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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뜨거운 열정

철부지 싱글맘으로 변신, 뮤지컬 무대 오르는 하희라

글·김수정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2008. 04. 24

하희라가 10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30대 남녀의 좌충우돌 동거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굿바이 걸’에서 철부지 싱글맘을 연기하는 것. 그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는 소감과 가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철부지 싱글맘으로 변신, 뮤지컬 무대 오르는 하희라

하희라(39)가 3월28일부터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굿바이 걸’ 무대에 오른다. ‘굿바이 걸’은 세계적인 희극작가 닐 사이먼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공연된다. 공연을 앞두고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만난 하희라는 “대사를 이제야 다 외웠다. 연습도 실전처럼 해야 하기에 틀리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한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초연이라 부담감이 커요.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내용전달을 잘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죠. 저는 초등학생 때 예방접종을 하면 꼭 반에서 1등으로 맞은 뒤 공포심에 벌벌 떠는 친구들을 의연하게 쳐다봤어요(웃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옛말이 있듯 ‘아직 아무도 연기하지 않은 작품이니 비교대상이 없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죠.”
공연장보다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주로 만나게 되는 그이지만 사실 하희라는 중학교 시절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시작으로 뮤지컬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넌센스’, 모노드라마 ‘우리가 애인을 꿈꾸는 이유’에 출연하는 등 무대 나들이를 꾸준히 해왔다.
“원래는 연극을 할 생각이었는데 ‘굿바이 걸’ 대본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뮤지컬 무대는 98년 ‘넌센스’ 이후 처음이라 걱정됐지만 작품이 재미있어 욕심을 냈죠. 그러고는 ‘나 때문에 공연에 지장이 생기면 안 돼. 다른 배우들이 열 번 연습할 때 나는 백 번 연습해야 해’라고 늘 다짐해요. 다행스럽게도 상대배우인 정성화씨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좋은 선생님 아래서 공부하는 기분이 들어요(웃음).”

“당신은 최고의 배우입니다” 같은 메시지로 응원해주는 남편
철부지 싱글맘으로 변신, 뮤지컬 무대 오르는 하희라

단발머리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하희라는 아직도 수줍은 소녀 같았는데, 그런 그가 이번 공연에서는 색다른 변신을 한다고 귀띔했다. ‘굿바이 걸’은 전직 댄서이자 싱글맘인 폴라가 거만하고 고집 센 연극배우 가필드와 우연히 동거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그는 이 작품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도 남자들에게 금방 정을 주는 철부지를 연기한다. 남편 최수종과 두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그의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처음에는 제 삶과 무척 달라 감정몰입이 잘 안됐지만 점차 폴라를 이해하게 됐어요. 다섯 번째 남자에게 배신당해 어린 딸과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폴라는 꿋꿋하게 이겨내죠. 그러다가 가필드를 만나 옥신각신 다투다가 사랑을 이루고요. 상황 전개가 재밌으면서도 ‘가족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고충도 털어놓았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연습은 보통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난다고. 정식으로 공연연습을 하기 전부터 노래연습을 하고 댄스학원을 다니던 그는 “녹초가 돼 집에 들어가니 아무 일도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이제껏 춰본 경험이 없는 관능적이고 격렬한 댄스를 배우면서 노래를 불러야 해 에너지 소모가 무척 크다고.
“실력이 늘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연습한 부분을 녹음해 집에 가서 다시 들어보면 ‘어유~ 왜 이렇게 못하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거든요. 뮤지컬에 괜히 도전했나 싶어 후회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배우입니다’ 같은 편지를 주면서 위로해줘요. 최고의 배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남편이 아내로서나 배우로서 나를 존중해주는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져요.”
최수종은 매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지만 극중 하희라의 키스신이 일곱 차례나 있어 은근히 신경 쓰는 눈치라고 한다. 아이들 앞에서 농담 삼아 질투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고.
“평소에도 수시로 남편, 아이들과 뽀뽀를 하는데, 한번은 뽀뽀를 하면서 극중 ‘내 입술을 한 번만 더 깨물어줘요’라는 폴라의 대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정성화씨와의 러브신이 떠올랐는지 남편이 ‘에이, 당신도 참…’ 하면서 괴로워하더라고요(웃음).”
요즘 최수종은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 올 초 한국방송통신대 영문과 08학번으로 입학한 것. 평소 영어공부에 관심이 많던 최수종은 TV에서 싱가포르의 한 60대 남자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얼마 전 KBS ‘남희석·최은경의 여유만만’에 출연한 하희라는 “‘어느 날 새벽에 깨보니 남편이 곁에 없었다. 서재에 불이 켜져 있어 살짝 갔더니 남편이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남편이 대학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잘 생각했다. 배움은 끝이 없다’며 격려해줬어요. 저도 스케줄이 없을 때면 영어학원에 다니거든요. 한때 어학연수를 준비한 적도 있지만 아이들 때문에 포기했죠. ‘엄마가 두 달간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도 돼?’ 하고 묻자 큰아이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보고 싶으면 사진 보면서 참을게요’라고 말하는데 둘째 아이는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런데 그날 밤부터 열이 펄펄 나더군요. ‘촬영을 갈 때도 칭얼거리지 않던 아이였는데 얼마나 싫으면 몸살이 났을까’ 싶더라고요.”

