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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Cooking essay

남편의 외박 그리고 _ 해장국

천방지축 철부지 주부 혜나의 요리 일기

기획·김민경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 ■ 글&요리·조은하 ■ 그릇협찬·정소영식기장(02-3446-6480)

2008. 09. 18

남편 회사의 사가 공모전에서 2등을 한 혜나. 상금으로 부서 사람들과 회식을 하러 간 남편은 외박을 하고, 혜나는 여느 때처럼 해장국을 끓여 아침을 차린다. 그날 오후 남편 셔츠에서 여자의 립스틱 자국을 발견한 혜나….

# 1. 서재 _ 밤
책상에 앉아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혜나.
혜나 9월 1일 월요일. 오늘부터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글쓰기의 기본은 일기니까! 이제야 나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것이 답답할 지경이다. 왜 진작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뭐, 이제라도 발견한 게 다행이긴하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혜나 여보세요. 어디야? 응, 그래. 조심해서 들어와. (전화를 끊는다.) (혼잣말 : 남편은 지금 회식 중이다. 남편 회사의 사가 공모전에서 내 글이 2등을 해 받은 상금 50만원으로 부서 사람들에게 한턱 내러 갔다.)
일기장을 덮고 일어나 방을 나서는 혜나.

등장인물
이혜나 34세. 결혼 6년차 전업주부이자 5살짜리 아들의 엄마. 쇼핑과 요리, 친구들과 맛집 탐방을 즐기는 발랄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충동구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가끔 남편과 다툼을 벌이곤 한다. 현재를 즐기면서 살자는 것이 생활신조.

김윤석 36세. 혜나의 남편. 중소기업에 다니는 성실한 회사원.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취미는 고장 난 물건 고치기. 신도시의 79㎡ 면적(24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지만 3년 후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고 있다.

김준영 5세. 혜나의 아들. 한빛유치원 산토끼반. 같은 반 여자친구 새롬이를 짝사랑한다. 새롬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정의의 기사. 무서운 엄마 말씀에 복종(?)하는 착한 어린이다.


# 2. 주방 _ 밤
냉장고에서 콩나물과 북어채를 꺼내는 혜나.
혜나 난 워낙 마음이 넓은 아내라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화내지 않는다. 남편이 사회생활 하다보면 늦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게다가 남편은 나 외에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터라 조심할 거라곤 오로지 자동차뿐이다. (미소) 잠도 안 오는데 내일 아침 준비나 해야겠다.
북어채를 물에 담그고, 콩나물을 씻는다.
혜나 술 마신 후에는 역시 북어국이 최고지. 여기에 콩나물까지 넣으면 정말 시원하단 말이야. 반찬은 뭐가 있더라… 어제 담근 고추김치밖에 없네. 음… 뭘 만들까? 갈아둔 고기가 좀 있는데 우리 그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그랑땡이나 해줄까?
냉동실에서 고기를 꺼내는 혜나.
혜나 나~ 참. 술 마시는 남편 뭐가 예쁘다고…. 하긴 이게 다~ 잘난 아내 둔 덕에 술 마시는 거니까 봐줘야지.
양파를 믹서에 가는 혜나.
혜나 난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칼질은 못하기 때문에 조리 도구를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편리한 게 있는데 왜 굳이 힘들게 칼질을 해야 하냐고! 그건 이런 물건을 발명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니까~.
볼에 여러 가지 재료를 담는 혜나.
혜나 동그랑땡은 재료를 모두 섞은 다음 잘 치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부드럽고 맛도 좋아지니까. 반죽이 다 되면 먹기 좋은 크기로 동그랗게 빚은 다음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앞뒤로 구우면 완성! 아침에 먹을 수 있게 몇 개만 미리 부쳐둬야겠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동그랑땡을 부친다.
혜나 처음엔 멋모르고 동그랑땡을 강한 불에서 부쳤더니 속은 안 익고 겉은 타서 엉망이었다.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속까지 익히는 것이 맛있는 동그랑땡을 만드는 비결! 북어가 어느 정도 불었겠지? 북어국은 냄비를 달군 뒤 참기름을 두르고 북어를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 다음 콩나물 넣고 다시 한 번 끓이면 끝. 만·들·기가 간단해 아침 식사로 딱이다!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지나 1시를 가리킨다.
혜나 1시가 지났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네. (휴대전화 단축키 1번을 눌러 전화를 건다.)
따르릉, 따르릉…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전화를 끊는 혜나.
혜나 노래방이라도 갔나? 왜 전화를 안 받아. 아~ 졸려.



남편의 외박 그리고 _ 해장국

동그랑땡
준·비·재·료두부 ½모, 양파·달걀 1개씩, 다진 돼지고기·다진 쇠고기 250g씩, 다진 마늘·다진 파·간장 2큰술씩, 설탕·참기름 1큰술씩, 깨소금 ½큰술, 소금·후춧가루·식용유 약간씩
만·들·기
1 두부는 으깨고 양파는 커터에 갈아 각각 면보에 싸 물기를 꼭 짜고, 달걀은 볼에 잘 풀어둔다.
2 다른 볼에 다진 쇠고기·돼지고기와 ①의 재료, 다진 파·마늘, 소금, 후춧가루, 간장, 설탕,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섞어 5분간 손으로 치댄다.
3 ②를 한입 크기로 동그랗게 만든 다음 살짝 눌러서 납작하게 만든다.
4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③을 올리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노릇하게 지진다.

