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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키운 노민상 감독 인터뷰

“고교 중퇴 학력으로 국가대표팀 감독 된 인생역정, 착하고 순수한 제자 박태환…”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8.09.18 16:24:00

수영으로 세계를 제패한 박태환 뒤에는 10여 년간 그림자처럼 그를 뒷바라지한 스승 노민상 감독이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수영을 향한 열정과 집념으로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까지 오른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현재 박태환과 함께 중국 베이징올림픽 선수촌에 머물고 있는 노 감독은 자신의 인생역정과 오늘의 박태환을 만든 성공 신화 뒷얘기를 들려줬다.
박태환 키운 노민상 감독 인터뷰


박태환이 베이징올림픽 수영 자유형 400m 결승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순간, 놀라움과 환호로 가득찬 워터큐브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린 남자가 있다. 노민상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52). 박태환을 일곱 살 때부터 가르쳐온 그는 제자가 1등으로 터치패드를 찍는 순간,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꼭 한 번은 선진국 수영을 이기고 싶었어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린아이가, 체격조건·환경 모든 게 부족한데도 이렇게 이겨주니 그 감동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저 눈물만 나옵디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노 감독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박태환의 금메달 수상이 준 벅찬 감동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제는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제자를 그는 여전히 ‘아이’라고 불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2년 전. 당시 박태환은 천식을 앓는 초등학교 1학년생 꼬마였고, 노 감독은 수영계 주류에서 한없이 떨어져 있는 무명 지도자였다. 학창 시절 수영을 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집안사정 때문에 합숙비도 제대로 못 내다가 중퇴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주목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벌도, 배경도 없는 그는 초등학교 수영팀과 크고 작은 수영클럽 코치를 전전하며 “변방의 잡초처럼” 떠돌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지도자로 성공하고 싶었어요. 선수 때 빛을 못 봤으니, 지도자로라도 꼭 내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었죠.”
수영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는 독학을 시작했다. 영어로 된 수영 전문서적을 구해다가 한 단어 한 단어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고, 수영지도자 강습회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노 감독의 집에는 지금도 그때 그가 원서를 번역해 파일로 만든 자료가 수십권 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공부에 매달리며, 노 감독은 그렇게 조금씩 자신만의 수영지도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92년 갑자기 시련이 덮쳤다고 한다. 운전을 하다 다른 차에 들이받히면서 갈비뼈와 쇄골, 양쪽 발까지 부러지는 대형사고를 당한 것이다. 온몸을 움직일 수 없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이후에는 몇 년간 힘겨운 재활훈련을 계속해야 했다.
“간신히 다시 코치 일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태환이를 만났어요. 지도자로 일어서기 위한 모든 열정을 그 아이한테 쏟았죠. 고맙게도 잘 따라줬고요. 태환이는 재능이 있을 뿐 아니라 똑똑하고 심성이 고와서 가르치면서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노 감독이 박태환을 지도하기 시작한 뒤 훈련 일정과 장·단점 등을 꼼꼼히 기록해 만든 분석 일지는 수천장이 넘는다. 그는 ‘민감한 화초’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제자에게 적합한 지도방법을 만들기 위해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체벌과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았고, 꾸중할 일이 있을 때는 몰아서 한 번에 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수영장에서 선수를 독려할 때 호루라기를 불지만, 노 감독은 자극적이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꼭 육성을 사용했다.
박태환 키운 노민상 감독 인터뷰

“50m를 27초 01로 들어오면 ‘야, 잘했다. 27초 벽 깼어. 26초 99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선수는 용기를 내서 실제로 그 기록을 냅니다. 그렇게 아이를 북돋워주고, 더 잘하게 돕는 게 지도자죠.”
박태환 등 그가 길러낸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노 감독은 2006년 8월 캐나다에서 열린 팬 퍼시픽 챔피언십을 앞두고 국가대표 수영팀 사령탑을 맡았다. 고교 중퇴 학력자가 대표팀 감독이 된 건 처음이라 수영계 안팎에서 자질 논란이 일었지만 박태환이 팬 퍼시픽 대회에서 금메달 2개·은메달 1개를 따내고, 12월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3개를 포함해 총 7개의 메달을 따자 그를 둘러싼 의심의 시선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박태환이 노 감독과 결별을 선언한 것. 박태환은 선수촌을 나가 개인 훈련에 들어갔고, 노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태릉에 남았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아시안게임 결과가 나빴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따로 하고 싶다고 해서 많이 놀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10년 넘게 가르친 아이한테 서운한 마음이 오래가겠습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 제자 이기는 스승도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잘 키운 딸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그저 아이가 잘되기만 빌었습니다.”
그러나 박태환의 개인 훈련은 순조롭지 못했고, 14개월 만인 지난 2월 다시 노 감독에게 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왜 떠났는지, 그리고 왜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순수하고 속 깊은 아이’가 그동안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림픽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어요. 다시 시작하기 전에 서로 약속을 하나씩 하자고 했죠. 태환이한테는 최대한 빨리 예전의 몸을 만들라고 했고, 저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정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어요.”

“수영 천재 태환이는 아들 같은 제자, 재능 마음껏 펼치도록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요”
박태환은 이후 5개월여 동안 태릉선수촌에 머물며 외박을 단 두 번만 나갔을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을 때 노 감독 앞에서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 감독이 먼저 눈물을 훔치던 손을 들어 어린 제자를 끌어 안고 “장하다. 대견하다”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지금 두 사람은 올림픽 경기 일정을 모두 마친 뒤 8월24일 폐막 때까지 선수촌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태환이를 푹 쉬게 해주려고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선생님한테 얘기해야 한다’고 말해뒀어요.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제가 책임지고 돌봐줘야죠. 그래서 금메달 딴 뒤로도 제가 술을 안 마십니다.”
노 감독은 키가 자신보다 한 뼘 넘게 큰, 이제는 실력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아직도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중에 몇 번이나 “올림픽이 끝난 뒤 아이의 고운 심성이 망가질까봐 걱정이다. 주위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기만 하면 태환이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실력이 무한한 아이”라는 말도 했다.
내내 제자 걱정만 하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처음으로 가족 얘기를 꺼냈다. “평생 수영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못했는데도 늘 믿고 격려해준 아내와 두 딸에게 고맙다”는 것이다.
“이번에 태환이가 금메달을 딴 덕분에 저도 포상금 8천만원을 받게 됐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 돈은 같이 고생한 코칭스태프들과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사실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말하지는 못했는데 먼저 그렇게 얘기해주니 참 고마웠어요. 지금 우리집 대출금이 1억원이 넘어요. 요즘 금리도 많이 올라서 집사람이 참 힘들 텐데 그런 내색을 안 합니다. 한국 가면 가장 먼저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얘기할 겁니다.”

여성동아 2008년 9월 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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