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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와인과 인생

와인 소재 소설 펴낸 주부 작가 김경원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장소협찬·비노 플라워

2008. 08. 22

마니아를 중심으로 와인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이 나와 눈길을 끈다. ‘와인이 있는 침대’를 통해 “사랑은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와인의 속성과 닮았다”고 말하는 김경원 작가를 만나 와인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와인 소재 소설 펴낸 주부 작가 김경원

김경원 작가는 와인과 사랑, 소설쓰기는 긴 숙성과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첫눈을 기다리는 동안은 붉은 보랏빛 보졸레 누보를, 키스할 때는 달콤한 옐로테일을, 샤워를 하고 나서는 상큼한 사모스 쿠르타키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때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불멸의 와인 마데이라를 마시세요.”
와인을 소재로 한 소설 ‘와인이 있는 침대’를 펴낸 작가 김경원씨(46). 그는 이 소설에서 와인과 함께 찾아든 한 남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안착하려는 서른세 살 독신녀의 감정과 욕망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어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한 뒤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소설을 공부하는 모임에 나가면서 습작을 계속했지만 글을 쓰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서울 토박이인 그는 펀드매니저인 남편이 대구로 발령을 받자 97년 함께 대구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두 개의 시선’이 당선되면서 등단을 한 것. 그런 그가 와인을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부로 살면서 소설을 쓰다 보면 간접경험의 한계를 느끼곤 해요. 그래서 가능한 한 여행을 자주 다니려고 하죠. 10년 전 오랫동안 벼르던 유럽여행을 갔어요. 마지막으로 들른 여행지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였는데, 그곳 바티아니 광장 2층 카페에서 와인을 마시다 문득 어두운 지하창고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숙성된 와인의 고독한 시간들이 마음 깊숙이 전해져오더군요.”
그는 그 순간 와인과 사랑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둘 다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도 ‘쿨함’을 미덕으로 여기며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진정한 사랑은 와인처럼 어두운 지하창고에서 오랫동안 발효돼야 하며, 기다림도 사랑의 시간이며, 사랑은 믿는 자에게만 찾아오며, 사랑하지 않는 시간은 의미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유럽 여행 중 영감 얻어 5년 동안 와인 공부하며 집필 준비했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와인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와인 숍,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작업만 꼬박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그 5년이 “와인처럼 작품을 숙성시키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던 그는 와인 애호가이자 전문가가 됐다. 그는 처음에는 샴페인처럼 가벼운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점차 중후한 맛의 와인을 즐기게 됐다고 한다. 준비작업을 거쳐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탈고했다고.

와인 소재 소설 펴낸 주부 작가 김경원

“주변에서 왜 와인이 있는 ‘식탁’이 아닌 ‘침대’냐고 묻더군요. 침대에서 어떤 성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나봐요. 침대는 야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안식처’라고 생각해요. 그 안식처에서 마시는 와인이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있죠.”
그는 “무엇보다 와인은 ‘사랑을 위한 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은 곧 마음이고, 와인은 이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마법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로 친구들이나 동료 문인들과 함께 와인을 마신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을 탈고한 날처럼 특별한 날에는 혼자 마시기도 한다고. 중년에 접어들면서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데 자신에게는 와인이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에겐 샴페인이나 프랑스산 메독을 권하고 싶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소설에도 등장하는 에스쿠도 로호와 몬테스 알파엠이에요. 둘 다 루비색의 칠레 와인이죠. 에스쿠도 로호는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는 듯해서 처음에는 어떤 맛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다 두 번째 잔부터는 산뜻한 바닐라 향을 맡을 수 있죠. 에스쿠도 로호에 끌린 건 병에 붙은 붉은 라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몬테스 알파엠은 특히 여성이 마시기 좋은 와인이에요. 혀끝에서 과일 향기가 느껴지다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는 매운 후추향이 나죠.”
그는 이 세상에 ‘좋은’ 와인이란 없다고 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은 향수나 꽃향기처럼 “분위기며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와인이든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마시면 좋은 와인이 되죠. 더군다나 와인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잖아요.”
김 작가는 2년 전 외아들이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와인과 소설에 더 애착을 갖게 됐다고 한다.
“소설 쓰기도 와인과 사랑처럼 긴 인내를 요구해요. 그 과정이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제 소설은 제게 있어 ‘선택’이 아닌 ‘운명’이 된 것 같아요. 책을 낸 이후에 여러 가지 일로 바빴는데, 이제 마음을 정리하고 쓰던 소설을 잘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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