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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전성기’ 위해 다시 뛰는 양원경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박해윤 기자

입력 2009.03.23 11:34:00

불혹을 넘긴 나이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계급장 떼고 초년병들과 맞붙어 이겨야 겨우 주목받을 수 있다. 개그맨 양원경은 이미 이런 정신무장을 끝낸 상태였다.
‘제2 전성기’ 위해 다시 뛰는 양원경


“양원경이 누구예요?” 콩트가 히트하던 시절, 개그맨 양원경(41)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그가 MBC ‘명랑히어로 - 변진섭 두 번 살다’로 8년 만에 안방극장에 얼굴을 내비쳤을 때 어린 네티즌들은 그의 신상정보를 묻기 바빴다.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3일 동안 검색어 1위를 기록했어요. 이게 웬일인가 싶었죠(웃음). 진섭형이 방송에 나가면서 저를 게스트로 초청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방송에 대한 꿈을 접고 있던 상태였기에 섭외요청이 들어오자 ‘전화 바로 하신 거 맞냐?’고 재차 물을 정도로 믿기지 않았어요.”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국에 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많은 인기를 얻던 시절 이야기와 사업하다 망한 이야기, 행사를 뛰며 겪었던 이야기 등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이후 방송 섭외 요청이 잇달았다. “아빠는 개그맨인데 왜 TV 안 나와?”라고 묻던 큰딸 수인이(8)와 함께 MBC ‘환상의 짝꿍’에도 출연했고, KBS ‘스타골든벨’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벨라인에 고정 출연하게 됐다.
“사실 인기·돈·명예가 순식간에 사라진 건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다만 아이들이 아빠의 직업을 물을 때 제대로 답할 수 없다는 점은 가슴 아프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방송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아빠 오늘 정말 행복했어요’라는 말에 어찌나 찡하던지…. 그 말을 듣고 ‘그래,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하고 결심했죠.”
신인 시절 영원할 줄 알았던 인기 한순간 사라져
91년 서울예술대학 재학 당시 그는 후배인 김용만과 팀을 이뤄 출전한 KBS 대학개그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유재석·박수홍·남희석 등이 동기다.
“저희 기수는 선배들에게 ‘천운을 타고났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운이 좋았어요. 입사하자마자 SBS가 개국해 개그맨 수요가 급증했거든요. 선배들은 1년 연수를 마쳐야 방송에 나갈 수 있었는데 저희는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바로 코너에 투입됐죠.”
마침 X세대 조류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당당한 그들의 개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양원경은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봉숭아학당’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하던 전학생으로 등장해 동기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정한 흐름대로 가는 콩트에서 엉뚱한 말을 내뱉는 제게 선배들은 ‘재미없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많이 웃어줬어요. 그때부터 섭외가 많이 들어왔죠. 지금처럼 토크 형식의 개그보다 콩트가 대세였기 때문에 비교적 연기를 잘하는 저는 쓰임새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게 모두 제가 잘나서 그런 거라 착각했던 게 문제였죠.”
KBS에서 활동하던 그에게 어느 날 타 방송사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방송사와 개그맨이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타 방송사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교류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점찍은 PD는 ‘한 회만 같이하자’며 설득했다.

