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동아 로고

Celeb 만나고 싶었습니다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 솔직 토크

“장미희·김희애·심은하… 내 드라마 출연한 여배우들에 대한 단상, 명대사 얽힌 뒷얘기”

글·김수정 기자 / 사진·문형일 기자

입력 2008.11.18 15:03:00

‘2008 서울 드라마 페스티벌’에서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선정된 김수현 작가. 그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촬영 뒷얘기를 비롯해 심은하·김희애 등 자신의 드라마에 출연했던 연기자들에 대한 생각, 주옥같은 명대사를 만들어내는 비결까지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 솔직 토크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갑게 내리쬐던 10월 중순,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김수현 작가(65)를 만났다. ‘2008 서울 드라마 페스티벌’에서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팬 미팅을 가진 것. 근황에 대해 묻자 그는 9월 말 ‘엄마가 뿔났다’ 종영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며 “글을 쓸 때는 작가 김수현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김수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날 도톰한 검정색 투피스 위에 큰 스카프를 두르고 나온 그는 “후배들이 건강 상하면 큰일난다며 옷을 단단히 챙겨 입으라고 해서 이렇게 입었는데, 날씨가 참 좋다”며 스카프를 매만졌다. 김 작가는 평소 대본 리딩부터 촬영, 편집까지 참여해 스태프와 배우들을 호되게 야단치기로 유명하지만 이날만큼은 카리스마를 뒤로한 채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들의 반란을 상징하는 ‘한자의 가출’로 화제를 모았다. 시청률은 40%를 웃돌았고, ‘뿔났다’라는 단어는 드라마 방영 내내 회자됐다.

▼ 드라마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팬 미팅을 연 소감은요.
“젊을 땐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대충대충 넘어가는 면이 생긴 것 같아요. 팬 미팅이 이렇게 크게 열리는지 미처 알지 못하고 그러마, 했던 건데…. 나중에야 이 행사가 어떤 건지 알고 깜짝 놀랐어요. 주최 측에 ‘누가 나를 보러 오겠느냐’고 반문했죠.”
▼ 팬 미팅이 열린 데는 ‘엄마가 뿔났다’의 영향이 컸는데요.
“고마운 일이죠.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엄마가 뿔났다’의 메시지를 묻는 사람이 많은데, 메시지는 드라마에 다 녹여냈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럽게 다시 ‘엄마가 뿔났다’를 거론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자식들에게 ‘부모를 더 이상 너희들의 밥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것이 제가 의도한 ‘엄마가 뿔났다’의 주제기도 하고요.”
▼ 특히 고은아 역을 맡은 장미희씨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선 저는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나쁘다는 식으로 배역을 나누지 않습니다. 미희씨가 맡은 은아는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춘 인물이에요. 어릴 때부터 공주 대접을 받으며 살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장성한 아들, 현명한 며느리를 뒀죠. 그렇게 배경이 좋은 경우, 죽는 날까지 철이 안 들 수 있어요. 그래서 철이 안 든 채로 늙는 여자를 써보자 생각하고 캐릭터를 만들었죠. 처음엔 이 여자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한결같이 나쁘겠다며 걱정했어요. 그래서 미희씨에게 ‘거북스러워하지 말고 써준 대로만 연기해줘요. 억지로 연기하려 하지 마세요. 당신의 발성, 어투 그 자체를 살려도 됩니다. 나를 믿고 따라와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생겨 놀라웠어요. 미희씨가 중년의 나이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싶어요. 본인이 캐릭터에 맞춰 옷과 액세서리를 잘 착용해 눈요깃거리도 됐고요. 자태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은아가 철이 없을 뿐 본성이 악랄한 여자는 아니기에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대해 관대했고요.”
▼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지 않고도 큰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모르겠어요. 누가 저 대신 알려줄래요?(웃음) 최근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를 등장시키는 드라마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중 한 소재를 택하지 않고 자극적인 소재를 한데 모아 비빔밥처럼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저도 지난해 ‘내 남자의 여자’라는 불륜 드라마를 썼지만 불륜이라는 소재 한 가지만 가지고 집필했어요. 당시 많은 드라마에서 불륜 소재를 다루고 있었는데 성에 안 차 ‘내가 한번 제대로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쓴 거죠. 간혹 후배작가들의 시놉시스를 볼 때가 있는데, 어찌나 무시무시한 얘기가 많은지 모릅니다. 저라면 그 시놉시스에서 8개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시청률에 집착한 나머지 자극적인 소재를 총집합시켜놓는 건 올바른 작가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시청률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요. ‘엄마가 뿔났다’에서 볼 수 있듯이 저는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었어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들과 시청자들이 소통하기를 바랄 뿐이었죠.”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 솔직 토크

