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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프라이버시 인터뷰

‘45년 배우인생 & 무대 밖에서의 삶’ 연극배우 손숙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09.17 11:58:00

올해로 데뷔 45주년을 맞는 연극배우 손숙이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를 그린 연극 ‘잘 자요, 엄마’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른다. 이 연극을 하면서 이미 고인이 된 자신의 어머니와 호주에 살고 있는 세 딸이 떠올랐다는 그에게 배우,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45년 배우인생 & 무대 밖에서의 삶’ 연극배우  손숙

8월 중순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손숙(64)의 가방은 묵직했다. 두툼한 연극대본과 스프링노트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자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지만 자신의 대사만 따로 정리한 스프링노트를 만지는 그의 손은 예민해져 있었다. 인터뷰 도중 “한번 대사를 맞춰보자”고 조르는 후배들의 전화가 걸려오자 “으이그~ 매일 나를 들들 볶는 이 독종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는 “이 나이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며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는 무대보다 연습실을 더 좋아해요. 치열하게 캐릭터를 분석하고 상대배우와 얘기하며 동선을 맞추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가거든요. 거기 있는 동안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도통 관심이 없어요. 그러고 보면 저는 타고난 연극쟁이인 것 같아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 반대 무릅쓰고 연기 시작
올해는 그가 연극무대에 데뷔한 지 45년째 되는 해다. 그동안 ‘어머니’‘셜리 발렌타인’‘신의 아그네스’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온 그는 “평소에는 수줍음이 많아 남 앞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꿉친구들이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어릴 때는 낯가림이 무척 심한 아이였거든요.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나와서 노래 부르라고 하면 울기부터 했으니까요.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온갖 여우짓을 다 했어요. 온종일 거울을 보면서 놀았죠.”
학창시절 그는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밖에서 놀기보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미국 유명 희곡작가인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본 뒤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전국고교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교내 연극팀의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조금씩 연극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대학교 1학년이던 63년, 운 좋게도 개교기념 합동공연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처음 무대에 올랐다고.
“어머니가 ‘딴따라는 용납할 수 없다’며 말리셨지만 그때는 이미 푹 빠져버린 뒤였어요. 연극은 제게 가슴 깊숙이 자리한 응어리를 쏟아낼 분출구였기에 그만둘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완고한 경상도 종갓집에서 자라면서 짓눌렸던 자유를 분출하는 방법이었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는 대학 3학년 때 결혼하면서 학교를 중퇴했고, 그렇게 좋아하던 연극도 그만뒀다. 그로부터 2~3년 뒤,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던 그는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이후 1년에 한두 편 이상 꾸준히 출연하며 연극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에게 연극은 자아실현보다는 생존의 수단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사실 45년 동안 연극에 변함없이 애정을 쏟은 건 아니었어요. 한때는 연극에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열정이 조금씩 무뎌지더라고요. 배우라는 자부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초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거든요. 연기만 하기도 벅찬데 공연을 앞두고 늘 ‘오늘은 객석이 얼마나 찰까’ ‘이번 공연 티켓은 누구에게 팔아야 할까’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어요. 지인들에게 티켓을 들고 가면 농담 삼아 ‘선생님, 또 하세요?’ 하고 묻곤 했는데, 그런 말이 상처가 되기도 했죠.”
이런 문제로 갈등하던 그는 한동안 대학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무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그러는 동안 그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라디오 DJ로 활동하면서 성공한 여성 사회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로 남편과 별거하고, 지난 99년에는 환경부장관에 취임했다가 한 달 만에 물러난 것. 그런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연극이었다. 오랫동안 그와 알고 지낸 연극인들은 “배우는 극장에 있어야 한다. 빨리 무대로 돌아오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연극이 있어 인생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극을 다시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상적으로 살기 어려웠을 거예요. 수익을 따져 공연을 기획하고 표를 팔면서 자존심이 상한 이유도 돌이켜보면 연극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8월29일부터 연극열전 여덟 번째 작품인 ‘잘 자요, 엄마’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른다. 자살하려는 딸과 이를 막으려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잘 자요, 엄마’는 그가 10여 년 전에도 출연했던 작품. 그는 “이 작품만큼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는데 덜컥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극중 인물에 빠져들수록 몸이 아프고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죠?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그때 일을 까맣게 잊고 수락했으니 말이에요. 그만큼 제가 이 작품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며칠 전에는 후배와 새벽 3시까지 연습했는데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행복했어요.”

