아내에게 대통령은 남편으로서 어떻게 대할까. “저와 성격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니까 처음에는 부딪히는 것도 많았어요. 그래서 당황할 때도 많았는데 요즘 젊은 여성들 눈에는 낙제점이겠지만, 가정적인 남편은 아니어도 전체적으론 괜찮은 남편이에요. 바쁜 덕에 대통령 부인까지 됐으니 전에 섭섭했던 건 다 참아야죠. 대통령께선 제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잘 챙기세요. 대통령 생신이 결혼기념일이니까 둘 다 잊지 않더라고요. 선물은 한 번도 못 받아봤지만 생일이 돌아오면 꽃다발과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했고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카드는 꼭 보내세요. 카드에는 꼭 ‘사랑하는 윤옥에게’로 시작해 ‘명박으로부터’라고 끝나요. 지난해 12월19일 결혼기념일에도 그걸 준비해서 컴퓨터 옆에 놓아뒀더라고요.”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김 여사는 이 순간만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듯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손자 손녀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같이 잠잘 때에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보다는 ‘명박씨와 윤옥씨가 사랑을 해서 너희 엄마를 낳았고 너희 엄마는 너희 아빠와 사랑해서 너희를 낳았는데 너희 엄마도 어린 시절에는 너희들처럼 개구쟁이였고…’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손자 손녀들이 좋아한다고 자랑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자녀교육 문제로 옮아갔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교육에 관한 한 모두 일가견이 있다. 3녀1남을 키운 김 여사의 교육관은 무엇일까.
“부모가 사랑으로 키우는 게 최고예요. 자녀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떨어져 있어도 엄마가 항상 널 좋아한다고 얘기해주세요. 저도 손자 손녀들과 따로 만날 땐 네가 최고라고 말해요. 그랬더니 다들 할머니가 자기를 최고로 생각하는 줄 알더라고요. 손자 손녀들이 오면 전신마사지를 해주고 살뜰히 보살피니까 자꾸 오려고 해요. 내리사랑이라고, 대통령께서 주스를 찾으실 땐 주스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손자 손녀들한테는 뭐든 다 해주게 돼요. 아이들이 제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아주 좋아합니다.”



영부인 김윤옥여사 청와대  생활 1년 첫 공개

“이명박 없는 김윤옥은 단팥 없는 찐빵”
김 여사는 한식 요리에 특히 관심이 많다. 김 여사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 꼽는 최고의 요리는 ‘닭강정’. 주위에서는 ‘김윤옥표 닭강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행군을 하며 살아온 대통령이 건강한 비결도 ‘좋은 요리사’와 함께 사는 덕분일까?
“좋은 음식 만들어 드려서가 아니고 워낙 식성이 좋으세요. 가리는 음식도 없고 무엇이든 잘 잡수세요. 저같은 경우 외국에 가면 입맛에 안 맞는 경우도 있는데 대통령께서는 그 나라 음식을 꼭 드세요. 식성은 타고나신 것 같아요. 지난 38년 동안 보약 한 번 드시지 않고 운동과 음식으로 건강을 지켜오셨어요. 다만 대통령께서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과로로 간염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 딸 셋을 낳아 기르고 있었는데 이러다 잘못되시면 어떻게 사나 걱정을 많이 했죠. 27년 동안 현대건설에 근무하면서 지각, 결근 한 번 안 하셨어요. 무엇보다 필요한 건 휴식이었지만 대통령께서는 병원에서 출퇴근할 정도로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습니다. ‘일하다 죽겠다’며 고집 피우는 남편을 말리다 지칠 때쯤, 주변에서 야생 장어가 간염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탄강에 가서 즉석에서 잡은 장어를 사왔어요. 그걸 솥에 넣고 고아 드렸죠. 물론 처방에 따라 약을 챙겨 드시는 등 다른 노력도 했지만 기적처럼 완치됐어요.”
장어요리보다 아내의 사랑이 효험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추임새에 솔직한 영부인의 반격이 바로 이어졌다.
“사랑의 힘이라기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혼자 살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요. 그때는 무조건 기도했어요. 어떻게든 남편을 살려달라고, 이명박 없는 김윤옥은 단팥 없는 찐빵이라고요. 7년 동안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았어요. 대통령도 금주하시며 몸 관리를 잘하셨습니다.”
김 여사는 평소 행사 분위기에 맞춰 수수한 차림을 하기도 하고 밝고 화사한 차림을 하기도 하는데,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의상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복은 물론 자신의 스타일과 어울리는 국내 기성복 브랜드를 즐겨 입는다고 하는데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는지 물어봤다.
“전담 코디네이터는 따로 없고 딸들의 조언을 많이 참고합니다. 더욱이 대통령께서 예산을 줄이신다는데 코디가 웬 말입니까. 대통령께서는 무조건 아껴야 한다는 주의예요. 사실 이게 다 국민의 세금이잖아요. 대통령께서 원래 절약형이시라 함께 살면서 많이 배웠어요.”
김 여사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청와대에 ‘갇혀’ 살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의상이 맞지 않는다’는 댓글도 본다고 한다. 국민들이 즐기는 TV 드라마도 보고 청와대에서 직원들과 영화도 감상하고 더러는 콘서트에 남몰래 다녀오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재미를 붙인 취미생활도 공개했다.
“지난 겨울에는 뜨개질을 많이 했어요. 손자 손녀들 모자랑 목도리를 떠서 주고, 대통령께는 등산할 때 하시라고 워머를 떠서 드렸어요. 참, 저체온증으로 고생하는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털모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물론 돈 주고 사는 게 쉽긴 하겠지만 정성을 담아서 올 연말에는 아이들 모자를 떠서 보내주려고요.”

지금은 모두 힘든 시기, 여성의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 필요한 때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된 인터뷰는 김윤옥 여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주도로 금세 1시간을 넘겼다. 다 못 푼 궁금증 보따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마무리 질문을 했다. 이날 조간신문에 난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 명예위원장직과 관련해서 물어봤다.
“관광이 활성화되면 일자리도 많이 생기잖아요. 나라 경제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맡았습니다. 또 관광에는 그 나라 문화와 역사가 스며들게 마련이고요. 한국에 가면 꼭 먹어봐야지 하는 세계적인 한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한국 음식이 세계 대도시 중심으로 알려져야 해요.”
마지막으로 경기 한파를 가장 절실히 체감하고 있을 이 땅의 주부이자 어머니들에게 전할 격려의 말씀을 부탁했다.
“요즘 경기침체로 부쩍 주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경제가 어렵다는 걸 저도 많이 체감합니다. 국민의 기대치에는 못 미치더라도 연말쯤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를 훌륭하게 키워낸 건 여성이자 어머니입니다. 여성은 사회변화와 발전을 주도하며 21세기를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여성이 가정의 주체로, 사회의 주체로 인정받게 된 데는 많은 여성의 노력과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이럴 때 어머니들께서 사랑과 믿음의 힘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라도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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