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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이 남자

홍정욱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헤럴드미디어 대표직 사임하고 정계 진출 선언한~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04.10 11:54:00

베스트셀러 ‘7막7장’의 저자로 유명한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대표가 언론사 CEO 자리에서 물러나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내 인생의 키워드는 도전이며, 하루를 살아도 사자로 살겠다”는 그를 만나 정치인으로서의 포부와 궁금한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홍정욱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최근 제18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일선에 뛰어든 홍정욱 전 헤럴드미디어 대표이사 회장(38)을 만난 건 2월 중순의 어느 늦은 밤이었다. 밤 10시를 향해가는 시간이었지만, 서울 동작구에 있는 그의 선거 사무실은 대낮처럼 북적였다. 그 한가운데, 새벽 5시 반부터 시작된 거리 유세를 마치고 막 돌아온 홍 전 대표가 있었다.
“동틀 무렵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출발해 여성복지센터, 노량진역, 상도역 등 지역구 곳곳을 돌았어요. 많은 분들을 뵙고 인사드리려 했는데, 지금 보니 명함을 1천 장 정도밖에 못 돌렸네요(웃음).”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 모습에서 피로의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랜 시간 꿈꿨던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는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며 다시 한 번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홍 전 대표는 지난 93년 출간한 자전 에세이 ‘7막7장’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그가 중학교 재학 중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를 졸업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책은 당시 1백만 부 이상 팔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기업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동한 홍 전 대표가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지난 2002년. 코리아헤럴드, 헤럴드경제(당시 내외경제) 등이 속해 있는 헤럴드미디어 그룹을 인수하고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촉망받는 젊은이’에서 ‘30대 언론사 CEO’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홍 전 대표는 영화배우 남궁원씨(본명 홍경일)의 아들이며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의 처조카 사위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헌칠한 외모, 남다른 이력과 가정 배경 등으로 일찍부터 정계 진출이 예상되던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건 지난 2월 초. 그는 헤럴드미디어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바로 한나라당 서울 동작갑 지역구 공천을 신청함으로써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동작갑은 인기 아나운서 출신 유정현씨 등 쟁쟁한 경쟁자가 몰려 있어 당내 공천 여부도 확신하기 어려운 지역. 하지만 그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정치하는 사람 중에 자기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당연히 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야죠. 물론 제가 승리를 확신하듯, 다른 분들도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겁니다(웃음).”

“난 ‘귀족’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고, 최선 다해 성취해온 평범한 사람”
홍 전 대표는 “언론사 최고경영자로서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길로 정치에 입문할 수도 있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사람과 삶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공천경쟁에 뛰어들었다”며 “시장에서, 병원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며 배우는 세상은 신문을 통해 읽은 세상과 전혀 다르다. 지금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자체가 내겐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 동작구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고, 그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홍 전 대표의 본적지는 동작구 상도동이라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됐다고 여겨지는 이곳 사람들에게 지역적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오랫동안 생각해온 정치인의 꿈을 펼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홍 전 대표가 처음 정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열다섯 살 때. 존 F.케네디의 전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서다. 그는 “어린 내 눈에 케네디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으로 보였다. 완벽한 배경, 최고의 학벌, 아름다운 아내까지 가진 그가 공직에 참여하는 걸 보며 ‘공직은 정말 멋지고 영예로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가고 공직에 나서는 게 ‘입신양명’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케네디 전기를 읽으며 정치는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 고마움을 되갚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았죠.”
홍 전 대표는 바로 그 길을 걷기 위해 지난 85년 케네디의 모교인 미국 초우트 로즈마리홀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졸업 뒤엔 역시 케네디가 나온 하버드대에 진학했다. 그가 언론사를 경영한 것도 정치를 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고 한다.