지금껏 고민해 만든 대사는 ‘당신 부숴버릴 거야’뿐, 나머지는 물 흐르듯 써
김 작가는 지난 68년 MBC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 올해로 작가생활 40년을 맞았다. 그는 ‘사랑이 뭐길래’(91), ‘목욕탕집 남자들’(95), ‘청춘의 덫’(99), ‘부모님전상서’(2004) 등 발표하는 드라마마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사는 김 작가 드라마의 트레이드마크.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했던 “부숴버릴 거야”라는 대사와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김희선이 선보인 속사포 같은 대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주로 쓰는데,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아까도 이야기했듯 저는 신선한, 희한한 소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요. 저는 늘 사람을 다룹니다. 물론 10대 청소년, 20대 젊은이, 30대 아가씨들의 삶을 모두 이해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쓰다가 문득 ‘요즘도 이럴까? 내가 감각이 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과감하게 씁니다. 그들이나 저나 생각하는 건 대동소이하거든요. 저는 스무 살짜리 여자아이 이야기를 할 땐 20대로, 노인들의 이야기를 쓸 땐 80대로 변하려고 노력해요. 각각의 인물을 저라고 생각하죠. ‘엄마가 뿔났다’에 나온 초등학교 2학년생인 소라가 너무 똑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어요.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아이라서 표현을 매끄럽게 하지 못할 뿐 아이도 어른만큼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아이의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에요. 물론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할 말은 죽어도 해야 하는 제 성격이 작품의 캐릭터에 상당부분 녹아 있지만요.”
▼ 주옥같은 대사를 쓰기로 유명한데, 비결이 있나요.
“저는 대사를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아요. 저절로 툭툭 튀어나오는 말을 잡아낼 뿐이죠. 다만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이종원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했던 말인 ‘부숴버릴 거야’를 쓸 땐 잠시 멈칫 했습니다. ‘매장시킬 거야’ ‘망하게 만들 거야’ 등 여러 가지 가운데 고민을 거듭했죠. ‘부숴버릴 거야’는 제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신경 쓰고 고민해 만든 대사예요.”
▼ 평소 즐겨 보는 드라마나 관심 갖고 보는 후배작가가 있습니까.
“‘베토벤 바이러스’와 ‘신의 저울’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베토벤 바이러스’를 처음 봤을 땐 좀 낯설게 느껴졌는데 배경음악이 좋아서 점점 빠져들었고, 요즘은 시간 맞춰 챙겨보고 있어요. 실제 연주자가 단역배우로 참여한다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악기 연주가 처음일 텐데… 그럴듯하게 흉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어요. 또 한 가지 눈여겨본 건 드라마 속 인물이 모두 착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이야기 구도가 흥미로워요. 드라마를 보면 작가의 함량이 보이기 마련인데, ‘베토벤 바이러스’와 ‘신의 저울’은 작가의 함량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렇다면 작가의 함량이 부족한 드라마가 왜 많이 양산된다고 생각하나요.
“주입식, 암기식 학습과 사지선다형에 익숙한 교육환경 영향이 아닐까요. 어떤 작가는 아직도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작가의 함량을 높이려면 책을 많이 읽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에 꼭 책을 읽어요. 작가는 아무리 꺼내도 비워지지 않는 창고,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는 샘이 돼야 합니다.”

