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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김은아 가족

“발달장애 아들 키우며 더 큰 사랑 배웠어요”

글 오진영 ‘자유기고가’ | 사진 장승윤 기자

입력 2009.02.18 14:34:00

김형태·김은아씨 부부는 아들이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평생 짐이 될 줄 알았던 아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최고의 선물이 됐다.
김형태 김은아 가족

김형태(46)·김은아씨(39) 부부가 두 아들과 함께 경북 풍기로 이사를 온 것은 지난해 5월. 결혼 후 16년 동안 줄곧 살던 대구를 떠나 남편의 고향이기도 한 시골 마을에 집을 구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 생활을 결심하면서 두 사람이 가장 걱정한 건 아이들 교육문제였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큰아들 태균이(16)에게 보다 다양한 특수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선 도시에 사는 게 낫지 않을지, 또 시골학교로 전학하면 둘째 아들 지우(13)의 성적이 떨어지진 않을지 고민됐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시골행을 택했다. 가족이 재미나고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남과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면서 이 부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조금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자폐증 큰아들은 하늘이 보내준 천사
자폐증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뇌 발달장애다. 자폐증을 갖고 있는 아이는 언어발달이 늦고 의사소통이 서툴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산만하고 과잉행동을 하기도 한다. 태균이는 두 살 반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앵무새처럼이라도 단어를 따라한 것은 만 세 살이 넘어서였다. 김씨 부부는 아이가 말을 좀 늦게 배운다고 생각했을 뿐 장애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40개월이 될 때까지 말을 못하니까 주위에서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놀이방에 데려가면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는데 우리 아이만 혼자 다른 걸 하면서 돌아다녔어요.”
태균이가 만 네 살이 됐을 무렵, 자폐증 아동을 다룬 TV 방송을 보면서 이 부부는 비로소 “우리 아이가 바로 저거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태균이가 자폐증 판정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슬프고 절망스러운 마음에 많이 울기도 했고요.”
마치 누군가 그들의 귀에 대고 “이제 당신의 인생은 반을 접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아이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안 가본데 없이 쫓아다녔다. 허준이 환생했다는 어느 한의원을 찾아가 아침부터 줄을 서 겨우 저녁에 진료를 받기도 했고 유명한 한의사로부터는 “알레르기와 변비 때문이니 그것부터 고치라”는 말을 듣고 오기도 했다. 금침도 맞아보고 약도 지어 먹여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나이가 먹고 몸집이 커져도 언제나 마음은 천사 같은 아이가 바로 우리 태균이였어요. 하늘이 준 천사를 내가 잠시 맡아 기르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아이의 병을 반드시 고쳐서 정상아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아이가 평생 짐이 될 거라는 슬픈 마음이 사라졌다.
“자식은 다섯 살까지 부모에게 평생 줄 웃음을 다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태균이는 정신연령이 다섯 살 정도니 항상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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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균이가 세 살, 지우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김씨 부부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임신 6개월이라 몸이 무거워 별로 내키지 않은 여름 휴가를 떠났다가 자동차 충돌사고가 난 것.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은아씨가 앞자리까지 튕겨나가고 형태씨는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흘렀지만 어른들은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가장 많이 다친 건 태균이었어요.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아이 목뼈에 금이 가 반신불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또 울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은 결과 12주 진단을 받았고 걷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부부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기뻤다. 태균이의 장애를 알기 전이었다.
“아주 한참 지나서야 그때 교통사고를 떠올리면서, 건강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태균이의 부모가 되기 전에는 김씨 부부도 여느 사람과 똑같았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만큼 못 가진 것 같고 남들만큼 못 누리는 것 같아서 늘 불만이었고 허기졌다. 태균이 덕분에 부부는 비로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은 그들에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꼭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내게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즐겁게 사는 것뿐”이라는 걸 가르쳐줬다. 그래서 이 부부에게 아들 태균이는 “신이 준 귀한 보물”이다. 아니, 세상 모든 아이들은 장애가 있든 없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형태 김은아 가족

김은아씨는 장애가 있는 형 때문에 일찍 철이 든 둘째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고 한다.


“태균아, 지우야 고맙다, 사랑한다”
둘째 지우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유치원 행사에 태균이를 데리고 간 엄마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태균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행사가 다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중에 혼자 집에 온 지우가 신발을 벗어던지며 통곡을 하더라고요. 왜 먼저 가버렸냐고 원망하면서요.”
서럽게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형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다. 미안하다”고 말하자 지우는 눈물을 뚝 그쳤다. 형 때문이라면 다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걸 일찍 배운 것이다. 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자라면서 일찍 철이 든 지우가 부모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모래를 뿌리는 형 때문에 창피하다고 속상해하던 지우는 이제는 형을 챙겨줄 만큼 제법 의젓하게 컸다. 엄마 은아씨는 큰아들의 이야기를 쓴 책 ‘태균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에 이어 지난해 말에는 둘째를 위한 책 ‘지우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펴냈다.
“흔히 장애 아이가 있으면 비장애 형제에게 손길이 덜 가게 된다고 미안해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것은 부모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고 지우가 의연히 맞서야 할 특별한 상황이라고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현재 지우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빠 형태씨가 졸업한 학교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기운 없이 학교를 오가던 아이가 전교생이 14명뿐인 이 학교로 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수업을 받으면서 활기차고 웃는 얼굴이 됐다. 태균이가 다니는 중학교의 특수반에는 세심하게 돌봐주는 보조 선생님이 있어서 김씨 부부가 한결 마음을 놓게 됐다. 장애를 가진 한 아들과 그렇지 않은 다른 아들을 키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 김씨 부부의 이야기다.
“큰아이를 정상아로 만들고 싶다는 부모 욕심에 별의별 것을 다 시도했지만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태균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만큼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둘째도 마찬가지예요. 이것 저것 다 잘하게 만들고 싶은 건 부모 마음일 뿐이고 아이는 자기의 시간표에 맞게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었어요.”
김씨 부부는 세상이 주는 희로애락을 배우고 슬픔을 견디고 자신의 색깔을 찾아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주고 사랑과 신뢰를 듬뿍 주면 아이들은 자기 몫의 행복 만들기를 깨쳐갈 것이다. 이 부부는 그것을 알게 해준 두 아들에게 오늘도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여성동아 2009년 2월 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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