# 3. 침실 _새벽
깜깜한 침실. 혼자 자고 있던 혜나가 손을 뻗어 옆자리를 확인한다. 아무도 없음을 알고 깜짝 놀라면서 눈을 뜨는 혜나. 침대 옆의 자명종 시계는 새벽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시계를 본 다음 벌떡 일어나 앉는 혜나. 휴대전화를 확인하지만 부재중 전화는 없다. 통화 버튼을 꾸욱~ 누르는 혜나.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다시 몇 번 전화를 해보지만 소용없는 듯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혜나. 얼굴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4. 거실 _ 새벽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혜나. 초조하게 벽시계를 보니 6시 25분이다. 수화기를 들어 112를 눌렀다가 내려놓는다. 이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혜나, 깜짝 놀라 현관 쪽으로 뛰어가고, 남편 윤석 역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현관으로 들어선다.
윤석 (놀라며) 안 잤어?
혜나 뭐야.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윤석 (시선을 피하며) 회식하다가 너무 늦어졌는데 버스가 끊겼더라고. 버스가 다닐 때까지 이 과장 집에서 한잔 더하다가 잠들어버렸어.
혜나 그럼 전화를 해야지. 전화는 왜 안 받아?
윤석 전화기가 양복 주머니에 있어서 몰랐어. 미안해… 한숨도 못 잔 거야?
혜나 (누그러지며) 자다가 깼어. 들어가서 빨리 자.
윤석 응.
방으로 들어가는 윤석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혜나.
혜나 (혼잣말 : 이그… 피곤해서 어떻게 출근하려고….)

# 5. 주방 _ 아침
감자를 믹서에 갈고 있는 혜나. 준영이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혜나 (혼잣말 : 감자전은 반찬 없을 때 5분 내에 할 수 있는 요리. 감자를 믹서에 갈아서 프라이팬에 부치기만 하면 되는데, 소화도 잘되고 맛있어서 준영이와 준영 아빠가 좋아한다.) 준영아, 아빠 식사하시라고 해.
준영 네~
준영이가 안방에 뛰어 들어가 아빠를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윤석.
윤석 (식탁 위의 반찬들을 보더니) 어! 동그랑땡이다.
혜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맴돈다.
혜나 (국그릇에 국을 푸면서) 당신 기운 내라고 특별히 끓인 해장국이야. (식탁에 국을 놓고 감자전도 부친다.)
윤석 (국을 몇 숟가락 떠먹더니) 와~ 시원하다. 오늘 무슨 날이야? 진수성찬이네.
혜나 (뿌듯한 표정으로) 날은 무슨… 빨리 먹고 출근해요. 준영아, 밥 다 먹었으면 이제 옷 입자.
준영 (일어서며) 네.
혜나 양복 꺼내놨으니까 입어요. 어제 입었던 양복, 엉망이더라.
윤석 알았어.

남편의 외박 그리고 _ 해장국

북어콩나물국
준·비·재·료 북어채 1줌, 콩나물 2줌, 참기름 ½큰술, 물 4컵, 다진 마늘 1큰술, 소금·후춧가루·실파 약간씩
만·들·기
1 북어채는 물에 5분 정도 담가 불리고, 콩나물은 물을 받아 여러 번 흔들어 씻는다.
2 달군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뒤 불린 북어를 볶다가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다.
3 ②에 콩나물을 넣고 은근하게 끓인다.
4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다.
5 그릇에 담고 실파를 3cm 정도로 썰어 얹는다.

# 6. 거실 _ 낮
청소 중인 혜나. 청소를 마치자 빨랫감을 모으기 시작한다. 어제 윤석이 입었던 와이셔츠를 빨래함에 넣으려다가 뭔가 눈에 띈 듯 다시 셔츠를 집어 드는 혜나. 셔츠 주머니에 립스틱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긴 혜나. 하지만 이내 셔츠를 세탁기에 넣고 세탁을 시작한다.
혜나 (혼잣말 : 지하철에서 묻었거나 아님 여직원과 부딪쳤겠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냐.)

# 7. 세탁소 _ 낮
드라이클리닝할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는 혜나.
혜나 8동 803호요.
주인 (양복 주머니를 확인하더니 영수증과 명함을 꺼내 혜나에게 준다.) 이거요.
혜나 아 참, 주머니 확인을 안 했네. 감사합니다.