어떤 배역 맡겨도 잘 해낼 모범생, 김희애
김 작가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배우들은 일명 ‘김수현 사단’이라고 불린다. 이순재·강부자·김희애·이승연·이유리 등이 대표적 인물. 김수현 작가는 캐스팅에도 관여하는데, 촬영장에서는 배우들을 호되게 야단치는 호랑이선생님으로 통하지만 그들의 재능을 아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차기작에는 누가 캐스팅될지 늘 관심이 집중된다.

▼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요.
“2006년부터 쉬지 않고 세 작품을 잇달아 집필했기 때문에 ‘엄마가 뿔났다’가 끝난 뒤에는 1년간 온전히 쉬기로 작정했어요. 요즘은 책 읽고 운동하고 빈둥거리며 지내죠. 어떤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전혀 준비가 안 된 백지상태예요. 다만 오늘 아침 문득 이경영씨가 너무 오래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연기자를 경멸하고 한꺼번에 매도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제 그만 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편히 연기할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습니다. 이경영씨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 혹시 기억에 남는 배우가 있나요. 김희애, 심은하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훌륭합니다. 자기 역할을 충분히 했고 숨은 능력까지 발휘했죠. 은하씨는 결혼 직전 만난 적이 있는데 본인이 이쪽 일에 미련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남편 내조하고 아이 키우면서 평범하게 살겠다고 결심한 것 같던데…. 그래도 만일 컴백을 한다면 내 작품으로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어요(웃음). 희애씨는 모범생이에요. 빈틈이 없고 성실하죠. 어떤 배역을 맡겨도 잘해낼 것 같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 혹시 장동건 같은 톱스타와 호흡을 맞추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하하하. 장동건씨가 출연료를 세일하겠다고 하면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대부분의 톱스타들이 제 작품에 출연하려 하지 않을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대본 리딩을 하면서 잔소리 듣는 걸 싫어하죠. 저 역시 톱스타가 필요하지 않아요. 저는 배우의식이 확실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정리정돈이 잘돼 있는 중견배우들을 좋아합니다. 신인들의 경우는 TV를 보다가 ‘느낌이 괜찮다’ 싶은 사람을 픽업할 때가 많고요.”
▼ 평소 배우들에게 충고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그렇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배우들이 종종 있어요. 배우들이 제게 전화를 걸어 ‘선생님, 왜 제가 그분보다 사례를 적게 받아야 하죠?’ 하고 하소연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객관적으로 너보다 그 사람이 연기를 잘하거든. 그 사람 보다 더 많이 사례를 받고 싶으면 네 스스로 빛이 나야 해. 값은 네가 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정하는 거야. 네가 이럴수록 일거리가 떨어질 거야’ 하고 냉정하게 말하죠. 저와 그렇게 전화통화를 한 대부분의 배우는 엉엉 운다고 하더군요. 저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영혼의 성숙을 위해 애쓰라고 강조합니다.”
▼ 앞으로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바람은 잘 죽는 겁니다. 작가로서의 바람은 앞으로 후배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많이 내는 거고요. 명성·시청률·원고료 등에 대한 관심을 끄고 어떻게 하면 작품을 알뜰하게 만들 수 있느냐만 생각하면 좋겠어요. ‘김수현보다 원고료를 비싸게 받는 작가가 되겠다’ 같은 생각부터 버려야 해요. 저 역시 현업작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김수현 작가는 “앞으로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8년 11월 539호
Celeb 목록보기 좋아요

Print Edition

How to be a woman

생각하는 여자가 읽는 매거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번호목차이번 호 구입하기

독자알림

더보기

Follow up on SNS

여성동아 에디터가 핫뉴스, 최신 트렌드와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전해 드립니다.

  • 여성동아 페이스북
  • 여성동아 인스타그램
  • 여성동아 유튜브
  • 여성동아 네이버포스트
  • 여성동아 네이버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