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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사랑

국내 최초로 방송 통해 공개 결혼식 올린 동성부부 나유정·김경준

글·김유림 기자/사진·장승윤 기자

2008. 07. 18

얼마 전 케이블방송 tvN ‘커밍아웃’에서 동성애자 커플이 결혼식을 올려 화제다. 온라인 ‘게이동거’ 사이트에서 처음 만나 1년간 동거하다가 결혼식을 올린 나유정·김경준 커플의 남다른 러브스토리를 취재했다.

국내 최초로 방송 통해 공개 결혼식 올린 동성부부 나유정·김경준


초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울 삼청공원. 멀리서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공원 정문으로 걸어왔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연인 사이 같지만 이들은 남녀가 아닌 ‘남남(男男)’ 커플. ‘꽃미남 게이’ 나유정씨(20)와 그의 애인 김경준씨(25·가명)는 지난 5월 말 케이블방송 tvN ‘커밍아웃’을 통해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조차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게이들의 모습이 대체로 우울하게 비춰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경준씨는 “주위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다 알기 때문에 굳이 커밍아웃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방송을 통해 게이들도 가정을 꾸리고 한곳에 정착해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1년 전 인터넷 ‘게이동거’ 사이트를 통해서다. 당시 두 사람은 각자 동거 중인 애인이 있었는데, 오프라인 모임에서 몇 번의 만남을 가진 뒤 서로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나씨의 집에 놀러가 고민을 들어주고 인생 상담을 해주던 중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동안 숨겨왔던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됐다고.
“당시 각자 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헤어지고 새로 만난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둘 다 ‘이제야 제 짝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로 했죠. 어쩌면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처음 모임에서 형을 봤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국내 최초로 방송 통해 공개 결혼식 올린 동성부부 나유정·김경준


“책임감 있는 사랑 위해서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두 사람 중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김씨다. 김씨는 현재 학생들에게 과외수업을 하고 있다. 그는 “만약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부모들이 더 이상 내게 아이들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며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나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현재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집안일이 서툴러 김씨가 식사 준비며 청소 등 대부분의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회원수는 70명. 즉 35쌍의 게이 커플이 가입돼 있는데, 연애기간이 일반 커플보다 짧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짧게는 5~6년, 길게는 수십 년 동거를 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심지어 나이가 예순이 넘은 커플도 있다고. 나씨는 “동성애자 가운데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커플도 많다”고 말했다.
나유정·김경준 커플이 동거에 그치지 않고 부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또한 서로의 사랑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나씨에게 “그래도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나이 들어서, 할 때 돼서 하는 것보다 어리지만 마음이 확고할 때 하는 게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 방송을 통해 결혼식을 제안 받았을 때는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칫하면 자신들의 결혼이 시청자들에게 오락거리 정도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한편 결혼을 두고 고민하는 나씨의 모습을 지켜본 김씨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유정이가 저보다 어리지만 생각은 더 깊은 것 같아요. 유정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왜 결혼은 다른 녀석과 하게?’ 하고 빈정거렸거든요. 막상 촬영을 끝내고 나니까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저처럼 신분이 노출될까봐 결혼식에 못 오신 분이 많거든요. 나중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요.”
남남 커플의 신혼은 어떤 풍경일까. 김씨는 “일반 연인과 다를 바 없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게이들은 섹스만을 위해 만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육체적인 관계보다는 정신적인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연인관계에 비춰보면 나씨가 여자 역할을, 김씨가 남자 역할을 맡고 있다고.
“평소 성정체성에 대해 떳떳하게 말하는 편인데, 남자한테는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아요. 게이라고 하면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심지어 ‘나와 자고 싶냐’고 묻는 남자들도 있어요. 게이라고 해서 남자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저희들도 이상형이 있고, 느낌이 통해야 연애를 하죠.”(나유정)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린 결정적인 요인은 사고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껏 성소수자로 살아오면서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과 푸대접을 받았지만 두 사람 모두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그동안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김씨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성적취향 또한 똑같을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예술적 감수성 또한 비슷하다고 한다. 나씨는 음악을, 김씨는 문학을 좋아하는데, 나씨의 꿈은 뮤지션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김씨는 유도 공인 5단으로 고등학생 시절 몸무게가 125kg까지 나갔을 정도로 건장한 체구를 자랑했다고 한다. 남성미 물씬 풍기는 외모 때문에 당시 아무도 그의 성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그는 자신이 게이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매번 짝사랑의 대상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던 것. 그러다 중3 때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성향을 지닌 같은 반 친구를 만나 확실히 자신이 게이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한 게이 카페에 가입을 했고 마침 여름방학이어서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으로 MT를 갔어요. 그전까지는 온라인상에서만 활동하다가 ‘한번 몸으로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모임에 나갔죠. 그런데 그 자리에 같은 반 친구가 나와 있었어요. 서로 깜짝 놀랐죠. 설마 같은 반 친구가 나와 같은 성향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날 MT는 다소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제법 나이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 그의 짝에게 노골적으로 구애를 했던 것. 순간 기분이 몹시 상한 그는 그 자리에서 친구를 끌고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3년 동안 연인 사이를 유지했다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이사를 가게 됐는데, 저는 그 친구 때문에 안가겠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재혼하셔서 새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제가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날부터 자연스럽게 집에서 내놓은 자식이 됐어요. 그 친구도 아버지와 둘이 살았는데 아버지가 해외출장이 잦은 분이어서 거의 함께 지낸 날이 많았죠.”

국내 최초로 방송 통해 공개 결혼식 올린 동성부부 나유정·김경준

두 사람은 지금껏 성소수자로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삶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부모님께 저희 관계 밝힌 뒤 외면받았지만 원망하지 않아요”
첫경험의 기억을 묻자 김씨는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믿더라도 첫경험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 90%는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간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게이가 되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나씨는 스스로 타고난 게이라 믿고 있다. 그는 “일곱 살 정도 됐을 무렵, 부모님이 성교육 명목으로 성인 포르노를 보여줬는데 당시 남자와 여자 중 여자가 부럽더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고1 때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혼자 살아온 그는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는데,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빨리 돈을 모아 음악학원에 다니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자퇴를 했다고.
현재 양가 부모 모두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얼마 전 모처럼 새어머니와 만나는 자리에 나씨를 데리고 나갔는데, 김씨의 새어머니가 두 사람을 보자마자 “너희 게이지?”라고 먼저 물었다고. “맞다”고 대답하자 새어머니는 곧 자리를 떴으며 그 후로 아버지와도 연락을 끊게 됐다고 한다.
나씨 또한 부모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꽤 오래 됐다. 부모가 이혼한 뒤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가 새 가정을 꾸리면서 잠시 아버지 측으로 옮겨갔고, 그곳 또한 사정이 여의치 않자 결국 혼자 살게 됐던 것. 그는 몇 년 전 아버지와 헤어지고 난 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아버지가 잘해주셨어요. 하지만 이때 아니면 얘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저 게이에요. 만약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저를 버리셔도 돼요’ 하고 말했어요. 아버지는 한참을 아무 말씀 안 하시다가 결국 뒤돌아서 가시더라고요.”
외국의 경우 게이 부부가 자녀를 입양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두 사람은 아이 얘기가 나오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씨는 “이 땅에서 아빠만 둘인 가정의 아이가 과연 환대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 더욱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겠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주위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동성애자들이 있다”며 “이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결혼할 경우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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