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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마흔, 자살로 안타까운 삶 마감한 최진실

글·김수정 기자 / 사진·홍중식 문형일 기자 성종윤‘프리랜서’

입력 2008.11.20 17:41:00

최진실이 지난 10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재환의 자살과 관련된 악성 루머로 인한 상처,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정상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생전에 최진실이 남모르게 느꼈던 고통과 가족의 비통한 심경을 취재했다.
마흔, 자살로 안타까운 삶 마감한 최진실

최진실(40)이 세상을 등진 뒤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인 지난 10월 중순,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최진영의 집을 찾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지인의 집에 맡겨졌던 최진실의 두 아이는 삼촌 집에 머물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 안팎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최진실은 왜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던 아이들을 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까.
그의 죽음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10월2일 오전 6시경. 오전 4시 잠에서 깨 딸의 침실로 간 어머니 정모씨는 딸이 침대에 누운 흔적이 없어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평소 최진실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대본을 암기할 때 사용하는 욕실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 든 정씨는 열쇠업자를 불러 문을 열고 들어갔고, 샤워부스에 압박붕대로 목을 맨 채 숨진 딸을 발견했다.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집에 온 최진영은 119 구급대에 신고했다.
이후 그의 사망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사람들은 이를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혼 등으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늘 ‘캔디’처럼 밝고 씩씩했기 때문. 그는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맹순이를 연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열었고, 지난 3월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줌마렐라(아줌마와 신데렐라의 합성어)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망 직전 식사를 거의 못해 체중이 줄고 술을 마셔야만 잠이 들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정적 자살 동기는 안재환의 죽음을 둘러싸고 퍼진 괴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진실이 지난 9월 사채빚 때문에 자살했다고 알려진 정선희의 남편 고 안재환에게 25억원을 빌려줬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진실은 언론 인터뷰에서 “연예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루머를 감수하며 살아야 하지만 이번 일은 나뿐 아니라 안재환씨의 유가족과 친구 정선희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며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았고 지난 9월 말 경찰에 악성 루머 유포자 검거를 의뢰했다.

안재환 죽음과 관련된 악성 루머, 이혼 후 앓아온 우울증으로 고통받아
최진실은 사망 전날인 10월1일 오후 한 제약회사와의 광고촬영에 앞서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한다. 전날인 9월30일 악성 루머 최초 유포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증권사 여직원 백모씨가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밤새 잠도 못 자고 울었다는 그는 “얼굴이 많이 부어 속상하다”며 촬영을 중단했다. 또한 백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낸 점에 놀라며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어떻게 사채업자로 몰 수 있느냐”고 하소연하던 최진실은 결국 촬영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매니저들과 인근 음식점에 가 술을 마셨고, 자리를 옮겨 연예관계자 5명과 밤 11시까지 술을 더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개천절에 큰아이 운동회가 열리는데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며 “방송생활을 그만둘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 곁을 지켜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당시 최진실이 많이 울었으나 만취상태는 아니었고 자살과 연관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마흔, 자살로 안타까운 삶 마감한 최진실

딸의 죽음을 믿지 못해 통곡하는 어머니를 달래고 있는 최진영.


집으로 돌아온 최진실은 어머니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니 뭐니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인데 나를 왜 이토록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고 10년지기 친구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모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 언니에게 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이들을 부탁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가족들에 의하면 그는 4년 전 조성민과 이혼한 뒤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오래전부터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아이들의 성을 ‘최’로 바꾸는 성본변경허가신청을 하는 등 당당한 싱글맘의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고 걱정했다고.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는 데 대한 심리적 압박도 상당했다고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언젠간 내리막이 있는 연예계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스트레스가 컸다는 것.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인기리에 종영된 뒤에 신경안정제 복용량을 늘린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1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 촬영을 앞두고는 지인들에게 “내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의기소침해했다고.
마흔, 자살로 안타까운 삶 마감한 최진실

최진실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 갑산공원. 가족·친지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온 팬들이 지금도 매일 이곳을 찾아 고인의 넋을 위로한다.