‘45년 배우인생 & 무대 밖에서의 삶’ 연극배우  손숙

그는 ‘잘 자요, 엄마’에서 엄마 ‘델마’를 연기하면서 94년 작고한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결혼한 뒤 호주에 살고 있는 세 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고 한다.
“‘가족이니까 서로의 모든 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하지 않다 보면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되고 그로 인해 가족 간 단절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부족한 엄마예요. 엄격하고 무뚝뚝했던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저 역시 세 딸에게 무뚝뚝한 편이죠. 이 연극을 하면서 ‘내 딸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반성했어요.”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겉으로는 자식들을 서릿발처럼 엄하게 대했지만 속정이 깊으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딸이 배우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공연을 거의 보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레가 많던 딸이 공연을 하다가 쓰러질까봐 말없이 몸에 좋은 약을 챙겨 보냈다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제 딸들에게 ‘너희 엄마, 밥은 먹고 나갔니?’ 하고 물으셨대요. 어머니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했는데도 어머니는 묵묵히 저를 지켜보고 걱정하셨어요.”
그는 요즘도 삶에 지칠 때마다 ‘엄마!’ 하고 소리내 부른다고 한다. 그 단어만으로도 마음의 평온을 얻기 때문인데, 그러다가도 금세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울음을 터뜨린다고. 그는 “어머니는 내게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딸들이 전화를 게을리 하면 섭섭해하다가도 ‘내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래, 당해도 싸다’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요(웃음). 딸들과의 대화는 대개 ‘밥은 먹었니? 건강은 어떠니? 그럼 됐다’ 이런 식이에요. 아이들도 그런 저를 닮아서인지 ‘사랑한다’ ‘보고 싶다’ 같은 살가운 표현을 잘 안 하죠.”
그는 마음 한곳 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일하기에 바빠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그런 제 삶을 이해해줬고 오히려 활동적인 모습이 자랑스럽다면서 응원해줬어요. 큰아이는 몇 년 전 제가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을 때 무대 위로 올라와 ‘어릴 때는 엄마가 집에 없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일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킨 것 같아 고맙다’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아이들의 보호자였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내 보호자가 됐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하고 고마웠어요.”
그에게 쓸쓸하지 않냐고 물으니 “남편과 살아도, 부모와 지내도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외로움을 잠시 잊을 수 있겠지만 등을 돌리면 더 큰 외로움이 다가온다”고 대답했다.
“혼자 지내는 제가 마음에 놓이지 않는지, 딸들이 호주로 오라고 잔소리해요.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말만 ‘그래, 알았다’ 할 뿐이죠. 저는 나이 들어서도 아이들과 함께 살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제 삶을 누리다가 소리 없이 떠나는 게 엄마로서의 마지막 바람이에요.”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면 은퇴 공연 없이 조용히 떠나고 싶어요”
매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방송에서 얘기하면 좋은 새로운 얘깃거리가 있는지 살피며 신문을 꼼꼼히 읽는다고. “‘오늘의 운세’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다”는 그는 운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러 신문의 운세를 보고 가장 기분 좋은 내용을 믿는다고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9시부터 2시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행복의 나라로’를 진행한 뒤 곧바로 대학로 연습실로 와 공연 준비를 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름다운 가게’와 지난해부터 시작한 결혼정보회사 일도 거들고요.”
2002년부터 기증품 판매수익으로 자선사업을 벌이는 재활용품 전문매장 ‘아름다운 가게’의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는 그는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생활하고, 되도록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어떤 방법으로 갚아야 할까 고민할 무렵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를 제의받았는데, 이 일이야말로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나누고 싶은데 가진 게 없다고 고민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잡고 ‘잘될 거야’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도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의 프로그램도, 기념사진도 간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버리지 않으면 추한 노인이 된다”는 그는 “관객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2~3년 전부터는 체력적인 한계를 느껴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죠. 스승인 이해랑 선생님은 제게 ‘공연 끝나면 배우는 사라져야 한다. 관객에게 구질구질한 뒷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만약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은퇴 공연 없이 조용히 떠날 거예요. 벤치에 앉아 마음껏 쉬고,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여유롭게 책도 읽으면서 살고 싶어요.”

여성동아 2008년 9월 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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