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낮의 태양이 그리 뜨겁지 않다면 난 가로수길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길 원한다.
때론 그녀가 좋아하는 루이보스차나 맛있는 허브티를 뺏어 마시는 것을 즐긴다.
난 오로지 아메리카노! 이유는 리필이 가능하기 때문에? ㅋ
작은 카페들 , 남자도 탐나는 작은 옷가게들 , 아기자기하고 패셔너블한 진열장의 갖가지들.
그리 긴 길도 아니고 성의 없이 지나가면 별거 없는 작은거리 ‘가로수길’,
이곳은 여자의 거리다.
여자가 좋아서 가로수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그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야구장을 가보았는가?
난 올 시즌 가장 많이 야구장을 갔다. 그녀와 함께.
3년 전 야구 보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이젠 그녀의 다이어리에 우리가 좋아하는 곰팀의 홈경기 일정을 적어두고 있다.
난 인생을 야구에서 배운다. 한 사람의 인생은 9회까지다.
초반에 점수를 얻는다면 끝까지 지키기 어렵다.
작은 점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유니폼은 걸레가 된다.
그리고 중반 이후는 점수를 얻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다.
9회까지 3번의 찬스는 어김없이 온다. 3번의 위기 역시 찾아온다.
그 위기를 넘기면 다음 이닝에 점수가 발생하는 징크스는 거의 틀린 적이 없다.
난 그녀와 야구장을 또 찾아왔다.
인생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과 평소엔 쳐다도 안 보는 스낵류의 군것질거리들…
그것마저도 즐겁다.
올 시즌 곰팀의 홈경기 관전 승률은 100%다. 거의 10경기 정도 되는데 모두 승이다.
지고 있던 경기에 내가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동점홈런이 터져나온다.
곰팀의 스태프들도 모두 인정한다.
경기가 지고 있을 땐 문자도 오는 경우가 있다. “형님 와주셔야겠는데요.”
그것은 나의 행운이라기보다 행운의 여신이 내 옆에 있기 때문 아닐까?
※ 이병진은… 92년 데뷔한 뒤 느릿느릿한 말투와 촌철살인의 개그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방송인.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무대디자이너, 방송작가 등 여러 직업을 거쳤으며 예술적 감수성과 사진 실력이 뛰어나다. 2006년 포토에세이집 ‘찰나의 외면’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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