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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cheers #trend

요즘 술,

EDITOR 조진혁

2018. 07. 30

    #크래프트비어 #간지나는_브루펍 #beerstagram    

지난주의 일이다. 사진 찍는 형과 브루 펍에서 맥주를 마셨다. 브루 펍은 수제 맥주를 판매하는 술집이다. 처음 듣는 이름의 생소한 맥주들이 많다. 대강맥주라든가, 흥맥주라든가 하는 유머러스한 이름의 것들도 있다. 수제 맥주는 국내에서 주조된 맥주들이다. 맥주 좀 마신다는 사람들은 크래프트 비어라고 부르던데, 수입 맥주에 비해 신선하고 맛이 독특하며 종류가 다양하다. 물론 호프집에서 파는 생맥주보다 신선하다. 호프집에서 팔던 것들이 진짜 생(生)맥주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호프집, 꼬치집 등 라거를 팔던 가게들이 사라지는 추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브루 펍이 들어섰다. 마포구 연남동이나 용산구 이태원 같은 특수하게 유행에 민감한 지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한산한 동네 이곳저곳에도 브루 펍이 생겼다. 낮엔 커피를 팔고 밤에만 술을 판매하는 카페도 수제 맥주를 판다. 인스타그램에 나올 것 같은 인테리어가 갖춰진 술집이라면 응당 크래프트 비어가 있다.  

  #옛날맥주_요즘맥주 #입맛따라_라벨따라 #맥믈리에  

그렇다고 우리가 유행에 민감해서 브루 펍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맥주에 대단한 취향을 지녀서 홉이 어쩌고, 거품 양이 많네 적네 따지는 아저씨들도 아니다. 얘기할 곳을 찾다 보니 브루 펍에 엉덩이를 들이민 것뿐이다. 소주를 마시기엔 너무 더운 날이었다. 화로 앞에서 고기를 굽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차가운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우리는 맥파이를 하나씩 주문했다. 맥파이는 홉 맛이 강해 씁쓸하다. 너무 차갑게 마실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차게 내온다. 쓴 첫맛과 달리 목 넘김은 부드럽다. 크래프트 비어 가게가 많아졌고, 판매하는 맥주의 종류도 다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과거 수입 맥주가 한창 팔리던 시절에는 곧잘 맥주 이름과 생산 국가를 외우고는 했는데, 요즘처럼 종류가 다양해진 시대에는 다 외우기 어렵다. 수제 맥주가 다양해지면서 생겨난 현상이 있는데, 바로 맥주의 장르화다. 과거 ‘맥주’ 하면 황금색 탄산에 하얀 거품이 쌓여 목이 따가운 술이었다. 국산 맥주만이 전부이던 시절의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라거’라 부른다. 인스타그램에 오늘 마신 맥주를 자랑하려는 사람들은 국산 맥주 사진을 찍지 않는다. 브루 펍에서 파는 신기한 맥주, 라벨이 독특한 맥주, 수제로 만든 맥주를 찍는다. 국산 맥주는 소주에 곁들이는 ‘쏘맥’ 제조 도구가 된 지 오래다. 국산 맥주도 세분화된 맥주를 다양하게 출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내에서 판매되는 맥주 종류는 페일 에일, 인디아 페일 에일, 필스너, 밀맥주 등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중 내 입맛에 맞는 맥주 장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맥주는영화다 #라거는_신파 #페일에일은_로맨틱코미디  

브루 펍에서 맥주를 선택하는 것은 영화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카스 같은 톡 쏘는 탄산 맛이 강한 라거는 신파다. 영어로는 휴먼 드라마. 별일 아닌데 울고, 안 웃긴데 배우들끼리 웃는 그런 희로애락 드라마와 비슷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어울린다. 씁쓸한 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인 에일 맥주는 미지근하게 마시는 맥주로도 유명하다. 물론 다들 차게 마신다. 페일 에일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위트 있는 드라마에 깊은 성찰이 담긴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다. 쓴맛이 강하고 풍미가 깊은 필스너는 처절한 누아르를 닮았다. 그리고 형과 내 입맛에는 페일 에일이 잘 맞았다. 우리는 휴 그랜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엑스트라처럼 아무 말 없이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맥주를 마셨다. 침묵을 깬 건 나였다.  

  #혼술 #1만원에4캔 #위로와힐링을위하여  

형은 술을 왜 마셔? 술은 그냥 그런데 자리가 좋아서 마시지. 맥주를 마시다 보면 묻게 된다. 



이 사람은 왜 나와 술을 마시고 있을까? 술을 마셔야만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할까? 그런데 우리는 카톡이 있고, 전화도 있고, 메일도 하면서 하루 종일 대화할 수 있는데, 굳이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눠야 할까? 누군가에게 술은 놀이고, 문화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나도 그랬다. 한때는 선후배들과 첫차가 다닐 때까지 술을 마셨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술자리에 착석하면 시간을 소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돈이고, 돈이 행복인 시대에서 술자리는 무급 야근과도 같다. 

평일에는 사람에 치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인파에 치이고, 회사에서 회의와 각종 트러블 해결에 시간을 쏟고 나면 사람이 싫어진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에는 또 사람이 가득하다. 일찍 퇴근하고, 여유가 있다면 친구를 만나 늦게까지 어울리던 시기도 있었지만, 회사 업무량이 늘어나니 그럴 기운이 없다. 그건 형과 나 모두 동의한 부분이다. 나이가 들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할 일은 많고 많이 일해도 버는 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출은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스트레스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피곤한 일이 돼버렸다. 소파를 보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하지만 잠은 안 자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뿐이다. 그러다 늦게 잠이 든다. 현대인이 늦잠을 자는 원인은 유흥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루를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떡하면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그 방법을 모르니 집 앞 편의점에서 4캔에 1만원짜리 맥주를 사서 들어간다. 

행복은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실 때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방법은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TV로 야구 중계를 보거나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거나 혹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하루 중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은 이 순간뿐이다. 시원한 맥주의 쌉싸름한 맛이 약간 위로가 된다. 세 번째 캔의 뚜껑을 딸 때면 취기가 올라온다. 적당한 취기는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잠을 불러온다. 형은 잠들기 전 맥주 한잔 마시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라고 했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TV를 보면서 맥주 한잔을 마시면 그제야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주의할 것도 있다.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TV 볼륨을 낮춰야 해. 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급야근회식 #용건은카톡_대화는댓글로 #그많던술자리는어디로  

혼술은 습관이 된 지 오래다. 냉장고에 맥주 한두 캔 구비된 1인 가구는 흔하다. 집에서 혼자 맥주 마시는 풍경이 평범하다면, 펍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낯설 것이다. 외국 영화에서는 자주 나온다. 펍에 들어선 주인공이 바텐더에게 맥주 하나를 받아 마시며 펍을 둘러본다. 주인공이 형사이거나 탐정이거나 여자인 경우도 많다. 요즘은 국내 브루 펍에서도 혼술 하는 주인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혼자 온 손님이 박학다식한 바텐더와 대화를 술술 풀어나가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고, 현실은 좀 다르다. 대체로 혼자 온 손님은 맥주를 마시며 스마트폰만 만진다. SNS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한다면 그것도 나름의 술자리일 것이다. 혹은 게임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혼술 하며 게임 하면 술자리에서 딴짓한다는 핀잔을 듣지 않고, 상대방 잔이 빌까 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여유롭다. 어쩌면 기사에 댓글을 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이슈나 회사의 부조리함에 대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곳은 같은 팀 선배가 아니라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이 더 가까울 수도 있을 테니까. 혼술에 익숙해지니 주도라는 것들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요즘 술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셔터스톡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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