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중, Natural Being(原本自然圖)7-47, 160×13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7
얼마 전 해외지사로 파견 나가는 남성을 위한 송별연에 참석했다. 식사를 한 뒤에 간 곳은 룸살롱.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데다 나 같은 아줌마를 룸살롱에 데려갈 사람도 거의 없는 형편이라 주최 측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이제 외국 가면 몇 년 동안 못 보는데…”라며 슬쩍 묻어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호스티스’란 직업의 여성을 많이 봤지만 그날 만난 ‘호스티스’라는 명칭의 여성들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미장원에서 다듬고 나온 흔적이 역력한 헤어스타일, 야하고 노출이 심한 의상, 짙고 도발적인 화장을 했으리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그녀들의 컨셉트는 청순함과 자연미였다. 물론 눈썰미가 좋지 않은 남성들의 눈에는 거의 ‘쌩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두 시간은 정성들인 물광 화장법이었고, 마냥 단정해 보이는 스커트가 사실은 옆트임이 심해 다리를 꼬고 앉으면 아슬아슬하게 속옷이 보이기도 했다. 헤어스타일 역시 왁스나 헤어스프레이를 거의 쓰지 않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라 여자인 나도 만져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수시로 립글로스를 발랐다. 나중에 물어보니 고객이 장난으로 뽀뽀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서울 청담동이나 여대 근처에서 흔히 보는 속치마처럼 노출이 심한 옷에 화장을 진하게 한 여성, 카페건 지하철이건 남자친구와 스킨십을 하는 미혼여성들에 비해 소위 유흥업소 종사자들이란 그녀들이 겉보기엔 훨씬 조신해 보였다.
딸 또래 여성들이 물장사로 돈 버는 모습에 입맛 써
실상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안주가 나오면 접시에 담아 고객 앞자리에 놓아 주거나 술잔이 비면 따르는 것 정도. 그것도 아주 예쁘고 어린 호스티스에겐 오히려 남성고객이 애교를 떨며 음식을 먹여주기도 하고, 손 한번 잡으면서도 황송해했다. 인기가 많은 호스티스는 절대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고 수시로 이방 저 방을 순회 공연했다. 그런데 남성들은 왜 비싼 돈 주고 이런 곳에 와서 별로 서비스도 해주지 않는 여성들에게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걸까. 그 여성들에게 주는 팁을 마누라에게 주면 당장 반찬이 달라질 텐데. 이젠 조카가 아니라 내 딸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여성들이 이런 장소에 나와 쉽게 돈을 벌고, 나이 든 아저씨들과 난해한 시간을 갖는 장면을 보며 입맛이 썼다.
잠시 후, ‘마담’이란 여성이 한 호스티스를 데려왔다. 그리곤 마치 크리스티 경매장이나 옥션에 나온 고가품을 설명하는 듯한 자세로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오늘 처음 우리 업소에 나오는 거예요. 우리 업소는 물론이고, 이런 술집 출입이 처음이래요. 잔뜩 긴장해 있으니까 사장님들께서 따뜻하게 배려해주세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남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꽁치구이와 묵은 김치로 차려진 식탁에 싱싱한 활어회가 나타났을 때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리곤 저마다 그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질문을 퍼부었다. 이름이 뭐냐, 내가 예쁜 가명을 지어주겠다, 대학생이냐, 여긴 왜 나왔냐 등등.
그런데 정말 처음 출근(?)해서 어리어리한 건지 혹은 순진한 모습으로 설정하고 연기를 하는 것인지 그 여성은 너무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느끼한 아저씨들과 엉뚱한 이 아줌마의 눈빛과 질문을 받아내며 약간 어눌한 말투로 답변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등록금을 벌기 위해 나왔다, 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는 언니가 소개했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지킬 의지만 있으면 고소득이라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그런 자리에선 돋보이는 아가씨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30년 가까이 유흥업소 고객 생활을 해왔다는 유흥업계의 달인인 한 중년남성이 그 새내기(?) 호스티스를 향해 “너 이게 진짜 모습이라면 앞으로 큰돈 벌겠다”라고 했다. 너무 신선하고 순진해보여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설명이다. 그 남성 외에도 그 자리의 모든 아저씨가 자신들이 그 여성의 첫 손님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너무 흐뭇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들이 역겹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화장실 가는 척하며 자리를 떠났다.
며칠 후 그날 참석했던 남성 중 한 명과 통화를 하며 “그날 왜 다른 예쁜 호스티스도 많은데 처음 나왔다는 아가씨에게 모든 이들의 관심이 쏠렸냐”고 물으니 “그게 남자들의 특성”이라고 답했다.
“남자들은 무조건 새로운 대상, 이왕이면 젊고 신선한 것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여자들은 남자의 마지막 여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남자들은 자기가 그 여성의 첫 남자이길 기대하죠. 열렬한 연애 끝에 훌륭한 아내와 결혼한 남자들도 자기 부인보다 안 예쁘고 성격이 나빠도 더 젊고 싱싱하다는 이유로 외도를 해요. 남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동차의 기종이 아니라 연식이거든요. 똑똑한 여자보다 예쁜 여자에 끌리고 예쁜 여자보다 젊은 여자에게 눈이 가는 겁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의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영국 신문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여자만 선호하는 할리우드의 나이차별주의를 성토했다. 요한슨은 할리우드 영화가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남성은 성취를 더해가는 데 비해 여성은 시들어가고 여배우에 대해 ‘전성기를 지났다’ ‘섹스 심벌 역은 맡을 수 없다’는 말들이 흔히 오간다”며 젊은 여성만 선호하는 이 같은 선입견이 특히 영화산업에 팽배해 있다고 비판했다. 67세인 페이 더너웨이도 최근 “내가 너무 늙어서 잭 니콜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인 역을 할 수 없다는 할리우드 사람들 생각에 너무 화가 난다”며 “나보다 더 나이 많은 니콜슨이나 이스트우드가 자기 나이 절반밖에 안되는 젊은 여배우의 상대역으로 나오는데 왜 나는 언니나 엄마 역만 맡아야 하냐”고 푸념했다. 심지어 15세 연하의 꽃미남 남편과 사는 45세의 데미 무어도 “할리우드에서는 40세가 넘은 여배우에게는 좋은 배역이 별로 없고,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외에 비중 있는 역할이 없다”고 말했다.
매일 매일 내게 새롭게 찾아온 날들에 감사하며 행복 느끼는 것이 신선한 삶의 비결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능력 있고 부유한 남자들의 본부인 자리를 뺏은 젊은 여성들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보다 더 어리고 예쁜 여성들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젊음도 세월 앞에선 무릎을 꿇고, 미모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젊음과 신선함이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할아버지는 “내 아내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뭔가 항상 새로운 걸 배우며 행복해해서 40년간 살았어도 지루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며 자랑했다.
군내 나는 김장김치나 꽁치구이 취급을 하는 남편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성형수술을 할 필요도 없다. 매일 매일 내게 새롭게 찾아온 날들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남편에겐 더 근사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항상 젊고 새로운 대상을 찾겠지만 그럴 때는 “설익은 과일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다”거나 여자 잘못 만나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은근히 전해주면 된다. 하긴 우리 여자들 역시 나이 들면 중후한 남자보다는 젊고 싱싱한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가. 장동건보다 조금 더 젊은 조인성에게로 마음이 옮아가듯….
※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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