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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한 바퀴 돌며 세계 공연문화 접하고 온 공연기획자 유경숙

글·최숙영 기자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입력 2008.10.20 16:32:00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쓰다 해외 공연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일자 무작정 짐을 꾸려 브로드웨이로 떠난 유경숙씨. 지난 1년간 전 세계를 돌며 3백여 편의 공연을 보고 돌아온 그가 세계일주 체험담과 공연문화 트렌드를 들려줬다.
지구 한 바퀴 돌며 세계 공연문화 접하고 온 공연기획자 유경숙

티켓링크 마케팅연구소에서 문화마케팅을 담당하던 유경숙씨(33)는 어느 날 텅 빈 사무실에서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해외 문화시장이 궁금했다고 한다. 해외 공연문화에 정통한 사람을 머릿속으로 꼽아보던 그는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자 ‘내가 직접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결혼자금 6천8백만원을 들고 뉴욕 브로드웨이로 날아갔다.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운다는 생각으로 장기 출장을 가듯 떠난 여행이었어요.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뉴욕에서 시작된 그의 공연기행은 브라질·아르헨티나·쿠바 등 중남미를 거쳐 아프리카·유럽·호주·아시아로 이어졌다. 그가 지난 1년 동안 세계 41개국, 3백여 편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지출한 공연 티켓 값만 해도 1천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그는 낮엔 다른 여행객들처럼 여행을 하고 저녁엔 공연장 투어를 다녔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들었지만 스스로 원해서 떠난 여행이니만큼 보람도 컸고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한 날, 호스텔에 방이 없었어요. 발을 동동 구르며 난감해하고 있는데 캐나다에서 온 ‘제프’라는 친구가 자기 방에 침대를 하나 더 놓아줄 테니 자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리고 몇 달 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방을 도둑 맞고 너무나 황당해서 제프에게 그 상황을 이메일로 보냈더니 때마침 스페인으로 휴가를 온 그가 달려와 밥을 사주더라고요.”
그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1년 내내 청바지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빨래는 여행자용 코인 세탁기를 이용, 밤에 빨아 아침에 입었다. 가짓수가 많은 화장품은 생략했고 비누와 샴푸는 호스텔·펜션·민박 등에서 주는 것을 썼다고 한다. 장기간 여행을 갈 때는 짐부터 줄이는 것이 그나마 힘이 덜 드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는 “회사에서 근무한 1년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지구 한 바퀴 돌며 세계 공연문화 접하고 온 공연기획자 유경숙

1 유경숙씨는 맨홀을 무대로 한 호주의 ‘언더웨어’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2 전 세계 대표 작품들이 거쳐가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3 쿠바 마탄사스에서 열린 어린이 퍼포먼스.



“베낭 메고 혼자 수많은 공연 보면서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배웠어요”
“3백 편의 공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호주의 ‘언더웨어’라는 작품이에요. 갑자기 맨바닥의 맨홀 뚜껑이 들썩이더니 배우가 맨홀 속에서 고개를 내밀며 등장하더라고요. 배우들은 맨홀 주변과 보도블록을 무대 삼아 열연을 했어요. 혼란스러운 이 시대의 모습을 우리 발 밑에 있는 지하세계에 빗대어 표현한 것인데 기발한 상상력과 신선한 아이디어에 감동했죠. 제가 공연 관계자에게 ‘공연장도 필요없고 돈도 안 들어 좋겠다’고 물었더니 그가 ‘남들은 공연장 구하러 다닐 때 우리는 온 도시의 무거운 쇠뚜껑을 죄다 열고 다녔다’고 대답하면서 웃더라고요.”
리투아니아에서 관람한 ‘인간복제’를 주제로 한 공연도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영화와 연극을 접목시킨 이 작품은 무대에 스크린이 설치돼 있고 그 속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며 관객들에게 인간복제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 관객은 자신의 생각을 O X로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는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켜 자연스럽게 작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점에 감탄을 했다고.
“저는 유명한 공연보다 거리 공연이 더 재미있었어요. ‘탱고의 고향’ 아르헨티나에서 본 거리 예술가들의 열정적인 퍼포먼스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플로리다 거리에서는 오후 2시가 되면 꼬마 악사, 댄서, 심지어 야바위꾼까지 행위예술을 보여주는데 두세 건물 간격으로 펼쳐지는 공연을 보다 보면 순식간에 주머니의 동전이 바닥나죠. 남미여행에서 가장 긴요한 건 비싼 공연 티켓이 아니라 거리 예술가들을 위한 동전이에요.”
그는 세계의 공연문화를 돌아보면서 국민소득 대비 한국의 공연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선진국일수록 소외된 계층에 대한 문화적 배려가 많다”며 “뉴욕에서는 기업의 후원으로 저소득층이 뉴욕시립오케스트라·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수준 높은 공연을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부러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술가들도 무대에 설 기회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공연장 밖으로 나가면 좋겠어요. 예술가들이 관객을 찾아 거리로 나오면 많은 것이 달라지거든요. 먼저 한산한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게 되고 그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되죠. 예술가들도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좋고 운이 좋으면 실력을 인정받아 멋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잖아요.”
그는 지난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다양한 공연 이야기를 엮어 최근 ‘카니발로드’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와 함께 우리 공연예술의 장단점 등이 유연한 시각으로 담겨 있다.
유경숙씨는 “세계 공연문화를 충분히 배우기에는 1년이라는 기간이 짧은 듯해 오는 10월 다시 유럽으로 공연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모습이 참 열정적으로 보였다.

여성동아 2008년 10월 5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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