할머니와 함께 기도하며 엄마 부재 받아들이고 있는 아이들
최진실의 다이어리를 조사하던 경찰은 “죽기 며칠 전 쓴 듯한 ‘자기 한 몸조차 주체하기 힘든 주제에 남을 함부로 비방하지 마라’는 글과 함께 ‘세상과의 단절, 외톨이, 왕따…. 뭔지 모를 이 더러운 느낌이 뭐지? 내가 싫다’ 등 평소 겪었던 번민과 갈등의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고, 달력이나 수첩에는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메모가 있었다”고 밝혔다.
최진실은 또 자신에 대한 기사와 댓글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자신의 안티카페에 가 네티즌의 악성 댓글을 밤새도록 읽으면서 “아이들이 컴퓨터를 다루게 되면 이런 글도 볼 텐데 걱정”이라며 불안해했고, “정말 힘들다. 내가 죽으면 납골당이 아니라 산에 뿌려달라”는 말도 종종 했다고 한다.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 정씨는 서울 삼성의료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영정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최진영은 슬픈 감정을 애써 추스르고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누나의 안식을 빌었다.
최진실과 절친한 사이인 이영자는 영결식에서 “너를 보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가장 듣기 좋아하고 하기 좋아하는 말이 ‘아이 러브 유’였지. 아이 러브 유…”라고 쓴 편지를 낭독하며 울먹였다.
유족과 지인들은 두 자녀의 거취와 미래를 걱정했다. “엄마는 천사가 됐다. 별을 따기 위해 하늘나라로 갔다”는 할머니, 삼촌의 말에 “왜 갑자기 하늘나라에 갔느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먹였던 아이들은 다행히도 현재는 엄마의 부재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라고.
일주일 뒤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 교회에서 손자손녀와 함께 예배를 보러 온 어머니 정씨를 만났다. 딸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씨는 “여전히 (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며 사람들과의 대화나 만남을 일절 거부한 채 고인의 명복을 위해 기도했다.
최진실의 전남편 조성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진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다. 사망 소식이 처음 전해진 10월2일 오전 최진실의 자택을 찾은 그는 3일 내내 빈소를 지켰고 경기도 양평 갑산공원에서 치러진 봉안식 및 삼우제에도 참석했다. 그는 “지금으로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나중에 심경정리가 되면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장례 후에도 유족 및 아이들을 만나며 위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최진영의 집에 갔을 때 마침 그의 집에 찾아온 조성민의 손에는 케이크와 선물이 들려 있었고, 아이들은 현관문 앞으로 나와 아빠를 반겼다. 뒤이어 최진실의 어머니 정씨와 이모, 지인들이 최진영의 집에 모여 그와 함께 식사했다. 점심식사 후 마당에서 두 아이와 같이 놀아주던 최진영과 조성민은 아이들이 집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은 어떻게 될까. 조성민은 지난 2004년 최진실과 이혼하면서 친권행사자 권한과 양육권을 최진실에게 넘겼다. 법률상으로는 이혼한 부부 중 한쪽이 사망할 경우 남은 한쪽에게 친권행사자 권한이 자동으로 부여되거나 친권행사자 변경신청을 한 후 권한을 넘겨받게 된다. 친권과 달리, 양육권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진실의 어머니나 최진영이 그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 반면 조성민이 양육권변경신청을 할 경우 아버지로서의 결격사유가 없다면 양육권을 다시 부여받을 수도 있다. 친권은 양육권을 포괄하는 권리. 따라서 친권행사자가 양육권을 포기할 순 있지만, 만일 포기하지 않는다면 최진실의 유가족이 그와 양육권 협의를 하거나 친권상실 심판청구를 해야 한다.

최진실 아버지 최국현씨 인터뷰
“늙은 아버지보다 먼저 간 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자살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 최진실의 유가족과 친구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애통해했다. 어머니와 이혼 후 따로 살던 아버지 최국현씨도 한걸음에 달려와 눈물을 흘렸다.
글·김수정 기자 / 사진·문형일 기자
마흔, 자살로 안타까운 삶 마감한 최진실
지난 10월2일 최진실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삼성의료원에서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검찰이 최진실의 사인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부검을 결정했으나 유가족이 강하게 반발한 것. 그 중심에는 최진실의 아버지 최국현씨(71)가 있었다. 최씨는 “딸이 죽은 것도 원통한데 또 죽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차라리 내 배를 가르라”며 오열했지만 검찰의 결정을 막을 순 없었다. 잠시 이성을 잃었던 최씨는 그러나 곧 통곡하다 실신한 최진실의 어머니 정씨를 달래고 아들 최진영을 위로하면서 딸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다음 날 오후 다시 만난 최씨는 밤새 눈물을 흘린 듯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처음 딸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믿지 않았어요.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곧이어 전화가 빗발치더라고요. 아침뉴스 속보로 올라왔을 때 아이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죠. 그런데 맞더라고…. 그 소리를 듣고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한동안 멍해 있었죠.”
열흘 전 딸의 집 찾았을 때 ‘병원 갔다’는 소리 들어
그는 또 눈물을 흘렸다. “딸의 우울증이 그토록 심한지 미처 몰랐다”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따로 사니까 아무래도 자주 만나진 못했어요. 아이들 엄마 말로는 최근 들어 많이 괴로워했다더라고. 불 끄고 혼자 있는 것도 좋아했다고 하고요. 평소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아이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후회될 뿐이에요.”
그는 최진실이 죽기 열흘 전인 9월 말, 서울 잠원동에 위치한 최진실의 집에 갔을 때 처음 딸이 병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걱정스러웠지만 그때만 해도 큰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조차 어려워했을 딸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했다.
오랜 별거 끝에 아내와 이혼했지만 최진실·최진영 남매는 그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했다고 한다. 최진실은 잠시 연락이 두절됐던 아버지를 수소문해 다시 만난 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끼와 재질로 스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국현씨는 연극무대에서 활동했고 KBS 공채 탤런트 시험에도 합격한 바 있다.
“지금도 진실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이 나요. 진실이는 어릴 때부터 밝고 착한 아이였어요. 귀여워서 동네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죠.”
최진실은 아버지와 해후한 후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자신이 바쁘면 동생 최진영을 통해서라도 안부를 살폈다고. 최씨는 비록 딸과 잦은 왕래는 없었지만 지난 2000년 열린 딸의 결혼식을 비롯한 집안 경조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한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는 없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요. 떨어져 살다 보니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는데, 그 점이 무척 안타깝죠. 이제 와 후회하면 뭐합니까.”
조문객을 맞고 딸의 장례절차를 밟는 등 마음을 진정시킨 최씨와 달리 최진실의 어머니 정씨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최씨는 “아이들 엄마는 원래부터 몸이 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자꾸 정신을 잃어 저러다가 아이들 엄마마저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식 앞세우고 슬프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죽음이라 정말 미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니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애도하는 거죠. 또 그걸 진실이가 바랄 거고요.”
최씨는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덧붙였다. 최진실의 두 아이는 언론의 과열취재 때문에 결국 빈소에 오지 못했다. 그는 아직은 아이들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할 때가 아니라면서도 “비록 딸을 잃었지만 손자들이라도 키워야 아이들 엄마의 쓸쓸함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토록 허무하게 떠나다니…. 늙은 아버지가 자식보다 먼저 가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집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게 언제가 될진 잘 모르겠어요.”


여성동아 2008년 11월 5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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