# 8. 거리 _ 낮
영수증과 명함을 유심히 보는 혜나. 29만8천원을 결제한 동아카드 영수증과 ‘폭스 실장 김수아’라고 쓰여 있는 명함이다.
혜나 동아카드? 이런 카드를 갖고 있었나? 폭스는 뭐고, 김수아는 또 누구지? (상상한다.) 동아카드로 호기 있게 결제를 하면서 술집 마담과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는 남편 윤석. 윤석의 셔츠에 마담의 립스틱이 묻는다. 휴대전화가 울려서 보니 ‘마누라’다.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 윤석.
의심스러운 얼굴이 된 혜나.

# 9. 윤석의 회사 앞 _ 저녁
한껏 차려입었지만 초조한 표정의 혜나가 윤석을 기다리고 있다. 회사 건물에서 윤석이 남녀 직원들과 함께 나오다가 혜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윤석 당신이 여기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혜나 (애써 미소 지으며) 으응… 그냥…. (직원들 바라보며) 안녕하세요?
직원들 안녕하세요? 어제 사모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부부 사이가 대단히 좋으신가봐요….
혜나,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억지 미소만 짓는다.
직원들, 사라지고 윤석과 혜나 두 사람만 남았다.

윤석 준영이는?
혜나 옆집에 맡겼어.
윤석 빨리 집에 가자.
혜나 우리 오랜만에 외식하자. 할 얘기도 있고.
윤석 집에 가서 해. 쓸데없이 밖에서 돈 쓰지 말고.
혜나 내가 살게. 걱정 마.
윤석 사람 참….

남편의 외박 그리고 _ 해장국

고추김치
준·비·재·료 오이맛고추 20개(600g), 김칫속(채썬 무 3컵, 송송 썬 실부추 ⅓단분량, 까나리액젓·양파즙 3큰술씩, 다진 마늘 2큰술, 굵은소금·생강즙 ½큰술씩, 고춧가루 5큰술)
만·들·기
1 고추는 꼭지를 떼고 세로로 길게 칼집을 낸 다음 씨를 모두 빼낸다.
2 채썬 무채에 고춧가루와 굵은소금을 버무려둔다.
3 무에 고춧물이 들면 나머지 김칫속 재료를 넣어 골고루 섞는다.
4 고추 속에 김칫속을 꽉 채워 넣은 다음 통에 차곡차곡 담아 실온에서 하룻밤 재운 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다.

# 10. 이탈리안 레스토랑 _ 저녁
동그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메뉴를 보고 있는 윤석과 혜나.
혜나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윤석 (멀뚱멀뚱) 없는데.
혜나 (어두운 표정)
윤석 왜 그래?
혜나 (결연한 표정으로 명함과 영수증을 내민다) 이거… 뭐야?
윤석 (하나하나 살피더니) 이건 어제 결제한 영수증, 그리고 명함은… 뭐더라? 아, 우리 회사 앞에 새로 술집이 생겼는데, 사탕이랑 붙여서 주더라. 사탕은 준영이 줬어.
혜나 (당황하며) 그래? 근데 동아카드 없었잖아. 술집 가려고 몰래 만든 카드 아니야?
윤석 이 사람이 정말…. 얼마 전에 명예퇴직한 부장님 사모님이 카드사 다니시는데 하나 만들어 달래서 신청한 거야, 마침 어제 받아서 그걸로 결제한 거고…. 가입비도 없고 5년 동안 연회비도 없어. (카드를 내밀며) 당신 써. 나야 뭐 카드 쓸 일이 있나.
혜나 (조금은 마음이 풀린 표정으로) 그럼 옷에 묻은 립스틱은 뭐야?
윤석 기름값 올라서 아침에 지하철이 더 붐비잖아. 출근길에 옆에 서있던 아가씨와 부딪혀서 생긴 거야.
혜나 정말이야?
윤석 이 사람이 정말… 아침부터 와이프랑 진한 포옹이라도 했냐면서 사무실에서도 얼마나 놀림 당했는데.
혜나 (혼잣말 : 그럼 아까 부부 사이 좋다는 말이 그거였구나. 킥킥 웃는다.)
윤석 (실없다는 듯 혜나를 본다.)
혜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윤석과, 접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음식만 먹는 혜나.

# 11. 서재 _ 밤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 혜나.
혜나 9월 2일 화요일.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내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의심을 한 걸까? 우리 그인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맞다, 준영 아빠가 외박을 해서 시작된 거지. 다신 외박 못 하게 혼내주는 걸 깜빡했네. 그래도 우리 준영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인 것 같다. 당연히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


남편의 외박 그리고 _ 해장국

감자전
준·비·재·료 감자 2개, 소금·후춧가루·식용유 약간씩, 녹말가루 ½큰술
만·들·기
1 감자는 믹서에 간 다음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다.
2 ①에 녹말가루를 잘 섞는다.
3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②를 얇게 펴서 약한 불에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Tip_고추를 송송 썰어 부침개 위에 얹거나 매운맛을 좋아하면 반죽할 때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는다.



▼ 글을 쓴 조은하는... 요리전문 프리랜서. ‘여성동아’ 기자로 일했으며 한식·중식·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현재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에서 드라마 공부를 하면서 여러 매체에 음식 관련 칼럼을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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