홍정욱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정치를 하려면 경영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회사보다는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회사를 원했고요. 2002년 12월 적자투성이던 헤럴드미디어를 인수했을 때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지만, 제가 경영을 맡은 뒤 회사가 5년 연속 성장, 최근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걸 보며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 경험이 ‘이젠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경영하는 정치를 할 수 있겠다’는 용기의 밑거름이 됐죠.”
그는 자신이 정치인으로 출발선에 서기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왔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자신을 ‘귀족적’이라고 보는 세간의 시선이 불만스러운 듯했다.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인데, 나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언제부터 대한민국 영화배우가 ‘귀족’이었느냐”며 “자라는 동안 밥 한 번 굶지 않았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니 유복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 부모님은 세상 어느 부모 못지않은 헌신적 노력을 하셨다”고 말했다. 그가 아직도 가장 마음 아픈 기억으로 떠올리는 건 아버지 남궁원씨가 자신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무대에 선 일이다.
“아버지는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평생 밤무대 출연을 삼가셨어요. 그런데 저를 유학 보낸 뒤 그 일을 시작하셨죠. 서울에서 출연하면 혹시라도 제 미래에 누가 될까봐 지방 유흥업소만 돌며 노래를 부르셨다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제겐 비밀로 하셨는데, 고등학교 때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대전 거리에서 아버지가 출연한다는 카바레 포스터를 보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됐어요.”
홍 전 대표는 “‘7막7장’을 쓸 때는 아버지께 폐가 될까봐 차마 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도 저만 미국에 두고 오는 게 마음에 걸려 학교 근처 작은 집에 머물며 제 뒷바라지를 하다 유방암에 걸려 절제 수술을 받으셨어요. 자식교육을 위해 남자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존심을 버린 아버지, 여자로서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슴을 잃은 어머니 아래서 제가 자란 겁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고2 때부터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죽 장학금을 받았죠.”
그는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내 머리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만약 좀 더 나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훨씬 더 많이 노력해 이뤄낸 것”이라고 했다. 처음 미국에 간 중3 때 그는 영어를 익히기 위해 사전을 통째로 외웠고, 책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다 외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스스로 ‘무식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 방법을 통해 외운 영어 단어와 문장은 지금도 그의 영어 실력의 바탕이다.
홍 전 대표는 정치에 뛰어든 뒤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아내가 정 의원의 처조카인 건 사실이지만, 그걸 알고 만난 게 아니기 때문에 결혼할 때 그런 배경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의 아내 손정희씨(34)는 손원일 전 국방부장관의 친손녀. 쌍용자동차 사장 등을 지낸 손명원씨의 딸이며,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이다. 정몽준 의원은 손씨의 이모부가 된다. 미국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뒤 뉴욕 화랑가에서 아트 딜러로 활동하다 홍 전 대표와 결혼한 손씨 덕분에 그의 ‘귀족적’ 이미지는 한층 강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홍 전 대표를 통해 들은 두 사람의 만남은 로맨틱했다.
“아내를 처음 본 건 95년 6월이에요. 제가 잠시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던 재즈클럽에 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 첫눈에 반했죠. 그때는 아내의 이름도, 집안도 전혀 몰랐어요. 다만 ‘한국에 저런 여자는 저 사람 하나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만나자고 했죠.”
이후 두 사람은 손씨의 학교가 있던 뉴욕과 스탠퍼드대 로스쿨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사랑을 이어갔고, 4년 뒤인 99년 1월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홍 전 대표는 “두 사람의 만남이 너무 극적이라 믿음이 덜 간다”는 말에 “아내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예쁘다. 연애결혼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잘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존경받는 대한민국’ 만들고 싶어
홍정욱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최근 제18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일선에 뛰어든 홍정욱 전 헤럴드미디어 대표이사 회장(38)을 만난 건 2월 중순의 어느 늦은 밤이었다. 밤 10시를 향해가는 시간이었지만, 서울 동작구에 있는 그의 선거 사무실은 대낮처럼 북적였다. 그 한가운데, 새벽 5시 반부터 시작된 거리 유세를 마치고 막 돌아온 홍 전 대표가 있었다.


“아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할 때 두 가지 약속을 했기 때문이에요. 우선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 아침에 절대 깨우지 않겠다고 했고, 또 한 가지는 가정을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거였죠. 아내는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정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 쓰인 것도 사실 그 부분이었어요.”
홍 전 대표는 지금까지 두 가지 약속을 철저히 지켜왔다고 한다. 출마를 결심한 뒤 아내에게 한 첫 말도 “선거운동은 나 혼자 할 테니 당신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평소대로 지내면 된다”였다고.
“그런데 그 사람이 어제 혼자 일어나 새벽 기도를 가더군요. 아마 그렇게 일찍 일어나 교회에 간 건 평생 처음일 겁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인데 제가 출마를 결정한 날 혼자서 귀화신청도 냈어요. 제게 말도 없이 그렇게 결정한 걸 나중에 알고 참 고마웠죠. 저를 돕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 고맙고 자랑스러워요.”
홍 전 대표는 손씨와의 사이에 딸 지승(7), 지수(4)와 아들 의승(2) 세 아이를 두고 있다. 그는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금세 만면에 웃음을 띠며 “나는 만인이 인정하는 ‘최고의 아빠’”라고 자랑했다. 아이들이 깨 있는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셋이 다 달려나와 서로 안기려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잘 따른다고 한다.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함께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같이 뒹굴며 시간을 보낸다고. 그는 “얼마 전 큰딸과 함께 ‘캔디캔디’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그게 알고 보니 참 우울한 내용이더라”며 웃기도 했다.
홍 전 대표는 지난 2003년 펴낸 에세이 ‘7막7장 그리고 그 후’에서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설정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해나가다 보면 행복은 성취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굳이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쓴 적이 있다.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바로 “아유~ 철없을 때 한 바보 같은 얘기죠”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지금 다시 묻는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라고 하겠죠(웃음). 전 지금도 여전히 도전하고 성취하는 데서 행복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성취라는 결과뿐 아니라 도전의 과정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일상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된 게 그 사이 가장 달라진 점이겠죠.”
그가 정치인으로서 꿈꾸는 것도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부나 성공 같은 목적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데서 벗어나 좀 더 품위 있고, 따뜻하고, 개성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정치인은 비전을 보여주고 성과를 이뤄내는 사람이죠. 제 목표는 품격 있는 정치, 인간적인 시장경제, 개인의 개성이 강조되는 실용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바탕 위에서 우리나라가 ‘잘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존경받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일찍이 자신의 인생을 ‘7막7장’이라고 표현했던 그는 “이제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 시작됐다. 이 막은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비전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예전엔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저쪽으로 홈런 치겠다’고 말한 뒤 정확히 그쪽으로 친 게 멋있어 보였지만, 요즘은 ‘그냥 조용히 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한다(웃음)”고만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먼 훗날의 목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제 앞에 주어진 과제와 도전에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 어떻게, 어떤 직책을 맡게 되느냐는 유권자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홍 전 대표는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살아가며 어떤 굴곡을 거치든, 끝없이 도전하고 성취해온 지금까지의 색깔을 지킬 것이라는 점”이라며 “먼 훗날 사람들이 ‘도전’이라는 단어에서 나를 떠올리게 된다면, 그리고 ‘저 사람은 정말 마침표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의 성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생관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하루를 살아도 사자로!”였다.

여성동아 2008년 3월 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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