세뱃돈 모아 불우이웃돕기 성금 낸 아이들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특히 하희라는 초등학생인 민서(10)와 윤서(9)가 공부만 하기보다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번은 아이가 책을 읽으면서 ‘나도 기차 타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당장 기차표를 구할 수 없어 두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어요. 직업이 연예인이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마음껏 돌아다니기 힘들지만, 되도록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들어주지는 않는다고. 그는 아이들에게 아직 용돈을 주지 않는데, 아이들은 세뱃돈을 모아 필요한 곳에 쓴다고 한다.

철부지 싱글맘으로 변신, 뮤지컬 무대 오르는 하희라

하희라는 “남편이 공연 기간 내내 매회 관람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미소지었다.


“언제부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저금통에 돈을 넣더라고요. 민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저 몰래 저금통에 손을 댔다가 혼난 적이 있어요. 방과 후에 친구들과 뽑기를 하려고 5백원을 꺼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돈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려고 단호하게 ‘너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기보다는 그 돈을 모아 필요한 곳에 쓰는 게 낫다’고 가르쳤어요.”
그날 이후로 저금을 열심히 한 민서는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자신이 모은 돈으로 냈다고 한다. 윤서는 눈치가 빨라 말하지 않아도 저금을 잘하는데, 할아버지·할머니 생신 선물을 사고, 자신의 생일에 “엄마, 생일잔치 열어주느라 돈 많이 썼죠? 미안해요~” 하면서 모아둔 용돈을 하희라에게 줬다고 한다.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그 돈을 받아 그대로 간직해뒀어요. 윤서는 감수성이 예민해요. 수시로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제게 편지를 쓰죠. 하루는 ‘엄마, 오늘 정말 예뻐요. 거기 그대로 서 계세요’ 하더니 종이로 만든 카메라를 가지고 왔어요. ‘찰칵’ 입으로 사진 찍는 척하더니 카메라 속에서 종이를 주더라고요. 그 종이에는 활짝 웃고 있는 제 모습이 그려져 있었어요(웃음).”
아이들은 최수종·하희라 부부에게 깜짝 이벤트를 자주 열어준다고 한다. 인형극이나 마술쇼를 준비한 뒤 ‘초대장’까지 만들어 두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고.
“대개 동화책에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을 인형극으로 꾸미는데, 종이에다 여우·두루미·까치 등을 그리고 오려 한 명은 밑에서 인형을 움직이고, 한 명은 목소리 흉내를 내요(웃음). 얼마 전에는 책에서 본 마술을 익혀 간단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고요.”

가족에게 최선 다하는 남편 모습 존경스러워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인기만점이라고 한다.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데, 두 사람을 본 학생들은 민서·윤서에게 사인을 부탁한다고.
“윤서의 짝꿍은 ‘어머, 너 대조영 장군 딸이니? 너희 아빠 진짜 무섭겠다. 칼 한번 휘두르면 사람들 다 죽잖아’라고 말하더래요(웃음). 아이들이 예전에는 저희 직업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엔 ‘엄마 아빠 직업이 다른 부모님과 좀 다르구나’ 하고 느껴요.”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결혼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혼부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최수종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하희라의 애칭은 ‘우~예쁜 여인’. 하희라는 “항상 나를 먼저 배려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남편과 아버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며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기념일에 국내 결식아동지원기금으로 1억원을 쾌척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우리가 가진 사랑을 남들에게 나눠주자”는 최수종의 뜻. 매년 최수종은 결혼기념일에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지난해 결혼기념일에는 스케치북에 “내가 당신의 심장이 돼주기로 한 지 벌써 14년이 됐네요”라고 시작하는 메시지를 적어 하희라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당신의 오늘을 함께하고 당신의 내일을 함께할 영원한 당신의 심장인 나는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크나큰 사랑을 기억할 거예요. 비록 당신이 이렇게 늙더라도’라는 문구에 전봇대에 다리를 걸치고 일자 스트레칭을 하는 한 할머니의 사진을 붙였더라고요(웃음).”
최수종은 하희라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굿바이 걸’을 관람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하희라가 2004년 ‘우리가 애인을 꿈꾸는 이유’에 출연할 당시에도 왼쪽, 중간, 오른쪽 등 좌석을 바꿔가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
“한번은 ‘왜 자리를 자꾸 바꿔요?’ 하고 물었더니 제가 시선을 한쪽으로만 둘까봐 그랬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도 매회 올 거라고 하기에 ‘피곤한데 안 그래도 돼요’라고 했더니 ‘항상 당신을 지켜볼 거예요’라고 답하더라고요.”
“공연연습으로 바빠 살이 많이 빠졌다”는 하희라는 요즘 영지 달인 물을 챙겨와 수시로 마시며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 공연기간 내내 2시간 30분 이상 쉬지 않고 연기하려면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하기 때문.
“매일 똑같은 컨디션으로 공연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똑같은 기분인 것처럼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해요. 드라마나 영화는 촬영 중간 모니터링을 하면서 쉴 수 있고 NG가 나면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은 자신의 페이스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하는 장거리 달리기예요. 그래서 체력안배를 잘하면서 처음 감정을 지켜나가야 하죠. 연습을 하면서도 매일 ‘오늘이 처음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이다’라며 최면을 걸어요.”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끼와 열정, 에너지를 발산하겠다는 그의 변신이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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