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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용기 있는 선택

TV 프로그램 통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김지후

글·김명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8. 06. 20

케이블 채널 tvN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김지후씨. 한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그가 당당히 세상에 나오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TV 프로그램 통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김지후

김지후씨(23)는 오페라 ‘투란도트’, 뮤지컬 ‘라이어’ ‘미녀와 야수’ 등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 배우 지망생이다. 팥차 다이어트로 40kg을 감량한 그는 올 초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그 비법을 공개한 후 한때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요즘도 하루 수백 명이 그의 미니홈피를 찾는다.
당초 그가 케이블 채널 tvN ‘커밍아웃’ 팀을 찾은 것은 재연배우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작진과 상의 끝에 결국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결심했다고.
“제가 게이라고 하니까 스태프 모두 깜짝 놀라며 ‘장난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게이’ 하면 대부분 여성스러운 말투, 옷차림 등을 떠올리지만 대부분의 게이는 실제 그렇지 않아요. 지극히 평범하죠. 게이 인구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서울 종로에 있는 게이 바만 3백 개가 넘을 정도니까요.”
방송인을 꿈꾸는 만큼 이미지 관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이라는 사실이 방송활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불이익을 받을 우려도 있기 때문. 이에 대해 김씨는 “거짓말하며 불편한 삶을 사느냐,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나 자신에게 솔직한 길을 택하느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만약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배우로 성공해도 늘 아우팅(타인에 의해 강제로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여자친구는 있느냐’ 같은 질문에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사느니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고 한다. 전학 간 학교에서 첫사랑을 만난 것.
“그전까지는 한 번도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요.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여자친구가 많기는 했지만 이성으로서의 끌림을 느끼지 못했죠. 제가 중학교 때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으로 세상이 떠들썩했고 그것을 계기로 제 성 정체성을 막연히 알게 됐죠. 동성애자임을 확실하게 깨달은 건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만나면서부터예요. 여자가 가까이 오면 부담스럽고 심지어 싫기까지 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행복했어요. 그런데 남자 둘이 늘 손을 잡고 다니고 화장실까지 같이 다니니까 학교에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군요.”

고등학교 때 첫사랑 겪으며 성 정체성 알게 돼
TV 프로그램 통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김지후

이후 그와 친구는 순식간에 학교에서‘괴물’이 돼버렸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구의 부모는 두 사람을 떼놓기 위해 호주 이민을 선택했다. 고민을 나누던 유일한 친구가 떠나자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이 무렵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급격히 체중이 불었다고.
“자녀가 커밍아웃을 할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당황하고 화를 내다가 그다음에는‘그래 이해는 하겠는데 그냥 참고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면 안 되겠냐’고 하시죠.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동성애자가 심경의 변화로 이성애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친구의 부모와 달리, 다행히 그의 가족은 비교적 담담히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어렵게 집안을 꾸려오셨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의외로 놀라지 않으시더라고요.‘엄마가 먹고살기 힘들어 나를 포기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웃음). 사실은 어머니가 굉장히 개방적인 분이세요. 외할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하셨고 저와 여동생을 키우면서 단 한번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아침에 학교 가라고 깨운 적도 없고, 학교 준비물 챙겨주신 적도 없죠. 모든 것을 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게 맡겨주셨어요.”
그런 그의 어머니도 아들이 방송을 통해 커밍아웃을 한 뒤 적잖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친지들로부터 “아들이 진짜 동성애자 맞느냐” “창피하다”라는 내용의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에 그는 이 정도의 고통은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그의 미니홈피에는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쪽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성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점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친구나 선생님에게 말하면 금방 소문이 날 게 뻔하고, 가족들에게 말하면 묵살당하거나 정신병원에 보내질 것 같고, 홍석천씨는 연예인이니까 바쁠 것 같고…(웃음). 외로움이 쌓이다 보면 비뚤어지거나 자살까지 생각할 수도 있어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죠. 물론 쪽지를 보내는 청소년 가운데는 진짜 동성애자가 아니면서 멋모르고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는 현실을 제대로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하고요.”
고등학교 때 첫 사랑과 헤어진 후 아직‘딱 이 사람이다’ 싶은 애인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제가 다소 이기적인 성격이라 애인은 착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면 함께 살고 싶어요.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다른 사람의 결혼생활과는 좀 다르겠지만….”
김씨는 ‘커밍아웃’ 출연 후 동성애를 둘러싼 젊은이들의 다양한 고민을 담은 케이블 채널 리얼TV의 시트콤 ‘솔 룸메이트’에 캐스팅됐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가 ‘유명세를 얻기 위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왕의 남자’‘브로크백 마운틴’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고 여성들 사이에서‘게이 친구 하나 두기’가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과거에 비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은 있다고 생각해요. 커밍아웃으로 출발했지만 동성애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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