‘제2 전성기’ 위해 다시 뛰는 양원경

“저를 주인공으로 한 단발성 코너였어요. 대본을 보여주는데 굉장히 웃기더라고요. 겁이 없던 때라 하겠다고 했죠. 촬영을 하루 앞두고 출연 중이던 KBS PD에게 말했더니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나가면 찍힌다고 말렸죠. 그쪽에 전화를 걸어 ‘못 나가겠어요’라고 했더니 ‘방송 몇 십 년 했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며 화를 내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봐도 개념 없는 행동이었죠.”
그 일이 있은 후 좋지 않은 일이 연이어 터졌다고 한다. 일주일에 방송 프로그램 6개, 야간 업소 5개, 행사 5개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였는데 밤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그에게 취객이 시비를 걸어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쌍방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 이후 방송에서 차츰 밀려나고 일도 없어지자 그는 벌어놓은 돈으로 식당을 시작했다.
“과욕을 부려 서울 여의도에 3백 평 규모의 갈비집을 차렸어요. 그런데 곧 해외에서 광우병이 발발했다는 기사가 뜨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돼지고기로 종목을 바꿨죠. 그러자마자 이번에는 국내에 몇 십 년 만에 돼지콜레라가 돌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닭고기로 바꿨는데 조류독감이 퍼져 결국 식당 문을 닫았어요.”
힘들 때 조용히 곁을 지켜준 아내, 어른스러운 딸 덕에 용기 얻어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는 당시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떠도 마땅히 갈 데 없는 자신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고. 그때 그를 다잡아준 사람이 아내였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절더러 ‘처복은 있는 사람’이라고 해요. 식당이 망했을 때 저보다 더 힘들었을 텐데도 괜찮다고 말하더라고요. ‘힘들면 집 팔아 전세 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월세 살면 된다’고 할 때는 얼마나 미안하고 또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의 아내 박현정씨(35)는 KBS 슈퍼탤런트 1기 출신. 방송국에서 박씨를 처음 봤을 때 그는 부잣집 딸인 줄 알고 거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만족을 모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
“알고 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순수한 처녀더라고요.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라요. 된장찌개를 사줘도 맛있게 먹고는 고맙다고 말하는데 ‘꼭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친한 기자에게 로비를 해서 스캔들 기사를 쓰게 만들었어요. 스캔들이 터지자 아내는 출연하기로 했던 드라마에서 제외됐고 더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치는 저와의 결혼을 택했죠.”
당시 박씨와 함께 데뷔했던 동기 송윤아·차태현 등은 지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들을 보는 박씨의 마음은 불편하지 않을까.
“아내는 도리어 제게 ‘지금 삶이 더 행복해’라고 말해요. 친구들은 인기를 얻었지만 자기는 저와 아이들을 얻었기 때문이래요. 사실 저만 아니었으면 아내는 레드카펫 밟으며 살았을 거예요. 데뷔하자마자 드라마 섭외도 많이 받았고, CF 출연 요청도 꽤 들어왔거든요. 가끔 집안일하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자기는 오히려 좋다고 말하니 감사할 따름이죠.”
큰딸 수인이는 그런 엄마를 똑 닮았다고 한다. 지난 설에 방송된 SBS 특집 프로그램 ‘붕어빵’에서 수인이는 “유재석보다 더 웃긴 우리 아빠는 분명 잘될 것”이라며 어른스럽게 아빠를 응원하기도 했다. 그는 수인이가 초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정도로 속이 깊다며 딸 자랑을 했다.
“매일 엄마와 생활하다 보니 영향을 많이 받더라고요. 아내가 늘 제 걱정을 하고, 항상 저를 믿고 따라주는 부분이 있는데 수인이도 그래요. 게다가 눈치도 빨라 뭐든 알아서 잘하고, 자기 욕심도 있어 똘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죠. 둘째 세정이도 그런 편인데 큰아이보다는 애교가 많아요.”
그는 요즘 다시는 나가지 못할 것 같던 방송에 출연하게 돼 하루하루 꿈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KBS ‘스타골든벨’ 출연 요청을 받고 첫 방송 전 밤을 새워가며 할 이야기를 생각했을 정도.
“과거에는 쉬면서 겪은 어려운 일들이 숨기고픈 치부였지만 이제는 모두 개그의 소재라 생각해요. 그런데 첫 방송에서 제가 말한 부분은 거의 다 잘려나갔더라고요. 작가한테 물어보니 ‘솔직히 요즘 스타일이 아니에요’라며 조심스럽게 언질을 줬죠. 망치로 한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는 시대가 바뀌고 개그의 코드가 바뀐 걸 감지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이후 그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일을 검색하고, 각종 분야의 책도 읽으며 세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고심 끝에 만든 웃긴 이야기를 작가와 PD에게 미리 던져보며 방송에서 할 이야기를 기억해둔다고 한다.
“데뷔 20년 차 선배 대접 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제 노력으로 다시 서려고요. 한동안 직업이 없었는데 기회를 얻었으니 제대로 잡아야죠. 지난해가 박미선·이경실 등 아줌마 개그맨들의 해였다면 올해는 개아돌(개그맨 아저씨돌)의 해가 될 거예요(웃음).”

여성동아 2009년 3월 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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