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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닮은꼴 모녀

‘농구 스타’ 박찬숙 & 연기자 지망생 딸 서효명 인터뷰

글·정혜연‘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8. 04. 23

최근 인터넷상에서 여자농구계 전설 박찬숙씨의 딸이 ‘얼짱 치어리더’로 화제가 됐다. 스포츠 스타로 살아온 박찬숙씨와 연기자를 꿈꾸는 딸 서효명씨를 만나 열정적인 모습이 똑 닮은 두 사람의 꿈 얘기를 들었다.

‘농구 스타’ 박찬숙 &  연기자 지망생 딸 서효명 인터뷰

최연소 여자농구 국가대표선수, 아시아 여자농구대회 4연패 달성의 주역, LA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한국 여자농구계의 살아 있는 신화’ 박찬숙씨(49)가 요즘 자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미모의 딸을 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프로농구 리그 치어리더로 활동했던 딸 서효명씨(22). 170cm의 키, 날씬한 몸매, 빼어난 미모를 가진 효명씨는 지난 3월 초 한 언론매체를 통해 박찬숙씨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바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항상 ‘박찬숙’이 중심이 되는 인터뷰만 했는데 딸 덕분에 ‘효명이 엄마’로 인터뷰하려니 감회가 남달라요. 다만 아이가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조금 걱정이 돼요.”
자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상처받을까봐 걱정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평범한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한 박찬숙씨는 당시 170cm의 키에 아이답지 않은 실력을 갖춘 ‘여자농구계의 샛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만큼 지금 딸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고 했다.
“제가 초등학교 때는 여자농구가 프로레슬링만큼 인기가 높았어요. 덕분에 장신의 여자아이가 농구를 한다고 해서 주목을 많이 받았죠. 기자들이 학교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따라오지 말라’고 하고는 집까지 뛰어가서 어머니께 무섭다고 이야기하던 게 기억나요.”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 재학 중인 효명씨는 연기자 데뷔를 준비하다 우연한 기회에 치어리더를 하게 됐는데 갑자기 이름이 알려져 얼떨떨하다고 한다.
“같은 과 친구가 치어리더를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원래 춤추는 걸 좋아하는데 관중 앞에서 춤추며 응원하고, 돈도 버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시즌이 끝날 무렵 어떤 기자 분이 제 이름을 물어보기에 알려줬더니 다음 날 ‘농구선수 박찬숙 딸, 얼짱 미모 화제’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더라고요.”
“효명이가 부담된다고 하기에 ‘부담감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해줬어요. 저도 어릴 때 ‘농구 잘하는 아이’로 알려지는 게 적잖이 부담됐지만 그 덕분에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찬숙씨는 처음엔 딸이 연기자가 되겠다는 게 달갑지 않았다고 한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고달픈 ‘유명인’으로서의 삶을 딸이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라고.
“어릴 때부터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기획사 명함을 여러 장 받아올 정도로 연예계 데뷔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연예인 생활은 힘들고 스타가 되기도 어려우니까 ‘딱 열 번만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자꾸 생각해봐도 자기는 꼭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결국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허락했죠.”
남편 서재석씨(54)도 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남편에 대해 묻자 박찬숙씨는 “온순하고 아주 편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효명씨 외에도 수원군(12)을 두고 있다.
“제가 스물한 살 때 아이 아빠를 만났어요. 선수들이 다치면 고정적으로 가던 병원 원장 동생이 미팅을 주선했죠. 제비뽑기로 정해진 파트너였는데 몇 번 데이트하다 보니 정이 들어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웃음).”
연애기간은 7년이나 됐지만 제대로 데이트를 한 기억은 없다고 한다. 해외 원정경기를 갈 때가 많았고 합숙훈련도 길었던 탓에 전화나 편지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그 시절에는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 외국 풍경과 훈련생활을 적은 편지를 보내고 남편에게서 한국 생활이 담긴 편지를 받는 정도로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래서 오래 연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농구스타 박찬숙’보다 유명한 ‘배우 서효명’ 되고 싶어요”
‘농구 스타’ 박찬숙 &  연기자 지망생 딸 서효명 인터뷰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는 사이 좋은 모녀. 효명씨에게 엄마 박찬숙씨는 든든한 후원자다.


박찬숙씨는 84년 LA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센터로 활약해 은메달을 받은 뒤 이듬해 은퇴하고 결혼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리고 86년 첫째 효명씨를 낳고 2년 만에 선수로 복귀해 대만행을 결정했다. 출산 후에도 현역 때 체력과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그에게 계속해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 처우가 좋았던 대만 실업팀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는 아무리 잘나가는 선수라도 나이 들면 운동을 그만두고 결혼하는 분위기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 선수가 된 후로 한 번도 마음 편히 개인시간을 가져본 적 없어 ‘시집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하지만 집에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계속 ‘너 이렇게 팔팔한데 살림만 할 거냐?’고 부추겼고 저 자신도 다시 코트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두 살 난 딸과 대만으로 간 그는 그곳에서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아침이면 효명이를 데리고 훈련장에 갔어요. 제가 연습하는 동안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봐줬고 연습 끝나면 집에 가서 앞치마부터 두르고 집안일하는 생활을 4년 동안 했죠. 운동하면서 아이를 잘 키웠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뿌듯해요.”
박찬숙씨는 91년 한국으로 돌아와 태평양화학의 코치 겸 선수가 됐다. 그때도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는 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한 번도 학부모회에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쉬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정작 결혼하고 제대로 쉰 날은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좋은 선수, 좋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얻기 위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가 낮에 다시 학교에 들러 집에 데려다주고 코트로 돌아가는 생활을 거의 매일 반복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시겠죠(웃음).”
딸 효명씨는 그런 엄마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도 ‘박찬숙 딸’이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고.
“학창시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제 이름부터 부르셨어요. ‘서효명!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배웠지?’라고 묻고 제대로 답해야 ‘역시 박찬숙 딸이군’이라고 하셨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엄마를 위해 뭐든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박찬숙씨는 현재 대한체육회 부회장, 농구선수 운동기록 분석기관인 이아이팩 대표이사, 초등학생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박찬숙 농구교실 대표 등의 직함을 갖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한양대에서 강사로 교양농구수업을 맡아 가르치고 있다.
“20명 정원으로 개설했던 수업에 학생들이 몰려 40명까지 정원을 늘렸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요(웃음). 지금 제가 가장 신경쓰고 있는 일은 선수들의 경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에요. 데이터 분석 전문가와 손잡고 선수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분석, 체계적인 기록을 만들고 있죠.”
박찬숙씨의 꿈은 대한민국 최초로 여자 프로농구단의 감독이 되는 것. 지금까지 여자 프로농구단의 감독은 모두 남자선수 출신이 맡아왔다. 지난해 6월 우리은행 여자 프로농구단 감독 공모에 응시했다 탈락한 박찬숙씨는 ‘포기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선수생활만 하다 은퇴하는 후배들이 “여자도 감독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게끔 하고 싶다고. 농구선수로 활동할 때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박찬숙씨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딸 효명씨는 “엄마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나도 더 노력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박찬숙 딸, 얼짱 치어리더 같은 꼬리표를 떼고 싶어요. 한국 농구로 길이 남은 엄마처럼 저도 노력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연기자 서효명’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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